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글’ 쓰기는 힘들다

 


  사과글 쓰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스스로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과글 쓰기는 쉽다. 왜냐하면, 스스로 잘못했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과글 쓰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잘못했다기보다 다른 사람 말을 듣고 따라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스스로 잘못하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과글 쓰기는 쉽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 말을 듣고 따라했어도 잘못을 한 사람은 바로 나인 줄 깨닫기 때문이다. 참거짓을 스스로 살피지 않고 다른 사람 말을 따르기만 하는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인 줄 깨닫기 때문이다.


  짓궂게 구는 아이들이 여린 아이 하나를 괴롭힌다. 이 아이들 옆에서 나도 따돌림을 안 받으려고 한손을 거들어 여린 아이를 괴롭히거나 이런 짓을 못 본 척하고 넘어간다. 이때에 ‘남을 따라하’거나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할 만할까?


  어느 한 사람을 가리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든다. 나도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그래, 그렇구나.’ 하고 여기며, 이런 소문을 퍼뜨린다. 그런데 나중에 이런 소문이 잘못 불거졌으며 올바르지 않다고 드러난다. 이때에 나는 ‘다른 사람이 퍼뜨린 소문을 듣고 말했’으니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할 만할까?

 

 * * *


  어느 신문에 글을 쓰는 분이 있다. 이분이 글을 잘못 써서 내가 크게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이분은 그 피해가 ‘보도자료를 보고 쓴 글’이기 때문에 이녁으로서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한테 사과할 일이 없다고 한다. 다만, 글을 바로잡기는 하겠다고 한다.


  엎질러진 물을 ‘정정보도’로 얼마나 주워담을 만한지 궁금하기도 하다. 진보매체는 으레 말하지 않는가. ㅈㅈㄷ신문이 잘못 쓴 글을 나중에 코딱지만 한 크기로 정정보도를 내고 끝낸다고. 정정보도 또한 처음 잘못 쓴 기사 못지않게 크게 다루어서 널리 알려야 조금이나무 잘못을 주워담을 수 있지 않나?
  꼭 이러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조선일보가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서 쓰며 잘못된 기사를 퍼뜨리면 어떠한 일을 저지른 셈일까? 스스로 진보매체라고 여기는 신문이라 한다면, ‘보도자료에 기대어 잘못 쓴 글’을 곧이곧대로 받아쓰면서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을까? 참과 거짓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기사로 내보낸 일을 놓고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느끼려는 마음이 없는가?


  기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면 왜 바로잡는가? 누군가 잘못했기 때문일 테지. 그러면 누가 잘못했을까? 보도자료를 쓴 사람만 잘못했는가? 잘못 쓴 보도자료를 고스란히 베껴서 쓴 사람은 잘못이 없는가? 스스로 진보매체라고 밝히지만, 정작 진보스럽거나 진보다운 몸가짐이 아닌 이들을 보면 서글프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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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3-24 19:4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리 믿은' 매체는 아니었으나
스스로 '진보라고 내세우는 매체'한테 또 한 번 뒷통수를 맞으니
참 쓸쓸해요.
그네들이 비판해 마지 않는 ㅈㅈㄷ보다도 못한 짓을 왜 자꾸 하는지 궁금해요.

서로 아끼고 좋아하면서
고운 마음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기란
... 아직 힘든 사람들이 많구나 싶기도 해요...
 

사름벼리는 복숭아나무와 함께

 


  지난해 봄에 심은 복숭아나무에 드디어 꽃이 핀다. 한쪽 가지만 높게 뻗었는데, 앞으로 이 복숭아나무는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자랄까. 복숭아꽃을 보라고 큰아이를 부른다. 일곱 살 사름벼리는 복숭아꽃을 보며 아이 예뻐 하더니, “복숭아나무는 나하고 키가 같네.” 하고 말한다. 그래, 어린 복숭아나무와 어린 네가 키가 같네. 곧 복숭아나무 키는 쑥쑥 클 테고, 줄기도 굵겠지. 씩씩하게 자라는 복숭아나무 곁에서 맛난 열매 듬뿍 누릴 수 있기를 빈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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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로리 2
코야마 아이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27

 


한숨을 돌리고 하늘을 봐요
― 치로리 2
 코야마 아이코 글·그림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7.30.

