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조합원 전세계에 이명박·한나라당 성토메시지
27일 밤 노조카페에 5개국어 UCC 올려 "MB1년 민주주의위기…"
 

2009년 02월 27일 (금) 22:34:24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한나라당이 합의없이 언론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날치기라 부릅니다."(영어버전-최현정 MBC 아나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 13억 중국인들이여! 한나라당 '고흥길'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해주십시오. '왜 이래∼아마추어같이'"(중국어버전-방현주 MBC 아나운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사르코지와 브루니의 만남보다 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커플이 탄생하려고 합니다. 바로 3대 대형극우신문 조중동과 방송의 결합입니다."(프랑스어버전-권희진 MBC 기자)

MBC노조 디지털 파업 본격 가동…첫 활동 5개국어로 한나라당·조중동 규탄

총파업 재개 이틀째를 맞은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박성제 본부장)가 본격적인 디지털 파업에 돌입했다. MBC본부 조합원들은 파업 돌입과 동시에 본부 공식 인터넷카페 힘내라 MBC! (cafe.daum.net/saveourmbc)에 이날 오후 8시께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라는 UCC(이용자제작콘텐츠)를 카페에 올렸다.

김정근 아나운서(조합원)의 진행으로 영어·중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일본어로 MBC 기자·PD·아나운서 조합원들이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한나라당 소속)의 언론악법 직권상정과 민주주의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내용이다.

김 아나운서는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에서 전해드리는 뉴스속보"라고 오프닝멘트를 한 뒤 "한나라당이 언론악법을 통과시켜 방송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주의도 위태롭다. 이런 현실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메시지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제작해 MBC본부 인터넷 카페 '힘내라 MBC!'에 올린 UCC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 사회를 보는 김정근 아나운서.  
 


조합 카페에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 리포트 UCC로 제작

가장 먼저 나선 최현정 아나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이제 겨우 1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며 "한나라당이 합의없이 언론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날치기라 부른다"는 메시지를 영어로 전했다.


   
  ▲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제작해 MBC본부 인터넷 카페 '힘내라 MBC!'에 올린 UCC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  
 
방현주 아나운서는 중국어로 "13억 중국인들이여! 한나라당 '고흥길'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해달라. '왜 이래∼아마추어같이'"라며 "또 한 통의 항의전화를 해달라.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허튼 짓 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제작해 MBC본부 인터넷 카페 '힘내라 MBC!'에 올린 UCC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  
 


권희진 기자는 프랑스어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사르코지와 브루니의 만남보다 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커플이 탄생하려 한다. 바로 3대 대형극우신문 조중동과 방송의 결합"이라며 "이들의 만남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 기자는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지만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라며 "그러나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고 덧붙였다.


   
  ▲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제작해 MBC본부 인터넷 카페 '힘내라 MBC!'에 올린 UCC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  
 


"13억 중국인, 고흥길에 항의해달라" "한나라 할 말 '겐세이(견제)' 아닌 '쓰미마센(죄송합니다)'"

스페인어 버전도 나왔다. 이동희 PD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많은 단어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민주주의, 상식, 소통, 언론자유. 세상에 이런일이!"라고 했다.

하지은 아나운서는 일본어로 "언론법 개정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한나라당의 말은 거짓말"이라며 정병국 의원의 발언을 들어 "난데없이 일본어가 등장했다고 한다"고 했다.

"이 말이 됩니까. '겐세이' 놓고 끼어드시면 계속 늦어지니까…들으세요 들으시고"라는 정 의원의 말을 보여준 뒤 하 아나운서는 "우리가 한나라당에게 듣고 싶은 말은 '겐세이(견제)'가 아니라 '쓰미마센(죄송합니다)'"이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MBC본부 조합원들이 조합 카페에 올린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 전문이다.

<앵커> 김정근 조합원-아나운서
안녕하십니까.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에서 전해드리는 뉴스속보입니다. 한나라당이 언론악법을 통과시켜 방송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주의도 위태롭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한다. 문화방송본부에서는 전세계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준비했습니다.

