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드린다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프로 정치가 아니야, 바보야
진보란 그런 게 아니야!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사이비 민주주의야, 바보야
애국은 그런 게 아니야!

아,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말뿐이던 우리가 텅텅 빈 우리가
허세뿐이던 우리가 당신 손을 뿌리쳤습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열번 스무번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버리고 돌아서니
난데없는 철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벼랑에 떠밀고 내려다보니
바위 벼랑 아래 처박힌 피투성이 얼굴은
우리의 얼굴이었습니다

운명이었습니다
아, 운명이었습니다
운명은 첫 순간에 종말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는 뜨거운 정의의 감정을 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순결한 영혼을 동경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과 순결한 영혼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짓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높이 세우려는 짓 따위에 열정을 품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가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자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운명의 비극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천 년 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한 사내의
외침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의 패배가 여러분의 승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피에 굶주린 자들에게 당신을 먹이로 던지고
피의 잔을 나누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 슬픈 선지자의 꿈이여!
당신은 정치가가 아니었습니다

아, 살아서 훌훌 벗어버리고 싶었던 사람이여
다 벗고 인간만 남기고자 했던 사람이여
정치도 벗고 권력도 벗고 모든 권위도 벗고
오직 벌거숭이 인간만 남기려 했던 사람이여
차별 없는 인간만 남겨 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었던 사람이여
당신의 눈물이 우리들 가슴에 강물처럼 일렁입니다
당신의 눈물이 검은 아스팔트 위에 붉게 출렁입니다

백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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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죽음을 뜻하는 낱말은 무척 많습니다.
오늘은 그런 낱말만 모아봤습니다.
종교에서 따로 쓰는 낱말도 있고, 한자문화권에서 온 낱말도 있습니다.

기세(棄世) : 세상을 버린다.
영면(永眠) : 영원히 잠들다는 뜻으로 죽음을 뜻하는 말. 유명한 사람의 죽음
영서(永逝) : 영원히 간는 뜻으로 죽음을 이름.
작고(作故) : 고인(故人, 옛날 사람)이 되었다.
잠매(潛寐) : 잠들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름.
승하(昇遐)/등하(登遐)/예척(禮陟)/척방(陟方) : 먼 곳에 올라가다.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던 말
입적(入寂) : 수도승의 죽음. = 귀적(歸寂) = 입멸(入滅) = 멸도(滅度)
병세(別世) : 세상을 하직한다는 말로 죽음을 뜻함.
기세(棄世) : 세상을 버린다는 죽음을 높이어 이르는 말
사거(死去) : 죽어서 세상을 떠남. 주로 저명한 외국인의 죽음에 사용되는 표현인데 서거로 대접하기에는 좀 과하고 사망으로 하기에는 미흡한 중간급 저명인물의 자연사에 따라붙음
장서(長逝) : 영영 가고 돌아오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름
별세(別世) : 윗사람이 세상을 떠남
사망(死亡) : 보통 사람의 죽음
사거(死去) : 죽어서 세상을 떠남. 사망
서거(逝去) : 사거의 높임말. 자신보다 높은 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타계(他界) : 다른 세계, 곧 저승. 어른이나 귀인의 죽음

종교에서는 좀 다른 뜻을 담습니다.
환원(還元) : 천도교,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
입적(入寂) : 불교, 수도승의 죽음. 중이 죽는 것을 뜻함. 입멸(入滅), 귀적(歸寂), 적멸(寂滅), 원적(圓寂), 멸도(滅度) 등도 있음
열반(涅槃) : 불교,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석가모니를 비롯한 고승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천(召天) : 개신교,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뜻. 개신교에서의 죽음
선종(善終) : 천주교,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는 뜻의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

