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토가 한자로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설명하자 도다는 필통에서 2B 연필을 꺼내 봉투 앞쪽에 ‘쓰치야 가즈타카에게’, 뒤쪽에 ‘미키 하루토’라고 썼다.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던 하루토가 “내 글씨다!” 하고 감탄하면서 작게 소리쳤다.나도 놀라서 눈이 커졌다. 도다가 봉투에 쓴 글씨가 정말 초등학교 5학년의 필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약간 힘이 들어가서 비뚤어져 있으면서도 아까 하루토의 붓글씨에 나타난 섬세한 선의 특징이 연필로 된 글씨체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도다가 쓴 어떤 글씨와도 비슷한 점이 전혀 없었다. 예를 들어 방금 책상 끄트머리에 치워놓은 절교 선언장과 지금 봉투에 적은 글씨를 비교해 보면 도저히 같은 인물이 썼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먹의 흔들림>“당신을 못살게 굴려는 사람은 프린터를 이용했던 거요. 잉크 잔량이 적었던 게 보이지요. 일단 글을 인쇄한 다음, 세심하게 한 글자씩 따라 쓰기만 하면 됐어요. 기름종이로 베껴 쓰듯이. 아시겠어요?” 블랑슈는 원리는 이해했지만 이미 다음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이 기법을 알며 그녀를 몰아세우는 데 이용할 만큼 원한을 품은 사람이 누굴까? 그리고 진짜처럼 보이는 쪽지를 재구성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재료를 모을 수 있던 사람이 누굴까? -<범죄 청소부 마담B>
도둑맞은 포만감+약간의 오리엔틸리즘
“조선의 3대 술로 고른 것은 감홍로, 이강고, 죽력고였으며, 그 덕분에 사람들이 아직도 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이 술의 소개 및 담그는 법은그의 시대 즈음에 발간된 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도 나란히 실려 있다.감홍로는 이름 그대로 붉은 술이었다. 좋은 술을 소줏고리에 넣고 붉은색이 나게 하는 재료를 집어넣어증류해 만드는데, 예쁜 색과 향기를 자랑하는 정성스러운 술이었다.이강고는 배의 즙과 생강즙과 꿀을 소주에 넣은 다음, 이 병을 따듯한 물에 중탕해서 만드는 술이다.죽력고는 세 술 중에서 가장 약에 가까운 술이다. 대나무를 뜨거운불에 구우면 진액이 흘러나오는데, 이것을 죽력이라고 한다. 죽력과꿀을 소주에 넣고 중탕해서 마시는 게 죽력고인데, 듣기엔 간단하지만제대로 죽력을 만드는 것부터 어려운 일이라 무척 귀한 술이다.이 세 술은 유명세에 힘입어 최근에는 복원돼 판매도 하고 있다.” (150)
첫두어 장 몰입이 어렵지만 중반부터 속도가 나서 끝까지 몰아붙인다. 추천.
차별과 굴레에 대한 이야기는 나라와 시대를 건너 반복된다. 주인공은 거의 황정민/송강호 이미지.
잘 배운 쌍년 여자 캐릭터들, 무지한 어머니, 묵묵히 일하는 사무직 여성, 반전의 할머니, 순진하다 각성하는 젊은 외노자 여성, 어쩌면 정형화된 모습들이지만 여러 여성 인물들이 나온 건 마음에 들었다.
책 뒷 표지의 홍보문이 멋진 요약이며 시작이다. 읽으세요.
내용은 한 잔 술이 아니라 천만 잔 술, 아니면 만만 병 술이다.
읽으면서 (마시지도 않은) 술이 깨는 기분이 든다. 술과 정치, 징글 징글하다. 동 주제로 대한민국편이 나온다면 한두 권으로 갈음되지 않겠지.
서문에 나온대로 이 책에 실린 술제조법보다 역사적 인물들이 술마시고 추태 부리는 흑역사 쪽이 더 재미있다., 아니 안타깝다. 다들 술을 너무 마셨더라. 마시고 죽자, 하다가 진짜 죽었다.
(그나저나 이한 작가 책 좋아하면서 계속 읽는데 청아출판사는 교정교열 좀 신경 써주세요. 오탈자 너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