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예 일이 터졌다.
지지난 주 교무회의 시간에 조퇴, 지각, 결과를 포함한 생리공결을 월 1회로 한다는 담당 부서 부장샘의 일방적인 발표 이후, 최병ㅎ샘께서는 부장도 만나고 교감샘도 만나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바쁘셨다. 지난 주 수요일, 그 부장샘께서는 전체 교사들의 의견을 다시 알아보기 위해 교장샘을 만나셨는데 교장샘께서는 '자신의 권한'으로 결정하겠다고 바로 공문 만들어 결재 받도록 '지시'하셨단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 발표가 있는 날이고 최병ㅎ샘께서 '한 마디' 하시겠다고 벼르고 있는 날이다. 자습지도 다녀왔더니 샘께서는 벌써 모든 샘들께 쪽지를 날려두셨다.
오늘 아침에 출결규정을 발표할 것 같습니다. 저번 목요일인가 교장선생님 결재가 났거든요. 학년초에 정하려다 출석부 문제로 미뤘다고 하는데 이번에 문제가 되는 것은 생리공결 관련 규정입니다. 2주쯤 전에 부장회의에서 잠깐 의논하고는 1학기 때까지 허용했던 생리공결 1회(권고사항은 결석1회나 지각. 조퇴. 결과 합산하여 3회로 되어있음)를 공결 1회는 그대로 두되 지각. 조퇴. 결과 3회는 악용하는 학생들이 있다하여 1회로 줄이겠다고 직원회의에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때 두 가지 점을 담당부와 교감선생님께 지적했습니다.
첫째 학생들의 선택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결석 1회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지각. 조퇴. 결과 3회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오후에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어 옷을 버려서 조퇴를 하고 싶다. 그런 난처한 경우에 저는 학교 있으라고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6교시에 조퇴를 하고 그 다음날 생리통이 심해서 오후에 다시 조퇴를 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있었습니다. 아침에 갑자기 생리가 나와서 지각할 수도 있고, 생리통 때문에 양호실에 가서 결과를 할 수도 있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경우인데 굳이 이걸 제한해서 학생들한테 불이익을 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병으로 인한 경우 내신성적에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병결과처리해도 문제없지 않느냐고 하면 아예 처음부터 생리공결을 인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악용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1학기 동안 그렇게 악용한 학생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수십명이나 됩니까? 악용한 학생이 몇 있었다 하더라도 악용하는 학생들을 막기 위해서 선의의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악용하는 일이 없도록 교사가 지도해야 맞는 것이지 악용을 막기 위해서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것은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봅니다. 물론 이렇게 세 번씩이나 사용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으니 (아마 대부분의 담임들이 이런 경우를 보지 못했을 겁니다) 제한해도 별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권고사항에 있는 내용을 일부러 축소할 필요가 있을까요? 생리통이 심해서 두 번, 세 번씩 조퇴를 한다면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현재까지 생리통은 치료방법이 없는 걸로 압니다. (물론 자궁내 물혹이 있다든가 환경호르몬 때문인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옷을 좀 느슨하게 입고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방법말고는 대처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상에 엎드려서 참고 있는 애들을 보면 저는 양호실 가라거나 차라리 조퇴를 하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있어도 결국 수업은 못 듣거든요.
현재까지 제가 알기론 다른 학교에서는 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만 이렇게 제한을 하는 것도 좀 창피스럽습니다. 우리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믿지 못한다, 제대로 지도할 수 없다는 걸 광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걸까요? 저희 반에 1학기때 악용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두어명의 학생이 조퇴를 두어 번 한 적이 있습니다. 걔들이 생리 중인 건 맞았지만 비도 오고 학교에 있으니 찝찝하고 해서 두 번씩이나 조퇴를 하겠다고 온 거였습니다. 그때 제가 강력하게 말해서 남기지 못한 게 아마 이런 결정이 나오게 한 원인이 아닌가 하여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뒤로 그 애들 두 번다시 그렇게 안합니다. 7월에 저희반 안에서 이 문제로 얘기를 한번 했거든요. 악용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너희들 권리를 너희들 스스로 주장할 수 없다.... 남용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교사가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두 번째로 지적한 문제는 과정의 문제입니다. 물론 학교장이 최종 결정하는 것은 맞고, 교장선생님께서 나름대로 의견 수렴을 위하여 부장회의에서 의논하셨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당장 결정하는 것보다 부장선생님을 통해서 부원들의 의견(전체 의견)을 수렴하는 방향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겁니다. 전체는 아니지만 과반수가 훨씬 넘는 여학생들의 권리에 관한 문제인데 더더욱 직접 애들과 접하는 담임교사들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부장들의 의견만 수렴하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학교장이 결정한다는 것은 학교장 혼자서, 또는 부장들의 의견만으로 정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침에 글을 쓰다 보니 두서가 없습니다. 일단 여러 선생님들이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은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글을 보냅니다.
최ㅂㅎ
조목조목 옳으신 말씀. 샘 발언 뒤에 나도 한 말씀 거들어야지... 생각하며 쿵딱쿵딱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이크가 어디있나... 살펴보고 있는데, 예상했던 대로 부장샘이 일어나 아주 장황한 설명을 하더니만 생리 공결은 결석이든 조퇴든 지각이든 결과든 한 달에 하루만 쓸 수 있다고 확정 발표를 해버리셨다. 최샘도 일어나 발언을 하셨다.
