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깼다. 어제 과음을 해서 (딸꾹) 목이 말랐는가. 어두운 방과 부엌 벽을 더듬어 걸어나와서 불을 켰다.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았지만 물은 차가웠다. 냉장고는 조용했다. 잔,잔,잔,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책,책,책,책 소리도. (두 의성어는 황정은 소설 속 냉장고와 시계 소리)
내가 내는 소음에 막내가 깼기에 다시 자라고, 들여 보내고 몰래 책을 읽었다. 사사삭 책장을 넘겼다. '야행'은 제목과 헤매는 한씨와 고씨, 자녀들인 곰과 밈의 낯선 호칭에서, 그리고 내 독서의 시간 때문에 귀신 이야기로 읽혔다. 아닌거 같지만 그럴 수도 있지. 이어지는 두번 째 단편은 진짜 귀신, 혹은 원령 이야기. '데니 드비토'. 배우 이름을 찾다가 문득 자신이 죽은 존재라는 걸 떠올리는 원령, 유라.
황정은 소설의 인물은 읽어가면서 계속 놀라게 된다. 호칭이 낯설어서 이들이 사람인지 귀신 혹은 동물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노인인지 어린인지 읽어가면서 조정하려 애쓰게 된다. 복자는 또 어떻고. (누구게요? 직접 찾아 읽어보세요우) 그렇게 애쓰는 독서를 왜 하냐고, 갸웃 거리며 틀에 박힌 호칭을 후우, 불어버리는 황정은 작가가 저쪽에 앉아있다. 아니, 그렇지도 않지. 내가 상상하고 있지. 작가님 저쪽, 나 독자는 여기. 그런데 그런 것도 다 소용이 없는 기분이 드는 책읽기와 인물 만나기. 그리고 그들의 사건과 사연을 따라가기. 새벽에 혼자 깨서 물만 마시고. 황정은 소설의 묘한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지 못하고 '붙어있'는, 아 이 이야기는 얼마전 라디오에서 들은 '고스트 스토리'의 지박령 생각도 났다. (https://youtu.be/PAiCxkdpeQA)
이승을 떠났지만 연인을 그리워하고 함께 하고 싶어하는 유라. 남은 날을 묵묵히 살아내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늙어가는 유도. 요즘 계속 이런 쪽 이야기를 많이 읽고 있다. 마음과 몸이 허해서 그런가. 뜨끈한 걸 먹어야겠네.
이 글은 다시 잠자리에 들어서 몇 시간 잔 다음 '살아나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