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법칙 민음사 모던 클래식 35
러셀 뱅크스 지음, 안명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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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을 보는 와중에서도 밥 먹으면서, 버스 타면서 꼬박꼬박 몇 페이지씩 넘겨준 책이다. 다음 시험때까지 어느정도 기간이 남아있는 오늘 제대로 주행해서 겨우겨우 책을 다 읽었다. 이 후기도 사실은 학원까지 빼먹은 채 쓰는 중이다. 다른 사정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열성을 보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실 본인은 소년의 모험기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이 책의 전반적인 전개가 특히 맘에 들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처럼 감성이 섬세한 이야기와는 또 다른 맛이다. 이야기의 장소가 미국으로 바뀌던 자메이카로 바뀌던 차갑고 신랄한 분위기가 전반적이다. 본은 자신의 불행한 이야기를 어깨 한 번 으쓱하고, 쿨하게 털어놓듯 이야기하고 있다. 자메이카에서 아편 팔다가 총 맞아 죽은 본의 정신적 지주 이야기가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국가의 차이일까? 뭐 두꺼웠긴 했지만 사실상 이 전에 <B급 좌파>라는 두꺼운 비소설책을 보기도 했고, 역시 어마어마한 양의 비소설책인 <히틀러>를 보기도 한 탓에 이 책을 넘기는 일은 더없이 수월했다. (사실상 끝까지 못 읽을 것 같아서 연체상태로 내버려두고 나중에 다시 집기로 했지만...) 

 원제는 주인공이 스스로 설정한 자신의 이름, 본을 토대로 했다. 바로 '본의 법칙'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너무나 어린 탓에,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하나도 없는 탓에(...) '본의 법칙'이라고 할 만한 내용은 중후반까지도 등장하질 않는다. 친구와 살았던 집을 모조리 파괴해버리는 본의 모습은 물론, 자메이카에서 마리화나를 수확하는 이야기마저도 어쩐지 처절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이 살던 곳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그 곳을 떠나지만, 다른 나라에서조차 백인이라는 이유로 경계를 당하는 것이다. 본은 자메이카에서 매우 행복했다고 말하지만, 이 곳에서든 저 곳에서든 자신의 자아를 찾지 못하는 상황은 결국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자아를 찾아내기 위해서 나름대로 머리를 쓰면서 노력한다. 러셀 뱅크스라는 작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쩐지 자신의 떠돌이 생활을 본의 생활 속에서 그대로 담아낸 느낌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생생한 이야기와 독특한(?) 대처방법을 담담히 털어낼 수 없을 테니까. 남의 이야기를 하는 어투보다는 왠지 '모든 게 지나갔다'라는 식의 담담한 어투였다. 그 점이 나를 특히 감동시켰다. 

 비록 본의 성적 성장기는 여자로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전개였다만, 언제나 소년의 모험담은 재미있다. 그것이 올리버이든, 찰스이던, 홀든이던간에 말이다. 아마도 그 작품 속에서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그들의 눈이 언제나 별처럼 세상을 비추며 어른들이 감추려는 추태를 파헤치고서는 저희들끼리 킬킬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본 같은 아이들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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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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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에코페미니즘 토의를 할 때, 시위를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다. 본인은 그녀가 하는 말에 사사건건 비판하려는 심술굳은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다행히도 사회자를 맡으신 분이 온화하게 말을 잘 하시는 분이라 어떻게든 그녀에게서 그 이유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요지는 자신이 다니던 사립고등학교가 집단의식을 끔찍히 강조하는 곳이었던지라,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닌 그녀는 결국 '집단'과 '우리'라는 말에 알레르기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나는 금방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언제나 '우리'라는 말이 있으면 '남'이라는 말이 있게 마련이다. 적이 없으면 내분이 일어나지만, 적이 생기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살기 위해 똘똘 뭉치고 저항하는 게 인간이다. 너무 부정적으로 말했나? 이 책의 어떤 대사를 읽고나서 본인은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시련에 대처하는 민중의 태도는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점이 있나 보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은 그 자리에서 누울 뿐, 뿌리뽑히지 않는다. 로사처럼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고, 제이크처럼 짜릿한 흥분과 재미를 느끼기도 하면서. 때려눕히려 하는 바람이 없으면 풀은 그저 땅 위에 서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 그저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서있는 '행동'보다 더 지루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이 책은 기이한 마력을 일으킨다. 