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 중 『골드핑거』를 펼치면, 맨 첫 장에 세기의 악당 오릭 골드핑거(Auric Goldfinger)의 격언이 있다.   

 

"Once is happenstance. Twice is coincidence. The third time it's enemy action."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 중) 처음엔 그저 그냥 일어나는 일이야. 두 번째는 우연의 일치지. (하지만) 세 번째는, 악의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밖에 없어." 

 

요즘들어 이 말이 왜 이리 심금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아! 60년대 악당은 이렇게 근사한 삶의 지혜를 스스로 깨닫기라도 했지! 요즘은 악당만도 못한 놈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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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8-1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악당도 뭐랄까 레벨이 있는 것 같습니다 :)

Tomek 2011-08-12 18:36   좋아요 0 | URL
그쵸?
근데, 참... 악당이라 낭만이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좀 그렇습니다.
:D
 

Satyajit Ray‘s <Mahanagar(The Big City)> isn't one of his greatest films. But that doesn't mean is a real turkey. Comparing <Mahanagar> with other his films (<Devi> and <Teen Kanya>, only I've watched), it looks just simple.  

The story is, roughly speaking, about women's sense of achievement through their work during the era of the developing country. And also, is about irony like Satyajit Ray‘s other films.  

Calcutta, mid 1950s. There is a big family: Subrata Mazumdar, his wife Arati, their young son, Subrata's younger sister, his father and his mother. Subrata, a bank employee, with his meagre income finds it difficult to provide for his large joint family. Arati is like an anchor holding the family together.  

One day, Subrata talks about a couple where the woman too is going to work. Soon, Arati makes up her mind to take up a job to supplement the household income. With some help from Subrata, and opposition of her parents-in-law, she finds a job of selling sewing machines door-to-door.  

Going out to work, Arati discovers a new life. She proves successful in her work and gains self-confidence. But Subrata feels insecure and resentful because his father too puts pressure on his son to force Arati to quit the job. So, Subrata asks Arati to quit.  

The next morning, before Arati can give in her resignation, Subrata telephones her and asks her not to resign as he has lost his job. Now, Arati is the only earning member of the family. Subrata suffers as he watches his wife go out while he sits in bed and scans newspapers for jobs' columns.    

 

 

It is very interesting because <Mahanagar> says a same story like 1960~70's Korean films. We have same stories like this. To overcome suffering and achieve success. Because of a familiar story, it looks like Korean movie in that era dubbed Hindi.  

But why the title is "the Big City" instead of "The Big Family" or "Woman?" Satyajit Ray advances more. He suddenly talks about "meta-things." The rest of the story about <Mahanagar>: Arati has found a new friend in a colleague - Edith, an Anglo-Indian woman. But Her boss does not like Edith. Blinded by his prejudice, he accuses Edith of loose character and fires her. Arati asks her boss to apologize to Edith. He refuses and warns her about her own job. Arati hands over her old resignation letter and walks away. On her way out, she meets Subrata. After the initial shock, they reconcile and are close to each other once again. Arati ponders that in such a big city at least one of them is sure to find a job.    

 

 

Well, I think this part is unnecessary. Satyajit Ray shows everything through the conflict with Subrata, his father and her wife Arati. We can presume his intention which he wants to talk. But this part (the end, the conclusion, and so whatever!) reveals all directly. Owing to it, movie turns to be simple. If not, <Mahanagar> would be the proud one in his carrier.  

But I enjoyed this film, and I relieved Satyajit Ray's a just man to make a movie. I thought he was a genius or god of the cinema. This (tiny) failure shows Satyajit Ray's humanity - the ability to make mistake. <Mahanagar> is not stunning, but it's attracted to me since when I watched it.   

