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르트 제조기를 사들인다.  500ml 우유를 조금 덜어내고 요구르트 하나를 넣고 골고루 섞은 뒤 자고 일어나는 시간 뒤에 일터에 가져와 냉장보관한 뒤 맛을 본다. 먹을 만 하다.


1. 면역 -  <<면역의 힘>>은 장내 미생물과 운동(근육/력)에 대한 부분을 봤다. 색다른 부분은 크게 없었지만 림프액의 양(15리터)과 역할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운동에 대한 장도 과유불급이라는 지적도 살펴볼 만하다. 활력을 유지하는 일. 아니 생기가 도는 일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싶다.


2. 비건 - <<물결>이라는 잡지 창간호의 서문을 본다. 격문을 본지 얼마던가. 비장미가 감돌기도 하는 글. 날선 글이 잘못하면 갇힐 수 있는 여백도 고스란히 남기고 있다. 다른 편의 글들은 좀더 마음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읽어 보려한다.  


3. 제3세계 - <<세여자>>가 우리의 백년이라면, 지금 읽고 있는 <<앨버트 o. 허스먼>>은 유럽과 서구의 백년이라는 관점에서 읽고 있다. 그런면에서 비동맹 독본은 이를 지탱하거나 빠져나간 역사들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일년의 시작을 역사로 연다 싶다.



볕뉘. 


빈 플라스틱을 보면 애처롭기도 하고 스스로 한심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빈봉지에 주워 담으며 매번 비슷한 자괴감에 든다. 또 줄인다는 핑계로 연신 택배로 오는 작은 상자나 비닐류 역시 다를 것이 없다. 그냥 동네 작은 시장에서 천원 이천원 장바구니에 담아오는 것이 괜찮겠다고 여겨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구 말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를 보면 작금의 시대를 인류세나 자본세로 것이 아니라 닭뼈의 시대로 본다. 구석구석 그 잔뼈들은 어디서든지 발굴될 것이라구 지금을 상기시킨다. 


선언이라는 것은 늘 미리 가는 것이니 천천히 가보는 참을성을 놓치면 많은 것을 보지도 못하며 잃을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래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일상의 나침반을 놓는다하고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불우의 시절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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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를 확 섞어버려야..." 



세여자 2권은 1939년 경성부터 해방, 친탁반탁, 한국전쟁, 북한의 남로당파, 소련파, 연안파 숙청까지 조선공산당의 역사를 축으로 정숙이 사망한 1991년의 흔적까지 살펴볼 수 있다. 1990년 한소수교이후에야 많은 자료들이 개방되었고  비비안나 박의 방문으로 주세죽의 유배사실도 밝혀졌다 한다. 주세죽은 2007년에서야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게 된다. 대신 훈장은 받은 그녀도 6년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한다.


1. 봄 - 저자는 소제목으로 20세기의 봄이라고 적어두었다. 20세기. 그리고 봄이다.라고. 백년전 출발한 청춘들의 삶의 이력이라고 보다는 우리 아픈 역사를 품에 안는 것 같아 더 가슴이 아프다. 어느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다기한 상황과 삶들은 여전히 진행중인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왜 봄이라고 했을까. 


2. 횡단열차 - 타고싶다. 그저 끊임없이 펼쳐지는 평원이나 평화로운 모습들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열차는 느릿느릿 사과나무의 발원지 카자흐스탄. 그 안의 크질오르다를 거쳐 우랄산맥의 역들과 모스크바. 그러다가 다시 우랄산맥을 넘어 끝도 없는 시베리아로 읽고 느낀 사연들을 배고 베이면서 갈 것같다. 온전한 여행은 되지 못할 것이다. 관광은 더 더구나. 



3. 미세 - 먼지. 플라스틱. 균. 20세기는 전쟁의 시대였고, 여전히 21세기도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어쩌면 또 다른 전쟁을 치루고 있다. 비만과 우울. 건강과 삶의 질은 원인도 모른 채 더 많은 희생을 치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자력이든 반도체든 가습제든 편리와 편이는 과학의 이름으로 찾아와서 그렇게 만들어진 사물은 여러 형태로 오염원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난 뒤에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그 원인이 찾아지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새롭지 않다는 사실들을 염두에 둘 때만 조금 비껴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볕뉘. 


1. 그랬으면 좋겠다. 좌우라는 것이 허울이고 섞여버렸으면 좋겠다 싶다. 용서가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좌나 우로 나눌 수 없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러니 그 말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섞일 수는 없는 것이고, 설령 섞인다면 더욱 다양해지는 것이고 달라져야 하는 것이겠다 싶다. 그리고 달라진다는 것이 서로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의 온도가 올라가게 하는 일이 우선 일 것이다.  