<영어> 최현정 조합원-아나운서
긴급 속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이제 겨우 1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합의없이 언론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날치기라 부릅니다. 이 악법은 온 국민의 분노를 부르고 있고, 대한민국은 언론 자유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중국어> 방현주 조합원-아나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 13억 중국인들이여! 한나라당 '고흥길'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해주십시오. "왜 이래∼아마추어같이" 또 한 통의 항의전화를 해주십시오. 이번에 전화 걸 사람은 김형오 국회의장입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허튼 짓 하지 마라"

<프랑스어> 권희진 조합원-기자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사르코지와 브루니의 만남보다 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커플이 탄생하려고 합니다. 바로 3대 대형극우신문 조중동과 방송의 결합입니다. 이들의 만남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대재앙이 될 것입니다.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지만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습니다.

<스페인어> 이동희 조합원-시사교양 PD
지금 대한민국에서 많은 단어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상식, 소통, 언론자유. 세상에 이런일이! 대한민국에서는 시계도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후퇴하고 다시 독재정권이 부활했습니다.

<일본어> 하지은 조합원-아나운서
언론법 개정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한나라당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다신 한 번 말씀드립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정말로 거짓말입니다. 한편 국회 문방위에서는 난데없이 일본어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됩니까. '겐세이' 놓고 끼어드시면 계속 늦어지니까.... 들으세요 들으시고"(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우리가 한나라당에게 듣고 싶은 말은 '겐세이(견제)'가 아니라 '쓰미마센(죄송합니다)'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저희는 끝까지 싸우겠다. 여러분도 지켜달라. 언론장악 저지 투쟁! (6개국어로 조합원들이 잇따라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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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통신] 교양교육 홀대하는 일본의 대학

 

현대인에 필요한 교양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다
폭격을 당하는 쪽의 아픔을 상상하는 힘은 평화를 쌓는 기초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결여한 채 취직 · 실용 위주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나로선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한겨레]2005-07-15 06판 M07면 2740자 특집 기획,연재

여름밤의 꿈(1)


마침내 여름다워진 6월 하순 어느날 밤, 학생들과 함께 베를리너 앙상블의 연극을 보러 갔다. 공연 제목은 베르톨트 브레히트 원작, 하이너 뮐러 연출의 〈아르투로 우이의 흥륭〉이다. 아주 잘 된 공연이어서 학생들도 매우 좋아했다. 몇몇 학생 은 다른 날 또 한번 싸지 않은 표를 사서 보러 갔을 정도다.

*
근무하는 대학에서 내가 맡고 있는 것은 전문적 연구 분야가 아니라 교양교육 분야다. 한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돼 있는지 모르겠으나 일본의 대학교육에서는 지난 20여년간 교양교육이 경시되는 추세였다. 어학교육은 예외지만 다른 교양교육은 대체로 ‘도움이 되지 않는 취미’처럼 간주돼 왔다. 거기서 가치기준이 되는 것은 ‘취직에 유리한가, 아닌가’, ‘실용적인가,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실용주의 일변도의 교육이 여러가지 폐해를 낳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수준 높은 문학작품 하나 읽지 않은 채, 미술관에도 극장에도 발길 한번 돌려보지 않은 채 대학을 나가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인 가토 슈이치는 교양의 필요성을 흔히 자동차에 비유한다. 전문가나 기술자들이 영지를 모으면 더 빠르고 성능 좋은 자동차를 제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동차를 손에 넣은 다음 어디로 갈 것인가? 갈 곳을 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운전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의 교양이다. 여기서 ‘자동차’를 ‘무기’로 바꿔 놓고 보면 이 비유의 중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올 것이다.

교양이란 영어로 말하면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다. 그 본래의 의미는 ‘노예적 또는 기계적 기술’과 대치되는 ‘자유인’에게 어울리는 학예(Arts)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인’은 예전에는 특권적 신분의 남성에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그렇지 않고 또 그래서는 안 된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양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폭탄공격을 당하는 쪽의 고뇌와 아픔을 상상하는 힘은 전쟁에 저항하고 평화를 쌓기 위한 기초적 능력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초적 능력을 결여한 채 젊은이들이 사회로 나가는 것이 나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나는 대학에서 두 과목의 세미나 진행을 맡고 있다. 하나는 ‘타자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인데, 지난해까지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증인의 작품을 숙독했다. 올해는 하라 다미키라는 소설가의 작품을 읽고 있다. 하라 다미키는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당했다. 그 참상을 직접 지켜보고 평화를 위한 증언을 자신의 사명이라 믿게 된 그는 〈여름 꽃〉 등의 뛰어난 기록문학을 남겼으나 1951년 3월13일 철도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조선전쟁(한국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전황을 뒤집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그의 섬세한 신경을 찢어놓은 것이다. 하라 다미키와 트루먼, 어느 쪽이 교양이 풍부했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름이 올 때마다 일본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관련 기념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하라 다미키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작품을 깊이 읽으려는 사람은 적다. 내 학생들 중에도 누구 하나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없었다.

