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의 중요성 만큼이나 '인간'과 '연결'을 중요하게 여기는 단편들이 모여있다. 책은 어느 형태로 존재하든, 종이책, 텍스트, 칩, 정보, 총컬러 영상, 구술되는 이야기, 혹은 4d 인터엑티브 체험까지 곧 인간이라는 등식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니 책이 없다면 인간도 사라질 수 밖에.

인간을 무시하고 책에 담긴 정보/지식만을 챙기려다보면 결국 인간 사냥꾼 혹은 노예상과 다르지 않다고 책-종이-나무 설정부터 구구절절 풀어내는 <금서의 계승자>와 헌책방과 노포에 대한 노스텔지어에 작위적인 연애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켠>은 지리했다. (차라리 그 놈을 죽여버리지)




황정은의 <양의 미래>를 연상시키는 <12월, 길모퉁이 서점>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덜 이상하고 더 따뜻했고 예측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가혹한 가정 상황, 청소년 '정서' 학대는 고통스럽다. 학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어린이는 <모든 무지개를 넘어서>에도 나온다. 열두 살, 초등 오학년 아이는 2150년의 가혹한 자연환경, 경제환경 속에서 나이든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몇몇 도구나 설정은 미래로 그려졌지만 낡은 종이책에 미련을 가진 모습들과 사람들 생활 모습들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고 (덜 망했고) 평범해서 (성에 차질 않았단 말입니다) 어떤 반전을 기대하면서 읽었다. 다시 불려오는 <오즈의 마법사>의 황금길. 아이가 혼자 걷는 게 아니길 바란다. 성장소설 분위기만 퐁퐁 뿌리지만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열두 살, 도서관 카드로 뭘 할 수 있을까. 너무 낭만파잖아. 차라리 애한테 급식 카드를 주세요. 부모 재교육을 시키던지. 그 부모와 그 식구들을 그렇게 그냥 놔둔 상태라면 이 아이의 미래는 가시밭길일 게 뻔하다. 




이경희의 <바벨의 도서관>은 문목하의 <유령해마>의 작은 버전 같다. 정보체계가 명령을 수행하기를 그만둔 다음의 세상, 중앙장치나 ai가 '창의력'을 가진 세상에서 '낡아서 생명을 다한' 데이터/기기는 누가 구해주는가. 모든 책과 모든 정보가 모인 도서관이 그 방대한 육각형 무한대의 (11차원으로!!!) 건물이 실재한다면. 그저 보르헤스의 뻥이 아니라 그곳에 알레프도 있다면 어쩔건가. 우선 반갑습니다? 악수는 ... 아, 아니요. 어려운 '과학' 이야기에 액션이 더해져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기초가 탄탄해야 합니다. 과학 기기일수록. 컴퓨터 부팅이 늦다면 일단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켭니다. 


그 기초 이야기, 책의 성질, '쓴다' 그리고 '읽는다'에 집중해본다. 그 사이에 온갖 첨가와 삭제가 있다. 그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의 이야기는 이지연의 <역표절자들>에서 어지럽게 꼬여있는데 모르겠으면서도 알듯 말듯 읽게된다. 그리고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는 다른 존재, 다른 '책'이었다. 그 책은 거대한 정보, 감히 덩어리를 자유로이 포기하거나 새로 만들 수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경전일 수도 있다. 여기서 조심. 이 모든 가능성, 이 온갖 뻥ability. 기억의 문제라고, 슥 넘어가 뭉게버릴 수도 있지만 책인걸. 찢겨나간 곳과 덮어 접어 둔 곳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조금씩 엇나가는 디테일에서 '나'는 결단을 내린다. 


