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마실 앞두고 노트북 장만할 생각

 


  지난 열 해 동안 곁에 두고 알뜰히 쓰던 노트북이 있다. 무게 990그램짜리 가볍고 작은 노트북인데, 이제껏 망가진 일 한 번 없이 참 고맙게 내 곁에 있어 주었다. 작고 예쁜 노트북은 조금 오래되다 보니 퍽 느리고, 무게가 가벼운 만큼 화면이 작아서 글을 쓰면서 살짝 힘들기는 하다. 오래된 만큼 전기줄을 꽂지 않으면 쓸 수 없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은 노트북으로 이제껏 글을 무척 많이 썼다. 헌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눌 적에도 곧바로 녹취를 하며 잘 썼다.


  열 해 앞서 이 작고 예쁜 노트북을 장만할 적에 이백만 원을 들였다. 앞으로 열 해 동안 쓸 물건이니 이만 한 값은 비싸지 않다고 여겼다. 참말 열 해를 이모저모 썼으니 기계값을 잘 건사했다고 느낀다.


  이달 끝무렵에 외국마실을 가리라 본다. 어느 방송국에서 취재 일이 들어와서 여드레쯤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 취재를 하는 동안 이래저래 움직일 테지만, 새벽과 밤에 글을 쓰자면 노트북을 챙겨야 할 테지. 그동안 잘 쓴 작고 예쁜 노트북을 가져가면 될까 싶으면서도, 이제 새로운 기계를 들여야 할 때가 되었나 하고 돌아본다. 그리 무겁지 않으면서 글쓰기와 사진편집에 걸맞을 노트북을 여러모로 알아보니 요즈음은 칠십만 원이면 넉넉한 듯하다. 참 값싸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은행계좌에 돈이 없으니 곧장 장만하지는 못하겠다 싶은데, 앞으로 노트북 값은 더 내려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고흥에서 서울이나 부산으로 바깥일을 보러 다녀야 할 적에 시외버스나 기차에서 참 오랫동안 지내야 한다. 흔히 이동안 책을 읽지만, 마감에 맞추어야 하는 글을 써야 하기도 하고,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글을 마무리지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언제나 피시방을 찾는데, 피시방에 기대고 싶지 않기도 하고, 기차에서도 전원 걱정을 안 하며 글을 좀 만지고 싶기도 하다.


  노트북을 새로 장만하자면 돈을 잘 벌어야 할까. 돈을 잘 벌자면 책을 신나게 팔아야 할까. 눈을 감고 가늘게 숨을 쉰다. 밤이 깊으니 어서 아이들 곁으로 가자. 4347.3.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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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지기 자전거

 


  요새는 누구나 자가용을 몬다. 요새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몸을 생각해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자전거를 탄 사람은 예나 이제나 자전거를 탄다. 시골에서도 아직 자전거에 삽이나 낫을 끼우고 들일을 가는 할배가 있다. 어느 시골이든 짐차나 경운기나 오토바이를 많이 몰지만, 아주 드물게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는 할배가 어김없이 있다.


  헌책방지기 가운데 자전거를 모는 분은 매우 드물다. 거의 다 오토바이나 짐차나 자가용으로 바꾸었다. 오늘날에도 책자전거를 모는 헌책방지기는 거의 다 자가용을 끌지 않는 분이다. 돈이 없기에 자가용을 안 몰지 않는다. 자전거는 어디에나 세우기 수월하고 좁은 골목도 달리기 좋으며, 천천히 달리다가 골목골목 책꾸러미를 보면 곧바로 멈추어 가뿐히 실을 수 있다. 짐자전거에 책 백 권은 거뜬히 싣고, 이백 권은 아슬아슬 튼튼하게 여미어 나를 수 있다.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오는 이들 가운데 자전거를 타는 이는 매우 드물다. 버스나 전철을 탄다든지 천천히 걸어서 오는 이가 아직 가장 많다 할 수 있는데, 요사이는 자가용을 몰고 찾아오는 책손이 꽤 많다. 자가용을 몰아 책방마실을 할 수 있겠지. 자가용을 몰아 회사나 학교를 다니기도 하지 않는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자가용을 몰면 자가용을 몰 수밖에 없다. 자가용을 몰면서 책을 읽지 못하고, 자가용을 몰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한다. 자가용을 몰기에 봄꽃이나 가을잎을 돌아보기 어렵다. 자가용을 몰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힘들다. 라디오를 틀기는 할 테지만, 흥얼흥얼 느긋하게 노래를 부르면서 자가용을 모는 이는 몇이나 될까.