이 밖에도,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崩御(붕어), 왕의 죽음을 뜻하는 昇遐(승하), 제후의 죽음을 뜻하는 薨去(훙거) 따위가 있으며,
평 관리가 죽으면 卒(졸)이라 쓰며, 녹을 타지 않고 죽는다는 뜻으로 선비의 죽음은 不祿(불록)이라 합니다.
금실 좋은 아내가 죽으면 현악기의 줄이 끊어진다는 뜻으로 斷絃(단현)이라 하고,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꽃잎처럼 흩어진다는 뜻으로 보통 군인의 전사는 散華(산화)라고 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죽음은 物故(물고)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숨지다, 죽다, 돌아가시다 따위가 있으며,
제가 좋아하는 '흙보탬'도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누구나 사람은 다 죽습니다.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래서 나보다 먼저 돌아가신 분을 우러러 죽음 앞에 경건함을 갖추고 두려움을 없애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은 이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고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훌륭한 일을 하고 가신 분이라면 높고 귀한 낱말로 우러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르는 낱말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은 다 같이 귀합니다.
우리 모두 내 삶을 아끼고 사랑합시다.
나중에 한 줌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잘 다듬어 곱게 쓸 수 있게 내 삶을 사랑합시다.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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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눈물의 기억]
작가 10인이 쓴 노무현을 위한 묘비명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그의 뜻이다. 뭐라 대꾸할 수 있으랴. 우리는 다만, 작은 비석 하나를 준비할 뿐이다. 그 작은 비석엔 어떤 말을 새겨넣어야 할까? 어떤 문장이 그의 삶과 죽음을 정의할 수 있을까? 시대를 대표하는 10인의 시인·소설가가 묘비명을 썼다. 힘겨운 일이었다. 자꾸 격한 감정이 들어 아무리 해도 글을 쓸 수 없었다는 이도 있었다. 편집자


 
 


? 서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
 
 
 



서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 -정도상(소설가)








 




여기 한 인간 잠들어 있다. 봄이면 무논 넘어 뻐꾸기 소리 청명하고, 여름이면 개구리 소리 왁자지껄 들리는 곳, 가을엔 누렁소 워낭 소리 느리게 지나가고, 겨울이면 천지간에 흰눈 펄펄 내려 덮히는 곳. 창공을 지나가는 태양이여! 잠시 걸음을 멈추어라. 들판을 달려가는 바람이여, 냇물이여! 잠시 귀를 기울여라.

1946년 9월1일. 산도 들도 아직 가난했던 조국. 한 인간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저 평범했던 집안, 그저 평범했을 뿐인 가족들. 그저 평범했을 법했던 한 인간의 생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고등고시에 합격하였다. 판사가 되었고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운명이 그를 불렀다. 불의한 세상이, 고난 많은 역사가 그를 불렀다. 타는 열정으로 그는 소리쳤다. 사자후를 토하듯 외쳤다. 원칙과 상식이 살아 있는 대한민국! 보통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대통령인 민주주의 대한민국!

그리고 2009년 5월23일. 그는 마침내 신화가 되었다.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굴하지 않는 정신의 위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보라! 여기 왕소금같이 환한 미소 지으며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한 평범한 생애, 바위처럼 누워 있다. (김영현 삼가 쓰다) -김영현(소설가)







여기에 천둥처럼 와서 천둥처럼 떠난

한 격정의 사내가 누워 있다.

불타는 혀의 웅변, 강인한 투혼

사나운 발톱의 승냥이떼 속에서

피투성이 상처로 질주하여 마침내 돌파한

위대한 거부의 정신

죽어서도 꺾이지 않는

정복되지 않은 죽음

진정한 민중의 벗, 노무현

당신이 뿌린 씨 기어코 우리가 거둘 터이니

그대 퍼렇게 눈 뜨고 잠들지 마시라 -현기영(소설가)




 
 


? 서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는 없어

허공에 한 생애를 던진

노무현의 영혼을

하늘이여,

당신의 두 팔로 받아 안아주소서 -도종환(시인)







한국의 맑은 꿈 여기 잠들다


그대는 세상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는 길을 애써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가는 길이 정의로운 길임을 스스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험난하고 아프고 외로웠으나, 그대는 치열하게 그 길을 뚫고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대는 그 길이 옳았음을 세상에 입증시켰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그대의 인간적인 소탈함,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온갖 권위주의와 지역주의, 분단 고착, 빈부 갈등 따위를 온몸으로 타파하려는 그대의 열정적인 노력은, 모든 한국인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길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아아, 그대는 죽음까지도 이토록 순결하구나! 아깝고 분하고 또 애통하다! -이성부(시인)








