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꽃 노란잔치

 


  민들레꽃도 참 곱다. 그런데 민들레꽃만 곱지 않다. 시골에서 살며 둘레에 고운 꽃이 얼마나 많은가 하고 날마다 새삼스레 느끼곤 한다. 꽃가게에 가야만 꽃이 많지 않다. 논둑이나 밭둑에만 서도 꽃이 많다. 들에 서거나 숲에 깃들면 얼마나 많은 꽃이 우리를 반기는지 모른다.


  도시라 하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만난 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아주아주 많은 온갖 들꽃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온갖 들꽃을 눈여겨본 어른이나 이웃이 드물었다. 우리(아이)한테 온갖 들꽃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면서 꽃이름을 가르치고, 들풀마다 어떻게 건사하거나 먹거나 돌보면 되는가를 알려주는 어른이나 이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만히 돌아보면, 도시에서는 웬만한 풀을 다 뽑아서 버린다. 풀꽃이 꽃을 피우기 앞서 모조리 뽑아서 없애려 한다. 꽃을 피우면 곧 씨를 맺어 퍼뜨린다고 해서 풀을 ‘잡초 뽑기’라는 이름으로 없애거나 죽이기만 한다. 이러는 동안 아이들은 ‘풀은 나쁜 것’이라든지 ‘잡초는 죽이거나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시골로 떠나 시골살이(귀촌)를 한다 하더라도 풀을 몽땅 베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풀을 배운 적이 없는 요즈음 어른이다. 풀을 가르치는 일이 없는 오늘날 어른이다. 예순 살이나 일흔 살쯤 되는 분들조차 풀을 다루거나 건사하거나 다스리는 길을 배우지 못했다고 할 만하다. 쉰 살이나 마흔 살인 분도 엇비슷하다. 그러면, 스무 살이나 서른 살 언저리인 젊은이가 스스로 풀을 배우거나 살펴야 할 텐데, 이렇게 하지도 않는다. 열 살 안팎 맑은 눈빛 어린이와 푸름이 또한 풀을 바라볼 겨를을 못 낸다.


  민들레꽃 노란잔치를 만난다. 곱다. 참 이쁘다. 그리고, 민들레꽃이 노란잔치를 하기 앞서 이 자리는 갖가지 봄맞이꽃으로 앙증맞은 잔치가 이루어졌다. 봄맞이꽃 앙증맞은 잔치가 모두 끝난 자리에 비로소 민들레꽃이 노란잔치를 벌인다. 4347.4.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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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이긴 날 문학동네 동시집 1
김은영 지음, 박형진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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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24

 


삶에서 살아나는 말
― 선생님을 이긴 날
 김은영 글
 박형진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08.3.11.

 


  만화책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영화를 보는 일곱 살 아이가 곧잘 묻습니다. “아버지, 왜 책이나 영화에서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안 하고 ‘엄마 아빠’라고 해?” 이런 물음에 딱히 들려줄 말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 어머니’라고 말할 줄 모르는 다른 어른들 넋을 섣불리 아이한테 알려줄 수 없습니다. ‘엄마 아빠’는 아기일 적에 쓰는 말이요, 아기 티를 벗고 씩씩한 어린이로 서면, 이때부터 ‘아버지 어머니(아배 어매/아바이 어무이)’로 이름을 고쳐서 쓸 노릇입니다. 말과 넋과 삶을 슬기롭게 헤아리면서 살림과 사랑과 꿈을 곱게 거느린다면, 이런 낱말 한 마디를 누구나 잘 다스리리라 생각해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이 대목을 바로잡았어요. 어느 마을에서나 어느 어른들이나 아이한테 말을 올바르고 슬기롭게 가르쳤습니다.


  말을 올바르고 슬기롭게 가르치는 삶이란, 생각과 마음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삶입니다. 생각과 마음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삶이란, 어른과 아이가 저마다 하루를 알차고 알맞게 가꾸면서 아름다운 빛을 누리는 나날입니다.


  우리 집 일곱 살 아이는 다시 말합니다. “책하고 영화에서 ‘아버지 어머니’라고 나오면 좋겠다.” 요즈음 일곱 살 아이는 책을 읽다가 ‘엄마’라 적힌 대목이 보이면 나한테 가지고 옵니다. 그러고는 “아버지, 여기 ‘엄마’를 ‘어머니’로 고쳐 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아이한테 자꾸 이 말이 보이니 눈에 걸리는구나 싶어요.


