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쭈낙덮밥이 나오자 밥은 반쯤 덜어내고 남은 포만감에도 비벼서 먹는다. 오후가 꽉 차오를 듯 싶다. 


동네책방에 들러 주문한 책을 받고 가벼운 얘기를 주고 받는다. 안부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어라운드잡지를 펼쳐든다.


1. 인연 - 첫 인터뷰기사가 수수와 현우라는 젊은 친구들의 소식이었다. 중편에 가까울 만큼 분량이 길다. 그 만큼 어떻게 사는지 헤아릴 수 있었고, 소식이 좀더 궁금해져 [단순한 진심]이라는 유투브 방송을 봤다. 수수님, 아니 안녕늘보씨로 아니 하윤이라는 이름으로 동네책방에서 시모임을 같이 한 적이 있다. 꾸임이 없고 솔직 담백하고, 시를 받아들이고 남기는 모습이  인상 깊던 친구였다. 어쩌면 여리다는 느낌까지 받았던 것 같다. 지진 트라우마에 떠나도 바다가 있는 동네에 살 것이라고 말했다. 일년에 한 두번 있던 소식마저 끊겼다. 




책방 주인장에게 선물을 받았다. 수제노트. 맞다. 안녕늘보씨 작품이었고, 그 소식에 무척 반가웠던 기억. 그 기억을 반추해서 일년남짓 뒤 전시회에 가져다 썼다. 수수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친구. 멋지게 살고 있는 모습에 뭉클하다 싶다.


2. 서예


회소

안진경

조맹부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이력을 더듬어 본다. 고문자 뒤 바로 이어진 전서가 공식문서였다. 글을 함부로 다루는 것도 아니였고, 예서는 전서가 위주였다면 그에 부속한 글자였다. 아니 그런 취급을 받은 글자다. 해서가 되어서야 일대 판이 정리된다. 다른 예술도 그렇듯이 다양하게 분기하는 듯하면서도 레트로가 이어진다. 틀에 갖힌 듯하다가도 그 틀을 뚫고나오는 모습들. 그 변곡점들에 많은 힘과 혼이 담겨있다 싶다. 초서는 광체라는게 서체의 한 종류로 있다. 회소가 대표적이다. 조카가 죽어가는 사이 절박함이 묻어나는 안진경 글씨와 모든 체를 섭렵한 조맹부 글 귀가 마음에 남아 새겨둔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든지, 또 자신만의 또 다른 색깔을 갖고 꾸준히 나아가는 양상들이 좋다. 나이와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힘이 닿는 한, 풀어가고 남기는 습관들이 보기 좋다. 작은 인연들이지만 자기가 하고싶은 것들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이 더욱 더 좋다. 언젠가 그들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들로 인해 또 다른 변환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볕뉘

 뇌와 의식 관련해서 혹시나 해서 잡지를 살펴보았는데, 아니다 싶다. 사둔 책들로 저자 별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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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 예약을 해두었는데, 시간이 두시간 남짓 남는다. 검색을 해보니 다행스럽게 알라딘 우주점이 있다.  


1. 옥편 - 처음에는 예술코너를 보려는데 쉽게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취미 코너가 바로 보이지만 원하는 책들은 없다. 그렇게 산책하기 시작한 뒤 보리출판사 국어사전이나 어린이용 한자 사전을 둘러보았지만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그러다가 외국어 사전류가 있는 곳에 다다랐고, 한자사전을 다 보다가 겨우 마음에 드는 민중사의 활용옥편이 초서를 쉽게 볼 수 있고, 오고가는 길에 부수별로 산책을 하니 시간이 무척 빠르게 지나간다 싶다. 늘 처음이 중요하다 싶다.


2. 어깨 - 한의원에 들러 부황을 뜨고 사혈을 했다. 작업을 하다보니 어깨 근육과 손이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듯 싶다.  약식 운동도 해보는데 그렇게 쉽게 낫질 않는 것 같다. 철봉도 한 달정도 쉬었다. 이 책은 그 순환구조를 그려서 왜 반복되는지 알려준다. 늘 답은 가까이 있다. 30분이나 한시간 안밖으로 몸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고 말이다. 늘 가까운 것을 하지 않아 문제다 싶다. 늘 습관이 바람직하다.


