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저학년용 도서'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지우개똥 쪼물이'와 '조막만한 조막이'는 아주 다른 이야기다. 조막이는 전래 동화를 비틀어서 유머와 다시보기를 시도했고 쪼물이는 생활에 판타지를 가미한 동화다. 쪼물이는 얇고 스토리도 단순해서 저학년이 혼자 읽기로도 적당해 보인다. 그림도 귀엽고.

 

지우개로 쓴 글이나 그림을 지우면 지우개 밥이 나오는데 맞다, 똥. 그걸 모아서 동그랗게 뭉치면 말랑거리고 고무 찰흙 느낌도 나서 뭔가를 계속 만들고 싶어진다. 치우고 훅 불어버리자면 너무 많아 귀찮은데 뭘 만들려고 드니 아쉬운 양이다. 뭘 지워야하고, 뭘 더 그리고 써야 해. 이 과정을 기꺼이 하는, 공부 말고 딴거 다 재밌는 애들 모여바바!!!

 

아이들은 억지로, 꾸중 들으며 지울 때가 더 많다. 숙제가 틀려서, 잘못 그어서, 계산이 틀려서. 눈물도장, 노력도장을 받아서 한숨을 지으면서 지운다. 그런데 그런 지우개 똥은 냄새나고 맛이 없대. 재밌게 그리고 쓰고 놀다 나오는 지우개똥은 향기도 나고. 누가 먹게요? 지우개 똥 인형이요.

 

유진이네 반 선생님은 깐깐하게 아이들의 실수를 다 지적하고 지우게 하고 혼을 낸다. 그리고 칭찬을 아낀다. 아이들은 풀이 죽고 주눅들어 손가락으로 지우개똥을 모아서 쪼물거리다 인형을 하나씩 만들어 위안을 받는다. 또 금세 잊어버리고 자기들 끼리 논다. 그리고 집에 간다. 학교에 남은 지우개똥 인형들, 쪼물이 헐렝이 짱구 딸꾹이 들은 아이들이 시무룩한 원인, 선생님이 칭찬도장 대신 찍어주는 '눈물도장'을 없애기로 결의한다. 하지만 눈물 도장은 엄청 크고 또 힘이 세고 무서워. 게다가 부리는 벌레 부하들까지 여섯이나 있다.

 

아이들은 칭찬을 먹어야 힘이 나고, 지우개 똥 인형들은 지우개 가루를 먹어야 힘이 난다. 지우개 가루를 더 만들려고 쪼물이와 일당들은 샤프심을 하나씩 들고 낑낑 그림을 그려놓는다. 아이들이 그 위에 더 그림을 이어 그리고 글도 쓰고 또 지우면서 지우개 가루가 생긴다. 잘못 써서 혼나며 지우는 게 아니라 좋아서 놀면서 지우개 가루가 생긴다. 쓸모 없는 똥이 아니라 다른 의미가 주어지는 것만 같다. 아이들 집에도 따라가는 지우개 인형들. 아직 아이들과 교류가 없지만 아이들 대로, 쪼물이들 대로 다녀서 귀엽다.

 

어제 4월 15일은 '지우개의 날'이었다고 한다. 영국의 화학자 조셉 프리스트리(Joseph Priestley)가 고무의 지워지는 성질을 알아낸 날. 지우개의 날. 나는 어릴적에 지우개똥으로 뱀을 만들었었는데. 회색빛 뱀. 또아리를 틀어놓으면 똥처럼 보였.... 그런데 지우개를 닳도록 쓰는 아이들은 없다. 쪼개거나 잃어버리거나 지우개 따먹기로 빼앗기거나. 그 많은 지우개들은 어디에 갔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하고 읽고 생각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 말 많...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8-04-15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7개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8-04-15 16:56   좋아요 0 | URL
그중 한 개는 저 분홍색 바지에 주시는 거죠? ^^

단발머리 2018-04-15 17:4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책 받침 전용천인 줄 알았어요~~~ 물론 분홍색 바지에도 좋아요 1개 드리지요^^

psyche 2018-04-1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 사랑 스릴러...과연 내 인생을 구했는가

유부만두 2018-04-16 07:52   좋아요 0 | URL
구했다고 해죠요. 언니의 책 사랑이 나한테 전염되서 내 인생도 구한거야. 그런거야.
 
