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해콩 선생님, 힘내세요!!!
땅콩 선생, 드디어 인권교육하다
전국사회교사모임 인권교육분과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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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리뷰 제목이 개인의 실명(알라딘 내의 실명^^)을 거론해서 당황스러우셨나요? 그러면 무시하고 읽지 마시죠.(라고 말하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겠죠?)

며칠 전에 해콩 선생님의 서재에서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리고 해콩 선생님은 학교의 민주화를 위해서 노심초사하시는 훌륭한 선생님이시다. 아직 경력은 많지 않지만, 경력이 짧다고 뭐를 아느냐는 노친네들의 논리는 늘 오류를 범한다. 경력이 길어 지면, 날카롭지 못하다. 날카로움이 무뎌지고 마는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문제점들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 긴 경력을 무기삼아 억압에 나선다.

학교 내에서 남교사가 많으면 <여교사회>가, 여교사가 많으면 <남교사회>가 있다. 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발버둥이리라. 그런데, 내가 본 여교사회의 노친네 중, 상당수는 젊은 여교사를 억압한다. 선배의 이름으로. 이건 완전히 깡패 저리가라다. 남교사회도 마찬가지다.

해콩 선생님의 서재에 간혹 들러 보면, 사설 모의고사를 거부할 권리, 방학중 보충학습을 받지 않을 권리, 야간자율학습을 안 할 권리 같은 말들을 듣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거의 불문율로 굳어져서 쉽게 말 꺼내기 어려운 소재들이다.

나도 십여 년 전에는 여름방학책으로 배를 불리는(이 짓거리는 최근까지 성행했던 것이다.) 교총과, 매일 지시전달만 하는 직원회의, 군대식 제식훈련을 통한 맹목적 투철한 굴종의 정신과 잘난 놈을 위해 못난 놈은 희생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우는 운동장 조회 등에 문제제기를 했던 적도 있지만, 요즘은 투덜거리고 씨벌거리며 넘어갈 뿐이지,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지각하는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짜식들에게 화를 버럭버럭 내는 좁쌀영감이 되어 갈 따름이다.

이 책은 작년쯤 도서실에 들어온 책이다. 그런데 내가 도서실에 책 빌리러 갈 때마다, 눈에 띈다.(크기가 커서 잘 보인다.) 거의 선생님들도 빌려가지 않았던 듯, 책은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이런 책을 눈에 불을 켜도 읽었을 내 교사 초년 시절을 떠올리면, 일 년이 되도록 이 책을 알고만 있었던 것은 녹슨 것 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해콩 선생님의 글들을 요즘 몇 편 읽다가,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문제로 여기기로 마음을 먹었단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무시하고 넘어갔던 나를 반성한다.

인권. 사람답게 살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내가 사람답게 살지 못할 때 꿈틀거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주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지 못할 때 동지가 되어주자는 말이다.

나는 국어과 교사이지만, 수능 문제 풀이 중심의 수업을 주로 하게 된, 그리고 그걸 능력으로 여기고 사는 한심한 선생이다. 아이들의 사고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 수능에도 유리하단 것을 알지만, 학생 중심의 활동을 능력이 안 되고, 귀찮아서 못하고 있는 선생이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너무 무기력하다. 전교조는 교육의 희망이 되지 못한지 오래다. 올해 위원장 선거와 지부장 선거에서 1번이 모두 낙선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여긴다. 투쟁 위주의 전교조, 원칙과 교조적인 지도부는 현장에서 유리되어버리는 것이다. 학교에선 모의고사를 쳐야 하는데, 다들 쳐야 한다는데, 전교조는 늘상 거부 방침만 반복하는 녹음기였지 않은가. 밤 열 시까지 자습하고, 아이들은 새벽 한 시, 두 시까지 학원으로 독서실로 나가 돌아다니다가 초주검이 돼서 돌아오는데, 영교시만 겨우 없앤다고 해결책이 생기진 않는다.