분명 심각한 사태를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천진난만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아이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소 딱딱한 객관적 서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제이크의 이야기는 더욱 극단적이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여의고 학교까지 다니지 못했지만, 결국엔 로사의 소원대로 행복해진다. 그렇다고 해피엔딩이 이 소설에 전반적으로 풍기는 핑크빛의 근본적 정체라는 뜻은 아니다. 이 소설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시위배경 또한 알 수 없는 낙천적 분위기에 한 몫한다. 말도 국적도 다른 노동자들이 넓다란 광장에서 한 데 모여 시위를 벌이고, 행진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글을 쓸 줄 아는 어린 여자아이 로사가 또박또박 쓴 글이 널리 화자된다. 인생엔 빵도 필요하지만 장미도 필요하다. 예수님도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가족간의 사랑, 지친 몸을 쉬게 해주는 깨끗한 집의 환경 등도 사람이 사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정신없이 일해서 밥 먹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습관처럼 출근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은 저어기 북한이나 남아시아에 널린 기아상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면 그들보다 못할 수도 있다.) 쌀 소비 촉진에 돈을 쏟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지예산은 국민들이 '장미'를 얻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멋대로 복지예산을 삭감하여 장애인들과 노약자들의 꿈을 앗아가는 행위는 파렴치하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복지예산을 지키기 위해 촛불시위 때보다 더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운 시위를 할 날이 오리라. 본인은 조용히 분노하면서, 그 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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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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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과제때문에 이 책을 보았지만, 책을 직접 보니 정말 버지니아 울프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작가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에 일일히 이름을 다는 꼼꼼한 성격을 드러낸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을 소개하는 친절한 나레이션 따위는 없다.
 그나마 간간히 써있는 인물묘사는 모호하고 불친절하다.
 독자들이 직접 인물들의 의식 속에서 단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친절하게 묘사된 경우는 렘지부인 정도?
 양성론을 부흥시켰다는 작가의 업적을 드러내듯, 이 소설에서는 페미니즘적 성격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괴팍한 성격의 렘지 씨와 그를 차분하게 돌보는 렘지 부인을 묘사할 뿐이다.
 그리고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직업에서의 성취나 돈을 많이 버는 데 집착하지는 않겠구나 생각했다.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의지가 되어주고, 모든 사람을 도와주면서 사랑을 받는 렘지부인을 부러워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아무튼 짧은 내용이지만, 그녀의 소설 속 평온한 장면마저도 왠지 섬뜩한 기운이 풍겨졌다.
 마치 알지 않는 게 더 나을 듯한 그녀의 사생활을 들춰보는 기분, 그 꺼림찍함이란!  

 그래서 이 책을 넘기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나보다.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소설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과 함께 원서로 두고두고 읽어봐야겠다. 

 P.S 별 세개를 주었다고 해서 그녀의 명성을 깎으려는 의도는 아니다. 단지 불친절한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일단 그녀가 소설을 쓰는 패턴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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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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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생태학적 결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이 책을 펼쳐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요즘 '생태'라는 단어가 대유행하니까 생태학에 대한 지식을 좀 자랑하려고 책을 펼친 독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특히 정숙한 분들은 이 책을 덮고 후기조차 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말이 틀린가?
 아무튼 이 책은 이 미터가 넘는 비단뱀을 기른다는 것 자체로 약간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며, 이야기는 점점 끔찍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 블로그를 대충 훑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본인은 그런 이야기를 상당히 좋아한다.
 생태학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내 취향을 발견한 꼴이지만 아무튼 의외의 수확이었다.
 철저히 미친 주인공을 중심으로 1인칭의 이야기가 전개되서 이야기가 정신없이 전개되지만, 동시에 특유의 기묘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정말 제대로 미친 사람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 소설에서 아주 큰 외로움을 느꼈다. 꼴사납게 눈물까지 글썽대면서 보았다.
