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는 계획도 없고, 공개 결심은 민망하게 쌓여만 간다. 손에서 책은 떠나지 않지만 방향을 바꾸는 관심사 때문에 가끔 어지럽다. 1차대전은 매콜리프의 파리 시리즈에서 만나서, <1913 세기의 여름> 그 긴장감이 팽팽한 이야기를 읽고 Netflix 영화 <사라예보>와 <1917>을 봤다. 마이클 하워드의 1차대전 해설서를 패전의 기운을 업고 전선에 섰던 독일 청년의 이야기 <서부전선 이상 없다>와 함께 번갈아 읽었다. 이제 1917의 영국 청년이나 레마르크의 독일 청년이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레마르크의 아부지는 첫부인 마리아 안나와 사별 후 재혼하는데 그 이름이 안나 마리아;;;;) 이제 거울 앞, 아니 두꺼븐 책 앞으로 돌아와.... 다시 1949년, 2차대전도 끝난, 하지만 한국전쟁 전년도에 출간된 프랑스 작가 보부아르의 책을 이어서 읽다가 ... 맘이 다시 떴....
지금 내 앞에 있는 책은
레마르크의 다른 (전쟁과 인간에 대한) 소설이다. 지명 때문에 영화가 자동 연상되었는데, 마침 나도 안경을 새로 맞춰야 해서 이 영화는 새 안경과 함께 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이제 1차 대전의 프랑스 땅을 떠나 더 남쪽으로, 이베리아 반도에 마음을 두게 된다. 몇해 전 친구가 선물해준 책도 있고
그곳의 문화와 생활에 대한 책도 챙겨두었다. 아, 보부아르 읽어야 하는데, 여기는 지금 리스본.
그렇다고 또 내가 한 곳만, 한 가지만 읽고 팔 리가 없잖아?
보부아르의 책에 나오는 '출산' '여성의 신화'에서 갑자기 몇년전 찜해두었던 일본 소설이 생각나서 읽기 시작했다. 여성의 출산과 영아 살해, 주술 등등이 은근 겹치기도 또 역발상으로도 읽힌다. 출산을 하다가 죽은, 하지만 유령/혼령이 아니라 살아있던 여인의 '원념'이 '우부메'라고 한다. 그 원념이 어린 아기에게 붙어서 해코지를 한다고. 하지만 우부메는 한자로 읽으면 새깃털을 입고/벗으며 남자를 공격하는 요괴가 된다.
그런데 이 책에는 (나는 생각이 잔가지를 사방으로 뻗칠뿐지만) 말이 많으며 잘난척 하는 인물이 둘 씩이나 나와서 좀 지친다. 너무 많이 떠들어서 책을 덮을라 치면 사건, 그것도 기괴한 이야기를 찔끔 찔끔 해준다. 그러면서 계속 강조하는 건, 정신 단디, 똑디 차려! 니가 안다고 봤다고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건 다 너의 뇌가 조작한 것이다!
자, 이쯤되면 추천 받은 뇌과학 책도 꺼내놓게 된다.
난 이렇게 해서 오늘 밤, 천일 권의 책엮기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The night is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