  헌책방지기는 자전거를 몰면서 바람을 마신다. 추운 겨울에는 손가락이 꽁꽁 얼지만 찬바람 씩씩하게 마신다. 더운 여름에는 땀을 씻어 주는 시원한 바람을 듬뿍 마신다. 추위에 곱은 손으로 책먼지를 닦는다. 더위를 씻은 바람맛을 헤아리면서 책을 한 번 더 쓰다듬는다. 비바람에 슬고 햇볕에 바래는 자전거는 헌책방지기와 함께 늙는다. 비바람을 맞고 햇살을 받는 자전거는 헌책방 오래된 간판과 나란히 세월을 머금는다. 4347.3.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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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놀이 12 - 자전거는 누나와 함께

 


  누나가 자전거에 태워 준다. 뒷자리에 앉으라고 동생을 부른다. 동생이 뒷자리에 앉으니 누나를 꽉 붙잡으라고 말한다. 꽉 붙잡지 않으면 떨어져서 다치고, 떨어져서 다치면 울잖니, 하고 단단히 이른다. 동생은 누나 허리를 안 잡고도 안 떨어지겠다고 으시대고 싶은 듯하지만 누나 말을 곱게 들어야지. 마당 한 바퀴를 영차영차 돈다. 큰아이는 다리에 힘이 제법 붙었지만, 큰아이 다리에 힘이 붙는 만큼 작은아이도 몸무게가 늘었다. 서로 엇비슷하다. 큰아이는 다리에 힘이 더 붙어야 마을 고샅길에서도 자전거를 끌 수 있을 듯하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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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놀이 9 - 빨래터는 우리 놀이터

 


  마을 할매는 아주 빠르게 조용히 빨래터를 치우신다. 지난 한 해 마을 할매가 빨래터를 세 차례쯤 치우신 듯하다. 세 차례를 뺀 나머지는 모두 우리 식구가 치웠다. 우리 식구는 빨래터를 치울 적에 시끌벅적하다. 아무래도 두 아이가 시끌벅적 노래하고 떠들면서 놀기 때문이다. 두 아이는 놀게 하고 아버지 혼자 신나게 벅벅 밀어 물이끼를 벗긴다. 마을 할매는 힘이 모자라 물이끼를 벗기지는 않는다. 마을 할매는 풀을 뽑기만 한다. 어느 모로 보면 서로서로 달리 치우니 한결 깔끔하게 치우는 셈이라고 할 만하다. 두 아이는 처음에는 솔질도 하고 물도 퍼내면서 거드는 시늉을 하지만, 어느덧 벽타기도 하고 다른 놀이를 찾아낸다. 아직 물이 차니 물에 들어가지는 않으나, 따사롭다 못해 후끈후끈 햇살이 내리쬐면 빨래터에 풍덩 뛰어들어 놀 테지. 조금만 기다리렴. 빨래터가 곧 신나는 물놀이터가 된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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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空 -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현주 글.글씨 / 샨티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156

 


늘 재미있는 삶
― 空,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현주 글·글씨
 샨티 펴냄,2013.12.10.

 


  이현주 님은 한자 ‘空’을 빌어 이녁 삶을 이야기합니다. 이현주 님으로서는 다른 어느 낱말보다 한자 ‘空’이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로 ‘空’이라는 한자에서 꿈을 찾고 사랑을 느끼며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이현주 님으로서는 ‘空’이 즐겁고 재미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른 낱말이 즐겁고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열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 테고, ‘빚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어요. ‘살다’를 좋아하거나 ‘웃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스며드는 낱말에 마음을 엽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맞이하는 낱말마다 이야기를 싣습니다. 이현주 님한테는 ‘空’이 된다면, 누군가한테는 ‘하늘’이 되기도 합니다. 하늘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두가 있도록 해 줍니다. ‘바람’도 그렇지요. 바람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두가 있도록 도와요.


