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올리고 주전자와 드립잔, 여과지를 챙긴다. 수동밀로 넉넉하게 갈아낸다. 물은 끓었고 숙성을 하자 향기가 진하게 퍼져 나간다.  몇 주 사이 근황들을 묻자. 사건 사고가 물려나온다. 눈이 많이 온 수도권 딸아이를 챙기러 갔다 넘어져 많이 다쳤다는 소식. 아들이 다쳐 3주간 입원하고, 한 주 집에서 요양시키고 있다는 소식. 마트를 운영하고 있어 혹시 피해가 될 수 있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소식. 


몇 주는 어쩌면 참으로 긴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평온한 일상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만남의 발화로 만들어지는 온기가 사라져 간다. 사람이 그리워지는 그 시점도 고개를 넘어서고 있다. 서먹함이 그새 비집고 들어오는 그 빈 자리의 농도. 밀도. 연하고 흐리다. 맺히지 않는다. 그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부디 터널의 마지막 부근이기를 바래본다. 


매화와 진달래, 개나리 잔가지를 좀더 챙겨서 꽃병에 꽃아둔다. 스크랩을 살펴보고 할 일을 가늠해본다.


"웅크리는 것으로 계절을 통과하고 나면

시리게 쏟아지는 빛으로

왈칵 눈이 부신 봄이다


헤어짐의 방식으로 

나는 비로소 당신에게 도착한다" 

정용화, <터널이라는 계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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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로 가는 길. 전지 작업을 다 해두었다. 한 달남짓 쉬고 들렀는데 챙기기엔 한 발 늦었다 싶다. 우산을 들고 가위와 봉투를 챙기고 혹시 건질만한 매화 잔가지들이 있을까 하여 부산을 떤다. 여의치 않아 매화밭이 아니라 길가 한 그루에서 가지치기를 해주면서 얻는다. 화병에 한단.  고루면서 남은 잔가지를 철사와 고무줄로 묶어 빈통에 담고 떨어진 여린 매화알갱이를 담아둔다. 개나리와 동백도 한 모둠. 곧 서로 화사해질 것이다.


1. 대마 -  아열대부터 아한대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자라고, 일년생 식물로 봄에 심으면 여름이 지나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쑥대밭에 버금가는 듯싶다. 밀집해서 심으면 곧게 자라고, 암수가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속대는 구멍이 나 있어 플라스틱 대용이나 단열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 한다. 몽롱함이나 환기기능이 있어 제의용으로 시작했을 법하다고 한다. 인도 메소포타미아, 중국, 러시아 등을 가릴 것이 없이 곳곳에서 재배되었고, 염분에도 강해 밧줄용으로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들깨나 유채기름처럼 바이오연료로도 쓰일 수 있고, 씨앗도 귀리나 깨처럼 오메가가 풍부한 필수 건강식품으로 환영받을 수 있다 한다. 린넨으로 쓰이는 아마, 포대로 쓰이는 황마, 모시로 쓰이는 저마와는 다르다고 한다. 저자는 농협에서 오랫동안 일하셨고, 양평에서 밭농사를 지으면서 대마에 관심을 가져오셨다고 한다. 편하게 다방면으로 잘 읽힌다. 잔잔한 정보들이 서로 이어지는 솔솔한 재미도 있다 싶다.


2. 책 - <<지식인의 배반>>은 앨버트 허시먼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언급되어서 구했다. 주의로 경직된 분위기에서 다양성을 넓히려는 시도로 읽혀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다시 출간한 서문이 사십여쪽이 넘는다.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았으면 그랬을까 싶다. 책들은 멈추어 있지 않아 있어서 좋다. 시간에 불문하고 다시 읽히고 다시 연결되어 또 다른 새로움들을 낳을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3. 애매 - 30호 영상을 다시 보게된다. 싱어게인을 어게인해본다.  앨버트 허시먼은 '회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창조성과 상상력을 보태주는 것은 이것때문이라고 한다. 애매함을 밀고나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과정을 모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물도 그러하며 모든 애정하는 것들은 그러하다 싶다. 어떻게 하든지 제 몸과 마음에 익숙하게 만드는 시도는 남게 되어 있고, 다른 것들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서둘지 말라.


볕뉘. 이것저것 갈피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서성인다. 꽃들도 서성이겠지. 피면서 벌들이 나비들이 찾아올까 궁금하겠지. 개미들이 서성거리겠지. 피면서도 아련하겠지. 아마 이렇게 제 몸이 필락말락하는 걸 보니 봄이 오고 있는 게야. 저 만치 아련하듯이 제 맘도 이렇게 서서히 떠오른 것이라고 말야. 스스로 챙기는 이들에게 포르투나가 생기길 바래. 지인이자 지인의 아들인 인효가 세미파이널에서 떨어져 아쉬움도 한 가득. 또 다르게 필거야. 넘 걱정하지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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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11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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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11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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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 상식이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 귀쫑긋 하던 참인데 마침 책이 나왔다. 살펴보기로 한다. 


