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행실도’ 지배층의 백성훈육 교과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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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변증설 /


국가라는 권력기구를 작동시키는 것은 사회의 지배세력이다.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영속화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강제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피지배층의 대뇌에 설치하려고 한다. 뉴라이트가 국사 교과서를 문제 삼고 나오는 것은, 스스로를 한국 사회의 지배자라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1432년 6월9일 집현전은 <삼강행실도>를 엮어 세종에게 올린다. 한 해 전 충·효·열을 실천한 신하와 자식, 아내의 사례를 뽑아 책으로 엮으라는 세종의 명을 따른 것이다. 세종은 책을 서울과 각 지방에 나누어 주어 우부우부(愚夫愚婦)들이 책에 실린 행위를 본받게 하라고 다시 명한다. 이 책은 2년 뒤인 1434년 11월24일 인쇄되어 여러 지방에 보급된다. 하지만 한문으로 쓰인 책이라 백성들은 읽을 수 없었다. 이 책에 그림이 붙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세종은 지방관과 지방의 지식층이 문맹의 백성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 주라고 명했던 것이다. 한데 지방관과 지식층은 열심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도구가 필요했다. 세종은 1443년에 백성을 가르치는 문자, 곧 한글을 만든다. <삼강행실도>는 한글 창제 이후인 성종 때 원본을 3분의 1로 축약한 국문번역본이 나오면서부터 백성들 사이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삼강행실도>는 조악한 느낌이 들 정도로 볼품이 없어 보이지만, 이 책은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또 조선 사람들의 위계적 윤리의 실천지침이 되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즉 지배층이 백성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은 한국 역사상 이 책이 최초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양반 체제는 한글로 된 책을 다양하게 인쇄해 백성들에게 공급하거나, 원하는 백성이면 모두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양반들은 되도록이면 백성을 무식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통치에 필요한 만큼 적은 지식만을 주입하면 그만이었다. 어떤 교육 내용을 어디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은 백성에게 묻지 않았다. 백성들 역시 일방적 교육에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낼 길이 없었다.

모든 국민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된 것은 1948년 이후의 일이다. 모든 국민이 교육을 받게 된 것을 사회 발전의 명백한 증거로 보기도 한다. 모든 국민에게 교육기회의 균등을 보장한다는 의무교육은, 외견상 선량한 의도를 띠고 있지만, 그 이면은 여간 복잡하지 않다. 무엇보다 교육하는 주체인 국가와 교육을 받는 국민의 관계가 권력적이라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학교에 다니지 않을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의무교육 기간은 물론이고, 고등학교와 대학의 경우도 다니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학벌을 따지는 사회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와 대학 진학을 거부하는 것은, 사회에서 도태되기를 자원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이 권력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한층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교과목의 구성과 평가다. 즉 피교육자인 학생은 교과목의 구성과 내용에 대해 어떤 비판도, 항의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영에 능한 신체조건을 갖춘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에게 수영이란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부여하고 평가한다고 상상해 보자. 수영은 후자에게 꼴찌를 담보하는 과목이 될 뿐이다. 결코 공평하지 않다. 교과목의 구성은 바로 이 수영처럼 일방적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비판하거나 항의할 수 없다.




이런 예에서 보듯 근대국가의 교육제도가 갖는 일방적인 과목 구성과 평가는, 피교육자에게는 저항과 비판이 불가능한 일방적 권력 행사가 된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하에 일방적 권력 행사를 통해, 개인의 대뇌를 열고,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강제적으로 설치한다. 조선조의 교육과 근대교육은 이런 점에서 동일한 속성을 갖는다. 즉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들은 백성들을 교육에서 소외시키고, 자신의 지배에 꼭 필요한 만큼의 프로그램을 백성들의 대뇌에 설치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했다면, 현대 국가는 국민 전체에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한다는 구실로, 자신에게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국민의 대뇌에 설치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뉴라이트 세력의 역사 교과서 역시 이 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 세력은 왜 자신들의 역사관을 일반 출판이 아니라 굳이 교과서를 통해 펼치려고 하는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국가 교육의 권력이 갖는 일방적인 강제력 때문이다. 이 강제력을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역사의식을 학생들의 대뇌에 일방적으로 설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교과서가 아닌, 국사 교과서에 집중하는 것인가.