조막만 한 조막이 휴먼어린이 저학년 문고 5
이현 지음, 권문희 그림 / 휴먼어린이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은 얼굴 비유로 쓰이는 말, '조막'은 주먹의 옛말이다. 주먹만큼 작은 아이, 조막이 이야기를 읽었다. 우리나라 판 엄지공주 같달까, 하지만 다른 동화책의 조막이 보다 이현 작가님의 조막이는 조금 더 크다. 다행히. 서당에 다닐 만큼, 친구 심부름을 다닐 만큼, 도적떼가 주머니에 쏙 넣는 대신 다른 걸 덮어 씌워 잡아갈 만큼, 새가 채 가거나 소가 먹어버리지 않을 만큼, 그리고 입던 옷이 작아져서 소매가 쑤욱 배가 빼꼼 나올 만큼. 그리고 세상이 심심해서 꾀를 쓰고 장난을 칠 만큼.

 

조막이가 아이들보다는 엄청 작지만 그나마 키가 큰 비법은 '잠'이었다. 자고 또 자고 게으르게 뒹굴거리고 밍그적 거리는 이 잠뽀가 어쩐지 낯 익었어.... 지금 군대 가 있는 우리집 큰 애...키도 친구들 보다 작아서 맘이 짠했는데 잠도 많고 침대에서 늘 뒹굴어서 Bed Boy 였던 아이가 새벽에 일어나고 보초도 선다고 한다. 네 손에 우리 나라 국방이 달린게냐. 남북 관계가 '봄이 온다'지만 이 엄마는 잠이 잘 안온다. 이등병 잘 해야 한다.

 

세상에 나온 방식도 별나고 산골의 저 깊은 곳에서 부모 사랑 담뿍 받다가 슬픈 사연 안고 마을로 내려와 고생하며 사는 조막이네 가족. 뻔하세요? 흔한 전래동화, 조막이의 용기와 모험, 효도와 보은 이야기 같다구요? 아닌데요? 이건 .... 페미니스트이며 미래학자인 서당 훈장과 동네 아이들, 학교 내의 권력 관계 재고찰,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평범치 않은 심리극, 박첨지와 결탁된 비리 공권력 패주기, 토지공개념과 아나키스트 재해석, 증시의 선물교환과 경제 교실 이야기, 고정관념의 위험성에 대한 걸랑요? 그렇고 그런 어린이 주인공이 나쁜 사람 혼내주고 성공해서 부모 어깨 뽕 넣어주는 전래동화로 아셨구나. 촌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읽는다고 애들이 깨달아서 스스로 공부하고 효도할 ... 리가 없잖아요. 아시면서. 그냥 재밌고 많이 똑똑한 이야기를 읽게 하는 게 더 나아요. 똘똘한 조막이, 남과 다른 조막이, 그런데 기죽지 않고 건강한 조막이 이야기를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4-16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6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 한 편의 글을 책으로 묶어서 이 값을 받냐?! 는 논란을 서점 직원에게 들었다. '이걸 사시네요?' 네. 제가 호기심 빼면 지방 덩어리입니다.

 

카트 멘시크의 그림의 존재감이 크다. 하루키의 글에 곁들인 삽화 정도가 아니라 그림은 그림대로, 그리고 하루키의 글에 더해서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흡사 그래픽 노블을 읽는 기분. 색다른 건 글에서도 느껴진다. 양윤옥 역자의 번역인데도 예전의 '일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서양 음식과 서양 음악이 나와도 일본 문장이었는데 이번 소설은 다르다. 일본 이름이 나오지 않아서 일까. 애써 일본을 지워 코스모폴리탄 소설이 되려고 했나, 하고 생각하면 그제서야 일본 하루키 느낌이 난다. 하루키가 편집했다는 2004년판 영어책의 다른 이야기들과 함께 엮었더라면 좋았겠다 생각한다.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벌어졌다. 일상과 전통은 단 한 번 깨졌고 스무 살 생일은 단 한 번이다. 그 젊은 날, 법적 성인이 되는 그 마법 같은 날의 '소녀'에 이토록 집착하는 건....늙은이 뿐. 붉은 포도주 대신 새로나온 여름 음료를 마시면서 폼을 잡아보았다. 하루키 읽는 맛의 절반이 겉멋이니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4-14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4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18-04-16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어떤가요? 추천하시나요?

유부만두 2018-04-16 07:50   좋아요 0 | URL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