.. 엄마 여길 좀 봐요 / 꽃무늬가 참 예뻐요 ..  (고양이 발자국)


  시골에서 살면서 늘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가니 우리 식구가 나누는 이야기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식구는 텔레비전을 안 봅니다. 우리 식구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우리 식구가 주고받을 이야기는 ‘텔레비전과 신문하고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늘 듣는 노랫소리인 만큼, 늘 멧새 노랫소리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하루 내내 나무를 바라보고 풀을 마주합니다. 이웃을 만나건 동무를 만나건 언제나 나무랑 풀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이웃이나 동무는 나무나 풀 이야기를 안 하고 싶을는지 모르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무와 풀을 살피는 이야기입니다. 나무를 쓰다듬고 풀을 뜯으며 나뭇잎에 맺힌 벌레 씨앗이랑 풀꽃이 피우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 눈과 비가 어울려 / 사이좋게 내려와요 ..  (진눈깨비)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빛 묻어나는 이야기잔치입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내음 깃든 이야기잔치입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은 숲노래 그윽한 이야기잔치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삶길을 걷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 까닭은, 사람들 스스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이녁이 그곳에서 가장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좋거나 나쁜 것은 없습니다. 옳거나 그른 것은 없습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누군가는 작은 들꽃을 밟으면서 밟은 줄 못 느껴요. 누군가는 풀밭을 자가용으로 밟으면서 밟은 줄 알아차리지 않아요.


  나는 아주 먼 데에 섰어도 느티나무에 새잎이 복복 돋으며 올망졸망 푸른 빛으로 바뀌는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버들잎이 돋는다든지, 초피꽃이 핀다든지, 모과꽃망울이 커진다든지, 매화꽃차례가 하나둘 떨어진다든지, 모두 알아보거나 알아챕니다. 다른 누군가는 겉모습만 보고도 자동차 이름을 훤히 꿸 테지요. 다른 누군가는 차림새만 보고도 저이가 입은 옷이 얼마짜리인지 알아맞추겠지요.


.. 고향 떠나 / 잘 산다는 사람은 / 아무도 / 아직 안 돌아왔어요 ..  (고향 찾는 사람들)


  김은영 님 동시집 《선생님을 이긴 날》(문학동네,2008)을 읽습니다. 무척 맛깔스러우면서 재미있게 쓴 동시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재미있게 놀지 못하면서 시험지옥과 학원지옥에 갇혀야 하는 오늘날 도시 아이들한테 김은영 님 동시집은 싱그러운 샘물과 같은 이야기잔치가 되리라 느낍니다.


  참말 그렇지요. 오늘날 아이들은 얼마나 고단한가요. 오늘날 아이들은 ‘제 집 마당에서 놀 수조차 없’어요.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아이들한테는 마당이 없거든요. 아파트 놀이터라 해서 느긋하게 놀 만한 데가 되지 못합니다. 가까운 공원조차 혼자 가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집에서 공원까지 가는 길에 자동차가 너무 많고 무시무시하게 달려요. 아이들 어버이는 아이만 달랑 공원에 보내기 두렵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공원에서도 마음껏 뛰놀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고도 하고, 잔디밭에 농약을 듬뿍 뿌리기도 합니다. 공원에도 스쿠터나 오토바이가 싱싱 달립니다. 달릴 곳 없기에 공원을 달리는 자전거도 많습니다.


  개구지게 뛰놀지 못하는 아이들한테는 어떤 동시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학교와 학원에 갇힌 채 ‘예비 수험생’처럼 온갖 지식과 교과서와 학습지만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아이들한테는 어떤 동시가 삶밥이 될 만할까요.


.. ‘ㄹ’ 받침 한 글자 속에 / 자연이 들어 있구나 / 사람이 살아가는 데 /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구나 ..  (‘ㄹ’ 받침 한 글자)


  삶에서 살아나는 말입니다. 삶이 살아나지 않으면 말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말놀이를 하거나 말솜씨를 부린다고 해서 삶이 살아나지 않고 말도 살아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제 삶을 억누르는 고리를 끊거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왜 대학교에 가야 할까요? 아이들은 왜 중·고등학교에 가야 할까요? 아이들은 왜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까요? 대학교에 가야 하니 고등학교에 가나요? 고등학교에 가야 하니 중학교에 가나요? 중학교에 가야 하니 초등학교에 가나요? 초등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배움터이거나 삶터일까요?