국사는 수학처럼 부동의 진리를 가르치는 과목도, 인간 행위의 준칙에 대해 숙고하는 윤리를 가르치는 과목도 아니다. 국사는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이 행사되는 공간 안의 모든 개인을 세뇌하는 기본 도구다. 개인이 근원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사건을 동일하게 경험했다고 세뇌하거나, 일부 경험하였을 경우 그 경험의 의미를 단일한 것으로 확정하여 세뇌하는 것이다. 그 세뇌를 통해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는 인간 개체, 곧 국민이 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된 국민은, 현실 속에서 차별받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잊고, 자신이 다른 인간 개체들과 동등한 국민이라고 신념하게 된다. 차별성을 은폐하고 동일한 국민으로서의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국사의 목적이다.




 

» 강명관의 고금변증설
 
국가라는 권력기구를 작동시키는 것은 사회의 지배세력이다.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영속화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강제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피지배층의 대뇌에 설치하려고 한다. 뉴라이트가 국사 교과서를 문제 삼고 나오는 것은, 바로 스스로를 한국 사회의 지배자라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방 저 옛날 <삼강행실도>를 엮고 뿌렸던 양반들이 부활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강명관/부산대 교수(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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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k-choi 2008-12-01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들어와 샘이 방금 (퍼)올린 뜨끈한 글을 읽게되니 반가워ㅎ~ 비록 휴직중이고, 평소 사회의식이 남다른 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요즘은 정말 TV만 봐도 화병날만한 일들이 너무 많아. 출근하면 샘이랑 나란히 옆자리에 앉아 짜증내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던 때가 너무 그리워~ 역사교과서 문제를 보면서 내 교과가 아니고, 난 휴직중이니 한발 물러서 있을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 근데 소심하고 수동적인 내가 현장에 있더라도 뭘 어떻게 했을까... 흥분하면서 반대서명에 동참하는 정도였겠지. 한심한 세상만큼 무기력한 내 존재가 한심스러워ㅜㅜ. 이제 KBS도 짜증나서 못보고 MBC만 봐. 오늘 수민이 이유식 만들 한우안심 사러 마트갔더니, 한우코너엔 파리만 날리고 미국산 쇠고기 코너엔 사람들이 득실거리더구만. 잘난 뉴라이트들은 쾌재를 부르며 웰빙음식 사먹으러 갔겠지? 급식에는 미국산 아닌지 잘 살펴봐. 아~ 화! 난! 다!
 

언론인의 양심·시청자만이 두려움의 대상”
[한겨레가 만난 사람]
YTN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 노종면 노조위원장
정치권과 구본홍씨 쓸 수 있는 카드 바닥 드러내
민영화 막기 위해서라도 ‘출근 저지’ 성공시킬 것
 
 
한겨레 이문영 기자
 








 

» 노종면 YTN노조위원장
 
주연과 조연이 바뀌었다. 막둥이 ‘윤택남’(누리꾼들이 붙인 보도전문 채널 <와이티엔>(YTN)의 애칭)이 첫째 ‘고봉순’(<한국방송> KBS)과 둘째 ‘마봉춘’(<문화방송> MBC)의 인기를 넘어섰다.

막둥이의 인기는 16일 오후 감행한 생방송 기습시위로 절정을 이뤘다. ‘공정방송’ 팻말의 생방송 노출은 윤택남네 ‘반항아들’의 겁 없는 ‘애드리브’였다. 생방송(오후 1시 ‘뉴스의 현장’) 두 시간 전에 시위팀이 꾸려진 ‘즉흥 애드리브’였지만, 노조 집행부가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한 ‘계산된 애드리브’이기도 했다. 택남이네 젊은 기자들의 투쟁에 회사는 징계와 고소로 대응했고, 시민은 뜨거운 응원과 지지로 화답했다. 2008년 여름은 와이티엔 창사 15년 만에 맞고 있는 최대 시련의 시기이자 최고 영광의 시기다.