다시 책=인간(성??) 공식으로 돌아와서 꼼꼼 따져보는 소설이 <두 세계>다. 책의 세계와 현실, 사람의 육신이 사는 세계. 이 두 세계를 연결해서 인터엑티브 게임 같은 독서 경험 프로그램을 개발한 주인공이 어느 모험서사 '책'의 오류를 만나 두 세계의 본질에 대해, 몇 년 전 자살한 쌍둥이 동생에 대해서 고민한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열망하며 '정신'을 죽인다면 다른 곳으로 건너갈 수 있다니? <사자왕 형제의 모험>의 낭기열라 낭길리마 같은건가. 두 세계의 교차라는 과격한 설정에 의외로 쉽게 납득되는 나는 소설 속 세계를 잠깐 상상해 본다. 하지만 체험이라도 그곳으로 건너가는 건 겁이 난다. (스테판 킹의 세상도 박완서의 세상도 다 너무 고달프다. 살려준다고해도) 그러니까 '책에 갇히'는 건 누구인가. 등장인물들도 탈출하고 저자는 진즉에 놓아둔 책의 세계는 독자 앞에 와서 슬그머니 문을 열어둔다. 




어젠 첫 네 편만 읽고 별로, 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다 읽어서 다행이다. 네 명(더하기 알파) 분의 사람을 못 만날 뻔 했다. 읽지 않으면 모르니까 (그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갈등하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독자의 딜레마. 갇힐만 한가. 발을 들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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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3-16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실린 소설을 보면서 다른 책을 떠올리기도 하셨군요 벌써 쓰인 책이라면 갇혀도 바꿀 수 없겠지만, 아직 쓰이지 않고 쓰이는 책이라면 좀 나을지... 《끝없는 이야기》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군요


희선

유부만두 2021-03-16 07:01   좋아요 0 | URL
이 소설집은 책과 서점을 주제로 하기에 계속 기존의 책과 미래의 책들을 불러와서 이야기를 만들어요. 그런데 갇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책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그 작업을 하는 게 바로 이 소설집 같고요) 말해주기도 하고요. 네버 엔딩이죠. 책 밖으로 나와도 다시 책 속에 있는 걸까요. ^^ 뭐, 결국 다 책 아니겠냐, 는 이야기 일 수도 있고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단발머리 2021-03-16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엘라 인첸티드>에만 눈이 가는 독자입니다. 역시 아는 만큼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좀 어려울듯 하지만 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네요^^

유부만두 2021-03-18 20:31   좋아요 0 | URL
꽤 재미있어요. 연상되는 이야기들이 변주되면서 독자도 그 안에 들어가 놀 수, 그리고 갇힐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1, 5번째 수록작들 추천입니다)
 

제목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책에 깔리다"로 기억했던 나여. 


책을 주제로 한 sf/판타지 단편집이다. 8편중 4편을 읽었는데 첫 수록작인 김성일의 <붉은 구두를 기다리다>가 제일 (유일하게, 독보적으로) 인상적이다. 


인류문명이 망해버린 먼 미래, 그래도 인류는 꾸역꾸역 새로운 문명을 일으키고 로봇과 대항하며 모여산다. 그들 문명의 중심은 '구전'되는 이야기/전설/역사다. 책은 물론 문자도 사라진 시대. 이들의 '제사장'은 대대로 한 명씩 선출되어 놀라운 기억력과 구연 실력으로 공동체의 구심점이 된다. 두 젊은이 '푸른소'와 '붉은구두'는 차기 제사장 후로로 부족민의 관심을 받는다. 


... 그런데 이들 부족의 시조가 '도로시'다? 

그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갔던? 

반짝이는 신발의? 

그리고 그들의 사는 곳의 이름이? 

맞다, 

칸사스. 


그렇다면 이들의 적 로봇이 어디에서 왔는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고 또다른 아포칼립스 sf 대서사시 '스타워즈'도 이 세계에 연결되었다는 것을, 또한 과거 문명의 대 작가 세익스피어도 구전되는 설화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톤은 진지하다. 농담이 아니고 이 세계는 좁고 사막 한 가운데서 .... 김초엽과 테드창의 세계를 닮아있는 성실한 얼굴로 이 문명의 탐험가와 수호자를 소개한다. 그리고 피어나는 다음 세대의 희망까지. 그들은 고도 대신 붉은 구두를 기다린다. 