2. 정치란 무엇일까, 권력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무엇일까, 목숨을 경각에 달리게 한다는 것은 어떻게 봐야하나, 역사와 사람, 권력을 보는 태도, 시대를 보는 안목들로 서로 벼르지 않는다면, 조직이 만든 목적에 늘 경도될 것이다. 권력을 탐하고 권력의 사생아들만 영웅이란 이름으로 나타나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역시 소모품으로 쓰일 것이며 사물에 대한, 삶에 대한 태도 , 윤리는 어느 구석도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없다. 


3. 정치는 어쩌면 한 번도 우리를 목적으로 가진 적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정치는 그들의 목적만으로 그들의 시간만 가지고 흘러갔고 우리를 늘 수단으로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정치는 홀로 똑똑해질 수 없는 사물이다. 20세기, 21세기. 백년은 지극히 짧은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복기를 한다면 또 다른 가능성과 길은 있을까. 그 많은 갈래길이 새롭게 자라는 뿌리로서 자랄 수 있을까. 우리의 삶들이 아둔한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희생되지 않으면서... ... 또 다른 이름없는 생명들의 삶을 담보삼지 않는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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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봐야 너만 더 힘들어져/ 백날 해봐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복지 얘기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야


TV 시청 하지 않은 지가 오래된다.  손석희 복귀 소문이 들려 일부 시청했다. 첫회에 수사-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이견을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 아 이런 합의가 가능한가 의아하기도 했다. 어제도 두 번째 좌담을 이어갔나보다. 혹시나 했는데 토론을 진행중이었다. 부동산에 대한 이재명-원희룡 토론 말미 부분을 보았다. 합의한 원칙을 지키는 것도 못하는 현실에 대한 강변이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어렵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가능한가 싶지만, 어쩌면 십여년, 오년전을 돌이켜봐도 많은 진전이 있다 싶다. 보수는 위의 전략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 기본적인 전략자체가 민주주의도, 자유도 부정하는 아이러니를 함유하고 있다. 그 절망의 바닥이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늘 유효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저자가 진보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 역시 한쌍의 또 다른 극으로서 똑 같은 기능을 해왔다는 것이다. 진보-보수의 구도 자체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좌-우가 아니라 상하-하상에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정보를 통해 수정할 용의가 없는 집단들이 늘 힘을 더 많이 갖고 행사하고 있다. 


결국 어느 집단도 완전한 패권을 쥘 수 없다. 다원주의의 가능성이 그 부분한 부분들을 채워나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걸 뚫고가는 정치인들이 없고, 뚫고 나가는 사회단체나 정당세력이 없다는 것이 비극인 듯 싶다. 헤쳐나갈 일들뿐만 아니라 논쟁해나갈 꺼리들이 그토록 많은 것 같은데 합의에 바탕을 둔 덧셈의 정치를 제도권 내에서 보기 어렵다. 구태 역시 쥔 것을 놓치 않으려는 아둔한 유아의 땡깡같아 보이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유난히 정치의 이분법 구도는 강하고 한 걸음 더 나갈 수 없게 만든다 싶다. 깨시민들도 흡인하고 만들어갈 수 없는 덫을 놓은 듯 말이다.


 볕뉘. 저자의 책 가운데 사둔 것이 있었고, 중고 매장에서 산,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것도 다른 조직과도 연관된 것이다. 질문의 수준이 질문자의 시야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 너머에 가 있지 않는 이상, 정치는 늘 옛날 질문만 가지고 살 것이다. 그러지 못하게 다른 질문들을 갖고 사는 이가 점점 늘어야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 다른 저작들도 챙겨봐야지 싶다. 조효제 교수는 이 와중에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글들을 쓰셨다. 


반동: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진보: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반동: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반동: 계획된 행동은 사회 질서의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바꾸려 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무용하다.
진보: 계획된 행동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강력한 역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거기에 맞서는 것은 아주 쓸데없는 짓이다. - P226

플로베르는 한때, 만물이 순수 물질 아니면 순수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대립적인 두 철학 사조를 공격하기 위해 훌륭한 구절을 만들어 냈다. 그러한 단언들은 ‘두 개의 똑같은 불합리‘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 P227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진지성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그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의분에는 강하지만 풍자에는 약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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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노트 - 한달에 한번하는 유일한 모임인데, 올해는 온라인으로 몇 번, 대면 한 두번으로 마감하고 만다. 온라인으로는 한번 참여하고, 그 다음에는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싶어 불참하였다. 오프와 온라인의 차이는 너무 크다 싶다. 지금은 또 갈림길이다. 가까이에 지내면서 오프만남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없다니, 온라인으로 만날 확률이 큰 이상, 자리를 고집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스민다. 

 

2. 화실 - 각자 그림을 그리는 이상, 커피 마시는 외에 접촉을 최소화하자는 선생님의 연락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지 않아도 책과 일터 마무리 일 때문에 일주일남짓 나가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책을 깊이 읽고 싶은 마음도 배이고, 한달 남짓 쉬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어정쩡하게 마음이 이렇게 헤매인다.