학생들의 인권을, 교사들의 인권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주로 워크북 형태로 되어 있어서 학생들의 활동을 안내하는 부분이 상당부분이다. 사실, 처음 책을 접할 때엔, 인권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했음을 감출 수 없지만, 이 책을 죽 읽고 난 지금은, 인권은 아무 것도 아닌, 관심의 다른 말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관심, 가사 노동에 대한 관심, 학생과 학교 운영에 대한 관심... 일개 평교사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다. 그러나,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것과, 아무 것도 못 하지만, 동료를 모으고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하나씩 모색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큰 일이란 것을 깨닫게 해 준 해콩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리뷰가 이상하지만, 독후감에는 특정 인물에게 편지 형식으로 쓰는 독후감도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해콩 선생님이나 땅콩 선생이나 콩의 일종이었군. 음. 콩과 인권에 대해서 연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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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안준철의 교육에세이
안준철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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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고보니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를 스쳐간 아이들이 '그후 어떻게 되었을지'를.  더러 일 년에 두어 번 쯤 연락이 오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나를 스쳐간 그 아이들은 지금 행복할까? 나는 인간의 행복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서 오는지 제대로 알려나 주었을까?

책을 덮고 난 지금,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다시 한 번 꼭꼭 씹어가며 봐야겠다'는 것이다. 한 번 읽고 난 책은 얼마쯤 지나면 느낌만 남고 구체적 내용은 거의 잊어버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다시 펴들지 않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독서 습관을 가진 자신을 알기 때문에 지금 바로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더 읽어볼 작정이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깊은 마음씀이 크게 다가왔는데 목차를 다시 눈여겨 보니 학급살림에 필요한 여러가지 팁들도 챙길 것이 많다. 첫날 '생명값'에 대한 대한 이야기,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는 맹세,  '생리통'을 바라보는 교사의 마음, 담임 생일 챙김받는 법, 소풍날 베스트 드레서 뽑기, 방학 전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 믿고 기다리는 법, 부모님 직업을 대하는 마음, 편지로 마음 전하는 법,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 남은 사랑을 단련시키는 방법 등등... 그리고 사려깊게 초임교사를 배려하는 맺는 글까지.

실업계 초임 교사 시절의 시련(그건 확실히 시련이었다. 그 시절 나는 일주일에 두어번은 꼭 눈물을 흘려야했으니까..)이 나에게 준 교훈은 이런 것이었다. 먼저 '그저 속아주자'. 아이들이 속이려고 작정하고 거짓말 하면 나로서는 그저 속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거짓인줄 모른다면 자연스럽게 속아넘어갈 것이고, 거짓인 줄 안다해도 끝까지 아이의 거짓됨을 밝히는 것이 오히려 나쁠 것 같아서 속아주는 편이, 그러면서 그의 말을 믿어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건 밑지는 장사는 아닐거라 생각했다. 나를 속이면서 아이의 마음이 그저 신나고 편할 리는 없을 것이니 스스로 잘못을 반성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있을 지도 모를 아이의 '진실'을 압살하지 않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렇게 일부러 속아주는 일이 궁극적으로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담임을 속이면서 아이 마음속에 저도 모르게 들어앉을 죄의식과 거짓, 불성실... 등등도 해결이 되질 않았다. 그저 속아주는 것 보다는 오히려 이러저러한 내 마음과 걱정, 잘못 등을 솔직하게 아이와 나누는 것이 더 진실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고쳐진 부분이다.

당시 유행하던 모 호텔의 광고 카피는  '우리의 목표는 귀하의 감동입니다'였다. 그 당시 나의 목표는 '아이들의 감동'이었다. 환경미화 할 때 밥 싸와서 같이 먹기, 청소 늘 같이하기, 편지쓰기, 상담하기... 등등을 수단으로! 일단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야 내 말을 들어주니까 그들이 감동 먹을 때까지 나는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이들의 마음만 얻었을 뿐, 그후 아이들 인생에 어떤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저 내가 그 마음을 얻었다는 사실, 그것뿐이었다. 아이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떠날 수 있도록 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런 활동들이 자기 만족에 불과했음을.

교직을 전문직이라고들 한다. 전문직.... 무엇을 전문직이라고 할까? 왜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할까? 일반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일을 전문직이라고 한다. 의사도 판검사도 전문직이다. 그들은 물리적인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 교사도 생명을 다룬다.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것이다. 교사들은 때에 따라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일 수도, 죽어있는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교직을 전문직이라 부르는 이유는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려 내는 것을 의무로 해야하는 직업이라는 뜻일게다. 그러나 나는 본다. 살아 있는 아이들을 너무나 쉽게 죽여버리는 이 땅의 교사들을, 교육제도를! 그 속에 일부분인 나 자신을...