 

 

*PS 

Among his films I really like a firm attitude of female characters like follo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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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세 편의 영화를 봤다. 세 편 모두 블루레이로 상영했고, 지금 구입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그 중 두 편은 상영 당시에 극장에서 보고, 그 감동을 잊지 못해 DVD를 구입해서 반복 감상한 영화들이다. 이미 본 영화를, 그것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영화를, 굳이 발품을 팔아가며 다시 스크린에서 본 이유는, 내가 혹시 이 영화들에게 속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였다. 마음이 의심하기 시작하면 사랑은 떠나간다. 에로스가 프쉬케에게 했던 말이다. 떠나간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해서 프쉬케는 고난을 감수했다. 나 역시 프쉬케의 절박한 심정으로 이 영화들을 다시 마주보았다. 그 절박한 영화들은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Memories of Matsuko, 嫌われ松子の一生)>이다.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은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제대로 오지 않은 영화였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영화는 비비 꼬아 정신을 못 차리게 하더니, 주인공 조엘(집 캐리)의 “두뇌 탐사”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각본을 쓴 찰리 카우프만(Charlie Kaufman)도 이제 매너리즘에 빠지는구나 하는 탄식을 하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영화를 보고 났을 때,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쨍”한 감정을 느낀 것이다. 마치 영화의 제목처럼, 티끌하나 없는, 청명한 마음에 비친 영원한 햇빛처럼.  

하지만, DVD로 다시 봤을 때, 불행히도, 전반부의 혼란함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영화의 마지막, 그 쨍한 느낌은 많이 희석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미셸 공드리의 현란한 연출과 벡의 환상적인 주제가 때문일 거라는 단정을 서둘러 지으며,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렸다.  

8월 5일, 6년 만에 스크린에서 다시 마주한 이 영화는, 날 진심으로 펑펑 울리게 했다. 이 영화에 대한 내 태도가 변한 이유는 아마도 사랑을 "경험"해서가 아닐까. 그냥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사랑에 대한 막연한 감정, 그리고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들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헤어짐, 만남, 결혼을 경험하고, 불타올랐던 뜨거웠던 감정과, 점점 식어가는, 그리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경험을 해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린다고 해서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몸의 반응"마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니까. 제 아무리 지루하고 끔찍한 시간을 보내더라도, 결국 모든 감각이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의 경우처럼, 기억을 지워버려도 서로에게 끌려 다시 시작하는, 그래서 또 다시 그 지독한 열병을 앓고, 또 서로의 기억을 지워버린다 할지라도, 그렇게 다시 사랑은 시작될 것이다. 그게 사랑 아닐까?  

 

     

반면, 6일에 본 나카시마 데츠야(中島哲也) 감독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영화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했다. 제목은 신파로 보이고, 포스터는 코미디처럼 보이는 이 종잡을 수 없는 영화를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봤을 때의 충격은 정말로 "강렬"했다. 쉴 새 없이 들이붓는 강렬한 음악, 화려하다 못해 과장된 색감, 끝없이 흘러나오는 내레이션, 급작스런 화면 전개로 정말 울면서 웃게 만드는(!) 이 기막힌 영화의 출현은 정말로 굉장했었다. 그런데 DVD로 다시 봤을 때는, 그 굉장했던 느낌들이 조금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다시 확인했을 때, DVD에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굉장했던" 그 느낌들마저 모두 휘발되어 버린 것을 느꼈다. 내가 굉장했다고 느꼈었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적 장치-스타일들은, 이미 영화에 익숙해진 내게 더 이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오히려 내러티브를 방해하는 과잉의 요소로까지 느껴지게 되었다. 감독 특유의 과잉이 사라지고 나니까, 남는 것은 정말이지 "지독한 신파 멜로 여인 잔혹극"이었다. 그저 사랑을 원했던 마츠코(나카타니 미키)를 온갖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착취하는 이야기를 난 "쿨"하다며 봤던 것이다.   

