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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1.
“아빤 왠 늘 바빠? 회사에서 할 일이 많아서. 왜 일이 많은데? 아빠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니까. 아빠가 안 필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왜? 그래야 나랑 놀 시간이 많을 거 아니야. 음 세상에는 꼭 필요한 사람과 필요 없는 사람이 있어. 필요한 사람은 다른 사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필요없는 사람은 도움이 되질 않는 사람이지.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 같아? 남에게 도움 되는 사람요. 그래 그러니까 아빠도 필요한 사람이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지. 그래야 좋은 ㅅㅏ람? 응, 그러니까 너도 ㅋㅓ서 꼭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

2.
하지만 이제는 아내를 이해하고 있었다. 왜 그녀가 아이에게 그토록 열정적으로 ㅁㅐ달렸는지, 왜 그녀가 ㅇㅏ이의 삶에 모든 것을 투사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한때 이 부장이 느꼈던 것과 같은 공허함 때문이었다. 몸을 지니고 있는, 몸이 품고 있는 즐거움의 가능성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므로, 결코 채워지지 못하는 ㅎㅓ기 같은 것이 그녀 안에서 불타오르고 있었다. 때문에 계속 무언가 집중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97

3.
엄밀히 말해서 의무에 치여 사는 삶이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아무 생각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름의 즐거움도 있었다. 어긋나지 않고 정리된 보도블록을 보거나, 틈 하나 없이 정리된 책꽂이를 볼 때 느껴지는 변태적이기까지 한 충만함을 이 부장은 분명히 즐겼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101

4.
“근대란 말이야, 대단한 게 아니라 딱 두가지가 발전한거라고. 개인의 자유를 인정해 준 것과 개인의 욕망을 긍정해주는 거. 그게 전부야”...드라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일은 근대사회에 부합하는 행위인 셈이었다. 근대의 관점에서 자신은 부도덕한 것도, 변태도 아니었다. 118-119

5.
오직 고통이 주는 아픔과 쾌락의 전율만이 그곳에 몸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했다. 이 부장은 비로소 자신을 지배하던 허기와 상실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정작 그 안에서는 자신이 부재했다. 오르가슴이, 전립선의 통증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절감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 부장은 무엇이 자신을 고양시켜 주었고, ㅈㅏ신이 하는 이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156

6.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남편의 안정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한 노력 위에 서 있는지를. 그리고 남편이 얼마나 주눅 든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ㅇㅏ갈수록 실망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남편을 미워할 수 없었다. 겉보기엔 멀쩡한 안정을 위해 남편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볕뉘.

0. 자기계발의 슬로건들이 굵은 고딕체로 쓰여있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 ‘윈윈을 생각하라‘ ‘먼저 이해하고 다음에 이해시켜라‘‘시너지를 내라‘‘끊임없이 쇄신하라‘ 이런 경구에도 불구하고 짤릴 수 밖에 없다란 메세지를 주는 것일까. 곳곳의 부비트랩들과 장치들.

1. 굳이 마지막 장면을 그리 설정했을까. 그래도..그래도 그것이 맞다. 백일하에 드러나야 한다고..그래야 겨우 정신차린다고....전근대에서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했다고...우리의 삶이란 것은 있기보다는 생존해지는거라고...살아지지 않으려면 그래도 자신의 오르가슴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온통 외로움과 허기와 공허감에 넘치는 이들로 흥건하다고 . . .삶의 상상을 바꾸라고 ㆍㆍㆍ

2. 아직 [문근영은 위험해]가 도착하지 않았다. 멋지고 대단하다 싶다. 책갈피로 소개받은 회사 3부작이 더 궁금해진다.

3. 그래서, 이제부터는 이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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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습을 늘 관찰해야 한다는 문제는 지성의 핵심적 활동이다.653

1. 반지성주의 극복

우리 자신의 정체가 문제되는 경우는 우리의 행동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을 것이 우려되는 경우이다. 이 피해란 물리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지위, 존엄성, 존재가 상처를 입는 것을 포함한다. 상대방에게 ‘누구세요?‘라고 정체를 묻는 경우보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경우가 훨씬 추상적인 문제로서 더욱 포괄적인 생존, 즉 재산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존재, 지위 등의 안전에 위기를 느끼는 경우이다. 648

‘우리‘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본격적 해결책은 1990년대에댜 제시되었다. 말하자면 우리의 모습을 늘 지속적으로 거울로 비추어보는 일이다. 문제는 물리적인 모습만 비추어보는 게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 심리적 정신적 문제, 건강 문제 등까지 비추어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얼‘을 검토하고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 (1960년대 이후 정체성 위기에 비명을 ㅈㅣ르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1980년대 역시 ‘나는 혁명가다‘, ‘나는 프롤레타리아다‘라는 답 역시 객관식 문제를 풀던 버릇에 다름 아닌 이념 권력에 굴복함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649

자신의 학문을 갖고 있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서 학문을 배워오기에 급급했다. 그리하여 제 3세계 나라는 스스로 자기 나라, 민족, 사회에 ㄷㅐ한 지적 관심이 깊지 ㅁㅗㅅ하고, 결과적으로 진정한 주체성을 결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 ㅈㅏ신을 늘 되돌아보는 행위가 ㅈㅔ도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반지성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이유는 남북전쟁이후 벌인 대학 개혁 운동으로 세계 일류의 대학으로 등장하고 순수 학문들이 높은 수준을 달성한 연유다.)..반지성주의를 극복하고 우리의 지성과 학문을 이루게 되면 그 때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적 지성이란 적어도 인구가 몇 만이 넘는 집단에게는 필수의 구조인 것이다. 651-652

2. 정체성의 문제

혹자는 우리 현대사를 ‘난폭 운전‘에 비유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요행히 살아남은 사람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스릴 만점‘의 아슬아슬한 여정이었다.....무엇보다 근대의 출발점에서부터 우리 민족은 개인들 간에 너무나 많은 불신, 의혹, 증오, 질투, 위협, 다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말로 ㅎㅏ면 민족 공동체가 완전히 개인으로 흩어져 ‘홉스적 자연상태‘에 처해 있었고, 이는 도저히 ㅅㅏ람이 정상적인 문명적 삶을 영위할 ㅅㅜ 없는 상황이었다......그런 ㅅㅏㅇ황에서는 각자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서 사는 것 외에 다른 생활 ㅂㅏㅇ식이 ㅂㅜㄹ가능했다.....핸들이 고장난 자동차를 정상적으로 잘 운전할 수 있는 운전사를 구할 수 없었다...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자연상태는 지속되고 있다...OECD국가에서 노사관계와 금융부문에서 거의 꼴찌였다. 이 분야들은 서로에 ㄷㅐ한 ‘신뢰‘와 ‘신용‘없이는 발전이 불가능한 분야다. 좌우에 상관없이 모두가 가담하고 있는 사회적 불신, 의혹, 질투, 적대가 사회의 핵심문제이다. 우리의 갈등지수는 ㅅㅔ계 최고수준이다. 639-641

우리 현대사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시련을 두루 겪었다. 그렇다고 모든 시련을 섭렵했다고 안도할 수도 없고 자만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역사라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피와 눈물이 흘렀고, 부끄러운 역사라 하기에는 너무나 영웅적인 투쟁의 연속이었다. 641