말을 아끼면서 서재 친구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다들, 책에 갇히고 또 '깔리는' 심정일 때가 있으면서도 이 책이 사라지고 글이 적힌 종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다 몸서리를 치곤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그 세상이 있습니다. 이 세계는 성별에 따른 경계나 차별이 없고 협력하고 서로 돕지만 책과 글이 없어서 .... 


그런데 이 작품 말고 나머지는 (아직은) 별 재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슬픈 일요일밤. 


---

이 소설에선 붉은 구두에 여러 겹의 의미를 입히고 있는데 도로시 신발까지 붉은 구두로 설정한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것. 도로시의 신발은 은구두였지만 영화에서만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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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15 0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에 깔리다에서 푸핫 터졌습니다. ㅎㅎ

유부만두 2021-03-15 07:23   좋아요 1 | URL
제가 깔려있거든요;;;

얄라알라 2021-03-15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깔리다로 착각하셨다는 데서 터졌어요^^

유부만두 2021-03-15 07:24   좋아요 1 | URL
흠흠... 저 말고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

희선 2021-03-16 0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로시 구두는 본래 은구두였군요 예전에 본 영화에선가는 빨간색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분홍색구두가 있어서 빨간색일까 하는 생각을 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유부만두 2021-03-16 07:02   좋아요 0 | URL
원작에서 금/은의 상징성이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영상에선 은구두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 빨간 구두로 바꿔서 찍었다고 해요.

psyche 2021-03-16 0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도로시 구두가 원래 은구두였구나. 영화에서의 기억이 강해서 그런지 빨간색이라고 생각했었네.

유부만두 2021-03-16 07:03   좋아요 0 | URL
네 저도요. 원 소설은 축약본으로 아이들과 함께 읽어서 영화가 기준이 되어버렸어요.
 

<나일강의 죽음>이 언급된 코니 윌리스 단편집을 읽고나서 검색을 했더니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했다. (그게 2020년이었고)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소설을 나는 분명 읽었는데 정작 읽으면서는 푸아로의 느끼한 대사 말고는 모두 새로웠다. 넘치는 낭만, 차곡 차곡 쌓이는 디테일, 첫눈에 어쩐지 의심스러운 그 사람이 바로 범인이었구나 했는데 역시 사랑과 돈, 그리고 열정에 불타는 젊음이 화근이었다. 그토록 많은 것을 가지고도 더 원하는 속성이란 어쩔 수가 없다. 날 줘바요, 난 착하게 살 수 있는데.


이어서 읽은 <ABC 살인사건>은 이미 여러 식으로 변주된 낡은 옛 고적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섬세하게 짜여졌지만 어쩐지 피해자들 보다는 가해자를 향한 동정심을 강요하는 듯하다. (가해자의 목소리를 사이사이에 삽입하는 방식은 얼마전 읽은 '코믹'호러 소설에서도 보였는데 영 찜찜하다) 역시 첫 인상이 쎄한 그 사람이 범인, 진짜 '설계자'였고 그의 그 계산들이 (아, 이렇게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려는 그 마음을 어쩔거냐) 하나씩 놓치고 흘리는 조각들을 우리의 푸아로 탐정은 읽어간다. 여기서도 랜덤 혹은 겨냥된 피해자들의 사연들이 공허하다. 상류층 작가의 손으로 그려진 비상류층은 별 가치가 없다. 안됐지만 딱 그만큼이 그들의 목숨값이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결말의 '해설' 장면을 위해서 아끼는 작가와 푸아로에게 감탄했다.