많은 학생들에게는 일본이 침략전쟁에서 여러 민족들에게 가해자였다는 기억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인 자신의 피해 기억조차도 모두 실감하기 어려운 ‘옛날의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1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500년 전이나 ‘지금’이 아니면 모두 ‘옛날’이다. 그들의 시야에는 ‘옛날’과는 다른 ‘지금’이 있을 뿐이다. ‘옛날’이 어떠했든, 또 ‘내일’이 암흑이 되든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진정한 교양,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함양하도록 하는 일이 쉬운 노릇은 아니다. 가르치는 쪽도 곤란한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또 하나의 세미나는 ‘예술을 통해 사람의 죽음과 삶을 생각한다’는 좀 색다른 것이다. 미술, 음악, 영화, 연극 등 뛰어난 예술작품을 접할 기회를 학생들에게 줌으로써 잠자는 감성을 깨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학생들과 미술관에 가서 자유롭게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던 학생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쪽도 즐거워지지만 갈 길이 멀다. 이번에도 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베를리너 앙상블을 보러 간 것이다. 내 나름의 시행착오 과정의 하나다.

*
베를리너 앙상블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주재자로 해서 전후 동베를린에서 창설됐다. 오랜 기간 동독만이 아니라 사회주의권을 대표하는 일류 극단이었으나 독일 통일 뒤 극단은 큰 변화에 휩쓸렸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2002년에도 일본에 와 〈리처드 2세〉를 공연했는데 그걸 본 나는 베를리너 앙상블이 건재하다는 걸 확신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극을 공연하면서 그 조준은 명백히 현재의 ‘테러와의 전쟁’ 비판에 맞추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연출가·배우들과 관객의 대화 시간이 마련됐다. 동독 출신의 배우와 서독 출신의 배우가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면서 양쪽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앙상블을 만들어가겠다고 한 말이 내 인상에 남아 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대망의 〈아르투로 우이의 흥륭〉을 가지고 그들이 다시 온 것이다. 이 작품은 브레히트가 망명지인 미국에서 1941년에 쓴 것이다. 히틀러의 권력탈취 과정을 시카고의 똘마니가 보스 자리까지 올라가는 과정으로 바꿔놓은 풍자극이다. 이번 공연은 1995년의 하이너 뮐러 연출작이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
서경식/도쿄경제대학 교수
번역 한승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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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만화가는 살아 있다
 
 
 
한겨레  
 








 

»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만화가는 살아 있다
 

얼마 전 인기 만화가 강풀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여당에서 상정하려는 법안들이 너무나 문제가 많아 그대로 있을 수 없어 동료 만화가들과 함께 인터넷에 조목조목 문제점을 짚어 주는 만화를 릴레이로 연재하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보통은 선배들이 후배에게 제의를 할 만한 일인데도 스스로들 하겠다고 하니!

그래, 이 일로 나중에 우리가 이 시대에 살아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이희재씨가 아이디어를 내고 내가 그려서 우리는 제목 그림을 하나 보탰다.

지금 연재를 다 끝냈고 인터넷 검색창에 ‘악법 만화’ 혹은 ‘악법릴레이 카툰’으로 치면 볼 수 있다. 다음주에는 책도 나온단다.(에라! 하는 김에 책 선전도 하자)

제목은 <악! 법이라고?>이고, 이매진출판사(02-3141-1917)에서.

넘 이쁘고 자랑스러운 우리 만화가들의 이름은 ….

맨 뒷줄 왼쪽부터 현용민·박철권·김태권, 가운뎃줄 왼쪽부터 윤태호·손문상·주호민·야마꼬·석정현·최호철, 앞줄 왼쪽부터 강풀·곽백수·김용민·최규석이다.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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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지금 '쇼' 하나"


[정희준의 '어퍼컷'] '진보 장사' 하는 '아티스트'들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2-26 오전 7:02:43 
 


가수 쪽을 보면 '진보 장사' 하는 이들이 꽤 있다. '애국 장사' 하던 유승준은 이미 재기불능 수준으로 나가 떨어졌지만 '진보 장사' 가수들은 지금도 꽤 잘 나가고 있다. 그렇다. 애국 장사에 비해 진보 장사가 더 안전(?)한 장사다.