샘께서 지적하신 문제점은 두 가지였다. 우선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반교사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전달했다는 것, 그리고 생리공결 자체의 문제였다. 일부 아이들이 악용하더라도 그걸 막는 차원에서 담임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해결책을 써야지 몇 가지 문제점 때문에 모든 아이들의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되며 그 결정과정에 담임이나 여교사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고 대부분 40대 이상의 남교사로 이루어진 관리자와 부장교사들이 결정해서 지시하는 것은 '독재'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다음 순간 일어났다. 최샘의 이야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장님께서 일어나서 '그만하라..' '앉으라'고 하셨다. 지난 번 성과급 문제로 분회장이 발언할 때도 그러더니만...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과정에서 장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정말 놀라웠다.
"교무회의 시간에는 교장의 허락을 받아야 발언할 수 있습니다. 근거 찾아 보여줄테니 회의시간 마치고 내려오세요"
"교사는 교장의 지시와 명령을 받아야합니다. "
"그런 식으로 교장의 말에 자꾸 말대꾸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 교장의 지시에 불응하는 겁니까?"
평소에 그 분의 머리속을 채우고 있을 단어들.. 지시, 명령, 불응, 말대꾸.. 그렇다. 우리는 그 분의 지시와 명령에 순응해야 하는 존재였으며 우리가 하는 문제제기는 그분께는 말대꾸에 불과했던 것이며 심지어 교무회의 시간엔 그 분의 허락이 떨어져야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분께 우리는 명백히 수하였던 것이다. 뜨아아~~
오~ 놀라워라~ 도무지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최샘은 마이크를 꺼버리는 치사한 방법에도 굴하지 않고 발언을 마무리지으셨고 앞으로 이렇게 비민주적인 '교무회의' 참석을 거부한다고 하셨다.
최병ㅎ샘의 두 번째 쪽지
어제 뒷이야기입니다.
제 의견에 반대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안보셔도 좋으나 저희반에 대한 잘못된 소문도 있고 해서 겸사 겸사 보내니 기왕이면 끝까지 읽어보시고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하면 고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글솜씨가 없어 횡설수설 하는 것도 용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생리공결 문제로 부장회의 얘기가 나온 뒤에 정보부장선생님, 교감선생님께 제가 생각한 문제점을 두어차례 얘기드렸고 정보부장선생님께서 전체 의견 수렴을 위해 두가지 안을 마련해서 인쇄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학교장 결정사항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교장선생님께서 바로 결재를 올리라고 하셨고 결재과정에서도 수렴절차를 거치자는 얘기가 30여분이나 있었다는데 무시하신 걸로 압니다.
아마 제가 교장선생님께 찾아갔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교무회의에서나마 얘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어제 마이크를 잡았던 거고요.
저도 조금은 다혈질이나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는데 어제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벌어져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과가 별로 달라진 것도 없고요.
어쨌거나 그런 일방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그대로 묵인할 수 만은 없다 싶어 용기를 내었던 겁니다. 학생들 보고 늘 자기 권리를 지킬 수 있어야한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제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애들 보기 부끄러울 것 같아서요.
이상이 어제 제 상황이었고, 다음은 저희 반 이야기입니다.
저희반 애들이 생리공결 제도를 남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하루에 열여섯명이 단체로 조퇴를 한 적도 있다는 얘기까지 있은 모양인데 저도 금시초문입니다.
생리공결은 출석부에 꼬박꼬박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권위에서 학생들의 권리차원에서 만들어준 제도를 우리가 안쓰고 있다면 말이 안된다 싶어서 (우리가 이렇게 잘 쓰고 있다는 증거로 남길 필요도 있겠다 싶어서) 열심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금 확인해보니 3월에는 한명도 없고(그 제도가 생겼다는 걸 몰랐거든요) 4월에는 5명, 5월에는 13명까지 늘었다가 6월에는 2명, 7월에는 4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7월에는 생리조퇴가 늘었지만요. 생리조퇴도 출석부에 연필로 기록해놨으니 확인하셔도 좋겠습니다.
아무리 많은 날도 하루에 다섯명 이상이 빠진 적이 없는데 어디서 그런 소문이 돌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마 5월 생리공결 숫자가 와전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물론 많이 쓰는 반은 많이 쓰고, 안쓰는 반은 안쓴다는 얘길 하시면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어제 글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아파서 엎드려있는 애들은 제가 집에 가라고 합니다. 그런 애를 보내고 안보내고 하는 것은 담임마다 학급경영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반 애들이 2학기 와서는 어떠한가는 어제 글에서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남학생과의 형평성 문제는 생리를 하지 않는 애들과의 비교라 더 말할 필요가 없겠고요.
올해 우리학교가 성교육 시범학교인데 성희롱이나 성폭행 예방.... 이런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기본은 이성에 대한 이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자들이 생리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평생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사는게 얼마나 힘든가... 그런 것을 남학생들이 알고, 배려해주는 자세를 가지도록 하는 것도 성교육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며칠전에 보건휴가(생리휴가)를 냈습니다. 그런 거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 걸 쓰는 사람 본 적도 없다.... 이런 얘기도 들었지만 그날 마침 수업이 없었기에 큰 맘 먹고 썼습니다.
일반 회사와 달리 학교는 한사람이 빠지면 다른 사람이 그만큼 보강을 해야하고, 애들한테도 피해가 간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여교사들이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병가내면 아무도 눈치주지 않는데 보건휴가 내면 다들 눈치주는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쉬고 오니까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자기는 생리가 시작될 때 머리가 아프고 구토까지 하는데 정말 억지로 참고 있다면서요. 생리통은 사람마다 정도가 다 다릅니다. 별 고통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심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합니다.
여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딸, 아내, 누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 주십시오.
써놓고 보니 정말 횡설수설입니다. 조리있게 정리가 안되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