딱 한 권만 더 읽기로 했다. 어차피 유럽 상류층 이야기가 느끼하지만 책장에 덮어둔 다른 책도 프루스트인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이번 살인 사건은 친숙한 홈즈-왓슨 구조로 전개되는데 누구의 눈으로 사건을 걸러서 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여러 겹의 인물 관계, 과거, 어긋나는 시간 프레임, 속다르고 겉다른 인간들과 '첨단 테크놀로지' 까지. 매우 화려한 전개와 더 화려한 푸아로의 자부심이 펼쳐진다. 더해서 역시나 놓칠 수 없는 사랑 이야기 까지. <나일강의 죽음>처럼 이 살인사건에서도 범인을 움직이는 오만과 욕망은 결국 비극적인 파국으로 (시스템을 믿지 않으시는 므슈 푸아로) 매듭지어진다. 짜라라란. 이 셋 중 단 한 권만 추천한다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입니다. 


마음이 벌렁벌렁해서 (일주일간 몇 명을 죽인거야?!) 작고 귀여운 동화책을 읽었는데 그래도 제목에는 힘을 조금 줘 봤다. 하지만 고양이가 진짜로 죽인 건 아니고, 그러니까 뭐 킬러 본성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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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6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한창 읽다가 이제는 시들해졌네요. ㅎㅎ

유부만두 2021-03-06 23:59   좋아요 2 | URL
그 바통을 제가 받았습니다! ^^

하나 2021-03-06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 줘바요, 난 착하게 살 수 있는데 222

유부만두 2021-03-07 00:00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줘봐요, 쫌?;;;

라로 2021-03-07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면서 조마조마 했어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실지,,,저도 아주 좋아하거든요. 작년에 다시 읽었는데 그 생각도 나고요,,,언젠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을 다 읽는 한 해를 목표로 갖고 있기는 한데,,,읽을 책들이 밀물처럼 밀려드니 원~~.

유부만두 2021-03-07 17:33   좋아요 0 | URL
라로님도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좋아하시는군요! ^^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고전극을 읽는 기분도 들고요, 색다른 책 읽기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어릴적엔 그저 범인 찾기와 트릭에 집중했다면 이젠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비밀에 더 관심이 가네요.

읽을 책들, 관심 작가들은 밀물처럼 밀려들어 저를 집어삼켜요. 그런데 전 계속 목이 마르다니, 이게 무슨일이래요?!?!?!

psyche 2021-03-08 0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거서 크리스티 보니 옛날 생각나네. 중고등학교 시절에 엄청 읽었었는데... ㅎㅎ 사실 나는 그때 애거서 크리스티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이모가 좋아하셔서 이모댁에 가면 책이 많았거든. 덕분에 그때 나온 크리스티 책은 거의 다 읽었던 거 같은데 그중 기억에 남는,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 하나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유부만두 2021-03-08 08:34   좋아요 0 | URL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다른 것들과 분위기가 다르고 특별한 분위기가 있어요. 저도 이 책이 마음에 들었어요. 애거서 크리스티는 예전 보다 요즘 다시 읽을 때 더 좋아요. 예전엔 홈즈가 더 좋았어요. 그런데 홈즈보단 푸아로 시리즈가 더 어른들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psyche 2021-03-08 08:39   좋아요 1 | URL
완전 동감! 나도 그런 생각했어. 어릴 때는 홈즈가 더 좋았거든. 이모가 특히 미스 마플 좋아하셨는데 그때는 진짜 이해가 안 되었거든. 어른이 되니 알 거 같더라고. 미스 마플 좋아

유부만두 2021-03-08 08:54   좋아요 0 | URL
앗, 미스 마플을 잊고 있었어요! 챙기러 뛰어갑니다! ㅎㅎㅎ

라로 2021-03-08 19:57   좋아요 1 | URL
저는 푸아로보다 미스 마플!!!