비판적 대중 가수 1호인 서태지는 부모가 싫어하는 모든 음악을 전파하면서 학교, 부모 등 기성세대를 공격하고 조롱했다. 한마디로 근대 한국의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식까지도 재구성한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2000년 컴백하며 닉스와 단 3개월간의 광고 모델료로 8억 원, 프로스펙스와 1년간 15억 원, 그리고 KTF와 (그의 곡 음원을 포함해) 32억 원이라는 초대형 광고 계약을 맺은, 말 그대로 '단군 이래 최고의 상품'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히트곡 하나 없지만 음악보다는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 듯하다. 마침 요즘 그가 '실종' 됐다는 뉴스를 봤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것도 서태지는 '가출'이라 칭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의식 있는 가수'로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윤도현은 광고 모델 수입 총액에서는 서태지에 뒤질지 모르겠으나 더 다채로운(?) 회사들과 광고 계약을 맺었다. 사실 월드컵 이전엔 대중적 인기가 미약했던 그는 2002 월드컵으로 대박을 터뜨린 이후 그의 이미지가 너무 월드컵으로 굳어지자 '월드컵 가수'로 기억되는 것이 거부한다며 모든 관련 행사 참여를 거부했다. 이후 방송 진행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적 발언'을 했는데, 언론을 통해 '인권' 이야기도 하고 '미국' 이야기, '반전' 이야기도 하면서 그의 이미지를 진보로 잡았다. 그러나 매우 '상업스런' 포즈와 목소리로 진보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는 기업 광고에도 나서더니 급기야 2006 월드컵 시즌이 임박하자 다시 재벌기업의 월드컵 광고에 발빠르게 참여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기억력은 유효기간이 채 4년이 안 됐던 것이다.

연예인은 과연 '개인'일 뿐인가

아무래도 대본을 따라야 하는 배우보다 가수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가사를 통해서도 할 수 있고 인기를 얻은 후에 언론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첫째, 자신의 대중적 인기가 활용(?)된, 둘째, '사회적' 발언인 경우라면 연예인 개인이 아닌 공인의 발언이 된다. 당연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는 연예인이 결혼하면서 "팬 여러분~ 저희 열심히 살게요~" 했다가 얼마 후 친구로 남기로 했다며 이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 연예인도 사람이다 보니 말과 행동이 다를 수도 있고 자신의 언행이 불일치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그에 대한 '책임'까지는 따지기 애매하더라도 그로 인한 사회적 비난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대부업이나 아파트 광고 등 최근 연예인의 광고 출연이 문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자신의 돈 벌 권리다, 선택의 자유다, 별 걸 가지고 시비다 하면서 문제 제기 하는 이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면서 억울해 하고, 분해 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광고 찍는 자유가 있는 만큼 팬과 대중도 그 광고를 보고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 연예인들은 가족끼리만 돌려 보려고 그 광고 찍었나? 우리 보라고 찍은 것 아닌가. 우리 보라고 찍은 광고를 우리가 보고 비판 하는데 그 어디에 문제가 있나. 그리고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광고 출연료는 (광고주를 한 번 거칠 뿐) 몽땅 소비자가 지불하는 것이다.

신해철의 '자가당착 퍼포먼스'


▲ 가수 신해철 씨가 최근 한 입시학원 광고 모델로 등장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프레시안
처음엔 만우절인줄 알았다. 신해철이 입시 학원 광고에 등장했다는 뉴스 말이다. 그것도 특목고 전문학원 광고 모델이었다. 평소 한국사회의 입시 정책과 사교육을 가장 격렬하게, 물불과 장소 안 가리고 공격했던 신해철이었다.

그런 그가 그의 별명만큼이나 매우 마왕스러운, 매우 강렬한 표정으로 특목고 입시 학원 광고에 등장했다. 매우 '학원스러운' 문구들과 뒤범벅이 되어 특목고 가는 지름길이 바로 이 학원에 있음을 가르치려 든다. 이것이 과연 블랙코미디인가, 아니면 가상현실인가. 쇼 같기도 한데 신해철은 스스로를 '아티스트'라 칭한다니 그렇다면 '퍼포먼스'인가.

