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 1

                                      황 동 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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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5-0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장... 죽고 나서 이 나의 몸뚱이를 바람에게 주어버리겠다는.. 제목만 읽어도 나는 자꾸 터키 박물관에서 보았던 天葬-鳥葬이 생각난다. 천장이라하면 좀 더 멋져보이지만 조장이라 하는 것이 훨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다가온다. 말 그대로 나의 시신을 새들에게 주어버리는 것이다. 상상만으로 그쳤다면 좋았을걸.. 그 사진들을 보고 말았다. 물론 장례를 치르기 전에 죽은 이의 영혼을 육체로부터 불러내는 의식을 행한다. 그러나.. 나는 그저 장기기증이나 하고 말란다. 그리곤 태워야지. 유언장을 꼭 써두어야겠다. 영원히 살 것처럼 그렇게 착각하고 살지는 말아야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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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5-0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선생님은 이 시를 읽고 말썽쟁이 복학생을 감싸안기로 결심했다고 하신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도 복도에서는 아이들 맞는 소리가 들려온다.

해콩 2005-05-09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이 시! 이 힘! 놀라운 일은 4월의 문화인물이 이 시인이다. 아니 이건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일인가? 나의 내면을, 먹구름 위의 파란 하늘을 보듯이 가만히 가만히.. 들여다보아야겠다. 아무 두려움 없이, 흔들림 없이... 동요하지 말기!!
 

청춘

                                                                                - 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인생이라는 깊은 샘의 신선함을 이르는 말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는 6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이 주름진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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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호 원주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노래.

진리는 어디에나 있지 않으냐...

 

네 발을 꽃가루처럼 내려 놓아라.

네 손을 꽃가루처럼 내려 놓아라.

네 머리를 꽃가루처럼 내려 놓아라.

그러면 네 발은 꽃가루, 네 손을 꽃가루, 네 몸은 꽃가루,

네 마음은 꽃가루, 네 음성도 꽃가루

길이 참 아름답기도 하고 잠잠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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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조병화

 

어디선지 사랑이 눈을 뜨고 있다

가물가물 별이 솟고 달이 뜨고

소식이 있는 곳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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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5-07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병화의 시는 중고등학교 때 디게 좋아했다. 안 읽는 시집을 서점 들러 몇권이나 살 정도였으니.. 나이가 들면서 그의 시집은 그저 책꽂이에서 내게 잊혀졌다. 그 시들이 시들해진 것이다. 너무 소녀적 감성만을 자극한다는 생각이 들었을게다. 그러다가 몇년 전, 이 시인의 시를 비판하는 글을 보고는 이상한 자책에 반성이 생겨 이사하면서 다 버려버렸다. 이문열의 소설은 그러질 않았는데 왜 유독 그의 시만을 그런걸까? 그리고 무던히 장수하던 그 시인은 돌아갔다. 생각하면 후회스럽다. 어쨌건 내 어린날의 편린이었고, 시인 평생의 수고였건만.. 좀 더 곁에 두고 볼걸... 섣불리 뭔가를 버리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