안준철 선생님, 그의 손을 거치면 아이들은 살아난다. 절망하고 좌절하던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게되고 다른 사람도 또한 그런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물리적인 목숨만 붙어있다고 살아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사랑스럽고 가치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다른 사람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다시 말해 사랑받을 줄 알고 사랑할 줄 알아야 진실로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닫는 순간, 그러한 곳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것이다. 방법은 한 가지이다. 대상을 진정 사랑하는 것.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전부 내어놓는 것이다. 투명하게 열어놓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나를 보여주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목적없이 무작정 믿어주거나, 감동을 주는 일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사랑받는 법, 사랑하는 법을 보여주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힘을 잃지 않도록 하는, 그런 목적부터 세우는 작업이 내겐 필요했던 것이다. 그건 거창한 무엇은 아닌 것 같다. 그저 하루하루 그들과 함께 소박한 삶을 나누는 일, 그것일뿐이다. 더구나 내 곁엔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내게 그런 힘을 주는 동료들이 있다.

나는 안다. 내일도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갈등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 모습을, 내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줄 용기를 얻었다. 해서 나는 다시 이 책을 펼친다.

2004. 9. 13.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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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09-22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에게 아이들은 가시 면류관이 아닐까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러나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는, 우리는 가르치는 '교사'이기 이전에,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난 '선생'이잖아요. 해콩선생님의 상처를 저도 앓았던 적이 있고, 지금도 중증이지만, 안준철 선생님의 글을, 이상석 선생님의 글을 삶의 전부라고 읽지 않으시길... 우리에게도 간혹은 환한 순간도 있잖아요. 그래서 전 교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늘 품고 삽니다. 억지로라도 행복해야 할 이유. 우리는 교사니까요, 아니 선생이니깐. 힘내세요. 해콩선생님.^^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안준철의 교육에세이
안준철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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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뎌 안준철 선생님의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차안에서 우선 '서문'을 읽었다. 아~ 역시!!  '아이들보다 내 꿈이 더 커지지 않길' 바라시는 선생님.. 감동이다. 이 책은 보나마나 뻔하다. 내게 끝없는 '돌아봄'을 요구할 것이다. 맘은 다소 힘이 들겠지. 빙그레 웃음도 잦겠지만 또한 눈물도 그만큼... 그래도 분명 행복할 것이다. 이런 생각도 잠깐 스칠 것이다. '이런 분과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면 어떨까?', '서툴고 못 미쳐도 나는 나의 자리를 지켜야겠지?' 이런 저런 생각으로 감히! 책장을 다급하게 넘기질 못하고 있다.

   아침에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오늘 또 사고-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를 쳤을 것이다. 학교의 아침은 늘 바쁘다. 오늘 조례시간에 아이들이랑 가을 노래 한 곡 들어야지, 너희를 사랑한다 말해줘야지... 하면서도 늘 이것 가지고 왔냐? 저것 가지고 왔냐? 추석 전에 대대적인 두발 단속 있단다. 그전에 알아서들 하거라. 등등.. 옷만 갈아입지 않는다면 매일 그날이 그날 같다.

   **이 어버님께 전화를 받았다. **이... 개학하고 절반이 결석이다. 약하고 빼빼 마른 녀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아버님도 심한 당뇨로 여름방학에는 입원까지 하셨단다. **이네는 부녀가 서로 보살펴주어야 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엄마가 안 계시다. 오늘도 **이는 못 온다. 지난 번 아픈 것이 아직도 덜 나아서 오늘 큰 병원에 정밀검사 받아보러 간단다. 아이가 아프다는데 나는 이젠 진심으로 걱정이 안 되는 것 같다. 의례히 알겠노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5교시, 힘든 5반 수업을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는데 아이들이 "샘~ 누구 왔는데요~"한다. 돌아보니 뒷문에 00이와 ##이가 서있다. 00이 눈이 발갛다. 왜? "샘, 담배 피다 걸렸는데요." " 뭐? ##이도?" "네" 반성문에 담임 싸인란이 있다. 점심시간에 10반 @@이랑 우리 반 두 녀석이 중간고사 치고 다 가버린 3학년화장실에 가서 어제 편의점에서 산 담배를 폈단다. 이상하게 마음은 담담했다. 그러나 표정은 삭막했을 것이다. 그냥 반성문 한번 씨익 읽어보고 싸인해주고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보냈다. 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내려오니 교무실 앞에 두 녀석이 벌서고 있다. 학생부에서는 딸아이들이 담배를 핀다고, 남녀평등시대이니 여학생들도 피워야한다는 애매한? 소리가 들려왔다. 담임에게 알리지도 않고 학생부 차원에서 벌써 학부모 호출. 야단은 쳐야하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잔소리를 하기 보다는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써야지. 그리고 쿨~하게 보내줘야지. 어차피 내일부터 학교봉사로 벌 받을 아이들... . 6교시 후, ##이를 불러 짧은 잔소리하고 편지를 쥐어 보냈다. 7교시 보충 수업 후, 00이도 불렀다. 주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깊은 이야기는 못하고 또 편지를 주어 보냈다.