“우리 투쟁은 와이티엔 사장의 ‘기준’을 지켜내려는 싸움이다.”

노종면(40·[사진]) 위원장은 지난 두 달 동안의 구본홍 사장 출근저지 투쟁을 이 한마디로 정의했다. 거창한 기준도 아니다. “보도매체 사장으로서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말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은 노조가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인 구 사장에게 단 하루도 정상 출근을 허용하지 않은 이유가 됐고, 조합원들이 회사의 징계 압박보다 언론인으로서 각자의 양심을 더 두려워하도록 만든 근거가 됐다. 노 위원장은 “조합원 모두가 우리의 투쟁이 옳은지,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두 달을 싸워 왔다”고 밝혔다.

“구본홍씨의 출근을 막으며 우리는 여러 공간에서 그를 만나고 그의 생각을 피부로 접했다. 무능력한 사태해결 방식, 노조 반대에 징계로 대응하는 모습, 인사에서 드러난 사람을 평가하는 시각 등 단지 특보 출신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는 사장이 될 수 없음을 구씨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1990년대를 겪으며, 국민이 지키지 않으면 방송은 정치권력 논공행상의 가장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기까지 서기원 사장 임명 반대를 위해 486명이 연행되고 11명이 구속된 한국방송 노조의 처절한 투쟁이 있었다. 2008년을 겪으며, 한국 사회는 공정방송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란 엄중한 사실을 배우고 있다. 그러기까지 와이티엔 노조의 두 달 넘는 지난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노 위원장은 ‘공정방송 수호의 선봉에 와이티엔이 있다’는 평가가 “힘도 되고 부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와이티엔을 한국방송이나 문화방송과 비교하는 시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케이비에스와 엠비시는 그들이 처한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다”고 했고, “와이티엔도 와이티엔의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현재 와이티엔 노조는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투쟁의 정점이다. 아주 작은 변수에 따라 노조 동력이 한층 불붙을 수도, 찬물을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징계 협박 등 외부의 힘이 우리를 쓰러뜨리진 못했다. 다만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들이 피로감에 지쳐 간다. 투쟁 방식에 대한 노조 내 이견도 있다. 우리의 최대 적은 우리 내부의 이탈이다.”


 

» 노종면 YTN노조위원장
 


노 위원장은 그러나 “조합원들을 무한히 신뢰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구 사장과 타협을 시도하던 전임 지도부가 물러나고 새 지도부가 들어서기까지 노조는 적지 않은 내부 갈등을 겪었다. 구 사장 반대투쟁 그 자체보다 투쟁 이후 상처 치유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우려는 많이 가셨다. 노조원들끼리 익명에 숨어 서로를 비난하는 행위가 사라졌다. 동료에 대한 징계방침이 알려지자 ‘나도 징계하라’는 글이 사내게시판에 잇따라 올라왔고, 17일 인사위원회를 막기 위해 100여명이 떼로 모였다. 힘겨운 싸움이 신뢰를 키웠고, 신뢰는 싸움을 지속하는 자양분이 됐다.

“우리의 싸움이 와이티엔 내·외부 지형을 적지 않게 바꿨다. 무엇보다 노조에 전달되는 정치권의 반응이 다양해졌다. 전엔 노조 투쟁에 대한 반협박조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여권에서도 구본홍 교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정치권도 구본홍씨도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바닥난 셈이다.”

그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주식매각 발언으로 와이티엔 민영화 논의에 불을 지피다 비판받은 점과, 최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와이티엔 노사문제를 빌미로 재승인 불허 근거를 찾으려다 실패한 점에 주목했다. 정치권의 구 사장 ‘외곽지원’도 별로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와이티엔의 민영화 가능성 자체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정권이 민영화를 통해 방송을 장악하고 거대자본과 족벌신문에 방송 진출 길을 열어주려는 시도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걱정스럽다. 와이티엔도 유력한 민영화 대상이다. 민영화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출근저지 투쟁을 잘 끝내야 한다.”