여기


대통령이면서 시민이고자 했고

정치인이면서 정의롭고자 했으며

권력을 잡고도 힘없는 자 편에서

현자였으나 바보로 살아

마침내 삶과 죽음까지 하나가 되도록

온몸으로 그것을 밀고 갔던

한 사람이 있으니

그를 미워하면서 사랑했던 우리는

이제 그를 보내며 영원히 우리 마음에 그를 남긴다. -공지영(소설가)






많이 가진 사람들 편에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


불의한 것에 치열하게 분노하고
타인의 고통에 함께 눈물 흘리는 것에
가식이 없었던 사람
진심으로 온몸이었던 사람


백 개의 부끄러움을 가진 이들과
천 개의 부끄러움을 가진 이들이
하늘에 맹세코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할 때


하나의 부끄러움을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며
죽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사람


진심으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정치인만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 정치인


당신을 통해 우리 모두의
마음의 역사가 진보할 수 있기를! -김선우(시인)






사람 사는 세상의 자유를 꿈꾸었던 사람,

낮은 곳을 바라보며 눈물 흘릴 줄 알았던 사람,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를 위해 평생 애쓴 사람,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여기 봉하의 뒷산에 고이 잠들다 -안도현(시인)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번쩍 치켜들었던 당신의 오른손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패배한 자들을 위해, 또 그들과 함께, 그게 지는 길일지라도 원칙과 상식의 길이라면 두려움과 불이익을 마다하지 않았던 당신의 삶에게, 또 사랑과 행복의 기억이 공포와 폭력의 기억보다 더 오래간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당신의 삶에게, 또한 지는 길처럼 보이는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영원히 승리한다는 진리를 가르쳐준 당신의 죽음에게. -김연수(소설가)






당신의 순결한 영혼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아름다운 등불입니다. -공선옥(소설가)

 

 


서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 [한겨레21   2009.06.05 제7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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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그의 시대를 보내며


                                                         정 지 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고전비극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보다 우월한 인간, 즉 왕이나 장군, 반인반신의 용사들인데, 이들은 타고난 운명의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외디푸스왕이나 햄릿 왕자, 발렌쉬타인 장군은 모두 고귀한 신분과 준수한 용모, 고매한 인품,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맹을 타고났으나 한 순간에 영광의 절정에서 치욕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러한 추락의 낙차가 클수록 관객이 느끼는 공포와 연민의 강도는 증가한다.

비극의 주인공들이 자아내는 미적 정서는 흔히 숭고미와 비장미로 규정된다. 이상의 세계를 향하여 비상하다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추락하는 주인공은 외경과 감동의 정서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러한 숭고미와 비장미는 역사적 인물들의 죽음에서도 나타난다. 국가와 군주에 대한 충성심으로 전사한 이순신과 관운장은 ‘성웅’과 ‘군신’으로 추앙되고, 기존의 체제에 도전하다가 처형된 전봉준과 스파르타쿠스는 비운의 혁명가로 미화된다.


그의 비극적 죽음, 시대의 야만성을 증명

그렇지만 노무현의 죽음은 이러한 숭고하고 비장한 영웅들의 죽음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는 고전비극의 주인공처럼 왕이나 장군, 귀족도 아니고 반인반신의 용사도 아니었다.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혁명가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지도자, 신출귀몰한 책략가도 아니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으나,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고집 때문에, 인권 변호사로, 바보 정치인으로, 대중의 자발적 지지에 의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다시 농민으로 돌아온지 1년만에 절벽에서 몸을 던진 어수룩한 촌놈일 뿐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되 그 추락의 낙차는 크지 않다. 왜냐하면 노무현은 결코 신비로운 만년설로 빛나는 절대권력의 봉우리에 올라간 적이 없었고 그저 해발 백 미터의 야트막한 뒷산에 올랐다가 부엉이바위에서 사십 미터 아래 골짜기로 떨어졌을 뿐이니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기는 했으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고, 휘두를 수도 없었으니까. 기득권 세력은 탄핵으로 그를 무력화시켰고 재벌의 앞잡이인 수구족벌언론은 집요하고 야비하게 그를 씹어댔다. 이제 권력은 청와대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대통령 노무현의 탄식은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진단이었다. 그는 시장의 힘에 떠밀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함으로써 지지층으로부터 고립되었고, 퇴임 직전 힘겹게 성사시킨 남북정상회담의 영광도 그의 뒤를 이은 이명박 정권의 무조건적인 ‘거꾸로/뒤집기정책’으로 원천무효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뒤늦게서야 그의 비극적인 추락이 4·19와 5·18, 6·10으로 얻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과에 안주했던 우리 모두의 탐욕과 나태와 위선의 결과임을 깨닫는다. 한때 그에게 열광하고 박수를 보내던 서민 대중은 주식과 대운하, 뉴타운으로 떼돈을 벌어볼 욕심에, 이른바 386세대의 중산층은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어 출세시키기 위해, 등을 돌렸다. 민주시민과 노동자, 지식인들은 반대세력을 모질게 짓밟지 못하는 촌놈 노무현의 무력함과, 속내를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는 투박한 언행을 나무라며 현실정치를 외면하고 한탄만 하다가, 허황한 경제살리기 747공약을 내세운 수구기득권세력에게 민주주의를 헌납하고 말았다.