그간 많은 사람들은 우리는 혁명을 못 겪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분명 ‘두 개의 혁명 419,516’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혁명을 겪었다. ‘혁명‘을 한다는 명쾌한 의식은 갖지 못했고 과정과 형태 또한 기형적이었지만 두 혁명이 야기한 ㅅㅏ회적 변화의 규모는 엄청난 것이었다..문제는 혁명 의식이 불급한 것이 아니라 과했다는 데 있었다....그러한 성공 속에서 ㅈㅏ제를 잃어버렸고 내리막길에는 ㄱㅏ속도가 붙었다. 643

5공과 같은 시대를 돌파해서 민주화를 이루어 1990년대를 맞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뛰어난 적응력과 끈질김을 확인해주는 증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ㅇㅣ 극단의 ㅅㅣ대를 종결지은 것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극단의 격렬한 투쟁이었다. 중산층 국민들은 젊은이들의 과격한 입장을 이해하고 투쟁에 고마워했지만 엄청난 의식의 혼란을 겪었다. 644

1990년대에 오면서 비로소 한국인들은 우리의 우여곡절의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그토록 거친 역사는 더 이상 반복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이 과정에서 늘 부딪쳐 온 첨예한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였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ㄴㅏ는 살아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나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로 남을 수 있을까‘ ‘우리민족은 누구인가‘ ‘나라란 ㅁㅜ엇인가‘‘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는 늘 제기되어온 ㅈㅣㄹ문이었다. 645


3. 문학에 나 있는 사상의 길

민주주의의 문제는 ‘내용‘가 유리되어 정치 집단들 간의 투쟁이 되어버리고 합리적 토론의 자리는 맹목적 믿음으로서의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대체되었다. 민주주의보다 더욱 시급한 현실적, 민족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악마로 묘사되기도 했다....민주주의 외에 자유주의, 보수주의, 급진주의 등의 주요 정치 이념들에 ㄷㅐ한 논의도 이런 수준을 넘지 못했다. 22

나아가서 이런 상황 즉 대부분의 제도, 사상, 학문, 철학 등을 서구에서 ㅊㅓ음부터 배워와서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이 우리 지식인들의 최대의 역사적 임무라는 생각은 반지성주의를 이루어 혼자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골치 아픈‘문제들을 들추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생각 자체, ‘철학‘을 억압하고 기피하는 문화로 발전해왔다. 23

이렇게 사상이 발전하기 힘든 상황의 나라에서 어떻게 사상을 찾고 사상사를 연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된 일이 없었다. 그저 어설픈 서양 학문 흉내 내기를 반복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구걸해왔다. 24

우리 역사 연구가 실증주의적으로 경도된 것은 그간 늘 복수를 ㅎㅐ야 할 원수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학문 제도 수준에서 아직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단계에 와 있지 못한지도 모른다. 28

419518 ㅇl런 사건들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 작품과 같은 해석의 대상이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역사는 그 자체로 사상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이런 사건들은 개개의 뚜렷한 정체를 갖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심연과 미로, ‘블랙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심연과 미로를 탐사하는 일이 바로 우리에게 가장 중심적 사상 연구 과제이다. 29

우리에게 사상사 연구를 위한 통상적인 텍스트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을 대체할 다른 지적 창작물을 찾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단연 그간 우리 사회에서 부단히 만들어져 온 예술작품들이다. ...무엇을 창조하는 일, 즉 새로운 인물이나 새로운 생각을 창조하는 일은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학문‘에서 하는 합리적 논리적 사고로는 아무 것도 창조할 수 없다. 그저 잘 쪼갤 따름이다. 30

볕뉘

0. [197s 박정희 모더니즘]은 현대사를 산업화와 민주화의 이분법으로 보지 않을 것을 주문한다. 그릭 진보라는 것이 서구 사상으로 비유하건데 개인적 자유에 연유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산업화-민주화 세력 공히 효율, 성공, 자기계발, 생존을 우선시한다. 그 틀로 호명하지 못하는 형평에서 기울거나, 말못하는 사회적 약자의 삶에 ㄷㅐ한 생각의 거처도 마련하지 못한다.

1. 저자는 서구의 사상과 지적 흐름은 우리에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연구작업의 일환으로 소설이란 ㅇㅖ술작품에 천착하여 우리의 지적흐름과 사상을 좇아 재사유화하고자 한다.

2.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한국사회 정동을 묻다)과 곁들여 보면 더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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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1-06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의 지성과 문화는 유럽에 대한 경쟁의식과 수용 사이에서의 긴장감에서 컸다고 생각합니다. 결정적인 수혜는 세계대전들과 유럽 대륙의 불안정이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때 많은 지성들과 문화인들이 미국으로 많이 망명해 대학 강단, 연구 분야에 많이 유입되었지요.
한국 경우는 반대. 이런 시스템에서 클 수 없는 인재들이 해외로 많이 빠져 나간 것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미국도 여러 문제가 많지만 민주주의 시스템을 한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여전히 후진적. 시민의식이 커져가는 요즘 한국을 보면 마냥 비통할 일도 아닌 거 같고요.

여울 2017-01-06 00:35   좋아요 0 | URL
네 두루 살펴볼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나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상하는 것보다는 작고, 시간은 훨씬 지체될 것 같아요. 이럴 때일수록 선악이 아니라 다양하고 다원적인 관점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 사유들이 폭과 시간을 줄일수도 있지 않나 싶어요.
 

외롭다. 새로운 우정, 새로운 반려, 다른 삶의 관계를 촉발하는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1. 책을 쓰게 된 배경

정념과 정동에 관한 이 책의 논의들은 필자의 연구 작업과 고민의 이행 그 자체와도 연결되어 있다. 맨 처음 정념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파시즘 연구를 시작한 연구자로서의 출발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8
이 글은 먼저 새로운 파시즘의 징후가 세계화와 이에 따른 위기감의 만연, ㅎㅕㄴ존하는 ㄷㅐ안적 패러다임의 한계 및 이에 대한 반작용에서 생성된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또 이를 통해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파시즘적 징후를 사유하는 일이 사회적 약자의 해방의 사상과 실천을 다시금 탈환하는 일이라는 점을 제기하려고 한다. 258-259

처음에는 외로움과 환멸에 대해, 그리고는 ‘부적절한 정념‘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적절한 정념에 대한 고민은 그 자체로 이행의 열쇠를 풀어보고자 하는 문제와 결부된다. 즉 무능력자, 부랑아, ‘문란녀‘와 미숙한 청소년들은 과연 역사적으로 어떻게 정치적 주체로 이행하게 되었을까? 그 열쇠 말을 얻기 위해 ‘부적절한 정념‘이라는 말 그대로 희미한 불빛을 좇아 몇 년을 방황했다. 그 ‘방황의 길‘에서 풍기문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정념의 표지들을 하나하나 좇아가다가 정동 이론과 조우하게 되었다. 또 정동 이론 연구와 함께 정념을 정치적 차원에서 연구하는 흐름들은 정념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익사 직전에 발견한 불빛과 같았다. 28

부적절한 정념이라는 흐릿한 불빛을 붙잡고 방황하던 필자의 연구 작업에서 정동 이론과의 조우는 그 자체로 정념에서 정념-론으로의 이행의 계기가 되었다. 30