  재미있고 맛깔스러운 동시를 살포시 내려놓을 수 있어도 ‘재미있’고 ‘맛깔스러우’리라 생각해요. 아이가 나아갈 삶과 어른이 걸어갈 길을 찬찬히 짚어도 재미있고 맛깔스러우리라 생각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사랑을 키우고, 어른들 또한 스스로 삶을 즐기며 신나게 뛰노는 빛을 그릴 수 있으면, 동시이든 어른시이든 아름다운 이야기가 노래처럼 흐르며 재미있고 맛깔스러운 깊이와 너비를 더하리라 생각해요. 4347.4.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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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보배와 같은 선물이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지난날 시골마을에서 숲과 들과 내와 바다를 마당으로 삼아 놀고 어울리던 줄거리를 담았다. 이제 동시와 동화라는 틀로 바뀐 이야기인데,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동시와 동화가 ‘학교’와 ‘공부’와 ‘도시살이’를 다룬다. 동시집 《선생님을 이긴 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다루는 글감이야 무엇을 다루든, 글감으로 보여주려는 넋을 슬기롭게 풀어낼 수 있으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김은영 님은 아이들한테 ‘학교와 얽히고 도시에서 느끼는 삶’을 어떤 빛깔로 그려내려 했을까.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하면서 스스로 가꿀 삶을 이 동시집은 얼마나 알뜰히 풀어내었을까. 4347.4.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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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이긴 날
김은영 지음, 박형진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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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군 손님, 도서관 옮길까? (사진책도서관 2014.4.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어제 신안군청에서 전화 한 통 온다. 신안군에 있는 섬(이제 다리가 놓여 섬이 아닌 곳이 되었지만)에 도서관을 하나 꾸리려 하는데, 우리한테 도움말을 듣고 싶다 하신다. 오가는 길이 가깝지 않을 테지만 즐겁게 오시라 이야기한다. 그러고 오늘 아침, 신안군청에서 오신 손님을 도서관에서 만난다. 아이들 먹을 밥을 차리고 나서 일찌감치 도서관에 나와서 창문을 열고 골마루를 쓸고 닦으면서 생각한다. 신안군에서 꾀하는 ‘도서관 만들기’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도움이 될까?


  도서관은 건물로만 도서관이 될 수 없다. 도서관은 무엇보다 책이 있어야 도서관이다. 그리고, 도서관이 도서관다울 수 있자면, 도서관 건물 둘레로 숲이 있어야 한다. 주차장보다 숲이다. 주차장이 아닌 숲이다. 도서관에 찾아와 책을 살펴 읽을 분들은 숲에서 퍼지는 푸른 숨결을 마시고, 숲에 깃드는 멧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들으면서, ‘나무로 만든 책’을 손에 쥐어 이야기 한 자락을 누릴 때에 마음 가득 사랑스러움과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퍼질 만하리라 느낀다.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살피면, ‘책을 손에 쥐지 않고 창밖에서 퍼지는 풀내음과 새소리’를 누리면서 좋다고들 한다. 책도 책이지만, 책 못지않게 숲바람과 숲노래가 우리 마음을 포근히 적시거나 어루만지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책은 지식만 담지 않는다. 책에는 지식만 넣을 수 없다. 책은 삶을 가꾸는 슬기를 담는다. 책에는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넣으면서 빛난다.


  우리 사진책도서관이 인천에 있을 적에는 오로지 책만 있었다. 다만, 도서관 손님과 함께 인천 골목마실을 자주 즐겼다. 종이책에 있는 이야기는 도서관에서 맛보고, 종이책에 없는 이야기는 두 다리로 골목을 두 시간 남짓 거닐면서 맛볼 수 있기를 바랐다.


