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엑스 자서전을 

수업에서 읽었을 땐, (언제나 해보는 질문) 한국에 말콤 엑스는 있었나. 생각했다. 

독학자가 도달할 수 있는 지점. 이것이 문화 수준의 한 척도 아닌가. 영어가 모어면서 

독학으로 견고한 자기 세계, 이런 것을 일군 사람들은 많다. 한국어가 모어면? 한국어로도 

그런 사람들이 다수 나올 수 있기 위한 가능성의 조건은? 


암튼..................  

오늘 1시에 <다가오는 것들> 보고 광화문에도 가려던 계획인데 

아 벌써 10시다. 계획은 어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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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체형 거의 똑같다며 

몇 년 전 이 사진 옮겨 둔 적이 있었다. 수전 벅 모스. 

이런 이미지도, 이게 바로 해방의 증거다... 아직은 1세계에서나 나오는. 

그런 호들갑도 가능한 이미지 아닌가. 한국에서 중년 이후 여자 학자가 학생들과 

토론하는 자리에서 저런 차림 저런 제스처는, 내 생전엔 안되지 않겠느냐. 


체형에는 경탄했지만 

책에는 경탄하지 않았었다. 아도르노, 바슐라르 이런 분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신게 

"그들은 자유정신이었으나 그럼에도 다녔던 학교 어디서든 우수한 성적을.." 이럴 수 있는 분들일텐데 

그들에는 못 미치는, 수전 벅 모스 같은 분들은 "다녔던 학교 어디서든 가장 우수한 성적을 냈으나..."일 

거라는 점. 공부 잘했지만 재미없는. 딱 할 얘기만 하고 마는. : 그녀 책들이 내게는 그랬다. 


그래도 다시 잘 읽어봐야할 이유들이 많아서, 

어쨌든 그녀를 사랑해야겠습니다?! ;;;;; 이만 자러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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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조너선 밀러가 진행했던 84년 bbc 6부작 다큐 Sea of Faith 

산책할 때 들었다. 기독교의 역사, 특히 기독교가 감당해야 했던 도전들 중심으로 그 역사를 

보는 내용인데, 4부던가 5부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서 꽤 자세한 내용이 있다. 매우 허접한 중등교육을 

거쳤기 때문에,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상할 것도 없게도, 이상할 건 아니지만이 더 맞나) 혁명의 유산이 한국에서는 유산이 아니기 때문에, 내겐 히스토리 채널, bbc 같은 데서 만든 다큐들이 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을 진지하게 보게 한 최초의 것들이었고, 이 다큐들 보고 들을 때 정말 가슴이, 가슴이 뛰었다. 그랬다니깐. 다시 보면 지금도 그런다. 볼테르, 루소. 파리의 살롱에서 귀족들이 급진적 아이디어들을 논의하게 만들었던 이들. 심지어 "직업 불평꾼", 자신의 원한을 해소할 장으로 혁명을 이용했다는 (히스토리 채널에 따르면) 장-폴 마라. <민중의 친구 L'Ami du Peuple> 그가 발행했다는 신문. 이런 것들도, 두근두근. 아 그래서, 프랑스 대혁명의 여러 의의를 분명하게 칭송하는 Sea of Faith는 좋은 다큐. 


얼마 전 수업에선 

한국은 성공의 보람이 없는 나라 아니냐. 

이 말에 공감한다면, 왜 그런가 생각해 보자. 

이런 얘길 했는데, 뜻밖에도 즉각 공감하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내 생각대로 이해된 건 아닐 수도 있는데 적지 않은 학생들이 바로 공감함이 놀라웠다. 

성공으로 부를 축적하고 명성은 얻나 몰라도, 좋은 사람 뛰어난 사람, 탁월한 사람 만나지 못한다. 

사실, 부패 없이 성공 없다. 부패하지 않고는 상향 이동할 수 없게끔 와꾸가 짜여진 나라다. : 이런 얘기에도 공감이. 


의사인데 방송인이고 지식인인 (정말, 그 말의 가장 좋은 의미에서 지식인인) 조너선 밀러. 