2. 파시즘 연구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자살률 증가 현상과 출산 거부 현상은 인간을 재생산 기계로 몰아온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사회 구조의 ‘부정적 효과‘라는 점이 명백해진다....자살과 출산 거부는 단지 만성적인 ‘사회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재생산 기계로 몰아온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한국 사회가 파시즘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파시즘적 사회 구조를 강화해 온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 또한 필요한 것이다. 282

파시즘은 인간을 사상, 문화, 정치를 통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신화를 통해서 재규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파시즘적 인간형은 생존의 노예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는 삶과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유언으로만 자신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죽음의 정치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 오래,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286-287

파시즘의 징후를 분석하는 일은 단지 특정 정당의 정책 변화나 집권 집단의 성향을 분석하는 일로 환원될 수 없다. 오히려 파시즘적 징후에 대한 분석은 사회 전체의 집단적인 심성 구조 변화의 결을 살펴보는 일이며, 특히 사회적 약자의 심성구조, 자기 인식의 준거와 그 변화 등을 읽어내는 일과 관련된다. 260

파시즘의 정체성 정치의 핵심은 그간 사회의 이면에서 호출되지 못했던 존재들을 사회의 전면으로 부상시킨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식민지 조선에서 효과적으로 호출된 집단은 청년, 부인, 소국민이었다. 261

파시즘이 현존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안티테제로 자신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진보와 보수 등등 현존하는 이념에 대한 대중의 만연한 환멸과 피로감에 안티테제적 호소가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겨레도 조중동도 편파적이기는 매한가지라는 심성구조로 변화...페미니즘도 문화상품으로서도 매력을 잃은 지 오래고, 그렇다고 ㅎㅐ서 사람들이 반 페미니즘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도 않는다. 다만 페미니즘이라는 말 자체가 ‘지겨울‘뿐이다.)262-263

최근 한국 사회에 만연한 파시즘의 징후도 ㅅㅏ회적약자의 ㅎㅐ방의 사상과 정치에 대한 기대감의 좌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게다가 초ㅣ근 대중에게 만연한 환멸과 피로감은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통해서 극점에 이르렀다…1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판본이 ‘입신출세주의‘라면 현재적 판본은 ‘실용주의적 전환‘이라 할 것이다. 264

이명박 정부에 대한 유권자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자영 自營‘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라는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기존의 집단적 주체성에 대한 피로감에 젖은 집단들에게...스스로 경영한다는 ‘자영‘의 이념은 집단적 주체성과 이와 결부된 개념들, 특히 노동, 신체, 노동을 통한 정치화 등과 다른 의미화 방식으로 정체성을 재규정한다. 특히 이는 만연한 경제 위기 속에서 세계 속에 맨몸으로 내던져져 있는 것과 같은 존재론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회 구성원들의 위기감에 호소하는 일이기도 하다. 265-266

국밥집 할매와 자갈치 아지메의 일은 가족을 위한 헌신적인 노동으로, 맨 몸으로 세계와 맞서서 가족을 지켜내는 것으로 의미화 된다. 이를 통해 노동은 갈등과 투쟁의 장이 아니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막막한 세계 앞에서 맨 몸으로 홀로 맞서 싸우는 일이 된다. 싸워야 할 대상은 저 위기로 ㄱㅏ득한 세계이고 ㅈㅣ켜야 할 것은 가족의 생존이다....그런 점에서 ‘민주화 시기‘의 노동과 삶의 관계를 규정하던 의미 맥락과 완전히 이질적인 세계이다. 269 이 정체성은 기존의 페미니즘적인 여성 주체성과도 상이하고 노동자라는 집단 정체성과도 상이하다는 점이다. 269 국밥집 할매와 자갈치 ㅇㅏ지메로 상징되는 이 정체성 정치의 준거는, 기존의 진보/보수, 페미니즘/반페미니즘적인 집단적 주체성의 정치 모두에 ㄷㅐ한 안티테제의 성격을 명확히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ㄴ티테제가 수렴되는 것은 생존의 절대성, 모든 이념을 넘어선 ‘실용‘의 세계이다. 270 이러한 세계 속에 모든 존재는 홀로 서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사회적 유대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고립된 존재의 생존을 우ㅣ한 투쟁, 그 막막한 세계를 신화로 만드는 이미지뿐이다. 이를 통ㅎㅐ서 생존은 기존의 모든 ㅇㅣ념을 ㄷㅐ체한 ‘대안‘이 도ㅣㄴ다. 270

파시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발성이다. 271 전 ㅅㅏ회 내적으로 적대의 관계가 조밀하게 재구성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적대의식을 내면화함으로써 자발적으로 파시즘에 참여하게 되는 역학이다.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볼 때, 이러한 자발성을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은 경쟁의 내면화, 혹은 생존 논리의 이념화이다.272

파시즘이 생존을 이념과 인간 존재의 진리의 차원으로까지 격상시키는 과정에는 사회 내적으로 만연한 위기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273 경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옆에 존재하는 인간이 다름 아닌 나의 경쟁 상대, 즉 내가 이겨야 할 적이라는 인식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심성 구조 하에서 사회의 모든 인간은 적으로 간주되고, 적으로 간주된 존재를 절멸시키는 기획에 동참하는 일은 손쉽게 이루어진다. 274 경쟁 기계로서의 인간이란 사상이나 정치와 무관하게 자신의 성공에만 골몰하는 인간이다.

파시즘에서 살아남은 자들 이외의 나머지는, 항시적으로 반사회적 존재, 낙오자, 무능력자 등등의 이름으로 노예상태에 내몰렸다.(위안부 홀로코스트,호모사케르) 275

파시즘의 절멸의 기획이 말살, 성노예화, 비국민화와 관련이 깊고, 이것이 ‘합법적‘ 절차를 통해서 수행되었다는 점, 즉 인간에게 모든 권리와 특권을 완벽하게 박탈하는 일이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는 것을 새삼 환기할 필요가 있다. 276-277

한국 사회에서 법적 판단의 기준은 일본 식민통치가 파시즘으로 전환되는 문턱에서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풍기문란 통제와 사상 통제라는 두 가지 형식이었다. 특히 문화와 사상에 ㄷㅐ한 검열과 통제의 법적구조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다. 278

파시즘이 상상하는 인간은 사상과 신념, 정치와 문화와는 거리가 먼, 재생산의 기능과 역할에만 충실한 존재이다...파시즘이 그토록 강박적으로 사상과 신념에 ㄷㅐ한 억압적 통제에 골몰하는 것은 ㅇㅣ 때문이다. 또 경쟁 기계로서의 인간이란 사상이나 정치와 무관하게 자신의 성공에만 골몰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파시즘의 이상, 그 죽음의 상상력의 완벽한 실현이다. 281

파시즘의 절멸 기획은 말의 권리에 대한 합법적 박탈의 과정이며, 여기에는 사상 통제와 정보 통제 역시 포함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성노예화의 경우에 명백하게 나타나듯이 아예 어떤 존재를 말 이전의 세계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이는 파시즘적 통제가 사회를 불가지론의 구조로 재조직하는 것과도 관련된다....파시즘적인 사회 체제하에서 세계는 음모론적이고 불가지론적인 방식으로 구조화된다. 284-285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의 해방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충족되지 못하고, 노동, 주체성, 성 정치 등 삶에 대한 새로운 사상과 실천이 대안적으로 제시되지 못하는 상황이 대중들이 파시즘에 매혹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ㄴ 점에서 파시즘의 징후를 고찰하고 이를 통해 어떤 ㄷㅐ안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의 삶의 새로운 조건들을 사유할 수 있는 ㅅㅏ상과 그 실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287

