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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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죽나무

                                              - 도종환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것을 안다.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꼬여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 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를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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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2-2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왔습니다. 댓글도 남겼구요. 앞으로 종종 들러도 되죠?
 

              굴욕은 아름답다

                                                      - 김윤배

아우는 큰 몸뚱이를 수술대 위에 버리고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마취되어 있다

집도의가 가리키는 모니터에 아우의 내장이

속속들이 보인다 담낭이 제거된 자리가

검붉을 뿐 내장은 아름답다 연붉은 간덩이

사이로 흐르는 핏물은 불빛에 놀라

기포를 뱉으며 급히 몸을 숨긴다

집도의는 내시경을 움직여

내장 이곳저곳을 헤집는다

간 한 잎 뒤집으면 나타날 것 같던

만년 순경인 아우의 내심은 보이지 않는다

상사의 모멸과 질타의 말들도 피의자를 다루던

온갖 협박과 회유의 말들도 보이지 않고

서늘한 오기도 찾을 수 없다

내장은 아름다울 뿐 더러운 일상에

물들지 않았다 나는 내 가슴과 배를 쓰다듬는다

내장이 나의 손을 거부한다

담낭이 절개되고 돌들이 쏟아져나온다

강렬한 조명을 받아 돌들은 빛난다

그랬구나 내장 속에서 찾을 수 없었던

너의 내심 가슴에 맺혀

욕스러운 나날들 더욱 단단해지고

그렇게 견디어낸 아름다운 굴욕들

빛나는 돌이 되어 네 몸 속 환한

고통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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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2-27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견디어낸 아름다운 굴욕들/ 빛나는 돌이 되어 네 몸 속 환한/ 고통이었구나
 

     미움 - 최문자

그는 온 몸이 칼이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칼이 된다.
그를 품는 자도 칼이 된다.
세상은 물처럼 돌아가도
그는 얼어서 흐르지 않는 물이 된다.

그가 있어서
세상은 늘 얼룩지고
그가 있어서
비명은 물소리처럼 가깝다.

그는 불면증이라 잠들 수 없다.
저 홀로 누워
함부로 눈뜨고
깊은병 앓다가
흐를 피의 깊이를 지니고 있는
사시사철 영롱한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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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시 -백창우 | 시가내게로왔다 2005/04/22 15:41
http://blog.naver.com/aerin2/140012180390

담 밑에 쪼그려앉아
참 오랜만에 실컷 울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할까
언제까지 이렇게 팍팍한 가슴으로
다른 아침을 기다려야할까

 

하나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시계를 본다 

나는 얼마나 걸어왔을까
저 앞만 보고 걸어가는 초침처럼, 초침의 길처럼
같은 자리를 맴맴 돌고 있었던 건 아닐까

 

희망의 별은 멀리 있고
그곳으로 가는 길에 대해 말하는 이 없는데
나는 날마다 어떤 길 위에 서 있다

 

내 몸에 흐르는 길을 따라갈 뿐
어느 별에 이를지 나는 모른다 

 

그렇게 걸어왔다

 

쓰다 만 시처럼, 내 삶은 형편없고
내 마음 어둔 방에 먼지만 내려앉지만
나는 다시 어떤 길 위에 서 있을 것이다

 

내 몸이 향하는 그 길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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