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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에서 문득 깃든 곳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떠올라서, 이제는 더 늦추지 않고서 "헌책방 사진"으로 사진책이나 사진이야기책을 꾸리려고 합니다.


사진은 찾아 놓았고, 글을 추슬러야 할 텐데, 문득 한 꼭지가 눈에 뜨여서 손질을 해놓습니다. 2014년 7월에 쓴 글입니다. 이 글도 어느새 10해를 묵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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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17.나무. 책집 단골 되기


 ‘책집 단골’은 아무나 될 수 없다고 한다. 책집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은 ‘자주 오는 손님’은 될 수 있으나 ‘책집 단골’이라는 이름을 얻지는 못한다. ‘단골’은 어떤 책손한테 붙이는 이름일까? 글쎄, 나는 어느 책집을 두고도 나 스스로 ‘단골’이라고 느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큰고장을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니, 시골에서는 달포에 한 걸음씩 책집마실을 하기에도 만만하지 않다. 자주 드나들지 못하는 책집이기에 한 걸음을 하더라도 잔뜩 장만하기는 하지만, 단골은 ‘책을 많이 사들이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얼추 열다섯 해쯤 앞서인 1999년이었지 싶은데, ‘책집 단골’을 놓고 ‘책집에 자주 오는 아저씨’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집 〈뿌리서점〉이었다. 그곳을 날마다 드나드는 아저씨가 꽤 많은데, 그분들이 서로 옥신각신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서로 생각을 모두었다. 그분들이 말하는 ‘책집 단골’은 이렇다.


 ㄱ 서른 해 넘도록 드나들기

 ㄴ 오천 자락 넘게 장만하기


  어느 한 군데 책집에서 ‘단골’이라는 이름을 얻자면, 그 책집을 서른 해 넘게 드나들되, 그동안 책을 오천 자락 넘게 장만해야 한단다. 이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한 군데 책집을 스무 해쯤 드나들었으면 아직 ‘단골’은 아니다. 스무 해 즈음 드나들었을 때에는 제법 자주 드나들었다고 할 만하지만, 아직 그 책집 속내까지 헤아리지는 못할 만한 해라고 하겠지. 자주 드나든다고 하더라도 책을 어느 만큼 장만해서 읽지 않는다면, 그 책집이 어떤 책을 다루고 어떤 책으로 오래도록 책집살림을 꾸리는가를 알지 못한다고 할 만하다.


  나한테는 아직 ‘단골이라 할 만한 책집’이 없다. 왜냐하면, 아직 서른 해 넘게 드나든 책집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 드나든 책집은 1992년부터 2014년 올해까지 스물세 해를 드나든 곳이다. 이다음으로는 스물두 해를 드나든 곳이 있고, 스물한 해째 드나든 곳이 꽤 많다. 앞으로 일곱 해는 더 있어야 나한테도 ‘단골 책집’이 생긴다. 나는 마흔일곱 살이 되어야 비로소 ‘단골 책집’을 이야기할 수 있구나.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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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서울 용산 뿌리서점.

아마 2002년이나 2003년이었지 싶다. 설마 2004년일까. 필름더미를 뒤적이면 날짜를 알 테지만, 이제는 찍은 해가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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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28.