3. 프롤로그

정동이 말 그대로 힘-관계와 이에 따른 부대낌의 양태라고 할 때 이를 추적하는 것은 다양한 부대낌의 상태들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대낌의 상태‘란 아직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미정형의 ‘힘‘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바로 영혼의 동요로, 혹은 부대낌의 양태로 나타나는 그 ㅁㅣ정형의 힘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22

이 시대의 슬픔은 익숙한 공동체성을 촉발시키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다. 애도가 광장에서 극장으로 이동한 것과 이러한 이행은 밀접ㅎㅏ게 연관된다. 또한 이 시대의 슬픔이 익숙한 공동체성을 촉발하는 것은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감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재생산의 위기라는 감각이 익숙한 공동체성을 촉발시키는 것은 논리적인 선후관계라기보다 서로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으며, 사회 여러 분야에 확산되어 있다. 또한 이 시대의 슬픔은 잃어버린 시대/세대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촉발하며, ㅇㅣ를 통한 익숙한 공동체성을 다시 불러들인다. 그러니 ‘우리‘의 슬픔은 극도로 정치적이며, 그 슬픔에는 어떤 ‘비판적 삶의 종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24

최근 20년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외로움은 한편으로는 위축되는 삶의 반경, 힘 관계에서의 수동적 지위에 ㄷㅐ한 불안감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끝없이 너를 부르는, 외로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외로움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우정, 새로운 반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관계가 촉발될 수도 있는 다분히 정치적인 외로움인 것이다. 25

[소립자]가 68세대의 아이들 이야기이고, [1Q84]는 전공투 세대의 아이들의 이야기다. 혁명세서 사랑으로 라는 이행은 전공투, 68혁명, 1980년대로 상징되는 시대/세대의 ‘종말‘을 뒤로 ㅎㅏ면서, 새로운 시대/세대의 ‘윤리‘로서 사랑이 부상하는 방식을 공유하는 것은 아닐까 25-26
한국 사회에서 위기감이나 불안과 관련해서 중요하게 살펴볼 지점은 환멸이라는 이행의 방식이다. 환멸이란 환상이 깨어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환상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이행하는 표지이다. 26

“정동이 우리 안에 고도로 잘 투자되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 마술적인 것을 제공해줄 것처럼 믿는” 것은 과도한 낙관이다. 또한 정동이 “이미 항상 진보적이거나 자유를 위한 정치학에 더 잘 봉합되어 있거나”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동은 “아직 아님”의 지평에서 사유되어야 한다. “누구도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아직은 규정할 수 없다.” 27


볕뉘

0.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전, 2012년 여름 경에 출간된 책이다. 책을 보기전 제목 역시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이라고 해서 도통 무엇을 얘기하고 싶어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시종 개념적인 언어도 전달하고자 하는 바와 달라 곤혹스러웠다. 스스로도 그러하지만 언어 선택과 전달에 신중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제가 한국 사회의 정동을 묻다 이기에 골랐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출간 의도를 살피고자 하였다. 그러고보니 묻혀있는 책의 발견에 가깝다.

1. 밑줄다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파시즘 연구의 확장의 방편으로 정동이론을 살펴보게 되었다고 한다. 박근혜정부가 끝까지 반면교사 역할을 해 줌으로써, 예상된 우려는 가시고 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새로움을 보려고 하지 않는 무지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시선도 갇혀서 새로움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우리 수준을 발견해내고, 보이지 않는 것들, 말없는 사람의 말을 찾지 않는다면, 정권만 바뀌어도 그리 나아질 것이 없다. 여전히 효율과 성과만을 고집할 것이기에 더 우려스렵다.

2. 자기계발, 자기경영의 신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없다. 나에게 갇혀 한 발자욱도 너에게 다가설 수 없다. 다른 삶과 ㄷㅏ른 일상, ㄷㅏ른 사유가 죽음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들에게 스며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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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너지는 선의 떨림 – 근대사회는 결코 시간에 따라 진화하지 않는다. 많은 일은 예전에 이미 있었고 지금에 와서 더 심해진 것이다 35

자아분열을 이해한 결과 이성적 차원에서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토대 위에서 수립된 ‘역사적 중간물‘의식이 형성되었다. 이런 의식은 자신을 역사의 과정 속에 놓인 평범한 과도기적 인물로 ‘환원‘시킴으로써 세계를 이해하고 느끼는 독특한 방식을 수립한다. ‘중간물‘은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역사와 가치, 경험과 비판, 계몽과 계몽 초월 등의 조화 및 절충이 아닌 병존과 투쟁을 상징한다. 17

루쉰은 개체만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충돌, 가령 죽음, 고독, 절망, 불안, 두려움, 당혹감, 죄의식, 공포 등을 사회문화적 문제에 대한 탐색과 긴밀하게 결합시켜 개체 생존에 대해 동시대인이 범접할 수 없는 깊은 이해에 도달했다. ‘절망에 반항‘하는 그의 인생철학은 일반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닌 ‘절망‘에 맞선 생존태도를 제공한다. 19

왕후이의 루쉰 연구가 여느 사람들과 다른 이유가 출발점이 1907~1908년의 사상, 특히 그와 슈티르터, 니체 그리고 그들이 문학에서 보여주는 것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25 그는 왜 변혁을 추구하고 과학을 창조하며 휴머니즘을 주장하고 공화혁명과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동시에 프랑스혁명과 자유평등 원칙에 대해서는 깊이 회의하고 산업혁명의 부작용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집체성에 ㄷㅐ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국가-사회-보편주의 윤리와 이타주의 원칙을 결연히 부정했는가? 왜 이 위대한 사상가가 니체식 초인, ㅂㅏ이런식 영웅, 슈티르너식 유일자에 열광했는가? 왜 이 진화론자가 역사는 편향되거나 윤회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는가? 왜 ‘인생을 우ㅣ하고‘‘국민성을 ㄱㅐ조‘하는 것을 취지로 한 그의 문학 창작이 ‘안드레예프식 음산함‘과 현실세계에 대한 단절로 가득 찼는가? 왜 이 현실주의 소설가가 들풀과 같은 실존주의적 작품을 썼는가? 26

혁신가와 수구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우리와 서양을 대비시키는 문화서술이다. 그 대비 속에서 ‘우리문화‘나‘중국문환‘, 그리고 ‘다른 문화-주로 서양‘를 추상적 특징으로 ㄱㅡ려낸 뒤 그들 각자의 문화전략을 수립하게 했다.....루쉰은 전통을 ㅂㅣ판하는 동시에 오직 새로운 것만을 따르는 ‘신당‘도 격렬히 ㅂㅣ판했으며 줏대 없는 매판 또한 비판했다. 루쉰의 문화 비평에서 핵심은 사람들이 익숙해져서 장착된 보편적 신념과 도덕 배후에 있는 역사적 관계를 폭로하는 것ㅇㅔ 있다. ㅇㅣ것은 지배와 피지배, 통치와 비통치의 사회 모델과 떨어진 적이 없는 역사적 관계다. 34