우리 다 비슷한 시기에 자라나서 그럴까요? 저도 홈즈를 처음 만났는데 나중에 미스 마플을 더 애정하게 되었지요!!ㅎㅎ

유부만두 2021-03-09 07:5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세대별로, 또 성장기의 나이별로 좋아하는 탐정 소설들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아이들은 초등 때 홈즈를 별로 안 좋아해서 내심 섭섭했어요.
 

자연 묘사가 아름답다고, 반전이 주는 충격과 감동이 크다고 했는데, 이미 스포를 당하고 시작해서 이 반전이 언제 터지는지 더 궁금해 하면서 읽었다. 전 한 접시에 챕터 하나씩. 예전에 수업시간에 소설책 읽던 실력을 되살려 보았다. 


주인공은 자연, 늪지대, 깃털을 흘리는 새들과 가짜 신호를 보내는 암컷 반딧불이, 그리고 노래는 하지 않는 가재 등이고 서브 여주인공, 여섯 살 꼬마 카야가 엄마와 언니, 오빠들, 그리고 가정 폭력범 아빠에게 버림을 받고 지역 사회와 사회 복지 시스템에서도 누락된 채 성장한다. 단 한 명의 동네 아는 오빠 테이트만 관심을 가져준다. 하지만 하지만...


자연과 외로움의 묘사는 아름답지만 인물들 간의 관계와 사건은 투박하게 진행된다. 제도 교육 밖의 여자 아이 이야기라 <배움의 발견>과 어린이 방임 학대 이야기 <아무도 모른다>가 생각났다. 어린이를 이렇게 버리는 어른은, <비밀의 화원>이후 계속 만나는 이 부류의 악당은, 그 사정이 무엇이건 간에 용서할 수가 없다. 마음이 쓰라리다. 


덧: 오빠 조디를 후에 다시 만나는 장면, 나는 얼른 땅문서 챙기라고 카야에게 속으로 외쳤다. 땅이 최고여! 스칼렛을 잊지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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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13 0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불호가 꽤 갈리는 책같아 볼까 말까 역시 망설이고 있네요 ㅎㅎ

유부만두 2021-02-13 10:52   좋아요 0 | URL
저자가 생태학자로 책을 내기도 했대요. 그래서 늪지의 자연 풍광과 생물들 묘사는 멋있어요. 하지만 이야기와 인물들은 많이 투박하고 찬사에 미치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가장 큰 ‘사건‘의 의미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큰 기대를 접으시고 읽으셔도 좋겠고요. 긴 이야기지만 금방 읽히긴 합니다. ^^
 

저자 이름도 낯설고 책 제목도 길어서 요즘 인기있는 젊은이들의 엣세이집인 줄 알았는데 단편 소설집이다. SF 소설로 분류해 두었지만 풍자 혹은 공포 예언 소설로 읽히기도 했다.

첫 두 작품은 현실과 쉽게 겹치는 코미디라 약간 지루했는데 표제작 - 에어팟이 물고기 귀에 달린 그림이 바로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이 나이에 에어팟프로가 생겨서 집에선 잘 쓰지만 외출 땐 줄 달린 이어폰으로 바꾸어 챙기는 내 모습이 겹쳐졌지 뭡니까, 서글프게시리. 늙는다는 게 추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 미추를 누가 정하느냐 말이다. 추하지 않은 늙음은 뭘까. 또 민폐 자아 폭발 이혼 중년남의 이야기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는 어떤가. 통쾌하면서 - 기득권자층을 향한 빅엿 쯤 되니까 - 독자의 연령층을 마흔 아래로 잡았을 저자에게 그래도 분한 마음도 들었다. (어르신, 여기 인터넷 서재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계속 이러시면 유투브 오른손 동네로 보내드릴거에욧) 학교 교육에 보내는 AI 로봇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떠오르는 생각이 많았다. 며칠 전 뉴스에서 접한 인간 배양육 이야기는 바로 ‘한 터럭만이라도‘ 현실화다. 그리고 또 ...