 

    

그 뒤에 상영한 <고백(告白)>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과잉의 스타일을 쏟아내며 끔찍한 이야기를 한다. 딸을 잃은 여교사 유코(마츠 다카코)가 종업식에서,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이 반 안에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철저하게" 복수를 하는 이야기를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시청각적으로 관객들을 붙잡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나, <고백> 모두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아마도 다른 감독들이 이 영화를 찍었더라면, <마츠코>는 <영자의 전성시대> 같이 한 여자의 일생을 그 사회의 알레고리로 담은 영화가 나왔을 것이고 <고백> 역시 청소년 보호법이나 이지메 같은 거대 담론들을 다룰 수 있는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이 이야기들을 철저하게 개인의 이야기로만 다루었다. 일례로 <고백>에서는 끔찍하게 이지메를 당하는 학생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학생 중 한 명이 살인자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지만, 담임인 유코는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이 짜놓은 이 끔찍한 지옥에 범인들이 걸려들기만을 바란다.  

영화는 과도한 스타일로 보는 것 자체가 피곤할 지경이다. 특히 <고백>의 스타일은 지나칠 정도로 과잉이라고 생각되는데, 사람을 죽이는 장면조차 "감각적으로" 찍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 지경이었다. 마치 그는 단 한 장면이라도 관객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영화를 붙들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도대체 나카시마 데츠야 감독은 왜 이런 식으로 영화를 찍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이 시대의 관객들을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세기까지는, 적어도 영화는 최고의 오락거리였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서, 영화는 수많은 오락거리 중 하나에 불과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탄해봤자, 대중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소위 "작가주의 영화"들은 재미없는 영화, 지루한 영화, 철저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일방통행의 영화로 구분되어지기 시작했고, 고립되어 갔다. 대중 영화는 자신만의 비전은 고사하고, 대중의 입맛에 맞추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려는 감독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까?  

그의 과잉의 스타일은 이런 까다로운 관객들을 끌어들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하지만, 과연 이런 과잉이 그런 지독한 이야기들에 어울리는 것일까?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고, 그저 끔찍한 지옥도를 보여주는 이 잔인한 감독에게 신은 너무 많은 재능을 준 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는 정말로 굉장하다. 하지만, 그게 올바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프쉬케는 결국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에로스와 결혼을 한다. 둘 사이에 자식이 태어나 볼룹투스라 지었다. 사랑(에로스)이 마음(프쉬케)안에 깃드니 쾌락(볼룹투스)이 생긴다. 영화에 대한 내 사랑은 "절박한" 쾌락이었나?  

그게 아니면, 혼돈을 불안해하며 무언가로 규정 짓고 싶어하는 하나마나 한 행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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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Never seen this kind of movie. <Teen Kanya> consists of three episode. We call it omnibus movie. But most of omnibus flims are made up of each director's short flim. Or some cases gathering one director's short flims which have been released are there (e.g. <Coffee and Cigarettes> by Jim Jarmusch). Hong Sang Soo's <Oki's Movie> is also composed of 4 episodes, but most of actors in it starred the whole epsodes, and even they switched their roles per episode. They are linked 4 each episode and it looks like "feature" flim. (Some Jim Jarmusch's flims are similar like this). But Satyajit Ray's <Teen Kanya> is totally different. This movie was produced and directed for a "feature" but each episode seems independent (like a short flim). These 3 episodes in common are "Tagore". <Teen Kanya>'s all 3 episodes are based upon short stories by Rabindranath Tagore. Satyajit Ray was made a documentary about Rabindranath Tagore in 1961, same year. In other words, <Teen Kanya> is dedicated to Rabindranath Tagore in his own way. And for we Koreans, how Rabindranath Tagore is familiar to us (We Koreans probably learned Tagore's 「The Song of Defeated」 if don't know about him at all)!   

<Teen Kanya> is composed of <The Postmaster>, <Monihara (The Lost Jewels)>, and <Samapti (The Conclusion)>.   

 

The first, <The Postmaster> is a simple story. One young man comes to work as a postmaster in a rural area. A young girl, Ratan is in the post office. She's a maid and working for the postmaster. The postmaster is from Calcutta, so he is bored in a small village. For fun, he teaches Ratan to read and write, but she accepts eagerly and truly. One day, he has malaria Ratan nurses him back to health. But he thinks that has had enough of the rural life and resigns. Ratan is heartbroken to hear that.   