카니발 언어는 독특한 역방향, 반대 방향, 전도의 논리를 따르고 위아래가 부단히 자리를 바꾸는 논리를 ㄸㅏ른다. 그리고 각종 형식의 극적 모방, 해학적 가색, 희롱, 폄하, 모독, 익상을 이용해 어떤 ㄷㅐ상에게 면류관을 씌우거나 박탈한다...바흐친은 민간 공연의 강렬한 감정 표현이 결코 단순한 부정이 아니고 그 속에 재생과 갱신이 있으며 저주를 통해 적을 사지에 몰아넣었다가 재생시키려는 바람, 세계와 자아 모두에 대한 부정을 담고 있음을 발견했다. 37

나는 지금까지도 분명히 기억한다. 고향에 있을 때 ‘하등인‘들과 함께 이 귀신이면서 사람이고 이성이면서 감정이며 무서우면서 사랑스러운 무상을 언제나 즐겁게 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떠오르는 울음과 웃음, 입에서 나오면 무뚝뚝한 말과 익살스런 말.....들을 감상했다.(작품 무상) 38

루쉰은 어떤 형식, 범위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와 억압도 거부했다. 민족의 억압, 계급의 억압,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 어린이에 ㄷㅐ한 노인의 억압, 지식의 억압, 약자에 ㄷㅐ한 강자의 억압, 개인에 대한 사회의 억압 등....루쉰에게선 인간의 내재성, 복잡성, 심층성에 대한 이해를 살피려해야 한다. 38-39

중국에는 지금까지 실패한 영웅이 적고 질긴 반항이 적고 단신으로 싸우는 무인이 적다. 반역자를 애도하는 조문객이 적다. ( 작품 이것과 저것 )
4000년 동안 사람을 잡아먹은 이력이 있는 나는 애초에는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똑똑히 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보기 어렵다. (작품 광인일기)
아아, 아아, 나는 싫다. 차라리 무지(몸 둘 데가 없는 곳)에서 방황하겠다.(작품 그림자의 고별)

이 혁명가의 형상에서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스스로 조소, 비판, 공격받는 대상 바깥에 서서 자신과 대상을 대립시키지 않고 본인을 그 대상의 일부로 귀결시켰다는 점이다. 따라서 부정되는 것은 이 세계의 일부 현상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이며 그의 반대자도 포함한다. 이것은 변동하는 세계다. 혁명가도 이 변동하는 세계의 일부다. 따라서 혁명가의 세상에 대한 공격-조소-비판은 반성적 성격을 띤다. 42

2.

누가 이 구불구불한 생에 주석을 달 수 있단 말인가


죽은 몸이 손톱을 밀어내는 힘으로 풀들이 자란다

고통보다, 통증보다 분명한 고독이 있을까
짙푸르게 자라나는 풀숲을 볼 때마다
털이 자라나는 집중된 느낌, 두렵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같은 밤의 풀숲으로 세차게 빗방울이 든다
기도 같고 통곡 같고 절규 같은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풀숲 어디, 누가 누워서 살을 녹이고 있을 것 같다.

영혼의 쌍둥이처럼 주검의 얼굴에
가만히 얼굴을 포개어보는 것은 검은 빗방울.

나는 그대가 말하지 않은 것을 듣고
눈을 감고야 그대를 본다

여름의 위대함이 곰팡이를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살아 있는 몸이 짜낸 눈물이 지상으로 스미듯
우리는 소속과 가입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을 이동시킨다.

3.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저 의사는 괜찮은 약들로 처방하겠다고 말하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다.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ㅇㅖ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ㄷㅐ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149


볕뉘

0. 어제 남겨둔 이현승시인의 시를 담는다. 생활이라는 생각이라는 시의 집은 고인이 된 구본주 조각가를 떠오르게 한다. 권고사직을 제안받은 김부장은 말한다 늙는다는 것 사실 맷집도 달리는 것이라고...바늘같은 비를 맞고 화산재를 덮어쓴 듯한 눈초리.........가 잠긴다. 어ㅉㅓ다 루쉰이 손 안에 다시 잡혔다. 몇몇 질문들에서 저자가 다케우치 요시미, 윤여일과 또 다른 시선으로 불러내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그가 끊임없이 잡아내려한 것은 생활에서 스러지는 것이나 치이는 것들이다. 늘 그 여분들은 없어질 수 없다. 한 삶의 편린은 그저 지나가는 것으로 치부하고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다 삶을 다 지운다. 루쉰이 경계한 것은 그런 것들이리라 일상의 일상....삶의 삶을 삶답게 ㅎㅏ지 못하는 것들은 다 아니라고 말이다. 어떤 좋은 사회라는 것은 정해진 것이 없다. 이런 삶의 씨라는 것이 있다면 다음 삶에서 버려지는 것들 목 잘리우는 시공간이 조금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긴 하지만 절망에 ㄱㅏ까운 희망이다.

1.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몇 편 읽다가 82년생 김지영을 펼쳤다. 며칠전에 본 후장사실주의스럽게 글을 쓴 줄은 몰랐다.가 중간쯤 넘어가면서 그래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읽은 한국은 싫어를 다소 낮게 평가를 한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최근 그 작가가 받은 상금으로 괜찮은 작품과 ㅂㅣ평으로 작가들을 다시 만나게 한다는 ㅅㅏ실을 자세히 들어 무척 ㅅㅔ심하고 진지한 인상을 되받았다. 문단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문화적 울림이 커졌으면 싶다.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고 싶어 지름신 ㄱㅣ운을 그냥 두었다. 공감보다 찔림이 많은 소설이다. 이미 중장년남성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지금의 처신들로 인해 죽ㅇㅓ나가는 식인의 문화는 가까운 곳으로부터 ㅇㅕ전할 것ㅇㅣ다.

2. 사유의 기준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다란 말과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형평의 그물에 걸린 자아로 다시 진척시켜가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라고 아주 자세하고 세심한 아니라고 함께 말할 수 있을까. 좋은 책들이 물밀듯이 쏟아지는 지금, 사회적 연민과 세세한 상상력이 그래도 ‘닫힌 나‘를 열어줄 수 있을까 ‘닫힌 세대의 사ㄹㅁ‘을 서로 영향을 ㅁㅣ칠 수 있을까. 일생일대의 상상뿐만 아니라 일생이대의 상상은 ㄱㅏ능할 수 있을까.


일생일대의 상상(이현승)-가령 이런 ㅅㅏㅇ상,/내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돼지 사료가 되고/돼지들이 내 쓰레기 손의 유리 조각을 삼키는// 가령 이런 말,/나는 인생에는 관심이 없지만 돈은 좀 많았으면 좋겠다같은,//선망이란 언제나 현실의 반대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라서/욕망이란 가질 수 없는 것을 ㅎㅑㅇ해 자라나는 손가락이라서/밤마다 이가 자라는 쥐처럼/손끝이 가렵다/가려워서 부끄럽다//세상엔 죄 안 지은 ㅈㅏ들이 더 많이 회개하고/그래서 ㄱㅏ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하고/상처 많은 사람들이 남의 고통에 더 아파한다./두개 남은 사과 조각을 향해 모여든/세개의 손처럼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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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다른 공식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266