 


  나는 하늘바라기를 좋아합니다. 언제부터 하늘바라기를 좋아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갓난쟁이였을 적부터 좋아했는지 모르고, 내가 오늘 이 몸으로 태어나 살기 앞서 먼먼 옛날부터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늘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도시에서 살 적에도 언제나 하늘바라기를 했어요. 도시에서는 하늘바라기를 할 만한 살림집을 찾아 깃들었고, 하늘바라기를 하며 지낼 만한 일자리를 찾았어요.


- ‘빨리, 말하고 싶다.’ (20∼21쪽)
- ‘다 읽었네. 치로리는 아직도 자고 있고. 심심해.’ (47쪽)

 

 

 

 

 

 


  두 아이와 자전거마실을 다닐 적에 언제나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두 아이 손을 잡고 들길을 거닐 적에 늘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마당에 빨래를 널 때에도 하늘바라기를 하며,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복닥일 적에도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하늘은 곱게 파랗습니다. 하늘은 짙게 파랗습니다. 하늘은 맑게 파랗습니다.


  시골 아닌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좀 매캐하지요. 하늘빛도 뿌옇고 바람도 뿌얘요. 서울바람이나 부산바람은 그리 맛나지 않습니다. 아니, 맛날 수 없을는지 몰라요.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서울바람과 부산바람을 먹어요. 몸에 좋지 않은 줄 느끼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채 서울바람과 부산바람을 먹는 사람이 매우 많아요.


- ‘빨갛다, 빨갛다. 하얗다. 빨갛다. 하얗다, 하얗다. 빨갛다. 이 하얗고 빨간 열매 좀 봐.’ (60∼61쪽)
- “왠지 가슴이 막 두근두근 떨려요.” “나도! 꿈처럼 달콤한 맛이라는데 그게 대관절.” (102쪽)

 

 

 

 

 


  아침에 아침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낮에 낮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저녁에 저녁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때마다 새소리를 들으며 마음으로 노래를 담습니다. 날마다 새소리를 들으며 마음 가득 노래를 가다듬습니다.


  삼백예순닷새 늘 같은 새를 마주해도 늘 다른 빛을 느낍니다. 삼백예순닷새 늘 같은 하늘을 바라보아도 늘 다른 숨결을 느낍니다.


  노래란 무엇일까요. 삶을 밝히는 노래란 무엇일까요. 아침에 잠에서 깬 일곱 살 큰아이가 잠자리에 누운 채 노래를 부릅니다. 내가 두 아이한테 날마다 불러 주는 노래를 아이 스스로 부릅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노래를 어떤 마음으로 들었을까요. 아이는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노래를 어떤 마음으로 부를까요.


- “저어, 좀 전에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네?” “(제가) 컵 깨기 전에.” “아아. ‘오늘은 물결이 참 좋네요.’라고.” (85∼86쪽)

 

 

 

 

 

 


  코야마 아이코 님 만화책 《치로리》(대원씨아이,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첫째 권에 이어 둘째 권에서도 상냥하고 보드라운 바람이 불듯이 이야기가 흐릅니다. 군말이 없이 차분하게 감도는 이야기가 따스합니다.


