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난한 아빠의 교육열
해든이에게 Phonics를 가르치는 게 올해 우리 부부의 해든이에 대한 목표.
어느 날 퇴근하고 왔더니 작년 달력 마지막 장 뒤에다
남편이 알파벳 대표음의 단어 하나씩을 그려 가르치고 있더라는.
지금 단계는 음과 알파벳을 짝짓는 중.
우리가 지금, 아니 갑자기 가난해지기는 했지만
아이의 교재를 사주지 못할 정도의 형편은 아닌데
돈 쓰는 게 싫기도 했겠지만 아이 둘을 키워보니 이까짓 것에 돈을 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해든이는 달력에다 그려서 교육을 하는 가난한 아빠.ㅎㅎㅎ
(갑자기 백석의 시 제목이 패러디 된다. 나와 아빠와 하얀 해든이..ㅎㅎㅎ)
나도 한때 잘 나가는 영어 선생이었고 이 땅에 Phonics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몸인데 남편이 그려준 단어를 보면 우리가 Phonics를 가르칠 때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보여 참신했다.
가운데 있는 저 여인네는 바로 나다!!ㅋㅎㅎ
M자를 가르치기 위해 그려넣은 'mommy' 또는 'mom'.
현재 내 머리스탈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미용실 갈 때가 됐다는 증거.ㅠㅠ
M자 옆에 눈에서 레이저 빔이 나오는 건 도대체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남편에게 물어보고 황당한 표현에 마구 웃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레이저 빔이 나오는 것 같은 그림 밑에 해든이가 폭 빠져 있는 토마스 기관차의 엉덩이가 보인다.
토마스 옆에 있는 U자를 표현하는 그림도 아이들을 처음 가르칠 때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남편의 초 간단 스케치가 잘 드러나 있어서 맘에 든다.
남편이 그린 대부분의 단어는 다 해든이가 쉽게 알 수 있는 것들로 골라 그 자상함이 돋보인달까?
#2. 이 전능한 기쁨은?
이미 내 남편은 알라딘 몇몇 지기들 사이에 자상한 남편으로 통하고 있는데, 여전하다.
내가 "우리 회사 사장 부인이 남편 잘 만나서 시장 갈 때도 샤넬 티셔츠 입고 간다더라."고
지나가는 말로 했더니
남편 왈 "그 사장님은 아이들 저녁 만들어 주고 목욕시켜서 재우고 그러지는 않을걸?"이라며
은근히 자신의 수고를 털어놓아 세속적인 와이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기도 했는데,
어제 밤 알라딘에서 좀 놀다 보니 아침 출근 시간에 늦게 일어났고
저녁은 못해줘도 아침은 꼭 해줘야지 하는 결심이 무색하게 되었는데,
샤워하고 나오니 남편이 식탁 위에 오렌지 주스와 자몽 그리고 버섯을 넣은 오믈렛에다가
올리브와 베이즐, 후레쉬 모짜렐라 토핑을 얹은 베이글을 차려냈다.
오늘 아침 남편이 차려준 음식을 먹으면서 눈물이 글썽거렸다는...
이매지님을 위해서 읽던 책 다 제쳐놓고 읽기 시작한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에
<마르셀 프루스트와 마들렌> 편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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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과 극장으로 잠자러 가는 행위를 제외하고 콜브레의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아무런 존재가 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는 둥그스름하고 앙증맞은 작은 케이크, 즉 세로로 홈이 파인 조개껍데기 모양의 예쁜 마들렌을 주셨다. 기력이 빠진 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고 마들렌을 적신 차를 조금 맛보았다. 케이크 부스러기가 섞인 따뜻한 차가 입천장에 닿자마자 나는 이내 몸서리쳤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미로운 쾌감이, 어디선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 즉시 삶의 부침은 나와 무관한 것이 되었고, 삶이란 재앙은 무해한 것이 되었으며 삶의 덧없음은 허구의 것이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평범하고 우발적이고 소멸적인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런 기분은 어디서 왔을까. 이 전능한 기쁨은?
-박은주,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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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가 마들렌 한 입을 베어 물면서 느꼈던 느낌보다 어쩌면 더 고귀한 그런 느낌이랄까?
도대체 내가 어떤 인간이기에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인지...
눈물을 쏟아내도 부족하다.
#3. 그리고..
토마스 기관차를 좋아해서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잘 때도 침대에서 함께 잠이 든다.
아침에 눈 뜨고 토마스가 없어진 걸 알면 소변이 마려워 몸을 비비 꼬면서도 토마스를 찾아내
한 손에 들고서 쉬를 눠야 한다.
요즘은 [매가 마인드]
를 본 후 매가 마인드와 다른 캐랙터들에 대해서 말하기 좋아한다.
말은 어눌하지만, 녀석 또래의 어떤 아이들도 알지 못하는 해리 포터니 다른 캐랙터들도 다 안다.
그뿐이 아니다. 노래도 잘 부른다. 토마스와 친구들 노래는 기본이고 스폰지 밥 노래에 배트맨, 클리포드...
특별히 스폰지 밥 노래를 부를 때는 리코더를 한 손에 들고서 노래가 다 끝나면 스폰지 밥이 하는 것처럼 리코더로 흉내까지 낸다. 하지만, 다른 뭣보다 작은 두 손을 내 볼에다 대고서 녀석의 입술을 진하게 내 입술에 댈 때 나는 거의 실신한다.
요즘처럼 삶이 재앙으로 느껴질 때 내게 있는 것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