                                                                                                                                                                   ‘이론은 늘 회색에 가깝다. 하지만 늘 적색에 가까이 가야 한다.‘

1. 지적인 공간의 지도그리기

좌파는 전략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나와 다른 사람들이 대중적이라고 부르는 것, 즉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자기가 사는 세계를 평가하고 계산하는 논리들과 접속하기 ㅇㅟ한 어떠한 ㅅㅣ도도 하지 않았다. 좌파는 어떤 대화의 개념,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이 자신의 실수를 발견하고 그들의 가정을 변혁하는 그런 ㄷㅐ화의 개념을 저버렸다. 대신 좌파는 단지 마차 속에서 편안하게 앉아, ㅈㅏ신들이 이미 일이 돌아가는 ㅅㅏ정을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에 차서 ㄷㅓ 많은 일을 ㅎㅏ려고 하지 않으면서, 계속 인식론적, 정치적,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계속 엘리트적이고 전위적인 정치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502

희망의 맥락 – 나는 정말로 저기에 도달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한 걸음 내디뎌서 그 한 걸음이 세계를 좀 더 낫게 만들기를 희망한다. 500 나는 우리의 임무는 희망을 ㅈㅐ구성하기 위한 가능성의 조건들을 창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524

상상력을 높이는 방법은 현재를 지우고 정신이 자유롭게 방랑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현재에 대한 당신의 이해를 높이는 것입니다. 현실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더 ㅈㅗㅎ은 상상을 할 가능성의 조건이다. 상상력은 경험적인 노동과 관련된다. 503

나는 존재론적인 것과 정동적인 것, 국면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보는 것이 핵심이다. 정동을 중간에 두는 것은 칸트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들뢰즈적인 의미에서 “매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자 하는 지점이다. 511

대중을 다시 생각하기-하나의 실험적인 정치로, 저항에 대한 만큼이나 스타일가 과정에 대한 것이기도 ㅎㅏ다. 단지 정치만이 아니라 살아감의 스타일과 과정이다. 512

오늘날의 매체는 지금 모욕이라는 느낌의 구조 또는 분위기라고 부르는 것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것이 대중적인 것의 절합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는 열쇠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 521

나는 항상 푸코, 들뢰즈, 가타리의 요소들과 그람시의 요소들을 한데 어우르는 방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527 나는 나의 설득의 힘이 로고스만큼이나 파토스를 통해서 나온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ㅅㅏ람들은 이성과 증거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지만, 열정 없이 그들이 지배할 수 있다거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528

당신은 어떻게 그런 관계들을 사는가 490 - 내가 정동을 만난 것은 레이먼드 윌리엄즈가 말하는 “느낌의 구조”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리처드 호가트가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것”과 ㄱㅏㅌ은 무엇이 알뛰세르의 이데올로기 ㄱㅐ념과 현존하는 ㄱㅕㅇ험 이론들이 포착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싶다..노먼 브라운과 공부하면서 프로이트를 읽었고, 이것은 라캉을 통해 배운 것보다 빌레름 ㄹㅏ이히의 해석에 훨씬 더 가깝다. 이후 프래그머티즘, 퍼스, 하이데거를 읽었고 알튀레르의 흐름 – 노골적으로 이성주의자이며, 노골적으로 재현주의적이고 “의미의 영역”이라고 부를 만한 협소한 개념에 묶여 있음을 발견했다. 이후 그람시를 중심으로 그람시 다시 읽기로 연결되었다......정동의 니체적 공간은 들뢰즈적 공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존재론적 공간이고, 정신분석학적 공간은 경험적 고ㅇ간이다.....나는 들뢰즈와 니체에게 실재의 존재론적 성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늘 부분적 형식의 효과성(정동)dㅔ 있었다.(존재론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 ㅅㅏ이의 절합들 493) 이 관심은 폴 리쾨르로부터 왔다. 484-490 우리가 ㅅㅏ는 삶의 방식을 구성하고 있는 기계적 장치 혹은 담론 체제는 무엇인가? 491

정서는 정동과 이데올로기의 절합이라는 생각을 ㄱㅏ지고 있다. 저ㅇ서란 어떤 저ㅇ동의 생산물들을 이해하려는 이데올로기적인 시도이다. 496

의미 있다거나 알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과, 그럼에도 살마ㄴ한 것 the livalble 사이의 간극이라는 것이 늘 존재한다는 생각이 모든 사유의 흥미로운 출발점이라 여긴다. 498 이상 로렌스 그로스버그 대담

2.

매개개념의 창조 -여기서 매개라 함은 주체/대상과 ㄱㅏㅌ은 이원성들 사이의 추정적 연결이 아니라 정동적 관계들의 “가운데 공간”을 설명하는 개념이다...주어진 경험의 ㄱㅜ체적인 상태를 ㅍㅛ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예를들면 약물을 복용한 어떠한 몸이 아니라, 서비스 ㅇㅣ용자와 정신활성약물의 마주침을 명명하는 ㄱㅐ념을 찾고자 한다. 이보다 ㄷㅓ 중요한 ㄱㅓㅅ은 매개 ㄱㅐ념이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 사이의 고리, 즉 현실화된 ㅈㅣ각이 변화를 ㅇㅟ해서 ‘다시 ㅈㅏㄱ용하는 ㄱㅓㅅ‘(자기실천)을 허용하는 ㅂㅏㅇ식을 가시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383-384

정신건강에 대한 스메일의 입장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의료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리적인 괴로움은 경제적, 정치적 힘의 합류지점에서 떠오르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다. 393

노동자들을 ㄷㅏㄴ지 기업문화의 우정 시스템으로만 묶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친화성‘이라는 보편적 환경에의 자동적인 참여를 통해 기업 문화로 묶는 프로그램이다. 이 ㄱㅣ업문화는 일반적 문화의 무대이며, 일반적인 사회성과 교류, 소통의 새로운 모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친절하거나 관대하거나, 한마디로 사교적일 필요가 ㅇㅓㅂㅅ다. 우리는 단지 사용자 친화적이기만 하면 되며, 이것은 곧 ㄱㅣ업적이 된다는 것이다. 421

오늘날의 노동자들에게는 핵심적인 정당한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이트 칼라 직종의 “사회적 윤리”라고 부르는 가치 체계이다...중간 계급의 정신 세계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암시한다. 성취감있는 삶을 산다는 예전 의미는 그 매력을 일부 잃었고, 사무실 문화의 예의와 격시ㄱ은 사람들이 ㅈㅏ기 일에서 찾는 본질적 의미가 부족하다는 것을 가려주지 못한다. 수동적인 공격성과 노골적인 적의는, 이미 창의적인 일터의 승리를 선언한 ㅇㅣㄹ반적인 관리 원칙에 저항하는 경계성 경고이다. 423

상호작용의 춤 – 어머니도 ㅁㅏ찬가지로 ㅇㅏ이의 인정을 갈망하며, 아이가 놀이에서 반응하면 성취감을 얻는다. 그러므로 어머니와 ㅇㅏ이 사이의 관계가 권력의 면에서 차등이 ㅇㅣㅆ음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 상대방을 인정하고 결국 자신도 인정받고자 ㅎㅏ는 욕구가 있다....파트너는 서로에게 잘 맞춰 주어서 하나로 움직이며, 정동으로 촉발된 것으로 보이는 상호 인정의 놀이를 ㅎㅏㄴ다. 437 관심이라는 ㅈㅓㅇ동적 뒷받침이 ㅇㅓㅂㅅ으면 뇌 조직이 파괴되는 만큼이나 지적 발달에 손상을 가져올 것이다. 438

감정이 인지적인 측면을 갖고 있고 오래 지속되며, 전 생애를 통해 지속적으로 촉발된다고 인식되는 반면, 정동은 일종의 신체적 현상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으로 흔히 여겨진다....정동은 인지를 ㄷㅗㅂ고 ㅎㅐㅇ동을 유발하면서 의식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신체적 ㄱㅣ억으로 축적된다.(올리버섹스 음악이 ㄷㅏ리감각 회복에 ㄱㅣ여) 440

자신이 되는 것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집중적으로 사회적인 과정이다. 449


3.

