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주 많이 읽은 큰 언니가 책을 소개해 준다. 이 언니는 나즉하고 차분하게 쓰는데 언니의 문장 부호에 어리는 힘이 남다르다.
쿨하게 언니는 너무 힘들고 지루하고, 때론 혼자 있고 싶었고, 분노가 치밀었는데, 책을 읽는 방법도 있더라고 했다. 상황 별로 서너 권씩 추천해 줬는데 엄청 어려운 (어려워 보이는) 책들도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해준다. 논어, 물리학 막 이런거. 아니 그런데 언니는 정말 연애 끝나고 사표 내고 싶고, 사람들이 내 등에 칼 꽂는 거 같은 그럴 때 정말로 책 생각이 났어요? 소크라테스의 재판도 언니에겐 마치 학급회의 같이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특별한 올해엔 (마지막 챕터, 폭설로 고립되 있을 때라는데 ...하아...우리 계속 그런거 같고요) 이런 책들이 과연 독자에게 위안이나 희망을 안겨줄지 확언하지는 않지만, 우리 언니는 흔들리지 않지. 다만 책 속의 구절을 추론해 보여준다. 가령 <제5도살장>의 유명 구절은 ...
독일어에는 'So geht es.'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 용법이 어찌나 다채로운지 거의 아무런 뜻이 없다. 즉자적으로건 반어적으로건, 잘되건 못되건, 기쁘건 슬프건, 흥하건 망하건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삼라만상의 질서를 응축한 무의미를 나타낸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순전히 나의 억측이지만, 작가는 독일어 'So geht es.'를 영어로 직역해 'So it goes'라고 쓴 건 아닐까. (어차피 작가 사후라 확인할 길은 없다. So it goes.) (93)
또한 공군조종사와 CIA 정보원등으로 일했으며 심리학 박사학위도 가진 앨리스 브래들리 셀던이 남자 가명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로 낸 SF소설을 소개할 땐 아, 세상엔 멋진 작가들과 멋진 책들이 이렇게나 많았단 말이에요? 라고 언니에게 매달려 묻고 싶었다. 언니, 내가 너무 몰라서 미안해요.
제가 요즘 속에 화가 쌓여서 부르르 끓고요, 어깨랑 등이 결리는데 그런데 좋은 책은 뭐 없을까요. 밤 11시 40분 아이스크림 대신 먹기, 아니 읽기 좋은 책은요? 실례 아니니까 더 꺼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