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샘깊은 오늘고전 8
김이은 지음, 정정엽 그림, 김시습 원작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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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용으로 쉽게 고쳐 쓴  김시습의 <이생규장전> 과 <만복사저포기> 다.  아들 녀석의 방학 숙제를 도울 목적으로 읽었지만, 아래 리뷰는 전적으로 어른 독자의 감상이다. 아이에겐 다른 말을 할 게 백프롭다. (아해야, 사랑이 아름답지 아니하더냐? 죽음도 이 세상의 규율도 다 뛰어 넘는단다. 또 김시습 이 양반이 이야기 속에서 뭘 말 하려는지 잘 생각해 보려므나. 시험에 많이 나온단다. 응?) 


장안에 이름난 엄친아 이생이 엄친딸 최씨댁 처녀와 연애를 한다. 버드나무가 늘어진 담장앞을 지나다 최씨 처녀의 독백시에 시로 답하고, 그 둘은 서로가 인연임을 알게 된다. 바로 그날 최씨 처녀는 이생을 자신의 방 옆 정자 아래로 불러 들이고, 그 아랫방, 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작은 방에서, 사 계절을 그린 그림과 노래한 시를 읊으며 사랑을 불태운다. 공간도 시간도 필요없다, 모든 것은 이 두 연인을 위해서만 존재했다.  

하지만 부부로 맺어졌어도 전쟁이 나자 이생은 혼자 몸을 숨기고 부인은 능멸을 당할 위기에서 잔인한 죽음을 맞는다. 그후 지대한 사랑의 힘으로 그녀는 이생을 다시 만나 은둔 생활을 한다.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어서 그녀는 떠나고, 이생도 시름시름 앓다가 떠난다, 는 이야기. 

이미 꽃이 흐드러지게 핀 담장 안의 최 씨 여인은 이승의 사람 같지 않은 분위기로 총명한 이생을 홀렸고, 자신이 고른 이와는 규범과 예절 따위는 따지지 않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만복사 저포기의 양씨와 연을 맺는 처녀도 마찬가지였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만복사 뜰에서 외로움에 몸을 떨던 양씨는 짝을 만나길 바라고, "왠지 이상한" 처녀와 만나게 된다.  

자식 없이 죽은 부인의 혼령과 몇해를 은둔하다 죽은 이생, 외로운 혼령과 만나 사흘의 연을 맺은 양씨, 모두들 어렵게 글공부를 하던 선비들이었다. 슬쩍 고시촌 총각들 생각도 났는데, 그들이 기다리는 건 역시나 아름답고 재산과 지조를 겸비한 여인네였다. 귀신이거나 아니거나는 상관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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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하지 않고 타임머신을 만드는 방법 - 15세 과학소년들의 시간 여행 분투기
아닐리르 세르칸 지음, 유인경 옮김 / 윌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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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 책을 지은 과학자 아닐리르 세르칸이 퇴학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에필로그에는 슬쩍 사실이었노라고 써놓았고, 그는 현재 도쿄대학 교수로 있다. 저자 소개의 글에도 15살때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타임머신 만들기에 도전했다고 되어있다. 저자의 인생과 이 책은 뗄수 없수 없고, 실제 그렇게 산 인물이 있는데 뭐라 트집을 잡기도 어렵지만, 책의 줄거리는 도대체 ....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다른 과학책들 처럼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들만 쉽게 풀어쓴 것이 아니라 "성장소설" 코드로 풀어내면서 인생에서 과학 보다, 과학을 향한 "청소년기의 열정"을 말하고 있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진정한 의미의 <타임머신>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부분은 감동 받을만 하다.  

하지만  

스위스의 기숙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열세 명의 여러 국적의 열 다섯 살 소년들이 터키계 독일의 한 가정집에 모여서 몇 달간 (그것도 우연히 아이디어가 떠오른 주제인) 타임머신을 연구하고, 우연히 여러 과학자들과 연구실이 협조를 한다? 아이들은 참을 수 없게 억압하는 학교에 반항하는 마음으로 같은 반 아이의 발에 불을 놓았다? 괴롭힘을 당한 아이는 자신이 변하지 않아서 외톨이가 되었다고 문제의 본질을 깨닫는다? 주인공 켄의 어머니는 자기집에 몰려든 열 셋의 남자아이들을 거둬 먹이고, 자신의 세 아들도 자상하게 키우고, 아, 참, 물리학자로서 활동하면서 요리를 잘 한다? 콜럼비아의 빈민가의 소년은 집안을 일으키키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타임머신을 타는 소년은 멋지게 성조기가 그려진 헬멧을 쓴다? 