  어제 ㅁㅁ이가 아무 말 없이 가버렸다.%%이가 'ㅁㅁ이 어머님께 무슨 일이 있어서 가봐야한다면서 갔어요. 선생님께 전화한데요.'전해주었다. 알겠노라 했지만 나는 마음 속으로 두둔하는 %%이도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버린 ㅁㅁ이도 못 미더워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ㅁㅁ아 내려오너라 했다. 종일 ㅁㅁ이는 내려오지 않았다. 나중에 7교시 보충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인적이 뜸해졌을 즈음 ㅁㅁ이가 왔다. "ㅁㅁ아 어젠 왜 갔노? 느들 사정 말하면 내가 다 보내주잖아? 어제는 더구나 내가 야자 감독이었고. 근데 왜 말도 없이 갔노? 지난 금요일도 아무 말없이 가고. 그래서 토요일 니가 뭐랬노?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죄송해요 샘... 근데 앞으로도... 일이 좀 있어서... 최대한 열심히 하겠지만..가끔 가다 한번씩 빠질 것 같아요..." "왜? 이유를 말해야 보내주지" "......." "무슨 요일 빠질건데?" "그게 아니고요 샘, 엄마가 방학 때 대장암 수술을 하셨어요......" "뭐라고!! 진작 말하지. 아이들은, %%이도 모르나?" 울먹울먹 하더니 그예 눈물보가 터져버렸다. 손을 잡아 주었다. "예, 아무한테도 말 안했어요. .. 지금은 괜찮으신데 엄마한테 연락 오면... 보살펴 드릴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내가 큰 실수 할 뻔 했다. 지금이라도 말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필요한 일 있으면 꼭 말해줘.. 몰랐으면 내가 니한테 큰 죄책감 느낄 짓을 할뻔했다... 괜찮으시제, 지금은?" "네.. " "그래 알겠다. 올라가봐라"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다시 책을 펴들었다. 조금 읽다가 덮고 하루를, 나를 돌아보았다. 아슬아슬하게 겨우겨우 넘긴 하루... 여전히 나는 아이들에게 속을까봐 두려워하며, 상처를 감수하고 온 마음으로 믿기보다 의심하는 한 자락을 남겨둔다.  '사랑한다, 너희들을 위해서다' 말을 하면서도 저 아래 깊은 속마음을 뒤져보면 항상 나의 입장, 나의 체면이 매사에 개입한다.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타고난 심성이라는 게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내 꿈이 아이들 보다 더 커지지 않는'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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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9-0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해콩선생님!! 제 불찰로 그 때 안준철 선생님을 뵙지 못했어요. 제가 워낙 수줍음도 많고, 그렇잖습니까? 근데 이번 방학에 가장 후회되는 일입니다, 그게!(다시, 기회가 있을까요?) 다른 선생님들도 이 책 읽으시면 좋겠는데요. 독토모임가서 추천 좀 해 주세요. 독토 자료는 좀 그렇지만, 선생님들께는 강추~!

2004-09-08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4-09-12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반계 선생님이신가봐요. 파행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어떤 곳에 피어 있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한 송이 꽃이 아닐까 합니다. 그 꽃송이들이 내 발에 짓이겨지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제 몫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아가 주변의 이들이 그 풀꽃들을 밟지 않도록 주의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 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제도라는 이름의 발길이 풀을 짓누를 때, 풀은 쓰러지지만 다시 일어서는 힘을 저는 믿는답니다. ^^ 만나서 반가워요.

해콩 2004-09-1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이 얘기했듯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겠지요. 한사람 두사람 지나면서 그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겠지요. 그러면서 자연히 '희망'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나 저는 그 풀싹까지 잘라버리는 장면을 보곤 합니다. 이듬해가 되면 그렇게 잘려나간 풀들 다시 자라나 초원을 뒤덮을 수도있겠지만, 그것이 교사인 저의 희망이지만, 그럼에도 학교에서의 '오늘'이 너무 암담하게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제도 안에 있는 저 역시 나도 모르게 풀싹을 잘라버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되거나 그렇게 '강요'당할 때 좌절합니다. 역부족일 경우가 너무 많아서...그래서 글샘님 만나니 반갑습니다. 여럿이 함께 희망을 얘기할 때, 그 길은 더 넓어지고 탄탄해지겠지요? ^^
 
