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46] 풀밥을 먹자
― 얘들아 밥이 다 되었어

 


  밥을 다 차릴 무렵 풀을 뜯습니다. 풀을 미리 뜯을 수 있지만, 밥이랑 국이랑 다 될 무렵 비로소 풀을 뜯습니다. 어느 때에는 아이들이 너무 배고파 하기에 미처 풀을 못 뜯고 밥이랑 국부터 먹이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는 혼자 마당으로 내려서서 풀을 뜯어서 헹군 뒤 송송 썰어 올리기도 합니다. 풀을 일찌감치 뜯는 적이 없습니다.


  여러 해째 이렇게 풀을 뜯으며 생각합니다. 왜 미리 풀을 안 뜯을까? 왜 미리 풀을 뜯는 버릇을 들이지 못할까?


  새봄을 맞이해 봄풀을 뜯다가 문득 한 가지 떠오릅니다. 어떤 풀을 뜯어서 먹든, 뜯는 자리에서 바로 입에 넣으면 가장 맛있습니다. 뜯어서 밥상맡까지 가지고 올 적보다 풀밭에서 뜯어 곧바로 먹으면 가장 맛있어요.


  밥을 차려야지 하고 생각하는 ‘머리’에서는 미리 풀을 뜯으면 밥상 차리기가 한결 수월하다고 여깁니다. 밥을 차리는 ‘마음’에서는 갓 뜯은 풀이 가장 맛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머리보다 마음이 늘 앞서기에, 풀을 맨 나중에 뜯어서 차리는구나 싶어요.


  풀 뜯는 데에는 몇 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슥 한 바퀴 돌면 됩니다. 아이들은 곧잘 풀뜯기를 거듭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먹을 풀을 스스로 뜯으면 더 맛있습니다. 남이 차려서 내미는 밥도 맛나지만, 손수 차려서 먹는 밥이란 더없이 맛있어요. 손수 씨앗을 심어서 거둔 푸성귀라면 훨씬 맛있을 테지요.


  풀을 뜯으며 생각합니다. 풀은 사람이 따로 풀씨를 뿌리지 않아도 스스로 뿌리를 내려 자랍니다. 풀은 사람 손길을 타야 잘 자라지 않습니다. 풀은 스스로 돋고 스스로 푸릅니다. 사람이 이런 씨앗 저런 씨앗을 심어 거두어 먹어도 좋을 텐데, 스스로 돋는 풀만 뜯어서 먹으려 해도 다 못 먹습니다. 풀밥을 먹고 풀물을 마시기만 하더라도 사람은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고속도로를 늘리거나 아파트를 더 지어야 할 이 땅이 아니라, 풀밭과 숲을 가꾸고 돌보면서 누구나 풀밥을 실컷 누릴 수 있을 때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 땅이 되리라 느껴요. 논둑과 밭둑을 시멘트로 덮으려 애쓰지 말고, 논둑과 밭둑에서 자라는 풀을 즐겁게 맞이해서 기쁘게 먹으면 넉넉하리라 느껴요.


  풀을 먹는 몸에서는 풀내음이 납니다. 풀을 먹는 사람은 풀내음이 나는 글을 씁니다. 풀을 먹는 사람은 풀내음이 감도는 책을 사귑니다. 풀을 먹는 사람은 풀내음으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동백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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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40] 창호종이문으로 빛살
― 아침맞이

 


  시골집 아침은 소리와 빛 두 가지로 찾아듭니다. 동이 틀 무렵 창호종이문으로 빛살이 살포시 깃듭니다. 창호종이문으로 빛살이 살포시 깃들 무렵이면 집 둘레로 멧새가 찾아들어 아침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에는 사월부터 팔월까지 제비가 깃들고, 제비가 집을 비우는 구월부터 이듬해 삼월까지 여러 텃새가 살짝 깃들어요. 겨우내 딱새 두 마리가 제비집에 깃들었고, 겨울이 끝나는 이월 즈음부터 참새 세 마리가 제비집에 깃듭니다. 초피열매나 후박열매를 먹으러 우리 집 마당을 찾아오는 멧새가 많은데, 이들은 열매뿐 아니라 나비 애벌레가 있으면 콕콕 집어서 먹습니다. 우리 집 풀밭이나 나무에는 풀벌레와 애벌레가 많으니 온갖 새들이 아침저녁으로 수없이 찾아들어 먹이를 찾으면서 고운 노래를 베풉니다.


