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살던 여자 사냥꾼 이야기라서 모노노케 히메를 생각했다. 인간과 문명을 증오하고 자연으로의 회귀만 꿈꾸던 공주. 


이 영화 주인공 사냥꾼 하마지는 산을 내려와서 도시에 사는 오빠와 힘을 합쳐 개/늑대인간, 후세 사냥에 나선다. 인간의 심장을 빼먹는 둔갑한 짐승, 후세는 우리네 구미호 (와 몇 년 전 드라마 구가의 서)를 연상시키지만 인간에게 멸시와 차별을 당해온 비운의 소수자들로 묘사된다. 하마지는 도시의 매력에 정신 없지만 어쩐지 자신도 길을 잃은 한 마리 늑대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오빠와 동네 서민들을 만나 금세 인간 무리에 스며든다. 


오빠와 후세 미남자 시노 사이에서 쥴리엣처럼 괴로워하는 하마지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시노의 비극과 권력집착증 성주에 더 집중되어있다. 중간에 나오는 놀이동산 스케일의 유곽과 칼부림에 피범벅(껄쭉한 피) 표현에 뜨악했지만 (다 보여줌) 일단 구매 버튼을 누른 이상 계속 전진. 


흥미로운 인물로는 하마지를 돕는 친구 메이가 나온다. 할아버지가 후세 전설담을 이야기책으로 만든 작가였고 자신도 이야기를 만들려고 애쓰는 아이다. 별 거부감 없이 하마지와 후세를 응원한다. 그 와중에 소식지 혹은 찌라시를 만들어 시내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판매하고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지만 억지로 애절함을 넣지는 않았다. 애절함, 말하지 못한 사랑이라면 후세 엄마와 아이 사이의 서러움과 애달픔이다. 널 멀리한 건 널 사랑해서였단다. 부디 넌 살아남아야해. 반면 인간과 후세의 차이가 너무 커서 영화 내내 차라리 느네는 따로따로 살아라, 라는 마음이 들었는데 시노가 그닥 하마지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서 였다. 폭력과 성적 표현 수위가 예상보다 높아서 놀랐고 하나의 중심 이야기, 주인공들을 위해 심장이 뜯겨 나가고 베이고 불에 타는 수 많은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들 해맑아서 무서웠다. 그림은 모노노케 히메 보다 더 밝고 날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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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7-12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_@; 궁금하네요@_@;

유부만두 2020-07-12 13:52   좋아요 0 | URL
부드럽기보다는 격렬한 애니메이션이에요.
예상보다 수위가 높아서 놀랐어요. 이야기는 다채롭게 활극과 환상을 넘나듭니다.

파이버 2020-07-12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우들이 연기를 잘한거 같아요.저도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유부만두 2020-07-12 13:53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애니메이션에선 성우 역할이 크겠네요.
잘 몰랐지만 생생한 느낌을 받았어요.

moonnight 2020-07-19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서 vod로 봤습니다ㅎㅎ 뭔가 굉장히 생생한 느낌이었어요. 약간 거친 분위기도 있었지만 작가의 의도인 걸까요-_-a 너무 슬프거나 애달프지 않아서 저는 좋았습니다. 일본 애니보고 후유증이 심했던 경험 많아서요ㅠㅠ 유부만두님 덕분에 좋은 영화 보았습니다. 감사드려용^^

유부만두 2020-08-23 20:38   좋아요 0 | URL
댓글을 너무 늦게 봤네요. 죄송합니다;;;;
강렬한 장면이 많지요? 수위도 높고요.
님 말씀 처럼 너무 늘어지고 슬프지 않고 씩씩해서 다행이었어요. 그래도 나름 해피엔딩이기도 하고요.
 

공감 .... 몇 프로인지 쓰면 내가 많이 이상해 보일까봐 조심스럽다. 동화, 만화, 엽기 스릴러, 삼국지, 호메로스 등 이것 저것 다 읽는 내가 실은 많이 이상한 독자이긴 하지만, 뭐, 그래도 남한테 해는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만화에서 건질 짤들이 많아서 캡쳐를 했다. 책 말미의 대반전 장면은 피했다. 스포일러는 금지. 힌트라면 독서 중독자들이 절대로 전혀 네버 가능하지 않을 이야기의 마무리 혹은 새출발을 한다. 재미가 없진 않았는데 기대만큼 아주 재밌지도 않았고, 그래도 공감, 고개 끄덕임, ... 그리고 작은 위로를 책 구매 목록과 함께 얻었다. 