We can't see any special or unnatural event but the routine of everyday life. However, Satyajit Ray show us surprising and stunning moment from the routine of daily life in <The Postmaster>. In the last scene, the postmaster and Ratan met on the street. He is leaving and Ratan is working (carrying water pot). He tries to pay Ratan for the service he has been but Ratan is just passing by. And She speaks to the new postmaster loudly. "Master, I brought you water!" There're a lot of great things in it. We know what they are, but we can't talk about (or describe) them what they are. In this case, we call it "Cinematic Magic". Yes, great movies never tell profound philosophy or destiny of the world or whatever (Only Hollywood films do). They just show and make us "feel". <The Postmaster> took and shake my mind, so. How many times do I have to be surprised on earth? Per watching his films? Satyajit Ray is really GREAT! 

<The Postmaster> reminds me of Hong Sang Soo's <Ha Ha Ha> because they both extracted somethings exquisite from our mind without any dramatic accidents. They're real pure cinema. 

 

The second, <Monihara (The Lost Jewels)> is about "obsession". It's kind of a story within a story. On the street, a village schoolteacher tells a hooded man a tragedy he's written. This story is based on true story (or rumor). Rich man Fhanibhusan and his wife lives in a mansion like castle. They're been married for 10 years but they don't have any children. The husband doesn't matter but his wife seems to do. So she looks like being obsessed with ornaments instead of baby. In other words, the husband is obsessed with his wife's love. He keeps buying jewels for her in hope of gaining her love. One day, a fire destroys his business. She has a phobia that one day he may ask the jewels back. To confirm her fear, she offers to sell her jewels. But when he shows some interest in the idea she retreats in panic.  

There're three obsessions in here: the wife's obsession with jewels, the husband's obsession with her love, and even the village schoolteacher's obssion with a story. Each obsession destroys themselves and their obsessions influences each other. In Satyajit Ray's films, we often can see that characters are always weak and they always find and rely on something to support themselves. In this situation, the obsessions are (sort of) hope. But, what if "that something" disappears? And then, they would turn to doubt, distrust and horror. Satyajit Ray shows the process of being turned to, and this is really terrifying.  

         

In my opinion, I REALLY LOVE this kind of story: fall, betrayal, obsession and horror. So I'd rather love <Housemaid> by Im Sang Soo than Kim Ki Young's original one. Just my taste (or guilty pleasure). 

 

And the last, <Samapti (The Conclusion)> has a story with a happy ending only in <Teen Kanya>. But, is it really happy ending?  

Amulya is returning to his village after passing his exams in Calcutta to spend some time with his widowed mother. After getting down from the boat as he struggles in the muddy path and Mrinmoyee (like a tomboy and known as Paglee) bursts into giggles at his plight and runs away. His mother has arranged for him to marry the daughter of a respectable family. Much against his wishes he goes to visit the girl in a nearby village. But Amulya is amused and probably also in love. Against his mother's wishes, he marries Mrinmoyee. On their first night together, she escapes and spends the night on her favorite swing on the riverbank. It is scandal. Amulya returns to Calcutta and she is sent back to her mother's house.  

There are two wild animals: Mrinmoyee and her pet "a little squirrel". They are free and don't be restrained by rule, custom, manners, traditions and so forth. Respectable and educated (or trained) people hate and despise doing like Mrinmoyee and her pet. Mrinmoyee puts her pet in the cage, and simultaneously she's being put in the cage called "a marriage". Marriage deprive Mrinmoyee of her free lifestyle. All custom and traditions people have made press human being themselves. 

Once Mrinmoyee's husband Amulya is gone, she realize how much she really loves him. That means she's not only ready to love her husband, but also ready to adapt herself to the system. When she changes her mind, her pet in the cage dies. When she makes up her mind to confess her love to him, she's as good as a corpse.   

