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주 많이 읽은 큰 언니가 책을 소개해 준다. 이 언니는 나즉하고 차분하게 쓰는데 언니의 문장 부호에 어리는 힘이 남다르다.


쿨하게 언니는 너무 힘들고 지루하고, 때론 혼자 있고 싶었고, 분노가 치밀었는데, 책을 읽는 방법도 있더라고 했다. 상황 별로 서너 권씩 추천해 줬는데 엄청 어려운 (어려워 보이는) 책들도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해준다. 논어, 물리학 막 이런거. 아니 그런데 언니는 정말 연애 끝나고 사표 내고 싶고, 사람들이 내 등에 칼 꽂는 거 같은 그럴 때 정말로 책 생각이 났어요? 소크라테스의 재판도 언니에겐 마치 학급회의 같이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특별한 올해엔 (마지막 챕터, 폭설로 고립되 있을 때라는데 ...하아...우리 계속 그런거 같고요) 이런 책들이 과연 독자에게 위안이나 희망을 안겨줄지 확언하지는 않지만, 우리 언니는 흔들리지 않지. 다만 책 속의 구절을 추론해 보여준다. 가령 <제5도살장>의 유명 구절은 ...


독일어에는 'So geht es.'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 용법이 어찌나 다채로운지 거의 아무런 뜻이 없다. 즉자적으로건 반어적으로건, 잘되건 못되건, 기쁘건 슬프건, 흥하건 망하건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삼라만상의 질서를 응축한 무의미를 나타낸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순전히 나의 억측이지만, 작가는 독일어 'So geht es.'를 영어로 직역해 'So it goes'라고 쓴 건 아닐까. (어차피 작가 사후라 확인할 길은 없다. So it goes.) (93) 


또한 공군조종사와 CIA 정보원등으로 일했으며 심리학 박사학위도 가진 앨리스 브래들리 셀던이 남자 가명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로 낸 SF소설을 소개할 땐 아, 세상엔 멋진 작가들과 멋진 책들이 이렇게나 많았단 말이에요? 라고 언니에게 매달려 묻고 싶었다. 언니, 내가 너무 몰라서 미안해요.  















제가 요즘 속에 화가 쌓여서 부르르 끓고요, 어깨랑 등이 결리는데 그런데 좋은 책은 뭐 없을까요. 밤 11시 40분 아이스크림 대신 먹기, 아니 읽기 좋은 책은요? 실례 아니니까 더 꺼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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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14 2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뭐 그런 거지.” 저도 요즘 엄청 많이 중얼거리는 말입니다 ㅋㅋ 저도 궁금하네요. 여러분, 밤 11시 40분 아이스크림 대신 먹기 좋은 책 더 꺼내주세요!

유부만두 2020-12-15 07:28   좋아요 2 | URL
공복이 심하면 읽는 책 속 구절마다 음식만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 참았어요. 아침에 더부룩 하긴 싫으니까요. (정말 대단한 만두 아닙니까? 칭찬해주세요)

하나 2020-12-15 12:05   좋아요 2 | URL
만두님 진짜 으른이시네요! 칭찬드립니당! 대단한 만두라고 하시니까 넘 귀여워요 ㅋㅋㅋ 🙊만두 먹고 싶어요!

유부만두 2020-12-15 16:35   좋아요 1 | URL
제가 왕만두걸랑요? 대단하죠, 네? ^^

scott 2020-12-14 22: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틸리 월든 만화 ‘스피닝.‘ 밤 11시 40분 아이스크림 대신 먹기 좋은책 ㅋㅋ ‘1장, 왈츠 점프’로 시작해 스크래치 스핀, 플립 점프, 악셀 등 스케이트 전문용어가 장 제목으로 등장 맨 마지막 10장은 트위즐로 끝,눈으로한쪽 발을 이용해 최소한 한 번 이상을 순방향 또는 역방향으로 빠르게 도는 아이스 댄스의 기술을! 언제든 지금까지 걸어온 것과 반대 방향으로 새롭게 회전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래픽 노블 추천 ^.~

유부만두 2020-12-15 07:29   좋아요 2 | URL
아이스크림 대신 아이스 스포츠!!! 이런 발상의 전환 멋지네요!
얼릉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넣겠습니다. 그나저나 김연아의 그 멋진 무대 영상이라도 봐야겠는데요?