  시골자락에 도서관을 옮겨 뿌리를 내리는 동안 날마다 새삼스레 생각한다. 도서관 한 곳이 설 적에는 도서관 건물 넓이와 견주면 열 곱이나 스무 곱쯤 넓게 숲을 이루어야 한다고. 도서관 건물 넓이와 견주어 백 곱쯤 숲을 이루면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한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이 자동차를 댈 자리는? 도서관 바깥, 그러니까 도서관을 이루는 숲 바깥 빈터에 자동차를 세우고 도서관까지 십 분 즈음 천천히 풀바람과 풀노래(숲바람과 숲노래)를 누리면서 걸어와야지. 푸른 숨결을 마시면서 도서관으로 들어오도록 한다. 푸른 내음을 먹으면서 도서관에 첫발을 내딛도록 한다.


  숲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일 때에는, 숲땅을 두 발로 밟으면서 ‘흙이란 이렇게 보송보송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보송보송한 흙에 ‘풀이 아름답게 돋는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 큰나무를 옮겨심는대서 숲이 되지 않는다. 씨앗을 심어 나무가 자라도록 할 때에 가장 아름답다. 씨앗을 심어서 돌보기 조금 빠듯하다면 다섯 살 어린이 키높이로 자란 조그마한 나무를 심어서 돌보면 된다. 나무는 참 빠르게 자란다. 다섯 해쯤 기다리면 된다. 다섯 해쯤 기다리는 동안 나무가 자라고, 나무 둘레 풀밭이 살아난다. 나무가 살아나고 풀밭이 살아난다. 나무가 해마다 내놓는 가랑잎을 먹으면서 흙이 새롭게 깨어난다. 빈터에서 퍼지는 풀이 뿌리를 내리고 널리 퍼지면서 흙이 깨어나도록 북돋운다. 풀과 나무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차근차근 아름다운 숲으로 거듭난다. 다섯 해가 지나고 열 해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빛나고 눈부신 숲이 되고, 열다섯 해를 지나 스무 해가 되면, 도서관숲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더라도 마음이 확 트이고 시원할 수 있는 ‘사랑터’로 자리잡는다.


  스무 해는 어떤 시간인가? 갓 태어난 아기가 어른이 되는 나날이다. 그러니까, 도서관숲을 가꾼다고 할 적에는, 아기를 돌보아 스스로 우뚝 서는 씩씩하고 예쁜 젊은이가 되도록 보듬는 땀방울과 손길을 들인다고 할 만하다.


  도서관에 갖출 책을 생각해 본다. 돈이 있으면 만 권 십만 권 백만 권 갖추기가 우습지 않다. 그런데, 돈을 들여 책을 한꺼번에 잔뜩 갖추면 훌륭한 도서관이 될까? 아니다. 돈을 들여 살 수 있는 책은 ‘새책방에 있는 책’뿐이다. 아름답고 훌륭하다지만 판이 끊어진 책이 얼마나 많은가?


  잘 생각해야 한다. 도서관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대여점이 아니다. 도서관은 공부방이 아니다. 대여점이나 공부방이 할 몫을 도서관이 맡을 일이 아니다.


  도서관이 도서관답게 뿌리를 내리자면, 새로 나오는 책 못지않게 ‘사라진 책을 알뜰살뜰 찾아내어 꾸준히 갖추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를 지키는 도서관이 아니라 ‘삶과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돌보는’ 자리가 도서관이 될 때에 아름다운 책터가 된다.


  우리 네 식구는 책은 책대로 알차게 건사하면서 숲은 숲대로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남 고흥 시골자락에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옮겼다. 인천을 떠나 고흥으로 들어온 해가 2011년이다. 2014년 올해는 우리 도서관이 스스로 빛날 때가 되겠다고 느낀다. 마침 이러할 때에 신안군에서 ‘우리 도서관을 신안으로 옮기면 어떻겠느냐’고 여쭌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내가 도와줄 일이란, 신안군에서 새로운 도서관을 열도록 도움말을 들려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 도서관이 고흥을 떠나 신안으로 가기를 바라는 꿈을 들어주는 일이었구나.


  신안도 시골이니 좋다. 신안은 군청에서 군수와 공무원이 함께 문화에 눈길을 두고 문화를 삶과 얽혀 예쁘게 보듬는 길을 꾸준히 나아가니 멋있다. 신안군처럼 문화와 삶에 마음을 쏟는 지자체는 얼마나 있을까? 문화를 가꾸는 길이란 삶을 가꾸는 길이고, 삶을 가꾸는 길이 바로 복지이다. 이와 같은 얼거리로 문화와 삶과 복지가 한 줄기로 곱게 흐르도록 하는 일이 정치와 경제도 나란히 살린다. 지역 교육에서도 시골 아이들이 모조리 도시로 떠나지 않도록 새 물결을 낼 수 있다.