광고에 등장하는 문구다. '독설보다 날카로운 신해철의 입시성공 전략.' 그가 제시하는 결론은 물론 특목고 입시 학원이다. 또 다른 문구다. '도대체 왜, 학습 목표와 학습 방법이 자녀에게 딱 맞는지 확인하지 않습니까.' 이게 대안학교 광고 문구라면 딱 어울리겠다.

한낱(?) 광고가 나를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도 오랜만인 듯하다. 그래도 신해철 정도(?)면 뭔가 있지 않을까? 혹시 우리가 쉽게 알아 챌 수 없는, 그렇지만 결국엔 우리 가슴을 뻥 뚤리게 하는 통렬한 풍자가 숨어 있지나 않을까? 아니었다. 비틀어도 보고, 뒤집어도 봤지만 신해철이 평소 주장했던 주장과 그의 광고 출연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맺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광고 논란이 일자 지난 주 진중권 교수가 알듯 모를듯 신해철을 옹호하는 듯한 글을 어느 게시판에 남기더니 월요일엔 개그맨 박준형이 "광고는 광고일 뿐, 신해철에게 왜 투정하나?"라는 글로 신해철 비판을 나무란다. 그간 꽤 존경해 왔던 진 교수에겐 살짝 실망감이, 박준형에겐 답답함이 느껴진다.

신해철이 권하는 성공 전략은 특목고?

신해철의 특목고 입시 전문 학원 광고 출연은 자기모순이자 경거망동이다. 사실 완전한 헛발질이었다. 자기 꾀에 넘어간 듯하다. 그는 자신의 판단과 소신을 맹신했고 과신했다. '마왕'의 추종자들만큼은 '그 역설적이고 동시에 통렬한 풍자'에 탄복하며 따를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논란이 시작되자 그는 정면으로 맞불을 놓는다. 그 스스로 논란을 키울 정도로 그는 자신만만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광고대박 감사합니다"라는 참으로 얄미운 제목의 글에서 "예상대로 반응이 불을 뿜는다"며 "명박 형님께서 사교육 시장에 에너지를 팍팍 넣어주신 결과, 엉뚱하게도 제가 득템~~~ 각하께서 주신 용돈 잘 쓰겠습니다"라고 썼다.

학원 광고를 찍기로 한 자신의 상업적 판단을 '명박 형님' 탓에 마치 '본의 아니게' 얻게 된 것처럼 포장하는 용감함도 대단하지만 아마도 수억 원에 이를 광고 출연료를 '용돈'이라 칭하는 그의 배포는 참으로 어이없다. 또 나아가 "이번 광고 출연은 평소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의 연장이며, 평소의 내 교육관과 충돌하는 부분이 없다"고 해명했는데 이는 그의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이 자만을 넘어 오만으로, 그리고 자가당착을 넘어 횡설수설로 연결됐음을 보여준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는 것은 그가 광고에 출연해서가 아니다. 박준형처럼 그를 옹호하려는 이들도 잘 알아뒀으면 한다. 신해철 같은 연예인이 광고 출연하는 것은 가수가 콘서트 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가 라면 광고, 아이스크림 광고에 나왔다면 누가 뭐랬을까. 장갑 광고, 샴푸 광고, 선글라스 광고, 화장품 광고 아니면 남성용 블라우스(?) 광고도 어울릴 것이다. 광고 마다할 것 없다.

교육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인가

문제는 그가 이제까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했다는 점인데 특히 그의 발언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교(敎)와 육(育), 즉 '교육'에 관한 것들이었다. 특히 자신이 DJ를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교육'에 대한 일관되고도 격한 발언들을 해왔음에도 광고 한방으로 자신의 이제까지의 발언과 주장들을 우스개로 만들어 버렸다. 신해철은 교육 가지고 그렇게 장난 쳐도 되나. 나아가 그의 광고 행위는 이제까지 신해철의 발언에 동의와 지지를 보낸 대중, 그리고 그를 열렬하게 응원한 청소년들에 대한 배신이다, 배신.

무엇보다 그는 상업자본주의, 특히 그 중에서도 청소년들의 미래를 담보로 가장 저급하고도 비열하게 돈벌이를 하는 입시 학원 상업주의의 품에 안겼다. 그 뿐 아니라 청소년 학대와 소외, 그리고 계급 차별을 조장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병적인 분야의 광고 모델로 등장해서 스스로 학력 차별을 선동한 꼴이다.