psyche 2020-12-15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밤 11시 40분에는 주무셔야.... ㅎㅎ
나는 진짜 늙었는지 11시 넘기기가 어려워졌어. 대신 새벽에 일어나고... 유명한 잠순이었는데 이런 날이 오네 ㅜㅜ

scott 2020-12-15 14:06   좋아요 2 | URL
미인은 잠꾸러기, 프쉬케님 ^.~

유부만두 2020-12-15 16:36   좋아요 2 | URL
저도 11시 잘 못넘기는데 요즘은 막둥이가 ‘시험‘ 공부 씩이나 한다고! 얼마나 유세를 떠는지 몰라요. 옆에서 ‘아우, 장하다, 중학생님!‘ 하고 응원과 간식 봉양을 해야합니다. 막둥이라 그런가 정말 눈꼴이 시어서 ..... (그런데 이쁨)
 

차분하게 차근차근, 목욕탕이지만 가릴 것은 가리고 예의를 지키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다 읽은 후에는 개운한 마음도 들고 어쩐지 등을 밀고 싶어진다. (오이 맛사지 까지는 아님)


일전에 읽었던 과하게 질척 우울한 엣세이와 다르게, 국어 선생님 저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목욕탕 역사를 들려준다. 한참을 읽을 때 까지 저자의 남편 존재를 지워버리고 있었다. 저자는 퇴근길에 지친 몸으로 마트에 들러 찬거리를 사서 급하게 저녁상을 준비해서 세 아이와 함께 먹는다, 그리고 그후 쓰러지듯 잠드는 일상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 그는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나 주위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대신 혼자 목욕탕에서 뜨끈한 물에서 뭉친 몸과 엉어리를 푸는 저자의 등이 쓸쓸하지만 공감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엄마나 할머니와 함께 찾았던 공중 목욕탕, 여행지의 온천장들, 시댁 어른들과의 강요된 목욕 경험, 세신 경험, 나이들어가는 내 몸을 확인하고 내 아이를 씻기던 목욕의 시간들. RG RG. 


재작년 운동을 배우느라 스포츠 센터에 다니면서 사우나에 재미를 붙였더랬다. 나도 저자처럼 작은 지퍼백에 샘플만 몇 개 넣어 다녔는데 이내 지정 라커도 만들어서 목욕가방도 비치해 두었다. 여행지에서 모아둔 작고 호화로운 어매너티 아이템들은 물론 여러 비누와 로션을 사용했다. 열심히 운동한 후 땀을 씻어내고 사우나실에 잠시 앉아있다가 집에 돌아오는 일정은 나만의 호사였다. 좋은 시절이었지. 


올해 초 스포츠센터 환불을 받고, 운동화와 목욕가방을 찾아온 후엔 집에서 샤워만 하는데 씻는 과정이 이젠 아쉬움만 더할 뿐이다. 뜨거운 물 아래서 비누를 목욕수건에 문질러 거품을 내는 순간은 그래도 위안이 된다. 애정하는 은방울꽃향 비누 말고 하얀색 차* 사우나 비누로도 충분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목욕탕 관련 책들도 내가 재밌게 읽은 것들이라 반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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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2-12 0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난 목욕탕 싫어하는데. 뜨거운 거 싫어해서 사우나도 싫어하고
하지만 한국에서 쭉 살았다면 나이 들어서 사우나나 찜질방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시댁어른과의 목욕 경험?. 내가 시어머니면 며느리랑 목욕하기 싫을 거 같은데. 솔직히 딸들하고도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유부만두 2020-12-12 09:42   좋아요 2 | URL
시이모님께서 온천 목욕장을 하셨어요. 그래서 하아....
시어머님, 시이모님 세 분, 시외할머님, 시누이, 시조카 어린이 .... 하아.... 다 함께 올 투게더 그해 겨울 하아....

psyche 2020-12-12 10:05   좋아요 1 | URL
헐 시어머니 뿐아니라 시이모, 시외할머니에 시누이까지!!!!