The Conclusion (my gosh, it's a film title!) looks like happy ending. Yes, in Amulya's case, it is. But what about Mrinmoyee? Does it seems like happy ending because she finds a true love? OK, but, How about Amulya's mother? In the end, his mother comes to son's room but the door smashes in front of her. Their marriage makes the mother part from the son. This is irony we can see in the routine of the daily life. For this conclusion, some will feel happy, others sad, and still others weird. This is not happy ending. Ending is still open. 

I'm really surprised to <Samapti> because it changes its mood and genre continuously. Satyajit Ray's familiar with cinematic rules and techniques. Again, how many times do I have to be surprised on earth?  

In the point of view female character, <Samapti> reminds me of Byun Young-Joo's <Ardor>. Their stories looks very similar but different. <Samapti> is about "giving up and belonging to", <Ardor> is about "leaving and finding". 

 

I just wonder the running time. The "satyajitray.org" says <Teen Kanya>'s running time: <The Postmaster> 56 min.; <Monihara> 61 min.; <Samapti> 56 min." But On the DVD, <The Postmaster> 42 min., <Monihara> 47 min., <Samapti> 72 min. Have I watched <Teen Kanya> right? The movie is impressive, but I'm really curious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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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2011-07-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흠...그럼 영화를 DVD로 만들면서 다 짤라먹었단 얘긴데, Samapti는 늘렸다?? 인도라는 나라, 종교와 계급의 제도없이는 유지될수 없었던 나라. 허나 사람들은 명상과 자유를 찾아 인도로 간다.. 언제나 삶은 아이러니. 뭐.. 세상엔 진실도 정답도 없으니, 그깟 상영시간 대강 적었나보지..ㅋㅋ

Tomek 2011-07-25 08:51   좋아요 0 | URL
음...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는 거였냐? ㅡ.ㅡ;;;
역시 아이러니군~ :D

정민 2011-07-2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그나저나, 밀애... 레오스까락스 이래로 내생애 최고의 작품인데.. 보고싶다!!!! ㅋㅋㅋㅋ

Tomek 2011-07-25 08:53   좋아요 0 | URL
<소년 소녀를 만나다>와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까지는 정말 좋았었는데, 그 이후론 너무 아쉬운... ㅠㅠ 이젠 영화 안 찍나 몰라...
 

 

7월 16일, 드디어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 인도영화 <로봇(எந்திரன்)>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봤다. 인도 영화는, 거의 처음인 내게, 작년에 만들어져 엄청난 화제를 뿌린 이 최신 대중 영화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말 궁금했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로봇>은 스즈키 세이준(鈴木清順), 미이케 다카시(三池崇史), 남기남, 심형래 감독 등의 작품들을 "애교" 수준으로 여기게 할 정도로 인간의 상상력(혹은 통속성)을 정말 끝까지 밀어 붙인 영화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로봇>을 보러 온 그 수많은 관객들 모두) 역시 이 말도 안 되는 영화를 진심으로 즐겼다.  

<로봇>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천재 과학자 바시 박사(라즈니칸뜨)는 자신의 모습을 본딴 안드로이드 치티(라즈니칸뜨의 1인 2X수백역!)를 발명한다. 치티는 인간의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군대 납품을 위해) 바시 박사는 치티에게 인간의 감정을 시물레이션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늘의 도움을 받아) 개발하게 되고, 마침내 치티는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그리고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게 됐다). 그러나 치티가 바시 박사의 애인인 사나(아이쉬와라야 라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리고 바시 박사의 스승인 보라 박사(다니 덴종파)의 시기와 음모로, 치티는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병기가 된다.  

무척 짧게 요약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너무나 익숙하다.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기본으로 삼고 , <터미네이터 2>,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아이 로봇> 같은 심오한 기계-자아 성찰 이야기가 양념으로 뿌려졌다. 영화의 주제 또한 이 영화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즉, 뻔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로봇>은 이 뻔한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한다. 그것은 종교적인 관점이다.  