 

3. 판화 - 전시 마무리 영상을 오지 못한 샘에게 보낸다. 목판화에 유성잉크 작업으로 보였던 모양인지 맞느냐는 연락이다. 고무판화에 수성이라고 하자 무척 독특하다고 한다.

 

 

4. 페이스북 - 양쪽이란 것으로 구분될 수도 없지만, 사람들의 확증편향은 쉽사리 사라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건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해서, 끝까지 명분을 잡아내려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하물며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더 사태는 커지는 것은 아닌가. 역으로 증명해내려고 말이다. 그게 인간이다. 정치는 게임으로 전락했고, 일상은 풍부하게 만들어지지 않고, 민주주의는 서로 할 말을 잃고 마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분기점이 있다면 빚지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사건으로 더욱 다양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정치가 잘했다면, 언론이 잘했다면, 검경판이 잘했다면, 다 더 성숙한 판단자라면 시간 속에 자신에게 맞는 것만 골라내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다른 것. 뭔가 보지 못한 것은 없는가 하고 자신의 유책 사유를 가다듬어 볼 것이다.  현 국면은 너무 안타깝기도 하다.  다이나믹 코리아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뭔가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라보기에 호흡하기도 쉽지 않다 싶다.


5. 상수 - 영화 <<밤의 해변에서...>> << ...그때는 틀리다>>를 본다. 솔직하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할 이유라든가. 뭐 그 날선 자리들이 많이 잊혀졌다 싶다. 사람은 본디 이중적이거나 다중적이다. 다들 똑같애. 하지만 인간은 다른게 있다. 다중적이란 걸 인정하는 순간. 아니 그게 있어 사람이다. 아니 그제서야 제3자가 다른 인간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을까. 나-너의 악순환. 어쩌면 사랑이나 책이란 텍스트를 번거롭게 반추하는 것. 또 다른 해석의 실마리. 같은 착각은 줄이는 게 좋겠다. 영화다. 일상이 상수가 되어야 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당분간 쉬어주어야겠다 싶다. 화실 샘에게도 이야기하고, 페이스북도 그만하고, 책도 나누지는 못하고 원하는 만큼 읽기만 해서 넘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러단체 후원을 오늘자로 했다. 하지만 전년에 비해 많이 줄였다. 아쉽다 싶다. 그래도 더 열심히 숙고하면서 활동하시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날이 포근해서 봄날이다 싶다. 그래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야. 부재하는 신은 다가설 줄 아는가. 신은 참 내 안에 있다지..고집부리지 않고 확증편향이 아니라 의심다양할 줄 아는...그래서 더 달라지는....횡설해본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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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1-0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영화 좋아하세요 ^^
고무판화에 수성이군요. 독특한 느낌이에요.

여울 2021-01-01 21:18   좋아요 0 | URL
그렇진 않구요. 몰아서 보는 편이라서 ㆍㆍ감사해요
 

‘가난과 비‘

빗소리에 깨다. 너를 반겨도 너를 맞고 싶지는 않구나. 그랬다. 네가 중력 같아서 너만 발라낼 수 없다고 말야. 그래. 네게 그림자처럼 잠겨 있으면 온통 긴장투성이지. 과잉각성상태*라구. 그래서 달디단 음식들과 술과 약에 절어 살 수도 있어. 내탓네탓도 같이 버무려져 있어. 어항을 들려다 보기만 하거나 나만 잘한다고 빠져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니란거야.좌우우좌의 문제가 아니란거야. 상하 하상은 늘 지금으로 튀어나오는 거지. 앞으로 잘해보겠다거나 관리하겠다거나 너만 잘하면 돼. 그런 갈래가 아니란 거야.

비가 와. 아주 많이 오고 있어. 단 한아이라도 그 스트레스의 늪에서 꺼내는 일. 삶의 비를 조금은 덜 맞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지. 그래 당장 고개가 꺾이거나 말라비틀어지는 식물에게 단비같은 정치행정경제**사회운화심리과학기술예술같은 것이 답이겠지. 지금이야. 그런 게 어디있냐고 묻지. 그런데 한결같이 답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야.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그리고 나이가 들어. 이건 중요하지 않아. 오늘도 우울하고 아프고 일자리를 잃고 빚이 늘어나고 월세를 옮겨야 하는 사람들과 이런 부모의 긴장을 오롯이 받아내야 하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늘고 있단 사실이 더.

알맞은 비. 알맞은 삶. 누릴 수 있는 반려 식물과 동물보다 더 필요해.

*《가난 사파리》
**《좋은 경제학》

볕뉘.

밑줄을 긋고 옮기고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손쓰는 작업만 한다. 읽지 않고...물구나무서서 사진 찍어보기 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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