까만기와 1 마음이 자라는 나무 37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새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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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월에도 가속도가 붙는 걸까? '까만기와'에 입학한 후 임빙과 그 친구들은 참으로 빨리 자랐다. [빨간 기와]에서 따뜻한 심성과 정의로운 마음을 지녔던, 귀엽고 철없던 아이였던 그들은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임빙의 키처럼 알게 모르게 쑥쑥 자라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의 일원을 넘어서 사회의  일원으로 커가고 있었다. 권력에의 속성을 보여준 탕문보, 성에 눈뜨게 해준 백곰보와 시교환의 부적절한 관계, 교장 왕유안의 권토중래, 기품있던 교사 아이린, 이러저러한 사정들로 진학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현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친구들... [빨간 기와]에서와는 달리 [까만 기와]에서는 임빙의 시야는 학교밖으로 훨씬 넓어져 있다. 

다른 이야기들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받은 것은 '염색공장 아들' 조일량에 관한 이야기였다. 고상하고 도도해 주위 사람들을 쉽게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친구들을 움직이기도 했던 조일량이 '까만 기와'로 진학하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하다가 결국 자신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염색 노동자로서의 삶을 꾸려 나가는 부분은 감동적이다. 또한 남부럽지 않던 갑부였던 그의 집안이 하루 아침에 망하고 결국에는 도둑이 되어 압송되어 가는데 그 과정에서 조일량에게 보여준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감동적이다. 그를 못잡아 먹어 안달하던 허일룡까지도 잡혀가는 그와 남겨진 그의 부모의 처지를 진심으로 마음 아파한다. 이웃의 불행에 같이 마음 아파하고 사소한 잘못쯤 덮어줄 줄 아는  임빙과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 오랜 만에 눈시울 붉히며 내 마음도 따뜻했다. 

안타까운 사랑과 죽음과 이별.... 그렇게 아픔과 시련을 딛고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속편이 가지는 핸디캡 -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정리하고 마무리해주어야한다는 강박증-을 이 소설이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심리 묘사나 이야기 전개의 힘에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빨간 기와]가 훨씬 좋았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 소설에 투자한 시간이 별로 아깝지 않은 것은 남자 아이가 청년으로 커가는 과정을 지켜본 것이 직업상 하나의 공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정성을 섣불리 평가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인간에 관한 기본적인 신뢰!

덧붙임 하나: 소설이 다루고 있는 이 시기, 중국은 문화혁명이라는 커다란 홍역을 앓고 있었다. 임빙이나 그 친구들은 흔히 말하는  '홍위병'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파괴와 폭행을 저질렀는지 [빨간 기와]와 [까만 기와]에도 부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작가가 직접 겪은 일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두 소설은 모두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일정부분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 밖에서 평가의 근거로 삼는 '사실'들은 안에서 직접 그 사건들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있는 '진실'을 넘어서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 소설에서 다룬 홍위병의 존재를 통해  이것을 배우고 확인한 것은 이 책이 주는 짭짤한 부수입이었다.

덧붙임 둘 : 포악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가슴 아리던 챠오안.. 외할아버지(아버지)를 정말 그가 죽였을까? 잡혀간 그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나라면... 다소 비현실적이라도 누군가 그의 황폐한 영혼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결말을 맺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우리 사회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러나 늘 소외받는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고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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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9-08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색공장 아들' 조일량에 관한 이야기는 대안국어교과서인 우리말 우리글에도 실려 있답니다. 아시죠?

느티나무 2004-09-0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같이 성장소설 읽기 같은 거 열심히 해야하는데... 그래야 아이들을 보는 시각도 다양해 질 수 있고, 아이들과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데, 쉽지 않겠지요?

해콩 2004-09-08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조금은 의외인걸요? 조일량에 관한 부분이 실려있군요. [까만기와]의 조일량이죠? 노동자로 적응해가는 과정이 실려있나요? 아니면 그 후의? 성장소설 읽으면서 제가 자라는 느낌이에요. 오늘은 드뎌 [그 후~]를 읽기 시작했는데 리뷰에서도 썼다시피 서문만으로도 감동이던걸요..(안준철 샘같은 마음씀은 타고나는 걸까요? ^^; 지난 번 직접 만나보신 소감은? 미처 못 물어봤어요. 계속 궁금했는데..) 저는 맨날 반성만하고... 그래도 읽는 동안 아주아주 행복할 것 같아요. ^^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도 조금 덜! 투덜거릴 수 있을 것 같구요. 오늘 저도 많은 일이 있었답니다.