노 위원장은 회사 쪽과의 대화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 뒀다. 그는 “지금이라도 사쪽이 ‘끝장투표’를 통해 사내 민의를 확인하겠다면 노조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끝장투표가 이뤄지려면 사쪽은 조합원 고소와 징계 방침부터 철회하고, 다수가 반대할 땐 구본홍씨가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로 다수가 찬성하면 노조도 구 사장을 인정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본격 파업에 돌입하지 않았으나, 와이티엔은 이미 준파업 상태다. 구 사장의 인사명령에 불복종했고, 각 부서에서 부서장을 제외시킨 채 고참기자 중심으로 방송을 제작하고 있으며, 두 차례의 징계 시도도 무산시켰다. 노 위원장은 “이후 파업 계획을 밝힐 시기가 아니다”라면서도 “방송을 포기하려는 파업이 아니라 방송을 지키기 위한 파업”임을 강조했다.

와이티엔은 두 달 전의 와이티엔이 아니다. 출근저지 투쟁이 끝난 뒤의 와이티엔도 지금의 와이티엔과 다를 것이다. 와이티엔을 향한 외부의 기대 또한 전과 같을 수 없다. 노 위원장은 “우리의 싸움이 끝날 때 와이티엔은 오로지 시청자만을 두려워하는 방송사로 거듭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9월22일, 구 사장 출근저지 투쟁 67일째다. 와이티엔의 역사가 67일째 새롭게 기록되고 있다.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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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지 않은 정신 / 김종철

 

삶의창
 
 
한겨레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마음이 허전할 때, 문득 그리워지는 분들이 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방송극작가 박이엽 선생도 그런 분이다. 박이엽은 문필가이기 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고 민병산 선생과 함께 나란히 인사동 거리를 느린 걸음으로 떠돌던 ‘무욕’의 철학자이자 탈속의 현인이었다.

원래 민병산이나 박이엽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그분들의 뛰어난 번역 때문이었다. 나는 일본 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지만, 내가 큰 감명을 받은 작품은 대개 민병산 번역이었다. 원작의 질 못지않게 역자의 해박한 지식과 섬세한 감수성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음이 틀림없다. 박이엽의 번역도 일품이었다. 나는 그가 옮긴 <나의 서양미술 순례>나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혹은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의 기행문을 읽으면서 외국어에 대한 그의 정확한 이해는 물론, 우리말에 대한 그의 풍부한 교양과 예민한 감각이 늘 경탄스러웠다.

그런 박이엽의 학력은 중졸이었다. 그의 지식과 교양은 밑바닥 생활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배움의 결과였다. 그의 추모문집이 작년에 <저절로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 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지만, 그중에서 내게 무척 인상 깊었던 일화가 하나 있다.

원래 젊어서부터 폐병으로 고생하던 박이엽은 1970년대 어느날부터 어떤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인 진료를 받았다. 그를 담당했던 나이 지긋한 의사는 첫날 진료가 끝나자 박이엽에게 다음부터는 병원이 아니라 의과대학의 자기 연구실로 직접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병원에 올 때마다 진료비를 따로 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후 연구실에서 만날 때마다 그 의사/교수는 자신의 캐비닛에서 한달치 약을 꺼내 이 가난한 환자에게 무료로 주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의사는 대학병원의 규칙을 어겨가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가난한 환자 누구에게나 그런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의사는 박이엽을 앞에 앉혀놓고 담배가 해롭다는 이야기를 길게 해주었다. 그 당시는 담배의 유해성이 아직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고 있었다. 이때 박이엽은 ‘사실 담배를 끊을 마음은 전혀 없으면서’ 환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의사에 대한 인사성으로 “그럼 저도 담배를 끊어야 할까요?”라고 예의 바른 척 물었다. 그러자 당장에 의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자슥아, 네가 담배 시작할 때는 내 허락 받고 했어?” 의사는 이 청년 환자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박이엽은 평소에 환자에게 그지없이 인자하면서도 환자의 ‘교활한’ 태도에는 조금도 용서가 없는 의사의 이 솔직담백한 인간성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 후 그 의사에 대한 그의 존경심이 더 깊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빈틈없는 시스템 속에서 관리되고 길들여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세련된 삶, 근대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병원의 의사가 병원당국 몰래 환자를 자기 연구실로 오게 하여 약을 공짜로 준다든지, 환자에게 거리낌 없이 화를 낸다든지 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인간적인 배려와 반응은 오늘의 ‘진보된’ 사회 시스템에서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다. 더욱이 이미 이 체제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그런 행동은 오히려 촌스러운 것으로 비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촌스러운 야생의 정신이 아직 살아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도처에서 목격하는 제도화되거나 상품화된 ‘친절’은 결코 친절이 아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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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달개비꽃을 으깨 푸른 꽃잎 잉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던 정지용의 글을 읽었다. 1938년 서대문 밖으로 이사 갔을 때 일이다. 편지에다 그는 서울에도 꾀꼬리 울음을 들을 데가 있노라고 썼다. 편지를 받고 황해도 안악 사는 친구는 축하하는 답장을 보내오고, 전라도 장성 사는 벗은 집구경 하겠다고 우정 그 먼길을 찾아 올라왔다.