라로 2020-12-13 18:48   좋아요 0 | URL
저도요!!! 저도 뜨거운 거 싫어해서 욕탕 안에 들어가서 몸 불리지 않는다고 많이 혼났는데 이제는 여기 살아서 그런가 뜨겁지는 않더라도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 푹 불린 후 때 밀고 싶어요!!!😅😢

유부만두 2020-12-14 14:09   좋아요 0 | URL
라로님댁 자쿠지 하나 만드세요~

라로 2020-12-17 06:24   좋아요 1 | URL
저희집에 자쿠지 있어요.ㅎㅎㅎㅎ 그런데 거기서 때를 불릴 수는 없잖아요??ㅋ

유부만두 2020-12-17 09:43   좋아요 0 | URL
그쵸. ㅋㅋㅋ 자쿠지랑 욕탕은 비슷하지만 다른것!

scott 2020-12-12 1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렸을때 트라우마가 있어서 기피했는데 ㅋㅋ
운동하고 다치고 교통사고 휴우증으로 물리치료받을때 온천욕을 권해서 효과받어요.
게르마늄-유황 쵝오!

유부만두 2020-12-13 07:43   좋아요 1 | URL
어린 나이엔 목욕탕을 좋아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아요.
scott님은 트라우마 까지 갖고 계셨군요. 이런...

다치고 뭉친 몸엔 온천/사우나 가 좋다고 들었어요. 저도 어깨가 아파서 탕에 자주 들어가려 하는데 집에선 아무래도 힘들고 귀찮아요. 온천 분위기를 위해서 온천향 비누까지 사둔 건 자랑 혹은 고백입니다. ^^

나중에 혹시나 돈이 많아지면 (?????? ) 건식 사우나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만 이젠 사우나에 가는 것도 꿈이 되어버렸어요.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미뤄두었던 옷장 정리를 하면서 틀어두었더니 어쩐지 생산성있는 금요일을 지낸 기분이다. (여름옷을 12월에 정리하는 생산성)


돈을 쓰는 걸 변호하는 듯 보이는 제목이다. 슬픔이 있지만 기쁨이 먼저 보인다. 돈지랄이라는 뒷말을, 어떤 경우엔 면전에서 그 흉을 듣기도 할만큼 새롭고 편리하고 재미있고 예쁜 물건을 돈을 주고 사는 걸 즐기고 잘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 처럼. 돈을 쓰면 스투피트 소릴 하는 유행이 바로 얼마전이었는데.


그런데 의외의 내용이 이어진다. 자기 집도 자기 차도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니 쓸만하니 쓴다고요? 우아하고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 홍보일까.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는 자랑만은 아니다. 궁상과 불편을 끼고 살 필요가 있을까. 좋고 필요하게 생활을 개선하는 게 왜 나쁜가. 저자의 씀씀이는 계획과 계산 후에 이루어진다. 적금과 가계부. 저자는 가계부를 매일 매일 여행중에도 꼼꼼하게 적는 사람이다. 저자는 둘째 딸의 설움과 구박에서 원하는 것이 생기면 챙기고 갖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 감정에 휘둘려서 헛된 소비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배웠노라고 고백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텀블벅 후원은 소비자 보호법에 해당되지 않으니 예쁜 sns 사진이나 감성 멘트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계속 뜨끔 뜨끔. 


오늘의 나는 이미 구버전 상태이니 듣고 배우고 살아야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서. 계획적으로 생산성 있게 살아야 겠다. 그래도 올해 안에 여름옷 정리 다했음. (나를 칭찬하고 나에게 선물을 준다고 무슨 쇼핑 따위는 하지 않았음. 계획이 먼저야, 나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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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2-05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를테면.... 기쁨 쪽에 무게를 둘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인데 이 책에 관심이 생기네요.
저희집 옷장에는 사계절이 공존하고 있어서, 필요한 옷 찾는데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ㅎㅎㅎㅎ

프로필 사진 바꾸셨네요. 너무 이뽀요!!!! 하트뿅뿅!!

유부만두 2020-12-06 08:00   좋아요 0 | URL
하트 받고 다쁠로 또 드립니다. 단발머리님^^

어제 옷장 정리를 하면서 못/안 입는 옛날 옷들을 많이 내놨어요. 5년이상 안 입고 그냥 걸어둔 게 많았어요. 이제 옷장은 좀 헐렁해졌어요.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다른 내용도 담고 있어서 읽길/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야무진 작가의 야무진 이야길 듣고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하나 2020-12-05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신예희 작가님 책 재밌게 읽었는데, “누구도 내 짜장면 대신 비벼주지 않는다.” 내 행복은 내가 찾아야 해, 이런 태도가 좋았어요! 주말 즐거운 독서와 함께하고 계신가요?