사냥개들에 쫓겨 헐떡거리며 살았던 개같은 시대

노무현의 죽음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야만성을 증명한다. 온갖 풍파에도 끄떡없이 버텨온 세련되고 영악한 기득권세력은 재산도 학벌도 없는 시골 출신 대통령의 우직한 정의감을 비웃고 왕따시키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가 낙향한 고향 마을까지 따라와 처자식과 친구, 후배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끝장을 볼 때까지 괴롭혔다. 물고 뜯고 짓밟고 조롱했다.

약삭빠른 수구족벌신문과 방송은 권력에 빌붙어 알량한 잇속을 챙기려고 온갖 거짓말과 욕지거리를 끝없이 쏟아냈다. 심지어는 소박한 촌집이 ‘아방궁’으로 왜곡되고, 봉하마을을 찾는 버스에 30만원씩 돈을 준다는 헛소문까지 나돌았다. (나는 1980년대에 전라도 주유소에서는 ‘김대중 선생 만세’를 외치치 않으면 기름을 팔지 않는다는 유언비어를 대학 교수휴게실에서 들은 적이 있다.) 줄을 풀어준 너그러운 주인한테 버릇없이 대들던 검찰과 경찰은 강퍅한 새 주인이 ‘물어라 쉭’ 하고 줄을 당기자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전 주인이건 누구건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정적을 역적이라고 모함하여 유배를 보내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3족을 멸하여 씨를 말리던 왕조시대의 잔혹한 정치보복의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토끼몰이를 당하는 고통이 오죽했으면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도 없다”고 비명을 질렀을까. 그들이 악에 바쳐 부르짖던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는, 민주화의 대세에 밀려 빼앗겼던 기득권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되찾아 다시는 내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과연, 그들은 ‘촛불’로 흔들리는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언론과 집회와 표현의 자유, 남북화해, 양극화 해소 등 보편적 가치와 상식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와 경멸을 불사함으로써 우리시대를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내팽개친 ‘야만의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 이 기막힌 퇴행과 모욕에 맞서 힘없는 농민 노무현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생 동안 추구해왔던 가치를 온몸을 내던져 지켜내는 투신뿐이었으리라.


잘 가시오, 벗이여!

야만의 시대에 우리는 고통을 견디고 치욕을 감수하며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추구했던 노무현은 너무도 우직한 촌놈이었기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스스로 “삶과 죽음이 한 조각인 자연”으로 돌아갔다.

1946년 병술(丙戌)생 개띠. 그가 기득권세력의 사냥개들에 쫓겨 헐떡거리며 살았던 개같은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탐욕으로 파헤쳐지고 남북분단과 지역주의로 갈갈이 찢긴 산하를 장엄하고 처절한 낙조로 물들이며.

잘 가시오, 벗이여! 같이 태어나 같은 길을 걷다가 먼저 간 동갑내기 도반들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러본다. 화가 오윤, 시인 김남주, 음악가 문호근, 변호사 조영래 그리고 바보 촌놈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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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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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9-06-0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가슴에 불을 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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