헌책집 언저리 : 책집 앞길



  마을책집을 처음 빛꽃으로 담을 적에 이 말 저 말 들려주는 어르신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찍으라고도 하고, 저렇게 찍으라고도 하셨어요. “네, 그렇군요.” 하면서 이 여러 어르신이 들려주는 말씀대로는 아예 안 찍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눈길로는 그 어르신이 손수 찍으면 되거든요. 도움말(훈수)이 싫지 않아요. 그저 여러 어르신은 제가 왜 마을책집을 빛꽃으로 담으려고 책값을 아껴 가면서 필름을 장만하고, 또 종이로 빛꽃을 뽑아서 책집지기님한테 꼬박꼬박 드리는가를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사진작가’가 될 마음이 없이, ‘사진으로 돈이나 이름을 벌’ 생각이 없이, ‘멋있는 사진을 선보일’ 뜻이 없이, 마을이 이렇게 아름답게 책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찰칵찰칵 눌렀습니다. 언제나 어느 책집을 찾아가든, 먼저 아주 먼 곳부터 찰칵 담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를 테지만 저는 깨알만큼 작은 책집 알림판을 알아보고서 ‘깨알만큼 작은 글씨’를 담습니다. 이러면서 몇 발짝씩 다가가며 새로 담고, 책집 앞에서 반듯하게 마주보며 찍고, 책집을 지나쳐 옆길로 들어서서 찍습니다. 책집 둘레에서 찰칵이를 들고 움직이면 “뭐 대단한 거라도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분이 많습니다. 네, 저한테는 대단하지요. 바로 여기에 책집이 있거든요. 어느 모로 본다면 “오늘은 그냥 지나치시지만, 이다음에는 이 책집을 알아보고 나들이를 해보시라는 마음”으로 책집 곁에서 앞길 모습을 느릿느릿 찍었다고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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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서울 삼우서적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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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7.

헌책집 언저리 : 가회동과 배용준·대장금



  나라 곳곳이 구경터(관광지)로 바뀌기 앞서 마을책집은 마을빛을 건사하면서 아늑한 쉼터였습니다. 온나라 오래집이 구경터로 바뀌면서 오랜 마을책집은 구경꾼 발걸음에 빛을 잃다가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곤 했습니다. 서울 가회동에 중앙고등학교가 있고, 배움터 어귀에 조그맣게 오랜 헌책집 〈합서점〉이 있었습니다. 책집지기이던 아저씨가 일찍 저승길로 가면서 새 헌책을 들이기 어려워 조금씩 기운 살림이었지만, 조용조용 골목길을 비질하면서 정갈하게 돌보았어요. “우리는 이제 책집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워요. 그래도 이곳이 우리 살림집이니까 예전부터 하던 대로 집 앞도 가게 앞도 쓸고, 쓸다 보면 학교 앞도 쓸고, 옆가게 앞도 쓸고 그래요.” 500살이 넘는다는 은행나무는 책집하고 바로 붙어서 자라고 그늘을 드리우고 잎을 날립니다. 둘은 떼놓을 수 없는 사이입니다. 배움터 어귀 책집도 매한가지예요. 책집하고 마주보는 글붓집(문방구)도 그렇습니다. 모두 수수하게 배움이(학생)를 마주하며 지냈습니다. 이러다가 ‘겨울연가’가 갑자기 확 뜨면서 글붓집은 ‘배용준 얼굴그림’을 큼지막하게 내놓고 일본 손님한테 팝니다. ‘대장금’하고 얽혀 ‘이영애 얼굴그림’도 나란히 내걸어 일본 손님한테 팔고요.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태어난 이 몸으로 나아갈 즐거울 길을 찾아나서기 어려울까요? 가회동과 중앙고등학교와 마을책집은 제 빛을 잃고서 ‘배용준·이영애’판으로 범벅을 해야 할까요. 가회동 작은 마을헌책집 〈합서점〉에 들러 아주머니를 뵌 어느 날 “나는 아무리 부끄러워도 헌책을 놓고 싶은데, 젊은 예술가들이 와서 자리를 빌려 달라고 빌어. 하도 빌어서 어떻게 해. 책을 치우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온 그릇을 놓았지. 그런데 그런 그릇은 다른 가게에도 많으니, 여기까지 오는 일본 손님한테 우리나라 책을 보여주어도 좋을 텐데…….” 이제 가회동 〈합서점〉은 그곳에 없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로 삼을 책집은 그곳을 떠났습니다. 햇빛은 그대로이고 바람도 그대로이지만.