린마굴리스의 책들을 이어보고 있던 참에 같은 제목이어서 마저 읽는다. 저자는 중간중간 가족사와 학력을 슬쩍 넣었다. 그가 만약 이 나라에서 생활했다면 그는 역으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부모의 손에서 컸고, 고졸에다가 효모 관련 실험실 잡일을 하다가 대학교에 특채되었다는 사실. 한 가지 연구에만 몰입하고 주변에서 매진하도록 배려하는 분위기는 사뭇 이곳 연구실의 분위기와 문화가 다르다. 논문 저자에 숟가락 얻는 것을 밥먹듯이 하는 관행과 다르게 많은 역할을 했음에도 사양하는 연구 습속은 차이가 많다 싶다. 이 나라에서 연구원이나 성별차이는 끊임없이 끌어내리는 힘으로 작용하지 연구에 더욱 매진하게 하는 배려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아니 확연한 차이다. 하고싶은 것은 하게 하는 암묵지가 없다 싶다.


글들을 쫓아가면 린마굴리스가 점점 집중하고 미세하게 들어가게 하는 데 반하여, 큰 그림들을 그려줘 통찰하기가 쉬워진다. 잘게 잘게 있었던 지식들을 이어준다는 느낌이 든다. 완독하면 기본적인 밑그림이 그려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다섯장을 말하고 6장은 유전자 편집이나 조작으로 대별되는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다소 불편했다. 과학 기술이 자본에 봉사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 여러군데에서 반대에 부딪치면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이 기술이 정말정말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꼭 개발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기술에 대한 우려보다는 아픈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라고. 변명일까 아닐까. 과학이 기술이 언제 그렇게 경제를 생각하고 정치를 생각하고 인문이 몸에 배이는 활동을 해왔단 말인가? 평소의 모습과 너무 다른 사람이 흔히 하는 핑계는 아닐까 하는 그런 의문들이 생긴다. 그리고 마지막장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총괄편이다. 물론 책 제목은 아시다시피  슈렌딩거의 책 제목에서 나온 것이다. 6장에서 하고자 하는 말씀은 알겠지만 빼도 좋을 듯싶은 미련이 들었다.


볕뉘.


출근 길 라디오에서 특강을 해서 든다. 최열 이사장이 비닐 슈트를 입고 나왔다거나 대만이 페트 회수율이 95%인데 우리는 65%라거나, 비닐을 소각하는 방법에서 기후 이야기까지. 하지만 소빙하기도 있듯이 자신은 탄소배출이 식물들로 흡수가 가능하다. led로 24시간 식물팜을 하는데 어쩌구  사업가로서 급히 하지 않으면 안되어 쫓기는 느낌의 두서없는 강의에다가 기후위기 회의론을 슬며시 섞는다. 기후위기로 여기저기 다니지 않는 데가 없으며 하물며 그 일로 돈까지 벌면서, 관점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뭐하는 꼴이람.....그래 그게 내모습 같겠다. 그 꼴. 어정쩡한 그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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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11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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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르트 제조기를 사들인다.  500ml 우유를 조금 덜어내고 요구르트 하나를 넣고 골고루 섞은 뒤 자고 일어나는 시간 뒤에 일터에 가져와 냉장보관한 뒤 맛을 본다. 먹을 만 하다.


1. 면역 -  <<면역의 힘>>은 장내 미생물과 운동(근육/력)에 대한 부분을 봤다. 색다른 부분은 크게 없었지만 림프액의 양(15리터)과 역할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운동에 대한 장도 과유불급이라는 지적도 살펴볼 만하다. 활력을 유지하는 일. 아니 생기가 도는 일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싶다.


2. 비건 - <<물결>이라는 잡지 창간호의 서문을 본다. 격문을 본지 얼마던가. 비장미가 감돌기도 하는 글. 날선 글이 잘못하면 갇힐 수 있는 여백도 고스란히 남기고 있다. 다른 편의 글들은 좀더 마음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읽어 보려한다.  


3. 제3세계 - <<세여자>>가 우리의 백년이라면, 지금 읽고 있는 <<앨버트 o. 허스먼>>은 유럽과 서구의 백년이라는 관점에서 읽고 있다. 그런면에서 비동맹 독본은 이를 지탱하거나 빠져나간 역사들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일년의 시작을 역사로 연다 싶다.



볕뉘. 


빈 플라스틱을 보면 애처롭기도 하고 스스로 한심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빈봉지에 주워 담으며 매번 비슷한 자괴감에 든다. 또 줄인다는 핑계로 연신 택배로 오는 작은 상자나 비닐류 역시 다를 것이 없다. 그냥 동네 작은 시장에서 천원 이천원 장바구니에 담아오는 것이 괜찮겠다고 여겨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구 말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를 보면 작금의 시대를 인류세나 자본세로 것이 아니라 닭뼈의 시대로 본다. 구석구석 그 잔뼈들은 어디서든지 발굴될 것이라구 지금을 상기시킨다. 


선언이라는 것은 늘 미리 가는 것이니 천천히 가보는 참을성을 놓치면 많은 것을 보지도 못하며 잃을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래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일상의 나침반을 놓는다하고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불우의 시절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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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서

나는 묘비처럼 외로웠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발이 푹푹 빠지는 나의

습한 낮잠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사라졌다.

시간이 똑똑 수돗물 새는 소리로

내 잠 속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서 흘러가지 않았다.



앨튼 존은 자신의 예술성이 한물갔음을 입증했고

돈 맥그린은 아예 뽕짝으로 나섰다.

송*식은 더욱 원숙해졌지만

자칫하며 서**처럼 될지도 몰랐고

그건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 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올여름의 인생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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