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39. 손님 고양이 2014.3.22.

 


  마을에서 눌러 지내는 고양이들이 있다. 이들은 가끔 새끼를 낳아 식구를 늘리곤 한다. 그렇다고 마을고양이가 수십 수백 마리까지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들도 스스로 알 테지. 마을사람 숫자가 많지 않을 뿐더러,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없어 저희(고양이) 식구를 늘리면 먹이가 모자라는 줄. 마을에 있는 모든 고양이가 마을에 있는 모든 집을 두루 돌아다닌다. 우리 집에도 아침 낮 저녁으로 모든 마을고양이가 마당과 옆밭과 뒤꼍을 가로지른다. 햇볕이 뜨거우면 평상 밑이나 자전거 뒤에서 그늘을 가리곤 한다. 우리 식구를 본대서 내빼지는 않으나, 곧잘 허둥걸음으로 돌울을 타곤 하는데, 뒤뚱뒤뚱 돌울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빙그레 웃는다. 얘야, 너도 네 허둥걸음이 살짝 우스꽝스러운 줄 알았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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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놓친 글

 


  마감을 놓쳐서 글을 쓰는 일이 없는데, 지난 한 주는 월요일 새벽부터 금요일 밤까지 시골집을 비우느라 그만 한 가지 글을 놓쳤다. 바깥마실을 나온 월요일에 전화를 받아 글 하나를 쓰기로 했는데, 금요일 밤이 되어서야 시골집으로 돌아올 줄 몰랐다. 수요일이나 목요일에는 돌아올 수 있겠거니 여겼는데, 여러모로 늦었다. 이러다 보니 시골집에 돌아와서도 몸을 추스르지 못해 글을 못 썼고, 오늘 새벽에 겨우 글을 마무리지었다.


  나한테 글을 써서 보내 달라 하신 분은 주말에 편집을 마치고 월요일에 인쇄를 넣으려 했을 텐데, 참 많이 늦었다. 어쩌면 이 글은 잡지에 못 실릴 수 있겠구나 싶다. 그렇지만 씩씩하게 글을 쓴다. 왜냐하면, 마감을 놓쳤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쓰고 싶던 글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적에는 글을 받는 분한테 맞추어 쓰는 터라, 이 글은 다른 데에 쓰지 못한다. 오직 그곳에만 쓴다. 게다가 봄철에 맞게 썼으니 다른 때에는 쓸 수도 없겠지.


  아침해가 솟으면서 아침새가 노래한다. 어제 봉오리를 벌린 복숭아꽃이 오늘 아침에 아주 곱다. 조그마한 복숭아나무에 맺은 조그마한 복숭아꽃은 서너 송이만으로도 복숭아꽃내음을 온 집안에 퍼뜨린다. 내 글 한 줄이 복숭아꽃처럼 고운 내음으로 퍼질 수 있기를 빈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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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 온날꽃

 


  백 날 동안 꽃이 핀대서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배롱나무’입니다. ‘간지럼나무’라고도 하는 나무인데,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나 나무장사를 하는 이는 ‘목 백일홍’이라고도 가리킵니다. 왜 ‘배롱나무’나 ‘간지럼나무’라는 이름을 안 쓰고 한자로만 이름을 붙이려 할까 알쏭달쏭하곤 해요. 더욱이, ‘백 날’이라는 이름에서도 옛사람은 이런 말은 안 썼으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옛사람은 시골사람이고 시골사람은 시골말을 쓰니 ‘온’이라는 낱말을 넣어 ‘온꽃’이나 ‘온날꽃’이나 ‘온날붉은꽃’처럼 썼겠지요.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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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나누는 마음

 


  우리 집 매화나무에 꽃이 한가득 터졌습니다. 매화꽃이 한가득 터지기를 한 해 동안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매화꽃은 삼월 한 철 살그마니 피었다가 지거든요. 삼월꽃인 매화꽃을 놓치면, 꼬박 한 해를 지나 이듬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배롱나무에 피는 발그스름한 꽃은 온날을 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온날꽃(백일꽃)’이기도 합니다. 온날꽃인 배롱나무를 빼고는 웬만한 꽃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부추꽃이나 고들빼기꽃은 꽤 오래가곤 하는데, 이레를 지나고 열흘을 지나면 꽃은 하나둘 떨어지거나 조용히 사라져요. 수세미 암꽃은 꽃가루받이를 마치면 하루만에 지기도 해요.


  매화꽃이 그득그득 터지기를 기다리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매화꽃이 잔뜩 터진 뒤에는 곁님과 아이들을 불러 다 같이 꽃내음을 맡습니다. 코를 가까이에 대도 매화내음이 번지고, 집안이나 마당에 있어도 매화내음이 퍼집니다. 꽃이 고운 나무를 심어 돌볼 적에는 꽃내음이 보금자리와 마을에 두루 퍼지면서 살가운 빛이 흐른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꽃나무를 심거나 꽃그릇을 돌보는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 빛을 나누는가 하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글을 한 줄 쓰면서 꽃내음을 생각합니다. 한 해에 한 차례 피고 지는 나무꽃처럼, 내가 써서 나누는 글 한 줄이 한 해에 한 차례 즐겁게 마주하는 나무꽃내음처럼 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배롱나무처럼 온날에 걸쳐 꽃내음과 꽃빛을 나누어도 좋아요. 네 철 푸른 나무처럼 삼백예순닷새에 걸쳐 푸른 잎빛을 나누어도 좋아요.


  그런데, 온날에 걸쳐 맑은 배롱꽃은 꽃가지마다 새 꽃이 피고 지면서 온날을 잇습니다. 네 철 푸른 나무는 잎가지마다 새 잎이 돋고 지면서 언제나 푸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새로우면서 밝은 글을 길어올리면서 한결같이 즐거운 노래가 되도록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되뇝니다. 글에 사랑을 싣자. 글에 꿈을 담자. 글에 이야기를 빚자. 글에 노래를 품자. 글에 웃음을 넣자. 글에 너른 품을 두자. 글에 알뜰살뜰 고소한 밥 한 그릇을 얹자.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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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는 이는 스스로 마음속에 담은 모습을 찍는다. 눈에 보이는 모습을 찍는 일은 없다. 마음속에 담은 모습을 찍는다. 그러니, 사진을 찍고 싶다면 마음속에 그림을 먼저 그려야 한다. 글을 쓸 적에도 이와 같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글로 쓴다. 마음속에 이야기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현을생 님이 이 나라 여러 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느끼고 헤아린 빛깔을 글이랑 사진으로 엮은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는 현을생 님이 품은 꿈과 사랑이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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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
현을생 지음 / 민속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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