이러니 책의 중반부 쯤부터 나오는  진짜 과학이야기,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는 부분에 가기전에 내 입에서는 "허, 참,"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자인 교수님은 아직 마흔을 채우지 않은 소위 천재형으로 자유로운 영혼과 빛나는 두뇌, 그리고 뜨거운 열정을 가졌다. 그것만은 알겠다. 하지만 성장소설은 교수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즐기지 않는 큰 아이가 이 책은 열심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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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하지 않고 타임머신을 만드는 방법 - 15세 과학소년들의 시간 여행 분투기
아닐리르 세르칸 지음, 유인경 옮김 / 윌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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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곳에서 여러 가지 공부를 해왔지만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열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 7년간 대체 우린 무엇을 배운걸까?
-36쪽

어른들은 유감스럽게도 소년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년들은 분명히 시간 여행에 성공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자신들이 습득한 지식을 총동원하고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온갖 노력을 다해 자신들의 손으로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냈습니다. 소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타임머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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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외에는>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죽음 이외에는 머독 미스터리 1
모린 제닝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피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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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빅토리아 시대의 캐나다. 형사 머독은 가톨릭 교도의 아일랜드 출신이라 이래저래 서민층에 속한다. 그가 추운 겨울, 옷 하나 걸치지 않고 얼어 죽은 열 여섯 소녀의 시체를 만난다. 

작가는 곱고, 정숙하며, 우아하게 보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중산층 가정의 저편, 그늘과 이층 다락방과 마굿간과 부엌과 광에서 실제 있었던 서민들의 삶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 불쌍한 소녀의 죽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남겨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그녀의 살인 사건을 파면 팔 수록, 알면 알수록, 깨끗한 사람은 없고 거짓 없는 사람도 없다.   

사립 탐정이던 홈즈와는 달리, 머독은 경찰 조직 안에서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해야하는 공무원 신분인데다 의사 친구도  없다. 그에게 조언을 해주는 이들은 가난한 하숙집 주인 부부이고,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약혼자가 유일한 가족이었다. 머독은 혼자 뛰어 다니면서 수사를 벌이면서 열심히 일하지만, 그는 홈즈같이 혼자 사건을 풀고, 짠 하면서 자신의 영특함을 뽐내기 보다는 독자 옆에서 함께 뛰면서 독자와 더불어 비열한 범인을 벌한다. 그는 결코 천재형 수사관이 아니고, 때에 따라 울컥하기도 하는 (상처도 입고, 실수도 하면서)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인간이다. 어느정도 투박한 그의 수사 스타일이나 이 소설의 구성이 그래서 마음에 든다.   

시골서 상경해서 화려한 중산층 가정의 하녀로 일하던 불쌍한 소녀는 여러 인간들에게 이용만 당했다. 그녀가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부당한 처지를 말할 방법이 있었을까, 죽음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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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읽었어요?"
"아니, 나는 교도소에 간 적이 없고, 어딘가에 오래 은신할 일도 없었어. 그런 기회라도 갖지 않는 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들 하더군." (50) 
 

"다른 세계라고 할까 -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몇 광년이나 떨어진 어느 소행성에 대한 아주 상세한 보고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거기에 묘사된 정경 하나하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건 가능해요. 그것도 꽤 선명하고 극명하게. 하지만 이곳에 있는 정경과 그 정경이 잘 이어지지 않아요. 물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한참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똑 같은 곳을 몇 번이나 읽게돼요. " (403)


 

"디네센은 덴마크 여성인데, 1937년에 이 책을 썼어요. 스웨덴 귀족과 결혼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아프리카로 건너갔고, 거기서 농장을 경영하게 됐죠. 나중에 이혼하고 혼자서 그 농장을 꾸려갔어요. 그때의 경험을 쓴 책이에요." (126)

 

  

 

  

 



덴고는 물을 탄 위싀 잔을 손에 들고 그런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맥베스>에 나오는 세 마녀를 떠올렸다. "아름다움은 더럽다. 더러움은 아름답다" 라는 주문을 외우며 맥베스에게 사악한 야심을 불어넣는 마녀들. 물론 덴고가 세 명의 간호사를 사악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151)

 


 

 

 

 

열등감과 우월감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정신은 거칠게 뒤흔들렸다. 나는 말하자면 소냐를 만나지 못한 라스콜니코프같은 인간이다, 라고 곧잘 생각하곤 했다. (241)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작가와 마찬가지다. 한 번 위대한 뭔가를 달성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리라 (299)

 

 

 

 

 

 

 

우시카와는 벌레가 된 '잠자'처럼, 퉁퉁하고 비틀어진 몸을 방바닥에서 재주껏 움직여 근육을 최대한 풀었다.

 

 

 
 

 

 

 



"세익스피어가 썼듯이," 다마루는 그 일그러진 무거운 머리를 향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 오늘 죽어버리면 내일은 죽지 않아도 돼. 서로 되도록 좋은 면을 보도록 하자고."  (623)

 

 

 

 

 

그리고, 물론 <공기 번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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