3. 성찰 - 조심스럽게 발문을 적는다. 너무 조심스러워서 걱정이다. 시대와 개인을 읽어내지 않으면 그 글을 담아낼 수 없다. 데카르트의 번역서도 많이 있지만 이도 고르기가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 먼저 저가의 통버전을 하나 구입했고, 위의 최근 번역서를 골랐다. 결론은 잘 해냈다 싶다. 라틴어 원본 번역을 했고, 번역사를 짚고 시대 배경을 같이 녹여냈다. 글을 읽는 사이 그 긴장감이 서슬퍼렇게 다가선다. 평생 벼르고 쓸 수 있는 글. 자칫 삐끗하면 목숨이 경각에 달린다. 그래도 써야한다는 강박. 아니 사명감. 위기감이 느껴진다. 아껴서 소화해내야 한다. 


몸을 백여일 챙겨본다. 먹을 것도 가려서 해보고 만나는 모임도 줄여서 해보았다. 육식도 과식도 많이 줄었고 생기도 있었고 활력을 찾는 여러가지 실험도 해 본 셈이다. 이렇게 처음을 다시 만들어 보는 것도, 습관의 바닥을 점검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돌이켜보면 많은 것들을 소화시켜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시간시간이 많이 궁금해졌다 싶다. 내려오니 무척 포근하다. 곧 주문한 책들을 받으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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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 걱정했는데 일어나보니 어제 날씨였다. 아니 바람도 없어 고요하며 포근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하루다. 읽다보니 데카르트의 <성찰>이 걸린다. 잘 알고 있다고 더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다른 저자를 통해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싶다. 며칠 전 구입한 중고책이 불쑥 왔다. 



허시먼의 책을 보다나면 책 속의 책들이 즐비하다. 자본주의 발흥이나 그 맥락은 베버와 맑스가 꿰고 있고, 아무런 의문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 당대의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한 것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잡아내고 연구를 한다는 것. 그것도 자신감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새로운 것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발명이나 발견처럼 어렵게 어렵게 생겨난다고 여기는데, 아닐 수도 있다.고 낡은 것으로부터 자라고 있다고, 이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고, 이성, 정념과 같이 선악으로 구분되는 이분법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스피노자와 비코가 자연스럽게 모두에 나온다. 15-18세기의 지성사를 꿰어준다고도 볼 수 있겠다 싶다.  정치와 경제가 분화되기전, 중세에서 상업의 발달로 중상주의가 들어설 때, 영주와 귀족의 권위와 힘이 어떻게 줄어들게 되는지, 민주정이나 귀족정이 아니라 전제정을 왜 요구하게 되는지, 그 맥락들을 짚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법칙이나 원칙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 개념이 회자되다보니 그렇게 될 수도 있었던 것이고, 그 전제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다보니 그렇게 웃자라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자본주의라고 생각하거나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정리된 버전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 이면에 대한 의구심들이, 신나게 욕을 했고 사라지면 좋겠다고 여기는 주장이 어쩌면 자양분이 되어 더 자라나게 하는 이유가 되듯이,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하는 것들도 많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여기저기 오늘도 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에 유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텍스트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여러 각도로 읽혔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주류의 해석들만 남아 우리는 다른 시선들을 포착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는지도 모르겠다. 말을 옮기는 이들 말 역시 걸러서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또 다른 면들을 발견해낼 수 있기도 하니 말이다.


볕뉘. 퇴근 길 폰을 일터에 두고 온 걸 숙소에 오고나서야 알았다. 다른 것들은 다 챙기고 정작 급하며 중요한 것을 빠뜨린다. 왜 레비나스가 데카르트를 다시 이야기했는지, 왜 허시먼이 학문 경계를 불문하고 다방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지 다시 느낄 수 있는 날이다. 책들은 늘 다르게 읽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새로워지는 듯 싶다. 풍요로운 독서는 늘 그렇게 지운 뒤에 새싹처럼 올라오는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완독을 하고 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이렇게 해도 나쁘지 않다 싶다. 에돌아와서 성찰이란 책을 남길 수 있었고 밑줄없는 글을 남기기도 한 것이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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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혼은 자신이 행하는 바를 행한다


완독. 제목은 저자가 1987년 1월 18일에 쓴 서문의 마지막 대목이다. 


