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2

 

                                              - 김지하

 

 

노을은

흰 벽 위에서 더는 붉게 타지 않고

하늘은

흰 손수건에 이젠 푸르게 물들지 않는다

정이월 뜨락에

하우스에서 옮겨온

활짝 핀 튤립꽃을 보다

소름끼쳐 너무 무서워

문 닫아버리고

문고리 걸어 몇 번이나 다시 잠그고

솜이불 속에 숨어 식은 땀 흘리며

몇 날 며칠을 앓았던가

거리로부터는 지축 울리는 쇳소리 경음악 소리

플라스틱이 플라스틱 스치는 서쪽 바람 소리

싸우고 헤어진 그 젊은 애 그 번들대던 눈

입 속에서 콧속에서 퍼지는 사리돈 약내

시퍼런 동백잎 위에 파열하는 은빛 강철의 햇살

아아

여린 살갗으로는 이제

공기 속에마저 더는 설 수 없구나

애린

애린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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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는 한강가에서

                                               - 서정주

 

江물이 풀리다니

江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서름 무슨 기쁨 때문에

江물은 또 풀리는가

 

기럭이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럭이같이

하늘의 어름짱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江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밈둘레나 쑥니풀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 숙여보라 함인가

 

黃土 언덕

꽃喪輿

떼寡婦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번 바래보라 함인가

 

江물이 풀리다니

江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서름 무슨 기쁨 때문에

江물은 또 풀리는가

 

김윤식, [샹그리라를 찾아서] 2003, 141~142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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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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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이                  - 용혜원


내가 좋아하는 이
이 지상에 함께 살고 있음은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가 태어남은
서로의 만남을 위함입니다

삶이
외로울 때
허전할 때
지쳐 있을 때

오랜 동안 함께 있어도
편안하고 힘이 솟기에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이 있음은
신나는 일입니다

온종일 떠올려도 기분이 좋고
늘 사랑의 줄로 동여 매 놓고 싶어
내 마음에 가득 차 오르는 이

내가 좋아하는 이
이 지상에 함께 살고 있음은
기쁜 일입니다

나를 좋아하는 이 있음은
두 팔로 가슴을 안고
환호하고 싶을 정도로
감동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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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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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24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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