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책이지만 가볍지 않다. 기간과 돈을 들여 순수하게 재미로 ‘파는‘ 장르인 스릴러에 대한 저자 이다혜 님의 내공이 빛난다. 깔끔하고 유려한 문장은 저자의 목소리로 들리는 듯하고 스릴러 소설 만큼이나 ‘끓어’ 한번에 내리 읽을 수 있다.

스릴러, 라는 장르의 정의로 시작해서 개략적인 역사와 의미있는 작품들을 따져본다. 왜 재미가 있었고 어떻게 클래식이 되었는지. 스릴러의 광활한 범위와 더불어 유행의 변이도 그려내는데 스릴러가 범죄를 다루는 만큼 작품을 탄생시킨 사회문제를 들여다 본다.

남편은 좀비와 공포물을 좋아하는데 판타지 쪽으로 치우친 편이고 나는 시리얼 킬러물과 사이코패스 물을 즐긴다. (밝고 맑은 동심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표지의 닫힌 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멀쩡한 사람 속에선 어떤 피칠갑한 괴물이 도끼 들고 설치는지 스릴러도 다 그려내지는 못한다. 결국 스릴러의 한계와 취미 혹은 쾌락의 의미와 책임을 피하지 말고 고민해야한다. 현실, 논픽션에 와닿는 스릴러.

저자가 강하게 추천한 몇 작품은 따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어느 비오는 날, 문은 이중 삼중으로 잠그고 전화기는 무음으로 옆에 둔 상태로 (주머니엔 씨리얼 바) 읽어야지.


아 깜딱이야. 남편이 전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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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4-1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가 울려서 스릴러일까요?
전화 한 사람이 남편이어서 스릴러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4-13 23:26   좋아요 0 | URL
헉...예리한 형사님!
둘 다에요....

psyche 2018-04-1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찜. 그리고 강력하게 추천한 책 살짝 귀뜸 좀....

유부만두 2018-04-16 07:49   좋아요 0 | URL
네. 따로 톡 드릴게요.
 

172쪽 표현 고쳐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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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8-04-1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다 넘어갔다는게..

유부만두 2018-04-12 20:04   좋아요 0 | URL
그쵸?....

북극곰 2018-04-1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옳소!
 

색을 잃는다는 건 선택과 자유, 그리고 인간성을 잃는다는 것과 동일하다, 는 생각에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어딘지 괴짜인 열두 살 소년. 빨간 두건으로 얼굴 가리고 다니는 130년 후 미래 세상의 아이. 핵전쟁 참사 후 100년의 암흑기를 지났고 남아있는 인간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통합국 '미르국'을 세워 평화롭게 살고있다. (왜 미르, 하면 자꾸 다른 사람이 생각나고 그르지요?) 저 바깥 세상은 오염되고 황폐한 곳이라 안전한 미르국 '내'에서만 첨단 기술과 완벽한 기술 및 제도로 보호받는 인간들. 그런줄 알았지만. 띠로리.

 

상민의 엄마는 로봇, 할리의 제조자였고 늘 바쁘고 차가운 엄마였다. 큰 일 하시는 분이니 방해를 해서도 투정을 부려서도 안됐다. 그나마 친절한 운전사 할리 제이슨이 상민의 곁을 지켜준다. 아침마다 학교에서 강제로 급식하는 바누슈슈, 의식을 잃었던 친구 제제가 할리가 된 사실과 새 대통령이 실은 할리라는 비밀을 알게된 상민이는 도망쳐 나와버린다. 제이슨과 함께. 가출 서사. 빠라밤.

 

이제 어디로 가는가. 미르국 바깥으로. 방사능 오염으로 찌든 불모의 땅인줄만 알았던 바깥에 바다가, 깨끗한 해변의 우사카 섬이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에 형형색색의 숲과 동물들. 그리고 자연치유까지. 마더 어셈블러 기계와 여왕 개미의 비유, 할리와 인간. 문명과 자연의 이분법으로 보이지만 결국 전쟁과 화합이라는 무거운 주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까지 안겨주며 소설은 끝난다.

 

한 줄에 한 문장. 짧고 빠른 호흡,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독자를 몰아가기 때문에 우리집 열두 살 소년은 흠뻑 빠져서 읽고 '엄마, 이거 읽으세요. 꼭 읽으세요' 독촉했다. 읽다보니 아이의 마음을 알 것도 같더라. 냉정한 엄마, 자신의 복제품으로서의 자식을 원하는 엄마,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자식을 '죽여 버리'기도 하는 엄마 이야기. 하하하 공부가 그리 싫고 매일매일이 섪더냐.

