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서 어린 시절 느꼈던 고독과 애달픔의 묘사는 비몽사몽 간에 시간과 공간을 더듬는 작가의 아름답지만 길고 어딘지 꼬이고 엉킨 문장 만큼 흐릿했다. 여러 방들 중 하나, 어린시절 여름 휴가를 보낸 콩브레의 그 방. 옆집 사는 스완씨는 그 아버지가 프루스트의 외할아버지의 친구셨다. 스완씨네는 증권중개인 집안이니 귀족이나 사회 셀럽은 아니라고 여긴 프루스트네 집안 사람들은 편하게 대하고 있었는데, 사실 파리에서 꽤 유명한 모임에 드나드는 사람이고 부유하다. 19세기 후반이지만 신분제(책에는 카스트라고 나옴)는 공고해서 브르주와 계층인 프루스트네 고모할머니는 귀족과 친분을 맺는게 억지스러운 굴욕이라고 여겨 일부러 스완씨를 허물없이, 혹은 무시하는지도 모른다. 윗계급을 대하며 이리저리 자기변명을 만드는 외할머니와 고모할머니. 특히 외할머니의 자매인 이모할머니 두분의 이리저리 돌려 말하기는 칭찬인지 흉인지의 경계를 타며 계산된 예의, 혹은 자만심의 눈짓 몸짓이 눈에 보이는듯 재미있다. (네, 사람 은근 돌려깎는 묘사는 재미있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여름밤을 즐기고, 손님 (대개의 경우 스완씨)이 오는 경우에는 더더욱 외롭게 혼자서 저녁 8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아이 (학교에 다닌다니 열살 즈음일 것 같은데)가 이리 엄마에게 집착하다니 걱정스러웠다. 잠자기 싫고 자기도 어른들 옆에서 놀고 싶었겠지만, 규범이 무섭고, 아버지도 무섭다. 그저 엄마의 부드러운 뺨과 키스와 포옹 만을 바라는데, 그 당시는 아이이었겠지만 애타게 엄마, 엄마, 부르는 화자는 어른이 분위기를 풍긴다. 막무가내로 찾아와 애인 집 앞에서 서성대는 남자의 모습과 남편 없는 틈에 귀부인을 겁탈하는 악당의 전설을 늘어 놓질않나, 스완씨의 애정사와 빗대어서 엄마,를 부르니 이건 애가 아니라 ....젊은 엄마 옆에 엉성한 젊은이가 서 있다. 징그럽습니다. 꽤나.
하녀를 통해 쪽지를 보내보는 아이 (탈을 쓴 젊은이)는 기다리다 못해 어두운 복도로 나서고 엄마는 꾸중하는듯한 표정으로 (그러나 군대보내는 아들은 참고 부드럽게 대하듯! 내 눈엔 군대만 보임 ㅜ ㅜ) 아이를 달래보는데, 짜짠, 아버지가 나타난다. 오이디푸스! 밑줄 쫙, 시험문제 내기 딱 좋은 부분이네. 이 클라이막스랄까 절정 부분도 싱겁게 끝나는데, 왠걸, 아이는 엄마랑 함께 있게 되었지만 지 감정에 겨워 운다. 그리고 엄마가 읽어주는 (생일 선물을 미리 풀러서 읽어주는) 책. 상드의 책 Francois le Champi. 실은 외할머니는 상드의 Indiana를 골랐다가 프루스트 아버지가 대노해서 (당연히 그 책은 넘나 야하다는) 바꾼 책. 하지만 이 책도 엄마는 자체 검열을 통해 애정신은 건너뛰고 읽는다. 엄마가 하녀에게 하는 말투 (번역서)는 완전히 사극에서 상궁을 대하는 대비마마라 소리내 읽어보고 웃는다, 나란 독자.
세월은 흘러 콩브레의 기억은 그 침실과 힘들게 혼자 올라가던 어두운 복도만 남아있었는데, 어느 추운 날, 홍차와 마들렌을 마시자, 저 아래에서 그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그 방, 그 복도, 그리고 마들렌을 주시던 이모할머니의 방이 있던 건물과 정원, 광장, 콩브레 시 전체가 환하게 형체를 갖고 기억 속에 안개를 벗고 어둠을 밝히면서.
아아, 나는 프루스트 첫 챕터를 읽어냈단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