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더 하얀 자작나무

 


  면소재지로 가는 길목에 자작나무 한 그루 있다. 제법 크게 자란 자작나무이다. 두 그루도 세 그루도 아닌 한 그루만 있기에 더 잘 보인다. 잎이 우거질 적에도 하얀 줄기와 가지가 도드라지는데, 아직 잎을 달지 않아 더 하얀 자작나무는 봄날 다른 나무들과 견주어 새삼스러운 빛이로구나 싶다. 하얀 꽃송이 매다는 나무들이 많은데, 자작나무꽃은 어떤 빛깔일까. 잎을 닮은 빛깔일까, 흙을 닮은 빛깔일까.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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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제비꽃과 유채꽃

 


  꽃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꽃을 만난다. 곁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곁님 목소리를 듣는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아이들 노랫소리를 떠올린다. 해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햇살과 햇볕과 햇빛을 받아들인다.


  길가에 스스로 천천히 씨앗을 퍼뜨려 새로 돋는 제비꽃을 만난다. 제비꽃 곁에는 스스로 씨앗을 날려 퍼진 유채꽃이 핀다. 시골에서 경관사업을 하며 심는 유채 말고 시멘트도랑에서 돋은 유채는 지난해에 퍼진 씨앗에서 자랐을까. 지지난해에 퍼진 씨앗에서 돋았을까.


  길가 제비꽃과 유채꽃을 이듬해에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앞으로도 길제비꽃과 길유채꽃을 해마다 만날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얘들아, 고운 꽃송이 활짝 벌리며 언제까지나 맑은 내음 나누어 주렴.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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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 하얀 빛깔

 


  앵두꽃이 촘촘하게 맺힌다. 하얀 꽃잎이 눈부시다. 봄날 살짝 찾아와서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는 어느새 톡톡 떨어지고 씨방이 굵어지는데, 짧으나마 꽃빛이 환하게 고우니 발걸음을 붙잡는다.


  꽃이 피어 꽃내음으로 부르고, 열매가 맺어 열매알로 부른다. 빨간 열매가 모두 떨어지면? 그때부터는 푸른 잎이 한결 짙게 팔랑이며 여름을 지나고 가을을 맞이한다.


  나무는 꽃이 필 적에 꽃나무이고, 열매가 맺을 적에 열매나무이다. 꽃과 열매가 모두 지고 잎이 푸르면 잎나무라 할 만할까. 잎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는 어떤 나무라고 하면 좋을까. 아이들과 함께 앵두꽃 냄새를 실컷 들이켠다.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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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 물볶음밥

 


  나는 볶음밥을 으레 물로 합니다. 언제부터 물볶음밥을 했는 지 잘 안 떠오르지만,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몽땅 기름투성이가 아닌가 하고 느낀 날부터, 볶음밥을 할 적에 기름을 안 쓰고 물을 썼어요. 따로 누구한테서 배운 물볶음밥은 아닙니다. 찌개를 끓이건 떡볶이를 끓이건 물로 하는데, 볶음밥도 물을 자작자작 맞추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볶음밥이라면 언제나 기름을 두른다고만 여기니 물로 볶을 적에는 ‘물볶음밥’처럼 이름을 새롭게 써야겠지요. 물볶음밥이라 말하지 않으면 기름으로 볶았겠거니 여길 테니까요.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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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참 멋지다
일론 비클란드 그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명아 옮김 / 북뱅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0

 


학교가 나아갈 길
― 학교 참 멋지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북뱅크 펴냄, 2014.1.25.

 


  아침에 고구마와 감자를 굽습니다. 다른 집에서는 으레 냄비 바닥에 물을 깔고 고구마와 감자를 삶지만, 우리 집에서는 물 없이 아주 작은 불로 오래도록 고구마와 감자를 굽습니다. 아주 작은 불에 오랫동안 굽는 고구마와 감자이니 다 익을 때까지 한참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언제 고구마와 감자를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부엌을 자꾸 기웃거립니다. 고구마와 감자가 익는 냄새를 맡으면서 군침을 삼킵니다.


  볶음밥을 할 적에 기름을 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널따란 냄비에 물을 깔듯이 붓고는 자작자작 익힌 뒤 풀이랑 밥을 넣은 뒤 석석 비비고 섞은 뒤 간을 맞추어도 볶음밥이 되어요. 꼭 기름볶음밥을 해야 볶음밥이 아니고 물볶음밥을 해도 볶음밥입니다.


  집 둘레에서 풀을 뜯어서 먹을 적에 흙만 물로 헹구어 먹곤 합니다. 가끔 된장이나 간장으로 무쳐서 먹기도 합니다. 시금치를 먹더라도 굳이 데쳐야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데쳐서 먹는다면, 풀을 데친 물로 밥을 짓거나 국을 끓여요.


.. 레나는 아직 여섯 살인데,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아요. ‘나도 학교 갈 거야.’ 레나는 날마다 이렇게 말하고는 정말 선생님이 있는 것처럼 놀아요.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안다면 훨씬 재밌게 놀 수 있을 거예요 ..  (2쪽)

 


  아이들과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를 잘 타는 법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학교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이가 드뭅니다. 학교에서는 어디나 학교버스를 둔다든지 시내버스(나 군내버스)를 타고 다니도록 이야기합니다. 자가용이 있는 집에서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태워 주기도 할 테지요.


  그러고 보면, 학교에서는 버스를 ‘잘 타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어떻게 있어야 한다든지, 버스를 타고 내릴 적에 어떠해야 하는가를 일러 주지 못합니다. 더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가용을 몰 적에 어떻게 자동차를 몰아야 하는가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운전면허를 따라고 얘기하기는 하더라도, 자동차를 올바르고 즐겁게 모는 법을 이야기하지 못해요.