.. 자연이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베푸는 모든 것이 공짜다. 빛, 공기, 물, 불, 흙, 바람, 나무열매 ……. 값이 없어서 공짜가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어서, 그래서 공짜다 … 민들레가 해바라기만큼 크지 못한 것은 무능이 아니다. 그것이 무능이면, 해바라기가 민들레만큼 작지 못한 것도 무능이다 ..  (8, 150쪽)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늘 노래를 합니다. 길을 거닐 적에도 노래를 하고, 놀 적에도 노래를 합니다. 밥을 먹다가도 노래를 하며, 잠자리에서도 곯아떨어져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노래를 해요. 버스에서도 노래를 하고, 기차나 전철에서도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은 목이 안 쉬나 봐요. 참말 거침없이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은 고뿔에도 안 걸리나 봐요. 참으로 그치지 않고 노래잔치입니다.


  나도 아이였으니 내 어릴 적에도 늘 노래였을까 하고 더듬어 봅니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들마냥 늘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나 하고 곱씹어 봅니다.


  그렇습니다. 나도 노래쟁이였습니다. 잘 하거나 못 하거나를 떠나 늘 노래였어요. 여기에서도 노래 저기에서도 노래입니다. 늘 놀면서 살던 어린 나날이니 늘 노래였습니다.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노래 어른노래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노랫말을 되새기지 않기도 합니다. 라디오에서 나오건 길에서 흐르건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차근차근 외웁니다. 온누리 아이들은 모두 노래쟁이일 테지요.


.. 너를 천사로 만드는 것은 하느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지금 네 앞에 있는 나다 … 나 없으면 하느님도 사랑을 그리지 못하신다 … 모든 사람이 저마다 완벽하다. 하늘에서 오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60, 84, 159쪽)


  재미없는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살아가며 재미없을 만한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재미있고 저렇게 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호미질 한 차례가 재미있고 괭이질 두 차례가 재미있습니다. 이웃 아재가 선물한 홍합꾸러미를 물로 잘 헹구어 커다란 냄비에 수북하게 담아 보글보글 끓여서 먹어도 재미있습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개도 홍합국물로 비빈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한테도 개한테도 홍합 껍데기를 잘 갈라서 속살을 한 점 두 점 떼어서 나누어 줍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개한테 따로 밥을 주니, 그동안 우리 집 언저리를 맴돌던 마을고양이가 샘을 냅니다. 왜 저희한테는 밥그릇 하나 없이 밥찌꺼기만 주고, 쟤한테는 따로 밥그릇까지 챙겨서 주느냐고 집 둘레에서 냥이냥이 노래를 합니다.


  그러나 어쩌겠니, 냥이들아. 너희는 쥐를 잡아서 먹을 수 있잖아. 도시에 있는 어느 집에서 내내 사료만 먹었을 개는 스스로 먹이를 찾을 줄 모르잖니. 게다가 우리 집에 눌러앉는 개가 밥을 먹다 남기면 어느새 다가와서 냠냠냠 너희도 나누어 먹잖아.


.. 저보다 어두운 빛 때문에 흐려지는 빛은 없다 … 참사랑은 두려움을 모른다. 누구한테도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  (93, 137쪽)


  이현주 님이 글과 글씨로 엮은 책 《空》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짤막하게 간추린 글과 알뜰히 그린 글씨를 한참 쳐다보면서 생각합니다. 낱말 하나로 얼마든지 책 하나 태어납니다. 낱말 하나로 오래오래 이야기꾸러미를 펼칠 수 있습니다. 이현주 님은 ‘空’ 하나로 이렇게 글과 글씨를 엮는데, 누군가 ‘사랑’ 하나로 글과 글씨를 엮을 수 있습니다. 글과 그림을 엮는다든지 글과 사진을 엮을 수 있습니다. ‘꿈’ 하나로도 책이 태어납니다. ‘빛’ 하나로도 책이 태어납니다. ‘노래’로도 책이 태어나고, ‘흙’으로도 책이 태어나요.


  어느 책을 쓰든 스스로 즐겁게 노래할 때에 책이 됩니다. 어떤 이야기를 갈무리하든 스스로 아름답게 꿈꾸면서 책이 됩니다. 하늘숨을 담는 책입니다. 하늘빛을 그리는 책입니다. 하늘에서 눈과 같이 사뿐사뿐 내리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비와 같이 싱그러이 내리는 웃음입니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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