1. 책친구들 - 어제 친구들을 집에 모셨다. 과메기와 육전, 치맥까지 퇴직을 기념해서 모였다. 40대초반과 30대후반인 분들. 모짜르트 연주에 푹빠져있는 모습이 최근 근황이었다. 근황을 물어보기에 막 서예와 연애에 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언급하는 중립자의 철학를 폐기하는 놀라운 레비나스 다시보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주에 빠져있는 책친구는 소개해준 도나 해러웨이 저작을 깊게 훑고 있었다. 포스트-휴먼이론의 선두주자인 이 양반은 브루노라투르와 더불어 다원론, 다양성의 존재론적 전회를 맛보게 하는 일대 사건의 배후자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휴먼을 너머가기가 아직 아닌 것 같아, 이 분 저작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2.페르난도 페소아 - 조용미시인의 시집. 나의 다른 이름들 마지막 시의 제목이었던 것 같다. 실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 페소아. 그의 저작들에 푹 빠졌던 기억들. 그런 면에서 더 파격이었던 테스트씨란 폴 발레리의 작품을 한 번 보시라. 그 매혹.에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레비나스가 이 책에서 폴 발레리의 테스티씨를 다시 불러내었다. 이렇게 나란히 두게된다. 과거는 이렇게 미래에 온다 싶다.


3. 몇 구절을 소개할까 싶었는데, 훌륭하게도 이 책의 서문은 제일 뒤에 있다. 도덕이나 윤리가 제일 철학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가 영향받은 저자. 하고픈 요약을 정말 아름답고 숭고하게 적은 듯 싶다. 며칠 뒤면 서문을 쓴 지 34년이 된다. 


어찌 그를 사숙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2021년의 가장 추운 날은 이렇게 기억에 남는 날이 되고 만다. 레비나스!! 사랑에 대한 사랑의 철학자. 마음을 두드려 줘서 감사.


탈은폐된 것의 즉자와 대자 너머에 인간의 벌거벗음이 있다. 세계의-풍경들의, 사물들의, 제도들의-외부보다 더 외재적인 벌거벗음, 세계에 대한 자신의 낯설음을 외치는 벌거벗음. 그 벌거벗음은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감춰진 자신의 비참이 지닌 부끄러움을 절규한다. 그것은 영혼에서의 죽음을 절규한다. 이 인간의 벌거벗음은 나를 호명한다. 그것은 나인 그대로의 나를 부른다...얼굴은 낱말들에 앞서 이미 언어다.....인간에게 주어진 명령 가운데 자리 잡은 인간적 명령의 이념. 들을 수 없는 언어, 전대미문의 언어, 말해지지-않은 언어. 성서! - P467

베르그송은 무엇보다 현상학의 대가들이 중요한 입장들을 내세울 수 있게 해준 철학자다. 그는 지속의 개념을 통해 시간을 천문학에 대한 복종에서 해방시켰으며, 사유를 공간적인 것과 고정된 것의 집착으로부터, 기술적 확장과 이론적 배타주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시켰다. - P464

데카르트가 [제1철학에 관한 성찰]의 <제3성찰>에서 자신의 노에마에 상응하지 않는 하나의 노에시스와, 자신의 사유대상에 상응하지 않는 하나의 사유와 마주쳤다는 유념해야 할 사실이 이 책의 저술에 관통한다.직관의 명증에 머무는 대신 철학자에게 눈부심을 주는 한 관념. 진리에 의해 사유하는 것보다 더 많이 사유하는 사유. 자신이 사유한 무한에 대해 응답하며 또한 경배하는 사유. - P469