  학교에서는 입시지도와 취업지도를 합니다. 입시와 취업을 널리 살피는 학교입니다. 그렇지만, 사랑과 꿈과 아이키우기는 하나도 안 살피는 학교입니다. 성교육이나 피임법을 이렁저렁 비디오로 보여주는 학교는 더러 있을 터이나, 사랑을 참답게 이야기하거나 꿈을 밝게 노래하거나 살림살이를 알뜰살뜰 가꾸는 길을 보여주는 학교는 아직 없다고 느껴요.


.. 교실에는 담임선생님이 계셨어요. 드디어 레나는 페터 선생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됐어요. 페터가 선생님께 말했어요. “레나가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 해서 데려왔어요.” “레나야, 어서 와. 만나서 반갑구나.” ..  (12쪽)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이야기를 집에서는 얼마나 가르치거나 보여줄까요.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사랑과 꿈과 살림을 집에서는 얼마나 가르치거나 보여주나요.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 어떤 마음결과 손길일 때에 아름다운가를 집에서 얼마나 차근차근 가르치거나 보여주는가요.


  밥짓기를 학교와 집에서 얼마나 가르칠는지요. 밥짓기를 학교와 집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인이 되면 스스로 살림을 어떻게 돌볼 만할까요. 옷짓기를 하지 못하더라도 바느질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어버이가 되면 집살림을 어떻게 보살필 만할까요. 집짓기를 하지 못하더라도 집안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거나 집 얼거리를 슬기롭게 살피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아이는 나중에 이녁 보금자리를 어떻게 보듬을 만할까요.


  아침에 마당에서 풀을 뜯으며 생각합니다. 사월로 접어들어 통통하게 물이 오른 돌나물을 톡톡 끊고 부추잎을 툭툭 뜯습니다. 곧 꽃이 필 초피나무 야들야들한 잎도 탁탁 땁니다. 초피잎을 따면 손과 몸에 초피내음이 짙게 뱁니다. 싸아하고 퍼지는 냄새가 향긋합니다. 갓잎을 뜯으면 갓내음이 온몸으로 퍼지고, 쑥을 뜯으면 쑥내음이 온몸으로 번져요.


  교육은 언제나 삶으로 이루어지겠지요. 삶은 언제나 교육일 테지요. 교육은 아침저녁으로 차려서 함께 먹는 밥 한 그릇에서 태어나겠지요. 아침저녁으로 아이와 함께 먹는 밥은 늘 교육일 테지요.


.. 이제 쉬는 시간이에요. 아이들이 학교 마당으로 몰려 나가 놀았어요. 팔짝팔짝 뛰고 그물사다리에 기어올랐어요. 잉에가 레나에게 물었어요. “너도 우리랑 놀래?” “응, 좋아.” ..  (16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글하고 일론 비클란드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학교 참 멋지다》(북뱅크,2014)를 읽습니다. 책이름이 참 착하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착한 책이름을 한국땅 어린이와 어른은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궁금합니다. 학교를 짓건 무엇을 만들건 모두 ‘멋진’ 곳이 되도록 하려는 첫마음이었으리라고 생각해요. 글을 써서 책을 내놓는 이들도 언제나 ‘멋진’ 마음밥이 되도록 하려는 뜻이었으리라고 봐요.


  그러면 요즈음 한국에서 학교란 어린이와 어른한테 ‘멋진’ 곳일까요. 멋진 배움터이자 삶터요 놀이터이자 만남터 노릇을 하는 학교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서 멋진 삶과 사랑을 노래하는가요. 어른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 멋진 삶과 사랑을 들려주는가요.


.. 마지막 수업은 읽기 시간이에요. 레나는 아직 글자를 못 읽어요. 그래도 선생님은 레나에게 읽기 책을 한 권 빌려주었어요. 먼저 비르기타가 책을 읽었어요. “할머니는 다정하시다.” 하고 소리 내 읽었어요. 다음은 페터 차례예요. 그런데 페터는 자리에 앉아서 다른 생각에 푹 빠져 있었어요.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자 페터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어요. “아이쿠, 페터야. 거기 앉아서 꿈이라도 꾸고 있니?” 선생님이 물었어요. “아뇨, 어떻게 하면 둥그런 깡통을 만들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어요.” 페터가 대답했어요. “그건 다음에 얘기해 보기로 하고, 지금은 책을 읽자꾸나.” ..  (25쪽)


  그림책에 나오는 ‘페터’는 어른 동생 ‘레나’를 데리고 학교에 갑니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인 오빠가 여섯 살 동생과 함께 학교에 갑니다. 여덟 살 어린이는 담임교사한테 동생을 소개합니다. 담임교사는 여섯 살 어린이를 따사로이 맞이합니다. ‘네가 왜 학교에 오느냐?’ 하고 따지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아요. 급식을 같이 먹고 수업도 함께 합니다. 여섯 살 레나는 오빠와 언니 사이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손을 번쩍 들고 ‘여섯 살 아이가 아는 이야기’를 대답하기도 합니다.


  어린 동생과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스스럼없습니다. 아마 모두들 집이나 마을에 ‘레나와 같은 어린 동생’이 있겠지요. 동무네 동생도 제 동생이요, 제 동생도 동무네 동생과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아낄 벗이고, 서로 어깨를 겯으면서 사랑할 이웃입니다.


  학교가 나아갈 길은 우리가 나아갈 길과 같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일구어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면, 학교도 아름다운 배움터가 될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과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는 터전이 될 노릇입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평화와 민주와 통일과 평등을 꿈꾸거나 바란다면, 학교도 평화와 민주와 통일과 평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살가운 터전이 될 노릇이에요.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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