이런 사람 한국에서 나올 수 없지 않나. 적어도 당분간은. 이민법 전문 변호사인데 키에르케고르 애독자이며 

여러 좋은 인용들과 함께 오래 진지하게 서양철학사에서 키에르케고르.. 이런 주제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한국 상황에 맞추어 키에르케고르 --> 공자, 뭐 이렇게 바꾼다 해도) 한국인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나. 사실 

상향 이동... 이것을 모두가 살면서 한편 바란다면, 내가 조너선 밀러나 저 변호사처럼 되고 싶고 아니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나. "정신의 삶" 이것 말이다. 그런데 그게 여기서는, 전혀 그림의 일부가 아님. 일부가 될 수 없음. 


며칠 전 Writer's Almanac에서는 

미국 모더니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그의 애독자였던 어떤 여성 작가에 대해 말하면서 

그 여성 작가가 무명이고 젊었던 시절, 윌리엄스의 시를 사랑했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던 일에 대해 말했다. 

(그 여성 작가는 처음 들은 이름, 모르던 작가). 나는 바로, '(그래서 그들 사이에) 혹시 강간? 성추행?' 자동 생각했고 

하지만 이어진 얘기는, 윌리엄스는 참 온화한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친절했으며 두 사람은 오래 우정을 나누었다. 그녀는 1년에 두어번은 그를 방문하면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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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의 유명한 사진. 

누군가는 이 사진 얘기로 자기 글을 시작하기도 했었다. 이 사진이 우리에게 알게 하는 

아도르노의 탁월함은 무엇인가 그런 얘기. 하여간 아도르노도 열정적 지지자들을 거느리셨다. 


아래 포스트에 인용한 아도르노 문장에서 "대상을 향하는 사유 thoughts directed at objects"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는 내용으로 페이퍼 하나, 어쩌면 책 한 권, 누가 써야 할지 모른다. 특히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아도르노 자신을 집중 인용하면서, 인용하고 논평하는 형식으로 (가장 쉽고 편한 형식으로) 써도, 크진 않더라도 가치 있는 글 나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당장 이 포스트에서 한 문단이라도 그래보고 싶기도 한데, 으휴 책을 뒤적일 힘이 업스미니다. 오직 포스트 쓸 힘만. 


간단하게 비교하라면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미스 왓슨이 "You ARE required to consider it" 이 말 할 때 consider. 

그녀가 자기 학생들에게 요청하는 것이 바로 "대상을 향하는 사유."


사안이 있어서 얘기할 때 

사안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쓰고 보니 어쨌든 

매일 이런 거, 폭로인 듯 폭로 아닌 어쨌든 불평인 글 쓰고 있는 것 같고 웃겨졌다). 사안에 집중하고 사안을 생각하기. 이거 보기보다 위대한 능력 아닌가? 사안 외부적인 것 (예: 상대의 지위, 상대와 나의 관계) 이것이 전부인 사람들 아주 많지 않나. 그래서, 사안 외부적인 것이 사안을 결정하게 하지 않나. 음. 이건, 전혀 그렇지 않은 곳들도 많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곳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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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정말 그렇다고 감탄하고 여러 번 기억했던 대목. 

"지성은 도덕의 범주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127번 단장. 


"그 우매함은 도덕적 결함 -- 자율성, 책임의 부재 -- 과 함께 한다. 

그런가 하면, 소크라테스적 합리주의에 작지 않은 진실이 있다. 대상을 향하는 사유를 하지 자기 안에서 

형식주의적으로 맴도는 사고를 하지 않는, 진지하게 지적인 사람을, 사악한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형광색 칠한 부분. 

아도르노 번역은 (독어에서 영어로나, 독어에서 한국어로나, 영어에서 한국어로나) 진정 도전일 듯. 

위의 제 번역은 대강 한 것입니다. 





그 역도 예외없이 진실이지 않나. 

도덕을 놓는 순간 우매화 일어나는 일. 이 점에 대해 아주 많은 얘기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도덕과 지성(유능함)이 별개라 보는 강고한 편견.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무능-부도덕과 함께 하는 이들. 

우리의 동료(?)들 중에도 있는 그들. 동료의 의미를 물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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