ㅅㄴㄹ


* 사진 : 서울 합서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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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7.

헌책집 언저리 : 대나무



  책을 훔치는 이는 도둑이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책까지 훔치면 그만 책을 잊어버리지 싶습니다. 책을 장만할 돈이 없어서 훔칠 수 있을까요? 책을 장만할 돈이 없다면 날마다 책집에 찾아가서 조용히 서서 읽을 노릇입니다. 또는 다른 일을 해서 책값을 넉넉히 장만해야지요. 한 자락만 훔치고서 손을 씻는 책도둑은 얼마나 될까요? 책을 훔쳐서 얻은 앎(지식)은 책도둑한테 얼마나 이바지할까요? 모든 훔침질은 똑같습니다. 땀방울을 가로채는 짓입니다. 모든 훔침짓은 사랑하고 등집니다. 그러나 훔치고 나서 뉘우칠 줄 안다면 확 달라요. 훔치는 짓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다시는 이웃 땀방울을 함부로 안 건드립니다. 훔치는 짓을 안 뉘우치고 눈물이 없는 사람은 책뿐 아니라 땅도 집도 나라까지도 훔치기 마련입니다. 부산 보수동에 깃든 작은 헌책집지기는 책집을 살짝 비우고서 볼일을 보실 적에 자물쇠로 걸어 잠그지 않습니다. 굵고 기다란 대나무를 척 걸칩니다. 제주섬에 ‘정낭’이 있어요. 헌책집에는 ‘책집 정낭’이 있습니다. 마음을 보라는 나무입니다. 이웃을 생각하라는 나무입니다. 스스로 숨빛을 읽으라는 나무입니다.


ㅅㄴㄹ


* 사진 : 부산 보수동 알파서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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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5.

헌책집 언저리 : 왁자지껄



  1990년대 한복판에 복사집이 널리 퍼지면서 마을책집이 줄줄이 닫았습니다. 이윽고 피시통신·인터넷이 뿌리내리며 마을책집은 새삼스레 못 버티고, 2000년으로 접어들면서 〈아름다운 가게〉가 큰주먹을 날리고, 2010년을 넘어서자 〈알라딘 중고샵〉은 막주먹을 퍼부었습니다. 이동안 마을책집지기는 “자네가 오늘 처음 온 손님이오.” 하는 말을 으레 들려주었습니다. 이 말씀이 아니더라도 책집에서 서너 시간을 머물며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책손을 아무도 못 보기 일쑤였습니다. 왁자지껄하게 떠들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책 한 자락에서 이야기를 얻고 누리던 발걸음은 어디로 갔을까요. 가만히 보면 ‘마을책집이 해마다 1000곳씩 사라지던 그때’에 나돌던 적잖은 책은 꽤 겉멋스러웠습니다. 마을을 품은 이야기를 다룬 책은 그때까지 매우 적었습니다. ‘누구나 쓰는 글’이 아닌 ‘등단을 하거나 교수쯤 이름이 있는 사람이 아닌 글’은 책이 되기 어렵던, 아니 책으로 받아들이지 않던 무렵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새롭게 태어나는 마을책집은 마을을 품은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책시렁에 차츰차츰 널찍하게 들여놓습니다. 굳이 국립중앙도서관 막대기(바코드)를 얻어야 책이지 않습니다. ‘누구나 쓰는 삶글’은 저마다 새롭게 빛나는 즐거운 책입니다. 이제는 겉멋이 아닌 속사랑으로 ‘참나(참다운 나)’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스스로 조촐히 여미는, 바야흐로 새롭게 왁자지껄한 마을수다를 이루는 책길로 나아가는 언저리라고 느껴요. 서울 숭인동에서 오래도록 마을책집 살림을 잇던 〈우리글방〉은 숭인동을 통째로 들어내어 잿빛집(아파트)을 세운다는 말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가게를 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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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우리글방-숭인동.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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