영화의 시작은 개발 중인 치티의 모습과 인도 영화답게 "노래"로 시작한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노래는 로봇을 "하늘에서 내려온 새로운 인류(혹은 신)"로 찬양하고 있다. 사나와의 에피소드에서, 치티가 모든 철붙이를 끌어모으고 그것들을 재분류하자 종교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를 신으로 여기고 의식을 행한다. 그리고 화재 현장에서 치티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구원의 신이자, 동시에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파멸의 신이기도 하다. 치티에게 인간의 감정을 "학습"시키기 위해 바시 박사가 도서관에서 꺼낸 책 중 한 권은 『리그 베다』다. 그리고 치티는 (섹스 없이) 여자를 임신 시킬 수도 있고, 영원히 살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인류라기 보다는 신에 가깝다. 이런 치티가 신으로 여기는 존재는 자신을 창조한 바시 박사다. 안드로이드 개발 세미나에서 "신은 존재하나?"라는 한 사람의 질문을 받자, 치티는 "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되묻는다. 질문자가 "신은 모든 것을 창조하는 존재"라고 대답하자, 치티는 "나를 창조한 것은 바시 박사다. 그렇다면 내게는 그가 신이다"라고 대답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바시는 치티를 제거하려고 하고, 치티는 바시 박사를 죽이려 한다. 이 두 신의 전쟁은 마치 『바가바드 기타』의 내용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문화권의 차이로 같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게 된다.  

치티가 인간의 모습(불완전한 모습)을 보일 때는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된 후,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후다. 치티의 사랑은 욕망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결국 그는 파멸의 신이 되고 만다. 불편한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여자(사나)"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바시 박사의 애인인) 사나는 이 영화에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는 캐릭터인데, 그녀가 무슨 행동을 하기만 하면, "남성"들은 모두 폭력적이 된다. 영화 중 가장 섬뜩했던 장면. 바시 박사가 치티 때문에 계속 고민을 하자, 사나가 "계속 이렇게 굴면 제일 먼저 지나가는 남자와 사귈 것"이라 얘기를 한다. 바로 그 때, 순박하게 생긴 한 지저분한 남자(감독인 S. 샹카르!)가 지나가자 사나는 그에게 다가가 하루 동안 남자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 사내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사나를 대접하지만, 수준이 맞지 않아, 그녀는 이 재미없는 놀이를 중단하고 바시에게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자, 그 순진했던 사내가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고 심지어는 칼(이라기 보다는 낫!)까지 빼든다. 순박한 사람이 단숨에 난봉꾼이자 폭력배로 될 수 있는 것은 여자 때문이니, 특히 여자는 행실을 똑바로 하라는 것 같은, 불편한 메시지가 느껴지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이것은 감독 특유의 여성관인지, 아니면 인도 문화의 무의식적인 단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둘 다 맞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왜냐하면 인도 영화에서의 검열은 키스신을 비롯, 여성(혹은 남성)의 나체(심지어 가슴조차도)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저런 심각한 이야기를 했지만, 영화는 전혀 심각하지 않다. <로봇>은 영화라기 보다는 왠지 "축제"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 이유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뮤지컬 장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로봇>의 뮤지컬은 다른 영화들의 뮤지컬과는 조금 다른데, 일반 뮤지컬 영화의 음악이 내러티브를 드러낸다면, <로봇>의 뮤지컬은 하나의 챕터가 정리될 때 마다 나온다. 즉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브릿지 형식"으로 뮤지컬이 등장하는 것이다. 다른 인도영화도 이런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뮤지컬 장면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한국 관객들에게는 좀 뜬금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장면 자체만으로 굉장한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준다. 특히나 노래 가사들이 거의 쓰러지게 만드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인가 / 아이작 뉴턴의 작품인가" 뭐 이런 기상천외한 라임은 귀여운 수준이고 "당신은 식인종 / 나를 잡아 먹어요 / 뼈까지 씹어 먹어요" 이런 가사를 들으면, 점점 정신이 풀리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특수 효과를 뺄 수 없는데, 아쉽게도 인도 자체의 기술은 아니고, 할리우드의 스탠 윈스턴 스튜디오가 참여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영화에서 특수효과의 주체가 누구인지 보다는, 그 특수효과를 포장하는 그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후반부 로봇들이 벌이는 클라이맥스는 정말 입이 딱 벌어질만 하며, 그 놀라운 상상력에 경탄을 넘어서 경배를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살아 생전에 모기와 로봇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 영화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영화가 한 편 있었던 것 같다. 춤과 노래, 그리고 말도 안 돼는 상상력으로 버무려진, (네이버 영화 사상) 가장 끔찍한 평점의 영화. 바로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다.   