나는 유부만두, 책은 닥치는 대로, 재미를 찾으며 읽습니다.



미국 여행가서 스벅에 들렀을 때 이름을 묻기에 난 '리즈'라고 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나 혼자 흐뭇했었.... 또, 표지의 극한점은 문학사상사 아닐까 싶고. 난 책을 사기도 하고 도서관도 이용하는데 책엔 3M의 작은 플래그를 붙였다 떼거나 사진을 찍는 편이지 접지도 밑줄을 치지도 메모는 더더군다나 하지 않는다. 그냥 깨끗하게 본다. 따로 리뷰나 밑줄을 남겨두지 않으면 그래서 잘 잊는다. 반복. 역서의 목차 순서 및 조합을 싹 바꾼 최근 책은 <예술하는 습관>이다. 몇몇 인물은 빼기도 했다. 그리고 내게 독서란 주로 소설, 이야기 읽기다. 다른 역사책이나 인문 서적 혹은 이런 만화책을 읽을 땐 잠시 곁길로 새는 기분이 든다. 그림컷을 찍지는 않았지만 역자의 소개글이 오글거리게 길면 신뢰도 혹은 책 읽을 마음이 뚝 떨어진다. 그리고 인생과 스포츠, 야구, 그것도 엘지의 야구를 생각하면, 진짜...


적다보니 공감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중독자 까지는 아닙니다요. 완독에 욕심을 부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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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07-1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엔 3M의 작은 플래그를 붙였다 떼거나 사진을 찍는 편이지 접지도 밑줄을 치지도 메모는 더더군다나 하지 않는다. 그냥 깨끗하게 본다. 따로 리뷰나 밑줄을 남겨두지 않으면 그래서 잘 잊는다.‘ 이 부분 나랑 똑같아! ㅎㅎ

유부만두 2020-07-19 16:1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특히 ‘잘 잊는다‘에서 언니와 하이파이브 하겠습니다.
 


떡집 이야기 세 권을 다 읽었는데도 아쉽고 아깝다. 이야기와 떡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입과 마음이 함께 궁금해서 쑥버무리나 콩떡, 절편 하나 두 개쯤 더 먹고 싶다. 한 입 거리 떡으로 마음의 짐이나 고민, 내 안의 '싫은 나'를 고칠 수 있는 마법의 떡이라면 더더욱. 


월요일부터 마음과 기분이 바닥을 치고 내내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고 아이들에게 이 엉망진창 세상을 '바르게 살아라' 말하는 것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저 더럽고 악한 것들은 피해라 정도가 최선이었다. 다 버리고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나이에, 이제야 세상의 민낯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게지, 난 온실에서 살았구나, 반백년 동안. 아 징그러. (3권에서 늦둥이 둔 늙은 엄마 이야기에서 눈물 흘렸고요) 


어쩌면 온실과 꽃밭의 연속일까, 동화 읽기는? 그래도 내 눈을 계속 닦아주는 건 동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 집중력, 그리고 실수라면 되새기고 반성하는 것, 피하거나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런 가치들을 말해주는 다정하고 단단한 이야기들을 읽는다. 만만해보이지만 쫀쫀한 밀도.


계속 읽어야겠다. 나를 버티게 해주는 김리리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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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여름 밤의 꿈'을 보고 너무 좋아서 셰익스피어 전집을 결재했다가 아침에 취소했다. 비극전집 두 권 사둔 것, 프루스트, 삼국지 등등의 거대하고 뜨거운 결심들이 나를 말렸다. 하지만 자꾸 올 여름엔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고 싶다. 줄거리만 혹은 요약 발췌만 알던 작품들을 좋은 번역과 공연으로 만나니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야기가 ...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예전엔 몰랐을까.


arte에서 시리즈로 나오는 클래식 클라우드 중 첫 권인 셰익스피어는 사진도 풍부하고 참고도서 목록도 좋다. 작가와 작품의 배경을 중심으로 여행하듯 따라가면서 흠뻑 그 분위기에 빠질 수 있다. 그러라고 만든 책 같다. 


