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놀이 7 - 이불 사이로 슝슝



  볕이 좋아 마당에 이불을 넌다. 아이들은 이때다 하며 마당에서 이불 사이로 가로지르는 놀이를 한다. 햇볕을 쬐고 멧새 노래를 들으면서 이불 사이를 슝슝 지나간다. 너희들이 재미있으면 언제나 무엇이든 놀이가 되겠지.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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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27] 오랜만에



  날마다 멧새 노랫소리 들으면서

  언제나 햇볕내음 맡으면서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까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은 수수하거나 조그마한 이야기는 주고받지 못한 채 서로 겉도는 이야기만 툭툭 꺼내다가 다시 헤어져 오랫동안 안 만나지 않을까요. 자주 만나는 사이라면 참으로 수수하거나 조그마한 이야기로 도란도란 사랑꽃을 피우리라 느껴요. 늘 보는 사이요 함께 살아가는 사이라면 수수하거나 조그마한 이야기가 기쁜 씨앗이 되어 삶을 환하게 밝히리라 느껴요.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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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44. 그림자에서



  사진은 언제나 빛을 찍습니다. 빛을 찍기에 빛나는 사진입니다. 아주 마땅한 이야기인데, 빛을 찍기에 빛납니다. 그러니까, 어둠을 찍으면 어둡습니다. 사진이 처음부터 어둠을 찍으려 했다면 무척 어두웠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예나 오늘이나 어둠을 찍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둠을 찍는 이들은 더없이 마땅히 어둡구나 싶은 사진을 선보입니다. 좋거나 나쁘게 바라볼 대목이 아닙니다. 어둠을 찍으니 어두운 사진입니다. 어둡대서 나쁜 사진이 아니요 좋은 사진도 아닙니다. 어둠을 찍으니 어두운 사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밝은 빛을 찍을 적에도 똑같이 느낄 노릇입니다. 밝은 빛을 찍으면 밝은 사진일 뿐입니다. 더 낫거나 한결 나은 사진이 아닙니다. 밝은 빛을 찍은 사진일 뿐입니다.


  사진에서 우리가 바라보거나 느낄 대목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사랑입니다.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느 만큼 사랑하느냐입니다. 살짝 어둡게 찍거나 많이 어둡게 찍는대서 사랑스러운 사진이 안 될 수 없습니다. 살짝 밝게 찍거나 많이 밝게 찍는대서 사랑스러운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사진이 되자면 사랑스럽게 찍어야 합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사진이란 사랑이 깃들지 않은 사진이에요.


  잘 생각해 보셔요. 얼굴로는 웃는 빛이어도 웃음이 아닐 수 있어요. 말씨는 부드럽다지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어요. 사진은 겉보기로 따질 수 없습니다. 사진은 빛깔로 따질 수 없습니다. 무지개빛 감도는 사진으로 찍기에 밝지 않습니다. 까망하양 두 가지 빛깔로 찍기에 어둡지 않습니다. 마음과 사랑이 밝을 때에 밝은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도 사랑도 어두우면 어두운 사진을 찍습니다.


  그림자를 바라보셔요. 내 그림자는 어떤 빛인가요. 내 그림자는 어떤 삶인가요. 내 그림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숨결인가요.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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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



바람이 분다

골짜기에서 샘물 솟는다.

햇볕 내리쬐며 따사롭다.


들에는 풀이 돋고

풀밭에는 풀벌레와 풀개구리

이 곁에는

멧새와 나비와 벌.


후박나무는 바닷바람으로 자라고

동백나무는 숲바람으로 자라며

느티나무는 들바람으로 자란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흙투성이로 놀다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좋아서

기뻐서

예뻐서

봄날 드리우는

바람노래와 냇물노래와 햇살노래가

그지없이 사랑스러워서.


얼굴부터 발끝까지

땀내 짠내 풍기는

아이들 웃옷 등판에

하얗게 꽃 핀다.



4347.4.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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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중계 닥쳐라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가라앉았다. 멀쩡한 사람들이 바닷속에 갇힌 채 숨을 거두었다. 날마다 몇 사람씩 주검으로 실려 나온다. 그런데, 참 어처구니없다. 왜 날마다 몇 사람씩 주검으로 실려 나오는가? 게다가 이 주검 숫자는 왜 ‘실시간’으로 방송과 인터넷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가?


  올림픽 메달집계라도 하듯이 주검 숫자를 날마다 새롭게 알려준다. 무시무시하다. 왜 이런 짓을 하는가? 이런 짓을 하려고 언론이 있는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살인중계를 왜 하는가?


  참말 기자와 정치꾼한테 묻고 싶다. 너희 아이들이 죽었을 때에 ‘우리 아이가 모두 몇인데 이 가운데 몇이 죽었답니다’ 하고 중계를 하겠느냐? 유족과 부모와 식구를 떠나서도 이런 살인중계는 제발 닥치고 치우기를 바란다. 4347.4.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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