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랫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어른을 위한 동화 12
황석영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 슬프고 아픈 이야기들. 하지만 아이들 눈으로 보기엔 그저 덤덤한 하루 하루.  

육이오 동란 후, 아이들은 어른들 눈치를 보며, 가난한 날들을 산다. 여름이면 피난길 가에서 썩어나가는 시체들 냄새에 찡그리면서도,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동산을 뛰논다. 그 아이들 눈에 상이군인들, 식구를 잃고 넋을 놓아버린 사람들, 부모를 잃고 서로 기대 사는 어린 남매들이 들어온다. 해석하지 않고 그들의 힘겨운 삶을 그대로 풀어놓기에 '몽실언니' 만큼이나 애절하고 처절하지만 매끄러운 문장이라 읽기엔 더 수월하다. 

하지만 내 아이는 이렇게 힘든 세월이 불과 육십 년 전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눈치다. 어떻게 이렇게 불쌍하게 살 수가 있는거냐고, 묻는다. 지금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힘든 삶들이 널렸는데. 온실 속 화초라 그런지 저 녀석은 너무 속이 편한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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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노트 에버그린북스 17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아무도 우리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단지 우리가 어리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결정과 열정을 다 무시해 버린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얼까, 집을 나가서 우리 힘으로 살아 내는 것, 아니면 그냥 죽어버리는 것? ...너무 다른 두 소년 다니엘과 자크는 '데미안' 의 듀오 만큼이나 소년에서 청년으로의 힘겨운 변신을 꾀한다. 하지만 이 빠리지안 소년들, 그들의 불행한 가정사, 다니엘 어머니의 결단을 그려내는 묘사는 더 생생하고, 우아하다. 이제 나는 소년들의 입장이 아닌 그 어머니의 입장에서 읽는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예전에 나도 일기장에 이들 처럼 터져나오는 순수와 열정의 단어들을 적어내려 가기도 했었는데!  

그렇게도 젊은 너, 오오, 사랑하는 벗이여, 그렇게도 젊은 너에게 인생을 저주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잘못된 생각이다. 뭐라고? 너의 넋은 지상에 얽매여 있다고? 공부하라! 희망을 가지라! 사랑하라! 독서하라! (84)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을 선언할 것! (106)

두발을 현실에서 십오 센티미터 쯤 떨어진 곳에다 놓고 이 세상의 모든 거짓과 더러움을 나 혼자만 꿰뚫어 본다는 착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았더랬다. 마르세이유와 바닷가 벼랑을 걷는 두 소년을 따라가다 보면, 젊은 날의 추억 말고도 지금 내가 살아내는 오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상과 현실을 책 한 쪽에서 힘있게 버무려 보여주는 건, 역시나 대작가의 힘이겠지. 

다시 한 번, 격동의 사춘기가 이미 지나갔음에 감사하고, 내 아들이 지낼 그 끔찍한 시간에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래서인지 제일 감동적인 장면은 다니엘과 그 어머니의 재회였다. 

 다니엘은 빵을 다시 내려 놓았다. 눈을 여전히 내리깐 채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학교에선 어머니께 뭐라고 했어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어!"
다니엘의 이마가 마침내 펴졌다. 그는 눈을 들어 어머니의 시선과 마주쳤다. 확실히 신뢰하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묻고 있었으며 자신의 신뢰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시선이었다. (145)

적잖이 놀라운 반전이 있는 마지막 쪽을 읽으면서, 역시나 시리즈물인 <티보가의 사람들>을 마저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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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무렵
정양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품절


나를 빼먹은 잔치에 삐쳐서
삐친 고집으로 숲속에서
앙심먹고 타죽었다고들 하는데
돌아가며 벼슬자리나 나눠 먹는
그런 잔치에 섞이고 싶지 않았을 뿐
내 겪은 당당한 세월을 무엇으로도
맞바꾸고 싶지 않았을뿐
결코 삐치거나 앙심먹은 일은 없다
비록 불길에 휩싸여 숯이 되어 식어버렸지만
이 세상에 맞바꿀 수 없는 것들을
손가락질로 숨 막히는 불길로
몸부림으로도 다 태우지 못한 것들을
한 그릇 식은 밥과 해마다 맞바꾸잔 말이냐
맞바꾸다 맞바꾸다 식어버린 세상일들이
식은 밥보다 더 꺽정스럽다-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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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17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품절


그녀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자신의 변덕 때문이며, 단지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아를 닮고 싶어서였다. 때문에 이미 오래 전에 매혹되어 눈여겨보았던 그 절벽이 그림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시적 풍취도 없으며 가파르지도 않았다면 아마 자살 행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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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u 2010-05-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필리아 땜에 갑자기 까라마조프가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유부만두 2010-05-09 14:06   좋아요 0 | URL
흠. 근데 전 진도가 안나가고 있어요. 카라마조프네 아부지가 아직 정정하게 살아계시답니다. ^^;;
 
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품절


"마리, 한번 쓴 글은 도끼로도 못 깎아낸단다. 그래서 가치가 있는 거지. 곧 지울 수 있는 연필로 쓴 것을 남의 눈에 띄게 하다니 무례천만이야." -99쪽

"1989년 차우셰스쿠 정권이 전복된 후, 노동당 간부들은 여기서 쫓겨나지 않았나요?"

"전혀. 지금도 그네들은 당신이 지금부터 방문하실 자하레스쿠와 마찬가지로 옛날과 다름없이 특권을 향유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죠. 그뿐인가, 옛날의 국유재산까지도 그 북새통을 틈타 얼렁뚱땅 제 것으로 삼고는 시장경제의 파도를 잘 타서 단물을 빨고 있답니다. 단물 빠는 것에 익숙한 자들은 다른 단물에도 민감하죠. 게다가 남의 옆구리 치고 등 밟고 올라서는 것쯤은 장기 중의 장기니까."
-130-131쪽

"당신이 가이드가 되어주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 [루마니아]에 대한 나의 피상적인 견해를 일일이 정정해 주시니 말이에요. 이 이상의 안내인이 없을 듯해요. 어쩜 난 이리도 철이 없을까요."

"그만큼 당신은 행복했다는 말이죠."

"확실히, 사회의 변동에 제 운명이 놀아나는 일은 없었어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른다면 행복은 저처럼 사물에 통찰이 얕은, 남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을 만들기 쉬운가봐요."
-145쪽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사람들이 동유럽이라는 말을 그리도 싫어하는 것은 그 말에 후진국의 가난한 패배자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에 대한 일방적인 동경과 열등감, 표리일체로 '동구'로서의 자기 멸시와 혐오감은 메이지유신 이후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지향한 일본인의 정신구조와도 통한다. 이 중부유럽 가톨릭 여러 나라의 '동'에 대한 혐오감이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것이, 같은 기독교면서 11세기 이후 분파를 달리한 이슬람 지배하의 동방정교에 대한 근친증오의 적의가 아닐까.-222쪽

"이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맞아, 5년 동안 난 가구 하나도 더 사지 못했어. 아니, 요만한 식기 하나 컵 하나도 살 수가 없었어. 가게에서 좋은 게 눈에 띄어 하나 사보자 싶어도, 깨진 다음 맛볼 슬픔이 늘어날 뿐이지 하는 마음이 금방 들어, 사고 싶은 마음이 흩어져버려. 그보다 내일이라도 혹시나 우리 가족이 몰살당하면 어쩌나 하고......"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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