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나빠집니다. 왜? 나쁜 사람들 이야기니까.
그럼 어떻게 나쁜 사람들이냐,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사기를 치니까요. 아, 잠깐만요. 그런데 따져보니 사실 그 근저에 사정이 없는건 아니에요. 그래서 조금은,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미친 정도로 저지르는 걸 내가 응원한다는 건 절대 아닌데, 이해가 가긴 합니다. 나쁜 행동이 용서가 되는 건 아니지요. 절대로요.
로알드 달의 '챨리와 쵸콜릿 공장'을 좋아합니다. 책도 영화도, 심지어 게임 씨디도 샀었는데 어려워서 그만 뒀어요. 캐릭터와 줄거리를 사랑하지만 한 단계씩 깨야하는 게임은 영 제 분야가 아니에요. 전 그냥 소극적으로 저자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면서 '엄머머'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그래요. 로알드 달은 그런데 살짝 잔인하달까, 쎈 부분을 쓰는 작가이긴 해요. 어린이 소설 '거대 복숭아' 나 '마틸다'를 보면 나쁜 어른들 못잖게 독한 아이들이 나오고요. 시원한데 은근 다시 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잖아요.
그런데 바로 그 로알드 달의 '십대를 위한' 단편집이라기에 얇고 표지도 예뻐서 골랐습니다. '십대를 위한' 이란 카테고리가 원래 있는건지 모르겠어요. 아마 아닐걸요? 로알드 달의 단편 중, 폭력 수위가 좀 낮은 걸 묶었을까요? 그의 단편집 '맛'은 꽤 쎄고 무섭기도 한데 그 책 보다는 낫더라고요. 아, 죄송해요. 여기도 사람이 죽습니다만...
왜 내 기분이, 독자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을까요. 사기 치고 도둑질 하고 사람 죽는 일이, 내가 읽는 소설에서 벌어지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요. 그땐 대신 슬프고 화나고, 때론 시원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찝찝 찜찜 꿉꿉해졌어요.
세 단편에는 각자 화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독자를 끌어들이는데 '우산 쓴 노인'에선 열살 소녀가 순수하고 조금은 비판적인 눈으로 엄마와 노인을 따라갑니다. '아프리카 이야기'에선 외딴 곳에서 사는 노인의 기이한 이야기를 듣고 젊은 비행사가 글로 남긴 것을 화자가 받아서 (자신의 목소리 없이) 독자에게 보여주고요. '자동 작문 기계'는 천하의 사기를 치는 어딘지 삐뚤어진 천재의 다음 희생자가 될 화자가 나와요. 그러니까 화자들은 선량한 상태로 몇발짝 뒤로 물러나있고 독자만 그 범죄에 쑤욱 다가가게됩니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에이 뭐야. 어째 이상하더니만 진짜 나쁜 넘이네. 싶은데 그 노인과 또 다른 노인과 꾸부정한 천재의 말에 어느정도 수긍이 가고, 이야기 중간에 이 사람이 갑자기 험한 짓을 할까봐 두근댔는데 아 그건 아니네, 하면서 조금 마음을 놓으려고 할 때, 마지막 페이지에서 '짜짠' 하더라구요. 나빴어.
바보같이 왜 순순히 따라갔냐고요? ... 아... 뭐... 아시잖아요.
로알드 달, 재밌다니까요. 당했죠 머. 나쁜 이야기를 이렇게 확 덮어씌워놓고, 자긴 쏙 빠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