<다세포 소녀>는 개봉한지 5년이 지난, 그래서 B급 달궁의 무시무시한 원작의 흥취가 조금은 옅어진, 지금 보더라도 너무나 덜컥 거리는 장면이 많다. 말도 안 돼는 개그 작렬에, 엉뚱하게 수습되고 봉합되는 장면들, 그리고 중심 없는 내러티브와 장르의 쉴 새 없는 전환, 간간히 등장하는 뮤지컬 넘버까지, 이 영화는 당장 타밀어나 벵갈어로 더빙해서 인도에 개봉하면, 아마도 인도 영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도 영화의 그 정신 없는 전개와 너무나 쏙 빼 닮았다. 어쩌면 이재용 감독은 자신이 그동안 침잠했던 "개인과의 관계에만 집착하는, 서로간에 상처만 입히는" 지긋지긋한 연애(담)에서 벗어나, 그 모든 것을 감쌀 수 있고 모두들 즐길 수 있는 "축제"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국 워킹 타이틀에서 제안한 <오만과 편견>을 거부하고, 자신의 커리어에 불명예가 될 수도 있는(아, 실제로 그리 됐지만...) <다세포 소녀>를 택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다세포 소녀> 이후 이재용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유사) 다큐멘터리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다시는 가공된 연애담의 세계로 들어갈 마음이 없는 것일까?

<로봇>은 또 내게 다른 것을 생각할 기회를 줬다. 올 6월,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러 인도 첸나이에 가게 됐는데, 그곳 지방의 언어가 타밀어이고, <로봇>이 첸나이에서 주 로케이션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드디어 어쩌면, <로봇>을 볼/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결혼식의 바쁜 일정 속에 (감히) 매제에게 <로봇> DVD를 구할 수 없겠냐는 부탁을 했다. 그러자 매제는 "왜 그런 영화를 보려고 하는가? (인도 영화 중 특히) 그 영화는 쓰레기"라며, 나중에 자신이 더 좋은 영화를 선물하겠다며 나를 말렸다 (그렇게해서 받은 선물이 "사티야지트 레이 컬렉션"이다).  

그 나라의 대중 영화와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 그 나라 감독의 영화의 갭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사티야지트 레이 감독의 작품과 <로봇>의 느낌은 정말로 천지차이다. 사티야지트 레이 감독의 작품은 인도 영화인 동시에 인도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영화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 같은 예로, 한국의 대중 영화와 임권택,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의 작품들 역시 그 자체로 "따로"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나도, 매제한테 한국 영화를 권했을 때 (<헬로우 고스트>가 아니라)  <시>를 권했다. 그가 본 한국 영화 중 괜찮은 영화를 언급할 때 <쉬리>를 이야기하면, 반가움 보다는 이유 모를 탄식이 든다. 그러니까 이건, 영화/문화적인 자존심 혹은 스노브인지도 모르겠다. 대중 영화가 (여러 면에서, 꼭 수준이 아니라) 한심한 경우가 많지만, 그 자체가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혹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난 (대중) 영화에 대한 태도를 <로봇>이라는 인도 (대중) 영화를 통해, 저 멀리 돌아서 찾은 것이다. 그 어떤 영화도 편견을 갖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 이 대답이 <로봇>이 내게 전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이 영화를 만나지 않고 지금에서야 만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이 영화를  DVD로 샀으면, 영어 자막의 어설픈 이해와 이 영화의 축제 같은 느낌을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역시 영화는 큰 화면에 다같이 모여서 즐겨야 한다. 그리고 <로봇>은 그 목적에 너무나도 잘 맞는 궁극의 엔터테인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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