  울림시계가 없어도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나지만, 숱한 새들이 찾아들어 노래를 부르니, 새벽에 안 일어날 수 없기도 합니다. 몸이 고단한 날은 조금 늦게까지 이부자리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새가 얼마나 곱게 노래를 들려주는가 가만히 들으면서 창호종이문으로 빛살이 차츰 짙어지는 결을 바라보곤 합니다.


  날이 밝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날이 환하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저녁이 되어 해가 기울 무렵에는 날이 저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불을 켜야 하는 밤에는 이제 깜깜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불을 켜는 밤에는 아이들을 재워야겠네 하고 돌아보고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곱씹습니다. 얘들아, 오늘 하루도 잘 놀았니? 얘들아, 오늘 하루도 마음껏 뛰놀면서 쑥쑥 자랐니?


  여름을 지나 가을이 깊고 가을을 거쳐 겨울이 되면 창호종이문으로 스미는 빛살이 줄어듭니다. 저녁이 일찍 찾아오고 아침이 더디 찾아옵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면서 여름 문턱으로 다다르면 창호종이문으로 스미는 빛살이 늘어납니다. 저녁이 한결 길고 아침이 일찍 찾아옵니다.


  포근히 젖어드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따사로이 감기는 아침을 누립니다. 기쁘게 여는 새 아침을 노래합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동백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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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4-03-25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지문으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일어나는 아이들은 참 행복할것 같아요~ 엎드려 책을 보는 아이 모습이 참 예뻐요^^

숲노래 2014-03-25 08:08   좋아요 0 | URL
옛날에는 시골집이 요런 종이 한 장으로 밖과 안을 갈랐으니, 겨우내 참 추웠겠네 싶어요. 도시 아파트와 견주면 이런 시골집은 무척 춥다고 할 만하고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빛과 볕과 살을 더 깊이 누리거나 느끼기에 철흐름을 읽고 날마다 새롭게 바라보아서 좋기도 해요~
 

사름벼리 갓잎쌈 먹기


  “벼리야, 풀 먹었니?” “헤헤헤. 음, 나는 이렇게 싸서 먹어야지.” 조그맣게 썬 갓잎에 밥을 살짝 얹어 말아 쥔 뒤 입에 넣는다. 사름벼리가 풀밥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아이들이 풀쌈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 볼 수 있겠구나 싶다. 이제껏 너무 투박하게 밥상을 차렸으니, 한결 예쁜 빛이 감돌도록 밥차림을 어루만져야겠다고 느낀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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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야 풀밥 잘 먹자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찾아들면서 ‘우리 집 풀’을 다시금 먹을 수 있구나. 다른 어느 먹을거리보다 가장 맛나면서 싱그러운 ‘우리 집 풀’을 잘 먹자. 너희들 똥오줌이 스며들기도 한 흙에서 자라는 풀이란다. 너희들 웃음과 노래를 듣고 싹을 틔우고 고개를 내민 풀이란다. 즐겁게 풀밥을 먹고는 힘차게 풀똥을 누면서 사랑스레 풀놀이를 하자.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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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과 눈물샘

 


  이 책은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저 책은 눈물샘이 솟습니다.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책을 읽습니다. 울면서 이야기밭에 씨앗을 심는 책을 읽습니다. 웃음이 피어나기에 책입니다. 눈물이 샘솟기에 책입니다. 웃음은 웃는 이야기요, 눈물은 우는 이야기입니다. 꽃은 싱그럽게 피어나서 누렇게 시듭니다. 풀은 짙푸르게 노래하다가 살며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살아가면서 웃음과 눈물이 갈마듭니다. 살아가면서 노래와 잠이 갈마듭니다. 살아가는 동안 밥을 먹고 똥오줌을 눕니다.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고 꿈을 꿉니다. 마음으로 스미는 책은 생각을 가꾸고 기운을 북돋우며 삶을 살찌웁니다. 4347.3.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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