  고흥군을 돌아보면, 고흥 아이들은 ‘고흥에 남아서 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농사짓기도 고기잡이도 양식장에도 마음을 안 둔다. 신안군도 아직 이런 틀과 거의 비슷하리라 느낀다. 그렇지만, 앞으로 신안에서는 신안 아이들이 ‘우리 고향에 남아서 즐겁게 할 일이 많으리라 생각해’ 하고 마음을 돌릴 만하리라 느낀다.


  다만, 신안군은 영광군과 가깝다. 영광 핵발전소와 가깝다. 영광 핵발전소가 하루 빨리 문을 닫도록 신안군이 함께 힘쓸 노릇이라고 느낀다. 고흥군은 군수와 군청에서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엄청나게 힘을 쏟았지만 주민 반대로 물거품이 되었다. 신안군은 행정에서 ‘생각이 열렸’고 고흥군은 행정에서 ‘생각이 닫혔’다. 신안군은 자연 환경이 고흥만 하지 못하다. 고흥은 자연 환경이 참 훌륭하지만, 고흥군 행정은 막개발과 시멘트공사에 치우치기만 한다. 신안군은 자연 환경과 바다와 섬을 알뜰히 어루만지면서 손님(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고흥군은 자연 환경도 바다도 들도 섬도 거의 팽개치다시피 할 뿐 아니라, 막개발로 망가뜨리기만 하니, 손님(관광객)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조용하고 한갓진 고흥인 터라, 조용히 쉬고 싶은 이들이 찾아올 뿐이다.


  우리 도서관은 어디에 있을 때에 아름다울까. 우리 도서관은 지난 세 해에 걸쳐 ‘숲 가꾸기’ 하는 길을 여러모로 찾기도 하고 조금씩 해 보기도 했다. 신안에서는 ‘책 있는 도서관’을 넘어 ‘숲 가꾸는 도서관’이라는 앞길을 어느 만큼 어루만지면서 빛낼 수 있을까.


  4만 권이 넘는 책과 엄청난 책꽂이를 싸서 옮기는 일이란 너무 고달프며 힘겹다. 그렇지만, 이 책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거나 이웃마을에서 끝없이 뿌리는 농약바다에서 숨을 고르기도 만만하지 않으며 갑갑하기까지 하다. 다음주 수요일까지 우리 앞길을 골라야 한다. 그대로 고흥에서 이 도서관을 지키느냐, 신안으로 옮겨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도서관으로 하느냐. 둘레에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면 고맙겠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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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4-05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이 많으시겠습니다.

숲노래 2014-04-05 06:45   좋아요 0 | URL
마음속으로 결정은 다 되었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찬찬히 해 봅니다...
 

[말이랑 놀자 13] 뻘빛 바다

 


  파랗게 눈부신 바다를 가리켜 ‘쪽빛 바다’라고 합니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빛깔은 파란 하늘빛을 담아 파랗디파랗게 밝습니다. 갯벌이 너른 서쪽과 남쪽에서는 으레 ‘뻘빛 바다’를 만납니다. 뻘빛은 잿빛을 닮았다고도 할 만합니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얕은 갯벌 둘레에서는 ‘잿빛 바다’를 보겠지요. 속이 비치는 물잔에 바닷물이나 냇물을 담으면, 이때에는 해맑은 물빛을 마주합니다. 물빛은 물빛입니다. 물빛은 물이 흐르는 곳에 따라 다 다릅니다. 도랑에서 내에서 가람에서 바다에서 모두 빛깔이 달라요. 바다빛을 으레 파랑으로 떠올린다면, 아무래도 드넓은 바다가 드넓은 하늘과 마주하기 때문이지 싶어요. 뻘내음 물씬한 곳에서는 뻘빛입니다. 끝없이 파란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는 파랑입니다. 바닷말이 바닷속에서 한창 자랄 적에는 풀빛입니다. 고운 모래밭으로 밀려드는 바다는 속이 환하게 비치는 해맑은 빛입니다. 4347.4.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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