습관화된 무관심을 퍼지는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 ㄷㅐ안적인 삶의 윤리에 대한 실마리를 열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의 문제이다. 아마도 그건 것이 정도 이론의 ‘아직 아님‘의 ‘지금으로서의‘약속, 즉 그것의 습관적으로 리듬적인(또는 거의 리듬적인)일일 것이다. 말하자면 발화 공간의 뻗음이, 단지 증대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응결시켜 떨어뜨리는 상서로운 ㄱㅖ기를 발견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34

사호ㅣ이론가는 제도뿐 아니라 사랑.시.정의.단념.증오.욕망의 순간들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상생활(직장인보다도 직장으로 가는 통근자로서의 삶에서, ㄱㅡ리고 통근하는 동안 백일몽을 꾸는 자로서의 삶에서)이라는 신비롭지만 현실적인 영역 안에서 이러한 순간들이 힘 있는 동시에 무력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순간들이 인식이 된다면 사회 질서의 완전히 새로운 요구들을 위한 기초를 형성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직장에 통근하면서 하는 생각들은 대주ㅇ교통 ㅊㅔ계나 보상 체계에 의해 만족되는 게 아니기 ㄸㅐ문이다. 문제는 아무도 그런 순간들에 ㄷㅐ해 ㅇㅣ야기 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47

볕뉘 1. 르페브르는 일상생활의 혁명이란 책을 썼다. 그 책을 읽을 때는 이런 ㅇㅣ론적인 배경을 생각하지 못했다. 아나키스트의 흐름정도만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 이론이라면 거꾸로 거슬러오라가 그 매듭을 다시 한번 펼쳐보는 것이 좋겠다 싶다. 이런 이론 ㄱㅣ반을 가져온다면 레이먼즈 윌리엄즈를 피ㄹ히 ㅂㅜㄹ러내야한다.

욕망의 ㄷㅐ상을 한 다발의 약속들이란 말로 바꿔 생각하면 우리의 애착들 속에 있는 비일관적이거나 불가사의한 측면들을 우리의 비합리성의 표시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대상 속에 머문다‘라고 느기는 ㄱㅓㅅ에 ㄷㅐ한 설명으로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대상에 근접함이 그 대상이 약속하는 한 ㄷㅏ발의 일들, 그 중 어떤 것은 우리에게 선명히 다가오고 어떤 것은 그다지 선명하지 않은그 일들에 근접함을 의미한다는 ㅈㅓㅁ에서 말이다.161

잔혹한 낙관주의는 시레로 체험되는 ㅇㅟ급함의 양식을 가리키는 ㄱㅐ념이다. 그것은 ㅇㅙ ㅅㅏ람들이 멜빌의 바틀비가 ㅇㅏ니지, 왜 사람들은 갖가지 ㅂㅣ참한 처지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ㅇㅏㄴㅎ으며 대신 그들에게 익숙한 애착 체계를 영위하면서 이와 함께 삶을 축소하는 쪽을 선택하는지, 달리 말해 딱히 패배하고는 ㅎㅏㄹ 수 어ㅂㅅ는 ㅅㅏㅇ호성이나 화합, 단념의 ㄱㅘㄴ계를 고수하기를 선택하는지 등에 ㄷㅐ한 이유를 생각하면서부터 자라나는 ㄱㅐ념이다. 170

‘신ㄱㅣ루로 경계선을 발라놓았네/빛으로 그리고 빛이 지닌 끝없는 수줍음으로’(투명문양) 172

오웰의 글에서는 에토스가 끔찍한 원수인 것처럼, 그 안에 머물 순 있지만 빠져나올 수는 ㅇㅓㅂㅅ는 감옥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오웰의 주장의 근거이다. 그렇지만 그의 실제 ㅅㅏㄹㅁ과 작업은 다르게 이야기한다. 바로 삶 속에서의 실험을 통한 에토스의 ㅈㅓㄴ환이다. 여기서 ㅈㅓㅇ치는 겨ㅇ험에 의한 교육의 한 ㅎㅕㅇ태이며, 당신의 에토스 ㅇㅏㄴ에 불편하게 자리하고 ㅇㅣㅆ는새로운 감각의 세계에 끊임없이 당신의 감각중추를 굴복시키는 ㄱㅓㅅ이다. 여기에 ㅎㅢ망이 있다. 사회미학은 에토스와 아비투스가 보수적인 성격뿐 ㅇㅏ니라 변동 ㄱㅏ능성 및 역동성 또한 ㄱㅏ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ㅇㅣㅆ다.....우리가 ㄱㅏ진 ‘정동의 ㅂㅓㅁ위‘가 뿌리 ㄱㅣㅍ은 교육의 겨ㄹ과라면, ㅈㅓㅇ동의 ㅈㅓㅇ치가 ㄱㅗㅇ동체의 ㅁㅣ학의 ㅇㅕㅇ역을 확장하기 위해선 대하ㅇ적인 정도 교육을 옹호해야 할 ㄱㅓㅅ이라는 저ㅁ이다. 234-235

리토르넬로 ritournelle. 교향곡에서의 반복구를 말한다. 반복되면서 변화를 ㄱㅏ져온다. 가타리는 리토르넬로를 실존적 정동들을 결정화하는 반복적인 연속체라고 하였다. 이 반복구는 소리차원, 감정 ㅊㅏ원, 얼굴 차원 등을 ㅈㅣ니고 있으며, 끊임없이 서로 침윤해 간다. 시간의 결정들을 퍼뜨리는 리듬이라고 할 수 있겠다. 237 리토르넬로는 정동적인 것을 ‘실존적 ㅇㅕㅇ토‘로 구조화한다. 만약 정동이 강도라면, 리토르넬로는 “순환하여 되돌아온” 정도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237

볕뉘 2. 감정차원, 얼굴차원이 있다는 소리가 마음을 끈다. 어찌하다보니 또 다시 가타리로 돌아온다.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난 것들이 많은가 보다.