유부만두 2020-12-06 08:02   좋아요 1 | URL
하하하 그렇군요. 내 짜장면은 내가 비벼야죠. (그런데 전 애들 걸 비벼주기도 하는군요;;;;) 주말은 애트우드 시집과 십팔사략을 야금야금 읽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편안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요. (님 서재 구경가면 포스팅 뿐 아니라 댓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니 제 주말의 즐거움 일부를 주시고 계시고요)

scott 2020-12-05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확진자 폭증이라서 집콕 생활 거의 반년, 출근복은 이제 실내복으로 해서 옷장속 옷들 아직 까지 가을옷들이 ㅋㅋ

유부만두 2020-12-06 08:05   좋아요 2 | URL
실은 전 옷장 뿐 아니라 소파랑 침대 위에도 옷들이 너부러져 있어서 그 정리를 해야 했어요;;;; 전 scott님의 편안한 실내복이 만드는 책 이야기 잘 읽고 있습니다. ^^

psyche 2020-12-07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 머리님 이야기 듣고 프로필 사진 보러 컴으로 들어왔다는.... 프로필 진짜 이쁘다. 유부만두랑 비슷한 느낌!

유부만두 2020-12-07 06:33   좋아요 1 | URL
저랑 비슷하다고요?!!!!
아, 그런걸로 합시다! 저기 제 응접실이고요. 제가 요즘 독서를 하는 장소랍니다.
ㅎㅎㅎㅎㅎ

언니의 플필 사진도 따뜻하고 좋아요! 서점 같아 보이기도 하고요. 언니 새로 가게 내신거 맞죠?!

psyche 2020-12-07 06:45   좋아요 1 | URL
클래식하면서 세련된 느낌!

내 프로필은 크리스마스 빌리지 중에 한 개야. 어린이 책 서점. 몇년만에 꺼냈네.

유부만두 2020-12-07 06:52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 빌리지! 역시 연말이 왔군요. 언니 카톡 사진 보니까 땡스기빙 때 아이들 다 모인거 같던데 강아지 새로 입양하셨나 궁금했어요.

psyche 2020-12-07 07:00   좋아요 1 | URL
제이양 강아지야. 다쳤다고 주인이 동물병원에 버린 아이 입양했어.
진짜 착하고 순한데 좀 멍청하다는 ㅎㅎㅎ
이번에 왔다가 집에 두고갔어. 기말고사랑 준비하느라

유부만두 2020-12-07 07:04   좋아요 0 | URL
언니! 루이가 유별나게 총명한 거에요. 루이에 모든 강아지들을 비교하신다면 안돼욧.
그 강아지 그런데 정말 사랑스러워요. 루이랑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강아지 버린 그 ㅅㄲ 나쁜넘 벌 받아라!!!! 주문 외울랍니다.

psyche 2020-12-07 07:12   좋아요 1 | URL
루이랑 비교 아니고 평균보다 좀 바보인 듯. 근데 너무 귀여워.ㅎㅎㅎ

남자어른을 너무 무서워 하는 걸로 봐서 전 주인이 학대도 한 게 아닐까 생각해. 나쁜 놈!! 처음에는 쓰다듬어 주려고 손 만 가까이 해도 무서워서 도망가고 그랬어.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아직도 남편을 무서워해서 개 좋아하는 남편이 너무 섭섭해 하지.
 