 

사랑을 믿고, 모든 걸 의심하고 네 자신을 찾아라. 이건 뭐 코기토 에르고 숨. ...  지나치게 안전하고 건전한 주제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초반부터 (제이슨 (본?)의 아이덴디티는 눈치챘고) the Giver 기억전달자달빛 마신 소녀와 비슷해서 몰입이 힘들었다. 초반에 던져놓은 여러 소재들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끝내버리고 한국 특유의 정서, 핏줄이 최고,라는 믿음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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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8-04-1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저도 읽자마자 뭔가 어디서 읽고 많이 붙여 놓은 동화같단 생각을 했어요.-0-마지막에 유부만두님께서 하신 말씀 제가 쓴 글인줄..그래도 꼭 애들이랑 읽어보고 싶네요.^^

유부만두 2018-04-12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클라이막스는 일부러 숨겼어요. 흐름이 빠르고 감정표현이 즉각적이라 아이들이 ‘시원하게’ 여기며 읽어요. ^^

단발머리 2018-04-1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빛 마신 소녀>는 사 놓기만 하고 아직 못 읽었고, <더 기버>라면....
아아~~ <더 기버>는 정말 인생책이죠. 전 참 좋더라구요.
불편하신 지점은 공감이 되지만, 열두살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완전 귀가 쫑긋해지네요. 저희 집 소년의 마음도 좀 사로잡아달라~~~
컬러보이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유부만두 2018-04-12 20:09   좋아요 0 | URL
더 기버!!! 인생책이죠!

달빛...은 좀 지루하고 번역도 쫌 그래요. 큰 기대는 접어두고 읽으세요. 컬러보이는 아이들이 재밌어하고 읽을거에요.

단발머리 2018-04-12 20:30   좋아요 1 | URL
오늘아침에 도서관에 컬러보이를 상호대차 신청했어요. 브이^^

유부만두 2018-04-12 20:36   좋아요 0 | URL
빠르시군요! 피쓰~!
 

단편 수록작 '나무괘 사랑' 은 시간을 크게 뛰어 넘는 두 사람의 문자 교환이다. '너의 이름은' 에서 메모로 서로에게 남기는 짧은 일기와 사진은 저 쪽에서,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런데 그 소통의 상대가 에도시대, 몇 백년이나 전 시대의 사람이라면, 스마트 폰 대신 골동품 궤짝에서 나온 판자에 고어로 나도 모르게 적어보는 몇 줄이라면, 다만 그가 내 나이 또래 스무 살이라면 (아, 저 말고, 주인공 다마미 말입니다....). 사랑, 이라면. 그 자리에 가지 말아요. 그곳에선 대학살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님하, 그 강 건너지 마오. 공무도하.

 

영화 '시월애'에서 가슴 저린 기다림과 엇갈림에 한숨을 쉬었고, 알고 보니 한동네 주민이었던 남편을 보면 역시 모든 건 타이밍인가 싶다. 타임슬립이 흔한 소재라지만 시간의 엇갈림 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다. 만일 그 때, 미래의 누군가가 내게 쪽지를 건네주었더라면, 상상해 보는 황사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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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4-1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사가 심한가요? 어젯밤 동생이랑 문자를 하는데 삼한사온이라고 하든디.

유부만두 2018-04-12 07:57   좋아요 0 | URL
이젠 봄엔 대기예보랑 마스크 챙기는 건 일상이에요.
삼한사온...맞네요. 꽃샘추위 라기엔 꽤 추웠어요. 그러다 어제 그제는 따뜻하고요. 주말에 비온다고 하니 삼한사온. ^^

비연 2018-04-1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기가 넘 나쁘네요..ㅜㅜ;;;

유부만두 2018-04-12 07:57   좋아요 0 | URL
네 마스크 챙기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마키메 마나부의 단편 '연애편지와 레몬'에 언급되는 스님이 나오는 소설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코'이다. '코'라면 고골, 허위의 상징이고 기괴한 과장과 풍자로 만난 기억이 있는데 이번 코는 소심한 자의식이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다.

 

 

 

코를 닮아서 스프링 롤을 만든 건 아니었다. 내가 엽기지만 그정도는 아니...

 

스님의 코 치료는 징그럽고도 우습다. 찜질에 뽑아내는 실...이라니 이건 모낭충인가, 아니면 화이트 헤드 제거하는 코팩이려나. 느긋하게 시침 떼고 펼쳐지는 묘사에 아, 이러다 스님 먼길 가시겠네, 싶었다. 우스꽝스러운 치료 과정은 사람, 특히 스님을 대하는 게 아니라 '고기', 아주 하찮은 덩어리 하나를 처리하는 모습일 뿐이다. 실은 그 덩어리가 스님의 고고한 인격에 한 줄 흠이었는데도.  치료된 모습에 경멸을 보이는 사람들의 속성은 어쩜 이리 날카로운지. 그에 휘둘려 더 괴로워하는 스님. 수양이 부족하십니다...만, 그 맘을 저도 알겠어요. 날카롭고 우스운만큼 무서운 이야기를 쓴 아쿠타가와 (문학상 이름으로 먼저 알았습니다) 류노스케, 그의 단편집을 마저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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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4-10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쇼몬, 랴쇼몬, 랴쇼몬,
라쇼몬을 외우는 아침입니다. ^^

스프링 롤과 월남쌈의 제일 중요한 차이는 무엇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4-10 08:58   좋아요 0 | URL
갸가 갸에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