리토르넬로가 ㅈㅓㅇ동적 힘을 재편성하는 데는 기호 체계와 표현의 ㄱㅣ존 범위, “이미 분류된” 것들을 “분자적으로 파괴”할 것을 요구한다....이러한 정동적 강도는 변형과 ㅅㅐ로운 삶의 방식을 위해 담론의 질서를 송두리째 엎어 버릴 수 있다....공격은 말 그대로, 영토와 함께 온다. 그러나 ㅁㅓㄴ저 ㅇㅕㅇ토, ㅈㅡㄱ 영토의 표현적인 기반이 형성되어야 ㅎㅏㄴ다. 형성된 후에도, 영토들은 항상 허물어진다....느낌은 감정을 ㄱㅏ로지르며 재배치하는 ㅅㅐㅇ각들이 복잡하게 꼬인 시ㄹ 뭉치이다.....정동은 ㄷㅏ시금 끊임없는 변주 속에서 “전이”하며, ㅎㅏ나의 상태라기보다는 계속해서 “한 ㅅㅏㅇ태에서 다른 ㅅㅏㅇ태로 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거시 정치와 ㅁㅣ시 ㅈㅓㅇ치를 바ㄷ치는 ㅈㅣ렛대이다....가타리에게 정동이 전부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로의 미학적인 접근이 대두하는데, 이는 곧 ㄱㅏ타리가 감각작용과 창조 ㅁㅗ두를 가장 중요한 거ㅅ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주체성의 다수성을 가능하게 ㅎㅐ준다...가타리가 ㅅㅏ회적 실천 속에서 정동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의 실천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이다.가타리는 “윤리-미학적 패러다임”dㅡ로 정동을 받아들인다.. 238-241

마수미는 정동이 “세계를 결합시키는 보이지 않는, 횡단 ㅅㅏㅇ황적인 접착제”라고 말한다. 가타리에 의하면, “정동은 ㅈㅜ체성에 달라붙는다. 그것은 접착 물질이다” 정동은 ‘듣는 자‘에게 만큼이나 ‘말하는자‘에게도 ‘달라붙으며‘, 공감 속에, 욕망 속에, ㅇㅣㄹ반적인 ‘ㅈㅓㅇ동의 전이적 특성‘안에 박혀 있다. 이로 이ㄴ해, 복합적이며 개방된 정동적 지식이 “다극성의 정동적 구성”속에서 ㄸㅓ오른다. 265

생동권력 혹은 생체 권력이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정동의 전송, 운동, 균열, 반향이다. 이러한 권력 형태들은 정동의 ㅎㅣㅁ을 저지하거나 지시하는 게 아니라, ㅈㅓㅇ동의 힘과 결합하여 작용하면서, ㅅㅣㄴ체가 ㄱㅜ성체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물질적-정동적 과정을 강화하고, 다수화하고, 스며들게 한다. 270

인간을 개별 유기체로 보는 관념에 드러난 유한한 총체성이나 본질로 생각되기보다는, 가능성들을 감싸고 있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비주관적 힘으로 출현한다. 이것은 또 브라이언 마수미가 정동을 활력적인 차원 내지 ‘능력‘으로 정의하는 반면, ㅈㅓㅇ서란 ㄱㅏ능태의 ‘잠재적 공존‘으로부터 ㄱㅣ억,경험,사고, 습관에 ㄱㅣ반하여 정동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하거나 표현한 것으로 정의했던 관점이기도 ㅎㅏ다. 307

비록 정동을 이해하는 이러한 두 가지의 광범위한 방식이 매우 ㄷㅏ른 철학적 전제에서 시작된 것이긴 ㅎㅏ지만, 서구 합리성 비판의 궤적에 따라 인간을 다시 생각하는 지적인 프로젝트의 ㅈㅜㅇ심이라는 점에서 이 둘은 다 중요해보인다. 308

정동을 타고난 것으로 볼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볼지, 정동과 인지, 정서, 감정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ㅎㅏㄹ지, 이러한 결정이 이론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어떤 함의를 ㄱㅏ지는지에 ㄷㅐ해 일치된 바가 거의 없다...이는 ㅈㅓㅇ동이론에 ㄷㅐ한 사고의 총체와 ㄱㅕ루어야 ㅎㅏ기 때문이고, 또한 분과학문들 사이나 심지어 그 내부에서도 공통분모 없는 불일치와 겨루어야 ㅎㅏ기 ㄸㅐ문이다. 309

볕뉘 3. 어쨌든 서구 합리성 비판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 ㅅㅏ유의 비교를 통해 실사구시하는 입장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또 하나하나의 분석하는 사고는 전체를 볼 수 없게 만들기에 거꾸로 거스르는 ㅅㅏ고는 결과물에 대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결국 구조와 내용에 도달하겠지만, 다른 ㅅㅏ유가 낳은 결과물을 보면서 다시 한번 드러나는 ㅎㅓ점을 되짚어봐야 할 것 ㄱㅏㅌ다.


담론적 실천에 의해 제공된 주체의 입장들에 대한 분석이, 결국엔 원래 포착하려고 의도했던 바로 그 역동성을 없애 버린다는 것이다. 주체성을 기호의 장 안에서 다소 명백히 ㄱㅠ정된 입장으로 이해하게 되면, 모든 흐름과 변신이 사라지게 된다. 신체 또한 ‘안으로부터‘ 이해된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담론이 새겨지는 표면으로 보이게 된다. “입장”이라는 개념은 그림에서 운동을 제거함으로써 생긴다. 371


정동적 탈출의 지속성이 언어로 옮겨질 때, 그것은 긍정적 함축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활력을 지각하는 것, 살아 있음의 감각, 변화 가능성을 지각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380 마수미가 신경학적 “0.5초의 차이”에 대한 논의에서 언급하듯, 이것은 우리가 적절히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뛰어넘어 “느낄”수 있음을 의미한다. 380

볕뉘 4. 초중반 번역의 문제인지 논문의 수준 문제인지 다소 버겁거나 지루한 감이 많았다. 과연 다 읽어내야 하는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오히려 처음에 갈무리한 원로와 대담으로부터 먼저 읽기를 시작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저자 별로 기복이 크다. 중간 교육학 비고츠키에 대한 언급도 많고 교사와 학생 상호인정하는 과정으로서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이 개념에 가까이 갈 수 있을 듯하다. 라이히, 그람시, 가타리 등을 다시 불러내고, 들뢰즈 역시 근대성을 추구하는 철학자로 읽는 면이 새롭다. 여기에서도 전체성에 대한 이해와 노력을 중시한다. 정동만으로 보고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맥락을 먼저 사유할 것을 요청한다. 스피노자로부터 시작하는 흐름들을 다시 읽어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물질과 기억의 베르그송을 이해하는 길이 거꾸로 여기에 있기도 한 것 같다.

볕뉘 5. 다소 장황하지만 학교 왕따의 문제를 갈기갈기 분리해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모욕의 재생산으로 다시 보려는 노력과 사유의 연습이 또 다른 관점을 낳을 수 있는 것처럼 조금 쉽게 생각해보자. 모든 것을 알고 꿰맞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현실을 낫게 알고 느끼고,그 느낌에 연동된 총체에 대한 관심이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1980년대 중반으로 이론의 흐름, 연원은 거슬러 올라간다. 스친 앎들을 또 색다르게 엮을 필요성을 느낀다. 한해가 저물었다. 삶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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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2-31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파가 공격하는 보수만큼 좌파들도 엘리트성에 갇히는 아이러니는 구소련의 관료주의가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붕괴의 요인이 되고... 개인의 영달과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 심리 때문에 보수화-엘리트성은 같은 카테고리에 묶이는 듯.

상상력에 대한 표현 정말 동감. 현실을 직시하고 이해하지 않은 채 그 속에서만 동력을 구하려 하면 자체 붕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다다이즘이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예술적 힘을 저도 좋아하지만 스스로를 가두는 한계는 있었다 생각합니다.

읽고 싶던 책이었는데 자세한 소개 감사합니다^^

여울님, 올한해 많이 힘드셨던 거 같은데, 2017년엔 한결 맘이 풍요로워지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건강하시고요^^

2016-12-31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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