  망한 나라에서 왜놈의 백성으로 살 수 없다며 이건승이 조국을 등지고 만주로 망명하여 간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해마다 가을이 되면 들국화를 따서 봉투에 담아 만주로 보낸 사람이 있었다. 국과가 피지 않는 만주 땅에서 그 내음 맡으며 망국의 설움을 달래시라는 뜻이었다.

  꽃잎 잉크로 쓴 희미한 편지를 받고 빙그레 웃었을 벗들의 표정과, 조선 들판의 매운 향기를 머금은 국화 꽃잎을 앞에 두고 주루룩 눈물을 떨구었을 뜻 높은 선비의 주름살 팬 얼굴이 선연히 떠오른다. 아마득한 옛일 같은데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고 했다. 무늬 없는 삶 속에는 기쁨이 깃들지 않는다. 생활의 여유는 물질의 풍요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세상일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사람들은 바빠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자꾸 일을 만든다. 그러는 사이에 마음밭은 나날이 황폐해져서, 마음의 무늬가 빚어내는 잔잔한 감동을 만나볼 수가 없게 되었다. 살갑고 고맙던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 정민, [스승의 옥편], <달개비꽃 잉크>, p172~173, 마음산책,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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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들풀 종자 은행-

   신문에 ‘토종 들풀 종자 은행’ 이야기가 실렸다.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야생 들풀 1백과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세웠다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장한 뜻을 세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잡초들의 씨앗을 받으려 청춘을 다 바쳤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기사의 끝에 실린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죠.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오호라!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된다.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이냐. 사람도 한 가지다. 제가 꼭 필요한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된다. 그가 17년간 산하를 누비며 들풀의 씨를 받는 동안, 마음속에 스쳐 간 깨달음이 이것 하나뿐이었으랴만, 이 하나의 깨달음도 내게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참으로 달고 고마운 말씀이다.

  타고난 아름다운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히어 버려지는 삶이 너무나 많다. 지금 내 자리는 제자리인가? 잡초는 없다. 자리를 가리지 못해 잡초가 될 뿐이다.

- 정민, [스승의 옥편], <제자리가 아니면 잡초가 된다.>, 168~16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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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8-09-26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식>"우리나라 들풀.들꽃 보러오세요"
뉴시스 | 기사입력 2003.12.18 06:57

대전=뉴시스】 국내 토종 풀과 꽃을 한눈에 볼수있는 "한국 자원식물 생태사진 전시회"가 오는 22일부터 이달말까지 서울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전시장에서 개최된다. 한국과학재단(KOSEF)이 특수연구소재은행으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는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강병화 고려대교수)은 우리나라 자원식물 748초종의 종자와 560초종의 생태사진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전시회는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을 운영하는 강교수가 20여년간 들과 산을 돌아다니며 식물을 조사 연구하고 채취한 종자와 관련된 생태사진 2300여장이 전시된다.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에서는 현재 110과 1401초종 5958수집종을 확보해 필요한 연구자에게 분양하거나 채종정보를 제공하는 등 식물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주최측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자연과 식물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제민기자 jmyeo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