느티나무 2004-09-08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과서는 짧은 분량만 소개되어 있어요. 아직 노동자가 되기 전 이야기지요. 그것 때문에 이상한 사람들이 공산주의 의식을 심어준다고 한바탕 했지 뭡니까? 웃기는 사람들 많잖아요 ^^

해콩 2004-09-0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 네 권 다 읽으면서도 저는 그런거 별로 못느꼈는데요.. 쯧. 왕자병 도도한 그가 자신을 노동자로 받아들이면 겸손해지고 낮아지는 모습, 정말 깊이 와 닿았는데... 실은 그래서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는 체제내에서 어느 정도 도덕성을 담보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 사회도 썩은 사람들은 못지 않게 썩었겠지만 비율이나 정도로 본다면야... 다시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에서 읽었던 부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적절한 조화가 생각나네요. ^^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강준만 편저 / 개마고원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리영희' 교수의 책은 아직 한 권도 읽지 못했다.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머리도 마음도.. 그러다 보면 몸까지 고단해질 것 같아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다. 삶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아보려는 욕심이었다. (아마 지금도 이 욕심은 나의 일부이겠지만)

이 책은 나처럼 직접 '리영희'교수의 저작들과 부딪히기 전에 미리 만나봐도 좋을 책이다. 그 책들이 너무 진지하고 난해할까 두려워하고 있다면 우선 이 책을 보시라 권하고 싶다. 우리 현대사의 큰 굽이를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헤쳐나온 그의 정직하고 우직한 삶이 강준만씨의 방대하고 적절한 자료들과 함께 잘 녹아들어 있다.

특히 좋았던 점은 리영희 교수의 삶이 나의 삶에 기준을 세우고 또 나를 다잡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몇 달 전 부장 선생님께 '결벽증이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가장한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어서 고개를 저었더니 그런 평가가 돌아왔다. '평가'에 민감한 교육을 다년간 받아온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런가? 이건 지나친건가?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런 사람들과도 대화하고 소통하려면, 그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우선이라면 나를 굽혀야 하나? ' 최근까지도 이런 의문들이 머리 한 구석에서 나를 흔들고 있었는데 이제는 답이 명확해졌다. 나를 굽힐 일이 있고 그러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끄덕인다고 나도 함께 그럴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들과의 대화는 그 다음에 해결할 문제다.

그는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우상'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 '현실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우상,  '시대적 한계'라는 우상... 그러기에 그는 낭만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실적 불가능'에 대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자신에게 너무나 엄격하고 솔직하다.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솔직하기 힘들다. '지식인'이라는 딱지가 자신의 단점과 무지,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리영희 교수는 언제나 '투명한 창'과 같이 자신을 열어두었다. 그러면서 꾸준히 연구하고 저술하며 발언하고 실천, 행동하였다.

이제는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시계추가 끊임없이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듯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흔들리며, 결국은 균형을 찾아가면서 살아야겠다. 한쪽 날개를 접는다던가 오른쪽으로(혹은 왼쪽으로) 가기는 싫어 그자리에 우뚝 서버린다면 이미 날지 못하는 새, 쓸모없는 시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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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8-31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으로 리뷰를 썼네요. ^^;;

느티나무 2004-08-31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되신 거 축하드려요. 샘은 금방 될 줄 알았다니까요. 뭐, 기초가 탄탄한 분이시니까.

해콩 2004-08-31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막 올린 건데 그새 보셨어요? 샘 리뷰, 저도 읽었지요. 막 흥분해서 쓴.. ^^; 사실 쓰기가 힘들어서 자꾸 고치게 되더라구요. 잘못 쓰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의무감이 막 들어서 말이죠. 제 멜을 확인하셨나요? 워낙 경품 이런 거 안 걸리는 인물이라 약간 흥분되기도 하고... 이벤트.. 고민해봐야겠어요. 반 아이들을 상대로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죠?

해콩 2004-08-31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초...그냥 막 써버리는 게 제 '기초'이지요. 글쓰기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놔서요. ^^ 하지만 글도 쓰다보면 늘겠죠? 그게 서재를 만든 목표 중 하나예요. 그럼.. 안녕히 주무시고 내일 뵈어요. 이벤트는 아무래도 아이들 상대로 하는 것이 좋을 듯 해요. 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