신해철은 아이들이 학원 다니느라 고생한다는 것만 알았지 그 이상의 구조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아닌가 싶다. 아니라면 그 자신 명문대를 나온 탓에 세상을 아직 반쪽 밖에 모르는 것일까. 그는 그 학원의 학원비가 얼만지나 알고 광고 찍었을까. 그는 그 학원 건물이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있는 집 자식'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몰랐었나. 평소 입시 교육을 그렇게 비판하면서도 특목고 입시 학원이 우리 사회 계급 재생산과 사회 양극화의 최전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나.


▲ "신해철이 입시 학원 광고에 등장했다는 뉴스 말이다. 그것도 특목고 전문 학원 광고 모델이었다. 평소 한국 사회의 입시 정책과 사교육을 가장 격렬하게, 물불과 장소 안 가리고 공격했던 신해철이었다." ⓒMBC

계급 재생산과 사회 양극화의 선봉에 선 신해철

하나 더. 최근 진행되고 있는 고교 계급의 지각 변동에 신해철은 확실하게 기여했다. 지금은 이른바 명문고교의 전교 1등도 원하는 대학과 학과 입학을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명문대 진학을 보장하는 것은 이제 특목고 뿐이다. 신해철은 이제 명문고 위에 특목고 있다는 사실과 특목고만이 성공의 열쇠라는 공식을 자신의 몸으로 증명한 것이다. 신해철은 결국 차별 사회를 조장하는 교육 계급화, 입시 계급화, 학원 서열화의 선봉에 선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신해철이 비난 받아 마땅한 이유 말이다. 박준형은 조선일보사가 만든다는 대중문화 웹진에 기고한 칼럼에서 "개그는 개그일 뿐인 것처럼 광고는 광고일 뿐"이라며 "투사도, 정치인도, 논객도 아닌 뮤지션 신해철에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했다.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입시 학원은 왜 신해철을 광고 모델로 낙점해 단발광고도 아니고 아마도 수억 원의 거액이 들어갈 1년 계약을 맺었을까. 신해철이 히트곡 제조기라서? 인기 최고의 가수라서? 한류열풍의 주인공이라서?

아니다. 그 학원은 흘러간 대학생밴드 '무한궤도'에서 활동하던 신해철이나, 요즘 활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도 없고, 대중적인 히트곡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중·고생들은 전혀 열광하지 않는 '넥스트'에서 음악 하던 신해철을 원한 게 아니다. 지금 신해철을 비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신해철의 노래 중 히트곡이 뭔지도 모른다.

결국 교육 장사 하려고 교육 비판 했나

신해철이 거액의 광고 모델이 된 이유는 그가 가수라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그가 내뱉었던 사회적 발언들, 특히 우리 사회 왜곡된 입시 교육을 맹공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그 입시 학원은 가수 신해철이 아니라 사회적 발언을 했던 신해철의 정체성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다. 이걸 뒤집어서 이야기해 보겠다. 신해철은 자신의 이제까지의 사회적 발언을 통해 돈을 번 것이다. '교육 팔아' 돈을 번 것이다. 결국은 '교육 장사' 한 것이다.

박준형은 "신해철에게 왜 투정하나"라며 신해철 비판자들을 비판했는데 그게 '투정'으로 비쳤다면 박준형은 자신의 눈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 신해철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예민한 쟁점인 교육 문제 가지고 자신의 이미지를 쌓으며 몸값을 올리다가 이를 일거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 그의 말마따나 '광고 대박'의 행운을 챙겼다. 이는 교육을 자신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는 당연히 비판 뿐 아니라 비난도 마땅하다.

신해철이 얄미운 이유 또 하나가 있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뭐 그런 걸 가지고 시끄럽게 그러느냐 하는데 신해철은 그의 홈페이지 글에 "예상대로 반응이 불을 뿜는다"고 스스로 썼듯 그의 광고가 시끄러워질 줄, 광고 대박으로 연결될 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학원 관계자도 "어느 정도 논란은 예상했지만…"이라고 했다. 학원 측은 학생 수가 늘지도 않았고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죽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결론은? 광고 중단? 천만에! 광고는 계속 나간단다. 그들은 신해철의 자기모순과 언행 불일치로 인해 일어날 논란까지 모두 계산한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지금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신해철은 그 학원 홈페이지에서 "특목고에서 명문대까지 합격의 맞춤전략을 제시한다"며 '2009년 특목고 총 980명 합격'을 손수 내걸고 잔뜩 연출된 표정과 격렬한 몸짓으로 광고에 전력하고 있다.