 정말 우리 세상은 왜 이렇게 인간관계가 차단되어 있는지.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자가 그를 받아들이던 받아들이지 않던 그는 여전히 미쳤을 테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도 주인공을 사랑하고 그에게 따스하게 대해줬더라면 조금이라도 운명은 바뀌지 않았을까?
 그로칼랭은 그저 묵묵하게 자기 자신을 휘감은 채 나무 위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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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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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양성성이 트랜드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아무래도 본인은 물건 안 달린 여성의 눈길로 이 책을 보려 하니 양해바란다. 글을 쓰기 전에 미리 밝혀두는게 좀 더 후련하게 글을 쓰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적어본다. 굳이 이 책을 쓴 닉 케이브의 음악성향을 찾아보려 뒤적거리지 않아도 쉽게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비록 아내의 죽음 때문에 살짝 맛이 가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처음엔 부담가는 아들을 떼어놓으려 했다. [약과 술에 절어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정상적인 영업행위를 해보려 노력도 했다.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가긴 하지만],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넥타이와 옷은 꼭 챙긴다. 어떻게든 아무렇지않게 보이려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발버둥친다. 그러나 사회가 정상이 아닌데 어떻게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절망적인 질문만이 되돌아올 뿐이다. 비록 온갖 저속한 욕설과 노골적인 음담패설도 옵션으로 들어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강점은, 이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가 독자들을 우울감에 빠지게 할 틈을 전혀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책표지엔 화장실 변기에 올라간 텔레비전 속 버니가 그려져 있다. 책표지의 효과는 참으로 뛰어난 효과를 발휘해서 우리는 곧바로 '바니'라는 이름을 연상시키고, 상업광고의 효과로 인해 '듀라셀'에서 나오는 토끼인형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사실 본인은 이 책을 보는 내내 '버니먼로'라는 인간보단 한 마리의 토끼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책이 끝날 때까지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하나의 그저 약간 두꺼운 성인우화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닉 케이브가 이 책 외에 처음으로 썼던 책도 동화책이다. 그것도 매우 선정적인 제목의.) 결국 주인공에겐 더욱 슬픈 일이겠지만, 그에게 일어난 모든 슬픈 상황들은 버니라는 장치로 인해 우화가 되고 우스꽝스러워진다는 소리다. 게다가 혀를 내두를 만한 그의 유머감각은, 언제나 책에서 교훈을 찾으며 심각하고 심도있게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한 번쯤은 피식 웃게 만든다. 아마 그런 독자들은 어느정도 정숙한 여성과 더불어 이 책을 싫어하리라 생각한다. 극단적인 책들은 항상 평가가 양극으로 갈리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애써 버니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본인은 카사노바 타입의 남자들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우유부단한 타입은 더 싫어한다. 미국에서 아이를 조금이라도 차 안에 방치시킨다는 건 엄청난 범죄행위다. (그것도 병난 아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니먼로는 불운의 파도에 연속으로 강타당하느라 아이는 조금도 신경쓰지 못한다. 심지어 아내가 죽은 심각한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몸에 달린 물건 하나조차 조절하지 못하니, 얼마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을까. 얼마나 세상이 두려웠을까.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은연중에 그의 과거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볼 수 있는 결정적 장면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자신을 화장품 광고하듯 포장하며 애써 유머를 씀으로서 자기 자신을 위로하려 한다. 물론 버니와 같이 다니는 버니의 아이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에도 위로와 교훈을 받았지만, 아버지에게도 어느 정도 교훈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버니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속죄를 받는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아이는 백과사전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지만,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그 과정은 책을 보면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여자가 우울증에 걸리면 가정이 파탄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덕혜공주'라는 책을 봐서 은연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정도 사회도, 심지어 미래도 여성들이 좌우하는 세상이다.  물론 직업에 있어선 '유리지붕'이 있지만 곧 무너질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성적 만족에 집착한 버니에게 있어선 좀 충격적인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생물학적으로 성관계시 여성이 8배나 많은 성적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남자들에겐 씁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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