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me a favor. Do yourselves a favor. 

Stop talking and look. You're not required to write a paper. You're not even required to like it. 

You ARE required to consider it. That's your only assignment today. When you're done, you may leave."


<모나리자 스마일>에 강력한 장면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장면. 미스 왓슨이 학생들 데리고 따끈한 신작 잭슨 폴록 그림 보러 감. 

'이걸로 페이퍼 쓰라고는 말아 주세요..' 포함 궁시렁대는 학생들에게, 미스 왓슨이 하는 위의 말. 

이 대사에서 consider는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고려하다.. 이런 말로는 부족하거나 오도한다. 

의미로는 "잘 생각하다" 정도인데 ("to think carefully about (something)"), "잘 생각해" 같은 말이 한국어에서 

쓰이는 좋지 않은 용례들이 있으니 (잘 생각해 = 모두 니 잘못으로 볼 수 있게 생각해. 이런 때 많지 않나?) 

"너희들이 할 일은, 이 그림에 대해 잘 생각해보는 것이 다다"라고 하면, 어쨌든 이것도 조금이라도 misleading 하지 않나. 


여기서도 

정신의 삶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한 어휘들이 한국어에서 

정신의 삶에 적대적인 용도로 쓰인다...... 그런 거 알아본다고 하면 오바인가.  


그런데 어쨌든,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consider 할 수 있음. 이것도 지성의 증거라고 생각하고 

이것 역시 한국에선 아주 드물다고도 생각한다. 지능이 지성이 되지 못함도 한국에서 살면 감당해야 하는 

곤경이라고 수업 토론에서 학생들과 얘기하기도 했는데, 정말 고도로 지능적인 사람들은 꽤 있지만 그래서 

지능의 역량(간파, 계산 등)은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지성에 속하는 무엇이면 가끔 예외적으로 접함. 그렇지 않나. 


하긴, 지능도 드물다 해도 (여혐은 지능의 문제... 같은 말들에서 보면) 소수의견 아닐 수도. 


네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게 나의 권리므로) 반대할 것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이번엔 그래야 할 상황이니) 동의하는 체 하겠다. 

이런 상황들을 무수히 겪지 않나? 직장에서도 사생활에서도? 아닌가, 나만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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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itled Opinions에서 로버트 해리슨이 

미국 시민들의 시민 자격을 판정하는 시민시험(citizen's test)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리고 그것이 있다면 반드시 소로우와 <월든> <시민불복종>에서도 출제 되어야 한다고

하던 얘기에서 출발해 


내가 시민시험을 출제한다면? 무슨 문제를 왜 출제할 것인가? 

이걸 토론 질문으로도 쓰고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 에세이 주제로도 쓴다. 

(시험 에세이 주제는 다 미리미리 공유하기 때문에, 이렇게 블로그 같은 곳에 공개해도 된다.) 


이 질문에 접근하기 위한 출발의 지점 중엔 

우리가 물려받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정신적 유산, 지적 유산엔 무엇이 있나 

따져보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 하기도 하는데 


'좋은 걸론 아무 유산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쁜 걸론 많은데, 그 중 가장 먼저 청산됐으면 좋겠는 건, 붕당정치?'  


이런 답도 듣는다. 


정말, 샐린저 같은 작가가 미국인들에게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 이상이 되는 일.  

심지어 핀천 같은 작가도? 그런가 하면, 이문열이나 조정래 같은 작가들이 (샐린저나 핀천보다도 

더 많이 팔았을 것 같고 더 큰 영향력을 가졌을 것 같은) 우리의 "유산"이진 않다는 것은. 


나도 이 질문에 답을 (내 답을) 

대강이라도 써두고, 그 답을 잘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라면, 일단 버지니아 울프, 혹은 아도르노를 출제하려 하는데 

(당연히 이것은 사고실험이고 장난치는 정신으로 해야하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하고) 

예술은 행동하려는 욕망을 파괴한다는 와일드와 이들이 공명하는 지점을 강조하면서 

왜 그것이 우리가 모두 알고 한편 실천해야 하는 무엇인가 밝히고 옹호하겠다..... 정도로 말한다면 

이해될 리가 없으니, 이걸 늘 기억하면서 페이퍼도 쓰고 그래야. --> 이게 뭔소린진 나중에.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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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교황은 

카톨릭에서 여성 사제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jtbc 뉴스룸에서 이 내용 나오자 옆 채팅창에 

"교황 박근혜 보고 깨달은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지 않나요? 

"김재규 열사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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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6-11-02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시간으론 무척 웃겼는데
적어두니, 읭?
 