청소년과 미래와 희망을 배신한 사람

그는 논란이 되자 개인 홈페이지에 "CF 역시 아티스트에겐 표현의 일종"이라면서 "착각하시는 분들은 다음 글을 읽어보세요. 며칠 내로 시간 나면 올리죠"라며 후속 해명글을 예고했다. 그러나 열흘이 넘도록 시간이 나질 않는지 그의 글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사실 그가 같은 글에 "길게 쓰긴 귀찮고…"라고 쓴 것을 보면 할 이야기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좀 귀찮더라도 한번 써 보기 바란다. 길게. 도대체 '아티스트'로서 뭘 '표현' 하려 했는지 말이다.

그는 팬과 대중과 청소년과 희망을 배신했다. 이제 우리 차례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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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2-2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 올만이에요.
제가 올해,... 학생부장을 맡았습니다.
술한잔 사주세요. ㅠㅜ

해콩 2009-02-2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 학교 학생부는 땡 잡았네요... ^^ 학생생활지도부가 되기보다는 학생서비스부.. 정도가 될 듯.. 술은 한 잔이 아니라 여러 잔 사드려야 할 듯. 제 폰 번호 그대로임돠... 연락주셔요. 근데 3월에는 바쁘시지 않으실까? 암튼 여유있으실 때!! 아~ 느티나무님도 함께 뵐까요? 북구에 ㄱㄱ고로 이번에 옮기셨데요~

hook-choi 2009-03-01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난 또 몰랐네... 평소에도 신해철의 오버스러움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이렇게 배신(?)을 때릴 줄이야. 배신이란 말로는 이 더럽고 짱나는 기분을 대신할 수 없을 듯한데... 이제 졸려서 자려고 하는데 또 열받네. 진중권 아저씨는 또 뭐라고 쓴거야? 졸려서 낼 찾아봐야지. 낼 개학인데 교재연구는 안하고 인터넷만 헤매다 자네~ 샘도 잘자.

해콩 2009-03-0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나름 팬이었는데 정말 저런 광고를 찍었단 말야? 싶더라. 그 역시 자본의 원리에 충실한 마왕이었던 셈. 믿을 놈이 없어. 사후 그의 뻗댐에 더 짜증나네, 씁쓸하고. 내일이 드뎌 개학인데 점점 게을러져서 작년 첫시간처럼 수업해야지~ 하며 개학 후로 모든 일을 미루고 인터넷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어. 내일 좀 일찍 등교해서 준비해야지 하면서 ㅋㅋ 자기나 나나 뭐 오십보백보인 듯. 오늘 밤 잘 자고 내일부터 다시 홧팅이야. 수민이 때문에 신경 많이 쓰이겠다.
 

합격자 플래카드와 다산의 「감사론」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대학 동창 중에 중고등학교 교사가 많다. 다른 길을 걷노라 어울릴 기회가 적지만 뜸뜸이나마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얼마 전 대학 다닐 때 순수한 교육적 열정으로 들끓던 친구를 십수년만에 만나 생선회 한 접시를 앞에 놓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만나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 소식을 묻기도 하고, 떠올리자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청춘의 황당한 실수담 등 온갖 얘기로 꽃을 피우다가 화제가 입시 이야기로 번졌다.




“야, 아무개야, 그런데 말이지, 대학 입시 끝나거든 제발 학교 앞에다가 서울대 몇 명 합격이라고 플래카드 좀 붙이지 말아라. 원, 그래서야 쓰겠냐? 학생이 서울대 몇 명 간 것이 학교 자랑거리가 되나? 그거 교육자답지 않다.”