그런데 저자의 감동이 과하게 앞서가서 독자인 나는 움츠리고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지금, 여기에서 셰익스피어를 읽고 사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속 뒤집어지는 법과 제도와 모든 것들이 있는데. 


아니, 그럴수록! 그럴수록 책과 이야기가 나를 붙들고 챙겨줄 수 있다. 나라도 흔들리지 말고 원칙과 사랑을 믿어봐야겠어! 그래야겠어! 


아, 그래도 저자의 감성은 과하게 넘쳐서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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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책에 대한 따뜻한 책을 읽고 싶어서 골랐는데 ...


1959년 영국의 어촌 마을에서 중년의 여성이 낡은 창고 건물을 은행 융자로 구입해 혼자 서점을 연다. 젊은 시절 일한 경험도 있지만 서점을 열면서 큰 욕심이나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녀 프로렌스가 책을 즐겨 읽거나 문학에 조예가 깊지는 않다. 서점은 그저 책이라는 상품을 파는 장소, 그녀가 혼자 살아갈 장소가 된다. 눅눅한 바다 바람이 부는 곳, 전쟁 후 시간은 흘렀지만 을씨년스럽고 여기저기 장소와 사람이 조용하게 버려져 있는 소도시. 하지만 그곳에도 소위 전통, 역사, 아집, 혹은 지방 유지가 있고 알력과 텃세가 있다. 


플로렌스가 차분하게 서점을 열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귀부인과 적이 되고 열살 소녀 크리스틴을 알바로 만나고, 지방 유지와의 우정이나 런던 독신남을 대하는 장면들은 평범한 책, 서점 소설 같이 전개된다. 책과 문학을 아끼는 사람들의 시골 서점 성공담. 


책 검색을 하다보니 몇년 전 영화로도 나왔다. 


벗뜨, 자상한 서점 주인의 문학사랑과 경제독립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동네 서점이, 타지인이, 돈 없는 싱글 중년 여성이 서점을 열고 흥하나 싶다가 접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주 단순하거나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웃픈...아니 씁쓸한 유머를 계속 깔고 있다. 서점 알바 크리스틴의 반전 (어쩌면 매력) 그리고 지방 유지와의 우정의 갑작스러운 변화, 무엇보다도 서점을 잠깐 흥하게 하는 책, 롤리타의 등장.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서점 주인은 읽지 않고 그저 '좋은 책'인지 '팔릴 책'인지를 고민한다. 어촌 마을에서도 불티나게 팔리는 롤리타가 어떤 독서 감상을 불러오는지 이 책에는 실려있지 않다. 그것이 또 하나 이 책의 씁쓸한 유머인지도 모른다. 팔린다고? 이해한다고? 그래서요? 


마음 따뜻해지는 동네 서점 성공담 같은건 1959년 영국에도 없다. 게다가 21세기 역병의 시기에 동네 서점은 더한 위기에 처해있다. 다큐멘터리 The Booksellers 예고 영상도 봤는데 암담한 서점과 독서의 미래를 이야기한다해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뛴다. 서점, 책, 소설, 종이..... (난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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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09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동네서점은 정말 로망인것 같아요. 서점에 대한 책은 계속 나오는 것 같구요.
저 롤리타를 읽지 않아서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항상 좀 복잡합니다, 마음이... 롤리타에 대해서는요.

유부만두 2020-07-09 20:23   좋아요 0 | URL
롤리타는 소설 자체 보다도 문학사에서 더 큰 이슈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전 읽으면서 꽤 실망했고요.
문장이 아름답거나 인물이 매력적이지 않았거든요.
영어본 소설이랑 우리말 번역본 (민음/문동) 을 읽었는데 ..... 유명한 소설도 정작 독자가 읽어야 각자의, 독자마다의 진짜를 만난다는 진실을 깨달았어요.

소설의 해설은 독자 마다 다르겠지만 전 글쎄요, 굳이 .... 찾아서 읽기까지 할 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레베카 같은 재밌는 소설도 있는데요. 저 곧 읽겠습니다!
참, 나보코프의 문학강의 책은 강추에요. (전 읽는중) 그리고 이 소설에서 롤리타는 어떤 상징이에요. 논란의 롤리타를 그렇게 많이 사는 사람들의 동네에서 작은 서점이란 ... 저자 페넬로페 피츠제랄드의 문장은 날카롭게 찌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