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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릉빈가 ㅣ 청소년 권장 도서 시리즈 5
김희숙 지음, 유시연 그림 / 틴틴북스(가문비) / 2021년 9월
평점 :
역사동화 『가릉빈가』는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에 얽힌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화입니다.
가릉은 종을 만드는 마을 공동체의 뛰어난 장인입니다. 그럼에도 가릉은 자신의 실력에 여전히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왕 가야할 길이라면 최고의 종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떠난 자리엔 임신한 아내만 홀로 남게 되었다는 겁니다.
당나라에서의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가릉을 반기는 건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집뿐입니다. 태어날 아이에게 “빈가”란 이름을 지어주고 간 가릉, 하지만, 아내와 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답니다.
바로 여기에 에밀레종의 설화가 들어갑니다. 그 부조리한 설화가 말입니다. 물론, 신심과 열정에 대한 희생이란 의미로 포장되어 있지만 말입니다. 성덕대왕의 아들 경덕왕은 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종을 만들어 봉덕사에 바치려 합니다. 이에 시주를 받는데, 시주하러 온 스님에게 가릉의 아내는 시주를 하고 싶어도 아이밖에 없단 소리를 하며 시주를 하지 않는답니다.
문제는 맑은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지 못하게 되자, 맑은 소리를 위해 사람을 바치게 된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을 “바칠 것은 아이밖에 없다”고 한 여인에게로 책임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 아이 빈가를 희생제물로 바칩니다. 그렇게 해서 맑은 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에밀레종.
이렇게 끔찍하고 아픈 사연을 접한 빈가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만, 운명의 굴레에 의해 다시 종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되고, 좋은 소리를 내고 싶다는 열망을 이루기 위해 결국 자신을 바쳐 종을 만든다는 이야기랍니다.
그러니 동화는 당시의 인신공양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답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위한 희생이란 포장 속에 감춰진 끔찍한 폭력의 모습인 인신공양이 동화 속에 깔려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내용을 보며, 자신의 꿈과 길을 완성하기 위한 열정 내지 희생이라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 끔찍한 폭력이 정당화되는 부조리 앞에 고개를 젓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판단은 독자의 몫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자신의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한 일이 아무리 불심과 효심으로 포장된다고 할지라도, 그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모습이 과연 효심일지, 그리고 그것이 신심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특히 그런 폭력 위에 세워진 권력이란 생각에 입안이 씁쓸했답니다. 물론, 가릉의 열정, 자신의 길을 이루고자 하는 그 마음은 폄하해선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솔직히 이 역시 찬사 받을 일만은 아닐 겁니다.). 가릉의 열정과 숙명의 길을 걸어가는 그 모습은 참 귀하고 아름답지만, 그럼에도 거대한 폭력 앞에 결국 순응해 버리는 모습은 안타까움과 먹먹함으로 남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토론할 거리가 가득한 동화입니다. 게다가 뒤편에 실린 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학습적 효과 역시 좋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