이제 상 권을 완독했다.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밀리고 양키들은 아틀란타에 근접했다. 샬랄랄라 예쁜 옷과 남자들의 찬사만을 바라고 어려운 어휘나 정치, 역사, 또 작금의 남북전쟁은 '귀찮아' 하는 스칼렛은 전형적인 멍청이 공주 같아 보이지만 은근 자기 잇속을 차리면서 나름 강인한 인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롤모델로 따르는 어머니의 강인함과 아일랜드 출신 아버지의 솔직함을 닮은 스칼렛은 절대 울지 않는다. 일이 닥치면 피하지 않고 한다. 이기적인 깍쟁이 같았는데 (영화 이미지의 힘일지도) 애슐리와의 약속에 발이 묶이고 순수한 미소로 자신을 대하는 멜라니을 속으론 욕할 지언정 내치지 않는다. 피 고름 악취에 쩔은 부상군인들을 돌보며 부족한 음식와 물자를 조달하는 전쟁 생활 속 스칼렛은 굳세기까지 하다. 그래도 래트 버틀러 앞에선 영낙없는 로맨스 소설 여주인공이다. 그런데 스칼렛이 어린 아들을 나몰라라 방임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불안한 마음이 든다. (영화에 아들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진행 속도가 빠른 연애소설 처럼 읽다가 남부의 풍경 묘사가 수려하게 펼쳐지면 가본 적 없는 목화밭이나 숲, 강둑을 상상했다. 저자의 인종 차별은 흑인을 물건처럼 배치하고 묘사하는 데서 여지 없이 드러난다. 백인들도 겉과 속이 일치하는, 뻔한 타입들이고 영웅들은 없지만 그들이 전쟁에서 겪는 고통과 죽음은 묵직하게 소설에서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생을 살아내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전쟁 상황 묘사를 긴장하며 읽는데 중간에 '새 희망 교회에서 남군이...' 하는 부분에선 흥이 깨지고 말았다. New Hope Church라는 지명을 다 번역을 해놓으니 어쩐지 우리나라 개신교 이야기 같아져서 실소가 났다. 


<중>권은 오디오북으로 읽기/듣기 시작했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 올라있는데 3부(2), 4부(1)이 <중>권에 해당한다. 

(90일 대여 할인가격으로 5,500원 + 6,000원) 


서술낭독은 차분한데 대사 부분은 드라마 같이 연기조로 읽는다. 전쟁 통 장면이라 스칼렛의 목소리가 날카롭고 숨가쁘다. 새로운 맛의 독서 경험이다. 래트 버틀러 목소리가 기대된다. (애슐리도 같은 성우가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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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2-07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한국 오디오북도 제법 나오는 거 같아. 아직 한번도 안 들어봤는데 어때?
내용으로 보니 한사람이 쭉 읽는 게 아니고 등장인물이 다른 목소리로 하는 거야?

유부만두 2020-12-07 06:37   좋아요 1 | URL
서사 부분이 많긴 하지만 좀 라디오 드라마 같은 분위기에요. 레트 버틀러 목소리 좀 징그러움요. ‘당신 나와 춤추지 않겠어요?‘ ... 느끼한 외화 성우 더빙 상상하세요. ㅋㅋ

유부만두 2020-12-07 06:40   좋아요 1 | URL
들으면서 집안일 하기는 좋아요. (빨래 개며 들어요. 우리집 노예는 나다, 스칼렛도 일 하느라 허리가 휜다 생각하면 덜 억울하고요)

문장 하나 하나 곱씹을 책 보다는 이렇게 서사 중심으로 막 휘몰아치는 책, 특히 이렇게 두꺼운 대하드라마는 좋아요.

psyche 2020-12-07 06:46   좋아요 0 | URL
바로 상상되었다는. ㅎㅎ

psyche 2020-12-07 06:47   좋아요 1 | URL
나는 집안일 할 때 팟캐스트 주로 듣는데 요즘은 BTS 새 앨범 듣느라고 ㅎㅎ

유부만두 2020-12-07 06:50   좋아요 0 | URL
좋더라고요. 특히 멤버들 목소리 하나 하나 다 살아있고요.
어제 MMA 공연 봤는데 슈가의 빈자리 일부러 놓아두어서 ... 쓸쓸하고 왠지 따뜻하고 그랬어요. 아우, 애들 춤 정말 잘 추죠. 그럼서 노래도 다 해요!!!!
정국이가 준이랑 동갑인데, 아 정국이 엄마 좋겠다, 계속 그러니까 막내가 막 뭐라고 하고요. ㅎㅎㅎㅎ

psyche 2020-12-07 06:56   좋아요 1 | URL
매번 앨범이 나올 때마다 느끼지만 이번에도 역시 너무 좋아!
MMA 진짜 좋았고 지금 막 MAMA 도 봤는데 윤기를 홀로그램으로 넣었더라고. 아 좋아라! 요즘 미국에서도 잘 나가서 (원래 잘 나가지만 더욱) 괜스리 으쓱 으쓱.
나는 알엠 엄마 좋겠다 그러는데 (알엠이랑 우리 제이양이 동갑이라는 ㅎㅎ)
내가 정국이 머리 기른 거 너무 이뻐서 우리 엠군도 머리 기르라고 할까했더니 누나들이 머리 길다고 다 정국이 되는 줄 아냐는 팩폭을,,,,ㅠㅠ