<도리언 그레이> 읽고 토론에서 

Manhattan에서 우디 앨런의 긴 모놀로그, 그대로 인용하고 토론 질문으로 쓴다. 

이 영화에서 우디 앨런이 하는 것처럼, 내게 인생을 살 가치가 있게 하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다른 토론 질문들이 '인생 vs. 예술'에 관한 것이고, 이 질문은 그것들 다음에, 그러나 어쨌든 예술은 삶에 기여한다... 관점에서. 내 삶을 풍요하게 한 예술, 혹은 예술적인 것들을 기억하기. 우디 앨런이 말하듯이 야구선수도, 중국집의 게요리도, 영화배우도, 코미디언도, 여자친구의 얼굴도 그것들에 포함될 수 있다. 





여러 학기에서 썼던 토론 질문인데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질문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거의 언제나 "내가 인생에서 가치를 두는 것은?" 쪽으로 이해되고 

그러고 나오는 답들이, 내가 처음 가졌던 목표를 성취하기,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식 되기 등. 

오늘은 처음부터, 내 삶이 더 아름답고 짜릿한 것이 되게 했던 것들... 예술적 속성 때문에 그랬다 말할 수 있는 것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자는 질문이지 내가 인생에서 성취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하자는 질문이 아니라고 설명했는데 


그런 설명을 보태도 분명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why is life worth living? 이 말을 "인생을 살 가치가 있게 하는 것은?"이나 

"인생을 살 만하게 하는 것은?" 처럼 번역하면, 원래 문장의 뜻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그건 "가치"라는 말이, 한국에서 왜곡되었음의 증거. "살만하다"는 지금도 물질적 충족만을 

뜻한다는 증거. 같은 생각을 해보았음. 혹은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까지 학생들의 삶에서 주체적이었던 시간이 

극히 적었기 때문? 좋은 삶을 빼앗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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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의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 에세이를 

참조해서 한 문단 길이로 만들었던 수업 토론 주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어제 몇 번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꼭 문단 형태로 다시 만들진 못하더라도 (지금 그럴 시간이 사실 없고), 이 에세이부터 다시 봐야겠다고 새벽에 

학교 나와 찾아보던 중. 검색하려는데, 제목부터 헷갈렸다. 


Economic consequences? 였던가? 

(*이건 자동완성이 알려주는 바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 

"평화의 경제적 여파" 제목으로 쓴 그 또한 유명한 에세이). 


grandchildren이 제목에 들어갔던 것 같아서 구글 검색창에 

keynes grandchildren 입력하니 keynes grandchildren essay 라고 자동완성. 

역시 대단히도 유명하신 에세이. 잘 알지 못하는데 좋은 토론 질문 만들겠다고 잘 알지 못하는 것들도 끌어와서 

만들어 두어봤자, 심지어 그걸 만든 사람에게도 거의 기억이 남지 않는다는 사실. 


우선 가장 널리 인용되는 그 부분, 우리는(우리 손자 세대는) 세 시간만 일하고도 풍족할 것이다: 

.... we shall endeavour to spread the bread thin on the butter – to make what work there is still to be done to be as widely shared as possible. Three-hour shifts or a fifteen-hour week may put off the problem for a great while. For three hours a day is quite enough to satisfy the old Adam in most of us!


이 대목 생각하게 만든다. 

"돈을 사랑함은 추악하고 혐오스럽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진정 미덕과 지혜의 길을 걷는다": 

.... that avarice is a vice, that the exaction of usury is a misdemeanour, and the love of money is detestable, that those walk most truly in the paths of virtue and sane wisdom who take least thought for the morrow.


이것도 자주 인용되는 것 같은 (여러 번 본 적 있는) 문장인데 

에세이의 맨 마지막 문장이다. "경제학자가 치과의사처럼 겸손하고 유능한 직업인이라면....": 

.... If economists could manage to get themselves thought of as humble, competent people, on a level with dentists, that would be splendid!


*이 에세이는 위의 책에 실려 있다고 하고 (실려 있는 다른 책들도 있겠지만) 웹에서 

pdf로도 구할 수 있는 듯. 케인스는 블룸스베리 그룹 사람이었기 때문에도, 찬찬히 많이 읽어드려야 읽어드릴수록. 

케인스 정작 자신은 주식 투자로 큰 돈 벌지 않았나? 그건 "내일을 생각함"과는 전혀 무관한 투자였을까? 어쨌든 "내일을 생각하지 않을 때 미덕과 지혜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이 말엔 작지 않은 진실이 있는 것 같음. 내일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여야. 사회일수록 좋은 사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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