이야기의 결말은 예상 가능하지만 소재나 강도에는 한계가 없다. 시간도 공간도 생명도 관계도 단편들 속에서 분해 재조합된다. 그리고 계속 뻗어나간다. 어디까지가 윤리이고 상상이며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이야기가 현실을 품고 바꾸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그러는 중인지도. 코로나 시대에 그 변화의 속도가 몇곱절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내가 집에 틀어박혀서 밥하고 책읽고 그러는 중에. (오늘 새벽 배송 마늘과 (쑥대신) 냉이) 그래, 노안을 비비면서 계속 이야기, 아프고 고까운 이야기, 웃기고 (날 보고 웃더라도) 쭉쭉 뻗어가는 이야기를 계속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 보람찬 하루를 벌써 다 산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난 노구엔 졸음이 몰려온다. 눈이 내리는구먼.


"소비 하나로 자존심이 무럭 무럭 자랐다. 역시 사람은 소비를 해야 날개를 단다."

              --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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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1-28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외출 땐 왜 줄달린 이어폰으로 바꾸세요?

유부만두 2021-01-28 10:26   좋아요 0 | URL
잃어버릴까봐요. 또 늙은 아지매가 젊은이들 흉내낸다 욕먹을까봐서 ...
눈오는 날 허리 쑤셔요. 엉엉엉

잠자냥 2021-01-28 10:43   좋아요 1 | URL
아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1-28 1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안 읽어봤지만요... 이 책 보다 유부만두님의 리뷰가 훨씬 더 알찬 이야기구나~~ 이런 확신이 드네요.
눈이 많이 오네요. 지금은 잠깐 그쳤는데 밤에 추워진다니 또 걱정입니다.
밖에 안 나가는 사람인데 눈이 많이 오면 걱정이 되네요 ㅠㅠ

유부만두 2021-01-28 13:55   좋아요 1 | URL
어,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 단편집 매우 재미있어요. 우주로 미래로 뻗어나가고 중년남을 ‘중성화‘ 시키기도 합니다. 지금의 아이폰 신상이 효도폰으로 쓰이는 미래를 보여준다니까요. (무섭죠?)

눈은 금세 그쳐서 쌓이지도 않았네요. 그런데 바람이 심상치 않아요. (무섭죠?)

유부만두 2021-01-28 14:03   좋아요 0 | URL
그리고 육식에 대한 단편에선 인육 배양 에피소드도 나오는데요,
전 이걸 친구들 영향을 받아서 성차별 성매매의 은유로도 읽었어요.

persona 2021-01-28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솔직히 줄 달린 게 더 편해요. 싼 블루투스 이어폰이 있긴 하지만 이게 따로따로 떨어져있는 게 영 잃어버릴까봐 불편합니다. ㅋㅋ 한편 선이 안 달려서 접촉불량돼서금방 새거 사고 할 일이 없는 건 좋은 거 같아요.

유부만두 2021-01-28 13:57   좋아요 2 | URL
줄달리는 게 편한데 이번 ‘에어팟 프로‘는 고무 패킹? 같은 게 있어서 잘 빠지지 않고 착 감기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소리가 어째 제 머리 뒷쪽에서 울려나오는 영적인?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나 딴세상으로 절 떼어 놓던지 (신문물에 홀린 중년 아줌마입니다) 겁이 나서 집에서도 한 쪽씩만 낍니다;;;;
그래도 외출할 땐 겁이 나서 줄달린 이어폰으로 돌아가고요.

persona 2021-01-28 16:28   좋아요 1 | URL
먹다 뿜을 뻔 했어요. ㅋㅋㅋ 영적인 체험이라뇨 ㅋㅋ 아이고 ㅋㅋㅋ

얄라알라 2021-01-28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어요˝ 찜하면서 에세이집인줄, 그런데 공포예언 소설집이군요^^ 구스범스 스탈인가봐요^^

유부만두 2021-01-28 13:57   좋아요 1 | URL
구스범스 보단 훠얼씬 어른용 소설이지요. 그런데 괴물 비슷한 거대 조류도 나오고요, 이건 비밀인데요 초대형 특급 거인도 나와요.