유부만두 2020-12-07 07:00   좋아요 0 | URL
아니 언니도 그러시는구나. ㅋㅋㅋ
우리집 애들은 다 걸그룹을 몇 팀 씩이나 좋아들 하는데 애들이 다 비슷하게 생겨서 걔가 걔 같고 ... 그러던데 방탄 일곱 다 구별하고 있으니까 애들이 뭐라고 흉봐요.
MAMA 챙겨봐야겠다요.

그래도 제 최애곡은 봄날이에요. 봄날 오겠죠. 오겠죠. ㅜ ㅜ
 

일본의 애니매이션, 특촬영화 및 어린이 대상 위인전에 존재하는 여성 인물 활용방식을 분석하(고 분노하)는 책이다. 


원제목에서 언급하는 "홍일점"은 소년 주인공의 (모험) 애니매이션에 주로 한명씩 끼어 있는 여성 인물들을 이른다. 이들 (십대초반) 여성은 남성들에 비해 능력은 열등하며 잔심부름이나 통신 등을 맡은 주변인 역할을 하면서 온갖 성차별과 성추행을 (흔하게는 속옷 노출, 연애의 표적) 당한다. 하지만 박사나 고위능력자의 딸이기에 그 조직에 들어갔으니 공주의 신분이기도 하다. 반면 이들이 대항하는 악의 무리에는 성인 여성이 나오기도 하는데 강렬하고 남자 부하를 거느리기도 하는등 현대사회의 비혼 전문직 여성을 연상시킨다. 동화 속의 익숙한 마녀 코드가 활용된다. 


소년 모험 애니매이션에서 갈라져 나온 소녀들만의 주인공 애니매이션은 1960년대 '요술공주 샐리'가 시초라고 한다. 소년들이 우주와 역사에서 외부 침략자들을 무찌를 때 소녀는 요술봉과 컴팩트로 자신의 몸을 '변신'시켜서 일상생활의 리듬을 조정하는 무해한 활동을 한다. 이 변신의 과정에 속옷과 나신의 전시가 필수적이다. 소녀들도 소년들 처럼 팀을 (주로 5-7인) 이루기도 하고 성공을 이루기도 하지만 (세일러 문) 그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십대초반이며 그들에게 요술을 제공하는 여성은 멀리 자비로운 어머니처럼 존재한다. 이들이 현실에선 아이돌 여가수들이 된 건 너무 자연스럽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잔 다르크'를 이 여자 주인공들의 선례로 보고있다. 잔 다르크는 요술 소녀처럼 신의 계시를 받고 갑옷을 입는 '변신'을 거쳐 남성들만의 세계인 전쟁터에서 '홍일점'이 되었지만 후에 마녀 취급을 받아 처형당하고 몇백 년이 지나서야 성녀의 자리에 오른다. 여성은 만화 조연이나 주인공, 위인전에서도 쉽게 대상화되고 틀에 갇히게 된다. 여성은 능력보다도 외모나 '덕성'이 먼저 검증되어야 한다. 


책은 많은 자료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매 챕터마다 반복해서 정리를 하는데다 여성 캐릭터 분석도 그리 새롭지 않아서 지루한 느낌이 든다. 


체스 세계에서 분투하는 여자 주인공을 보여주는 '퀸스 갬빗'이나 1890년대 뉴욕 경찰청의 첫 여성 직원을 주인공으로 한 '에일리어니스트'를 보면서 계속 이 책의 홍일점 공식이 떠올랐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그 공식이 변주되고 반격하는 인물들도 적지 않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니까 이제 공주님 소녀는 더 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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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2-07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일리어니스트‘ 재미있어?

유부만두 2020-12-07 06:42   좋아요 1 | URL
쎈 장면이 많고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 있어도 ... 흠.... 그냥 그냥이에요.

일단 어린 여주랑 아자씨들의 썸 타는 게 싫고요
아무래도 홈즈 미국판에 CSI 섞은 느낌이 들어요. 시즌 2도 있던데 그건 1화 보다 껐어요. 시즌 1도 몰아서 며칠에 보니까 범인 프로파일이 엉키고 수사도 엉성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