후설은 스스로 물었다. ‘지혜-의-사랑‘에서의 사랑, 그리스에서 비롯한 철학인 사랑에 정말 소중한 것이 대상을 에워싸는 지식의 확실성인지, 아니면 이 지식에 대한 반성에서 오는 한층 더 큰 확실성인지를. 또 철학자가 사랑하고 기다리는 이 지혜가 인식의 지혜를 넘어서는 사랑의 지혜인지 아니면 사랑을 대신하는 지혜인지를.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철학. 다른 인간의 얼굴이 가르치는 지혜! - P470

타자의 벌거벗음과 비참함 속에서의 명령. 이것은 타자에 대한 책임으로의 명령이다.존재자. 존재-론의 너머. 신의 말. 배후-세계들의 피안에 대한 어떤 사변으로부터도 나오지 않는, 지식을 초월하는 어떤 지식으로부터도 나오지 않는 신학. 얼굴의 현상학. 필연적으로 신에게로 거슬러 올라감.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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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봐야 너만 더 힘들어져/ 백날 해봐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복지 얘기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야


TV 시청 하지 않은 지가 오래된다.  손석희 복귀 소문이 들려 일부 시청했다. 첫회에 수사-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이견을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 아 이런 합의가 가능한가 의아하기도 했다. 어제도 두 번째 좌담을 이어갔나보다. 혹시나 했는데 토론을 진행중이었다. 부동산에 대한 이재명-원희룡 토론 말미 부분을 보았다. 합의한 원칙을 지키는 것도 못하는 현실에 대한 강변이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어렵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가능한가 싶지만, 어쩌면 십여년, 오년전을 돌이켜봐도 많은 진전이 있다 싶다. 보수는 위의 전략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 기본적인 전략자체가 민주주의도, 자유도 부정하는 아이러니를 함유하고 있다. 그 절망의 바닥이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늘 유효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저자가 진보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 역시 한쌍의 또 다른 극으로서 똑 같은 기능을 해왔다는 것이다. 진보-보수의 구도 자체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좌-우가 아니라 상하-하상에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정보를 통해 수정할 용의가 없는 집단들이 늘 힘을 더 많이 갖고 행사하고 있다. 


결국 어느 집단도 완전한 패권을 쥘 수 없다. 다원주의의 가능성이 그 부분한 부분들을 채워나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걸 뚫고가는 정치인들이 없고, 뚫고 나가는 사회단체나 정당세력이 없다는 것이 비극인 듯 싶다. 헤쳐나갈 일들뿐만 아니라 논쟁해나갈 꺼리들이 그토록 많은 것 같은데 합의에 바탕을 둔 덧셈의 정치를 제도권 내에서 보기 어렵다. 구태 역시 쥔 것을 놓치 않으려는 아둔한 유아의 땡깡같아 보이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유난히 정치의 이분법 구도는 강하고 한 걸음 더 나갈 수 없게 만든다 싶다. 깨시민들도 흡인하고 만들어갈 수 없는 덫을 놓은 듯 말이다.


 볕뉘. 저자의 책 가운데 사둔 것이 있었고, 중고 매장에서 산,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것도 다른 조직과도 연관된 것이다. 질문의 수준이 질문자의 시야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 너머에 가 있지 않는 이상, 정치는 늘 옛날 질문만 가지고 살 것이다. 그러지 못하게 다른 질문들을 갖고 사는 이가 점점 늘어야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 다른 저작들도 챙겨봐야지 싶다. 조효제 교수는 이 와중에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글들을 쓰셨다. 


반동: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진보: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반동: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반동: 계획된 행동은 사회 질서의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바꾸려 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무용하다.
진보: 계획된 행동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강력한 역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거기에 맞서는 것은 아주 쓸데없는 짓이다. - P226

플로베르는 한때, 만물이 순수 물질 아니면 순수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대립적인 두 철학 사조를 공격하기 위해 훌륭한 구절을 만들어 냈다. 그러한 단언들은 ‘두 개의 똑같은 불합리‘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 P227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진지성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그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의분에는 강하지만 풍자에는 약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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