친구의 답은 이랬다. “이 사람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나. 선생님들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학부형들이 몇 명 갔느냐고 물어서 붙여 놓은 거란다. 또 교장 선생님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본인이 기뻐하고 주위에서 축하하면 그만인 일을




특정 대학에 많은 학생을 합격시키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목적인가, 자랑거리인가. 설령 그렇다 치자. 하지만 학교에서 그것을 플래카드에 써서 몇 달이고 광고를 하는 것이야말로 좀 부끄러운 처사가 아닌가.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런 꼴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슨 고시 합격자 발표가 나면, 길거리에 ‘무슨 고등학교(혹은 중학교) 졸업생 아무개’ ‘아무개 씨 아들 누구’가 어떤 고시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리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대학 올해 사법시험 몇 명 합격, 무슨 고시 몇 명 합격, 이런 플래카드는 넝마가 될 때까지 걸려 있다. 물론 개인이 노력해서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기뻐할 일이고, 그 개인을 아는 사람이 축하하면 그만인 일이다. 동네방네 그것을 알려야 할까?




또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내 주위에 그런 시험에 합격한 분들이 더러 있지만, 그들로 인해 그 마을이나 그 학교나 그 이웃이나 그 친척이 무슨 행복해지는 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안면을 통해 무슨 사사로운 부탁을 하여 덕을 보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분들이 차지한 높은 자리가 사적 친분을 통한 부탁을 들어주라고 만든 자리는 아닐 것이다. 요컨대 플래카드의 주인공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것일 뿐이다.




문득 다산이 큰 도둑을 논한 「감사론」이 떠올라




나는 이런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조선시대의 과거 합격자와 다산의 「감사론」이 떠오른다. 「감사론」의 한 부분을 들면 이렇다.




“그 사람은 큰 깃발을 세우고 넓은 일산을 바치고 큰 북을 치고 큰 나팔을 불고 두 필의 말이 끄는 교자를 타고 옥로(玉鷺)를 위에 꽂은 갓을 쓰고 길을 간다. 그를 따르는 사람을 꼽자면, 수종군은 부(府)가 둘이고 사(史)가 둘이며, 서(胥)는 부·사의 수와 같이 하되 둘을 더하고, 병졸은 수십 명, 하인과 종의 무리는 수십 수백 명이다. 여러 현(縣)과 역(驛)에서 나와 인사를 안부를 여쭙고 맞이하는 아전과 병졸이 수십 수백 명이고, 말을 탄 사람이 1백 명, 짐을 실은 말이 1백 필, 고운 옷에 곱게 단장한 부인이 수십 명, 화살 넣은 동개를 지고 말을 타고 앞을 달리는 비장이 둘, 그리고 뒤에 따라가는 비장이 셋이다. 거기에 따르는 역관(驛官)이 하나, 향정관(鄕亭官)으로 말을 타고 따르는 사람이 셋, 인끈을 늘어뜨린 부신(符信) 주머니를 차고 숨소리도 내지 않고 말을 타고 따르는 사람이 네댓, 붉고 흰 차꼬와 항쇄, 족쇄를 싣고 가는 사람이 넷, 횃불을 등에 지고 청사초롱을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수백 명, 손에 채찍을 쥐고 백성들이 앞으로 달려 나와 하소연을 하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여덟이다. 길거리에서 바라보고 한숨을 뿜으며 부러워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다.”




왜 엉뚱하게 플래카드의 이름에서 과거합격자와 감사가 떠오르냐고? 나도 모른다. 나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연상 작용의 복잡한 과정을 어떻게 알겠는가? 혹 「감사론」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면 알 수 있으려나.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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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12-0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어제 강명관 선생님 글 읽었는데요. 참 시원시원하시데요. ^^
근데... 플래카드 붙이든 안 붙이든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 들어가는게 담임으로선 젤인데...
우리반은 아직 합격률이 0/33입니다. ^^
방학때 지부에서 하는 강유원과 책읽기 신청할까 하는데요. 같이 들읍시다.

해콩 2008-12-13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가을 강명관샘 강의를 두 번이나 들었어요. ^^; 강의는 더 시원시원...
강유원 연수 그렇지 않아도 쪼금 땡겼는데 다른 연수랑 이틀이 겹치는 바람에 접었습니다. 사실... 안내된 책 목록을 보고 '앗 뜨거라'한 면도 있구요. 들으시고 좋은 책 추천해주셔요~

방학 때든 언제든 한 번 만나서 진~짜 맛있는 커피 한 잔 홀짝거리면 좋겠어요. 혹시... 시네마테크는 안 오시나요?

글샘 2008-12-16 08:18   좋아요 0 | URL
억, 안내된 책목록이 있었나요?
이론... 큰일났네염. ㅠㅜ
커피는 제가 한 잔 살게요. ㅎㅎ
시네마테크...는 잘 안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