  가만히 보면, 하늘바라기를 할 적에 딱히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함께 있는 사람하고도 딱히 말을 섞지 않습니다. 서로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시원합니다. 같이 하늘바라기를 하는 동안 마음을 탁 틔웁니다. 만화책 《치로리》는 우리들이 저마다 가슴속으로 품는 고운 빛을 그저 곱고 보드랍게 건드립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인력거를 타고 달려 볼까요?” “그래. 그래야지. 이대로는 아무것도 쓸 수 없으니까.” …… “아앗, 진짜! 왜 최악의 사태만 벌어지는 거야? 첫 장부터 이딴 걸 쓰라고?” (143∼145쪽)


  어디에서 살아가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시골이기에 더 아름다운 삶터는 아닙니다. 도시이기에 더 멋스러운 삶터는 아닙니다. 어느 곳에서 살든 하늘숨을 마실 적에 아름답습니다. 어느 삶터에서 살림을 가꾸든 하늘빛을 마실 적에 즐겁습니다. 어느 자리에서 누구를 이웃으로 삼거나 동무로 사귀든 하늘내음을 마실 적에 사랑스럽습니다.


  노래하는 삶이 되도록 씨앗 한 톨을 심어요. 춤추는 삶이 되도록 풀 한 포기를 보살펴요. 꿈꾸는 삶이 되도록 꽃 한 송이를 마주해요. 이야기하는 삶이 되도록 나무 한 그루를 어루만져요.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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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39. 손님 고양이 2014.3.22.

 


  마을에서 눌러 지내는 고양이들이 있다. 이들은 가끔 새끼를 낳아 식구를 늘리곤 한다. 그렇다고 마을고양이가 수십 수백 마리까지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들도 스스로 알 테지. 마을사람 숫자가 많지 않을 뿐더러,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없어 저희(고양이) 식구를 늘리면 먹이가 모자라는 줄. 마을에 있는 모든 고양이가 마을에 있는 모든 집을 두루 돌아다닌다. 우리 집에도 아침 낮 저녁으로 모든 마을고양이가 마당과 옆밭과 뒤꼍을 가로지른다. 햇볕이 뜨거우면 평상 밑이나 자전거 뒤에서 그늘을 가리곤 한다. 우리 식구를 본대서 내빼지는 않으나, 곧잘 허둥걸음으로 돌울을 타곤 하는데, 뒤뚱뒤뚱 돌울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빙그레 웃는다. 얘야, 너도 네 허둥걸음이 살짝 우스꽝스러운 줄 알았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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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놓친 글

 


  마감을 놓쳐서 글을 쓰는 일이 없는데, 지난 한 주는 월요일 새벽부터 금요일 밤까지 시골집을 비우느라 그만 한 가지 글을 놓쳤다. 바깥마실을 나온 월요일에 전화를 받아 글 하나를 쓰기로 했는데, 금요일 밤이 되어서야 시골집으로 돌아올 줄 몰랐다. 수요일이나 목요일에는 돌아올 수 있겠거니 여겼는데, 여러모로 늦었다. 이러다 보니 시골집에 돌아와서도 몸을 추스르지 못해 글을 못 썼고, 오늘 새벽에 겨우 글을 마무리지었다.


  나한테 글을 써서 보내 달라 하신 분은 주말에 편집을 마치고 월요일에 인쇄를 넣으려 했을 텐데, 참 많이 늦었다. 어쩌면 이 글은 잡지에 못 실릴 수 있겠구나 싶다. 그렇지만 씩씩하게 글을 쓴다. 왜냐하면, 마감을 놓쳤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쓰고 싶던 글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적에는 글을 받는 분한테 맞추어 쓰는 터라, 이 글은 다른 데에 쓰지 못한다. 오직 그곳에만 쓴다. 게다가 봄철에 맞게 썼으니 다른 때에는 쓸 수도 없겠지.


  아침해가 솟으면서 아침새가 노래한다. 어제 봉오리를 벌린 복숭아꽃이 오늘 아침에 아주 곱다. 조그마한 복숭아나무에 맺은 조그마한 복숭아꽃은 서너 송이만으로도 복숭아꽃내음을 온 집안에 퍼뜨린다. 내 글 한 줄이 복숭아꽃처럼 고운 내음으로 퍼질 수 있기를 빈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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