다락방 2021-01-28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줄 없는 거 살 생각 1 도 안해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1-28 13: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이미 사용중이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ㅎㅎ

참, 여기선 통화보다 문자를 편하게 느끼는 세대와 음성 명령어를 쓰는 그 다음 세대 이야기가 나와요. 전 문자 세대 앞의 ‘급하고 내용 많으면 통화가 편혀‘ 하는 세대고요.

다락방 2021-01-28 14:01   좋아요 2 | URL
저는 통화를 엄청 불편해하는 사람인데 이게 세대탓인지는 모르겠고 개인적인 게 아닌가 싶어요 😔

유부만두 2021-01-28 14:09   좋아요 0 | URL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다락방님은 젊은 세대.

라로 2021-01-28 15:55   좋아요 1 | URL
저는 줄 있는 거 넘 불편하던데. 저는 두 분보다 훨 나이든 세대인데,,,돌연변이인가용??ㅋㅋ

음성 명령어 쓰는 거도 애정하고,,,문자보다.ㅋ 저는 몸만 늙은이 같은 애늙은이가 아니라 늙은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1-28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8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1-28 14: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마음에 안들어요. 저는 나이 드는게 꽤 근사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왠지ㅜ나이가 들면 추해진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거 같아요. 요즘 와서 느끼는건 인간의 추함은 나이와 상관있다기보다는 개개인의 인성과 더 큰 연관이 있다고 느껴져요. ^^

유부만두 2021-01-28 17:49   좋아요 0 | URL
제목이 저도 별로라 생각했는데요, 그 단편은 미래엔 모두가 늙는다, 는 내용이었어요. 정말 세월 눈 깜짝 할 새 지나가잖아요. 바람돌이님 말씀에 완전 공감이에요. 인성이 추함을 만들어내지요. 암요.

라로 2021-01-28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비 하나로 자존심이 무럭 무럭 자랐다. 역시 사람은 소비를 해야 날개를 단다.--이 글 유부만두님이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인용인가요?? 그 글에 완전 고개 끄덕이고 있어요.ㅎㅎ

저도 바람돌이님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니 나이 드는 거라고 바꿔 말해야하나? 암튼 그게 꽤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몰론 오십견이니 눈이 침침하니 이런 것은 옆차기이긴 하지만.

유부만두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유는 많은데,, 혼자 간직하기로. ^^;

유부만두 2021-01-28 17:52   좋아요 0 | URL
인용문이 맞아요. 전자책이라 쪽수는 없고, 대신 인용 표시 수정했습니다. 정말 절묘한 문장이지요? 책은 사야 제 맛이고 결재하면서 막 뿌듯해지고, 새 에어팟 프로에 맘에 날개가 달리는...ㅋㅋㅋ

제 글을 좋아하신다고요? 그 이유는...제가 예뻐서라고 (우리 서로 만난 적 없죠) 정합시다. 그런겁니다. 취소 없음.

라로 2021-01-28 21:02   좋아요 1 | URL
뭐 유부만두님 미모와 지성에 대해서는 이미 다 들었어요. 우리가 만나본 적 없지만.ㅎㅎㅎㅎ 그래서 부러워하는 것도 있죠 당근! ㅋㅋ 언제 만나기나 합시다요.ㅎㅎㅎㅎ 그리고 정해요. 일방적인 거래는 불가.ㅋㅋ ( 아! 저 자야하는데 말이지요. 달러 3원 올랐다고 기뻐하는..드디어 트럼프가 다 까먹은 거 다시 찾은 느낌;;;)

유부만두 2021-01-29 12:31   좋아요 0 | URL
음화하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