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일어나 천천히 씻고 준비하고. 더운 날씨에 꽤나 걸을테니 오늘은 조금이라도 먹어둬야지 하며 식판 가득(!)아침 먹고 올가갔더니 샘들이 승차하고 계신다. '논산은 공주 위에 있겠지' 하며 햇볕 들어올 자리를 계산해서 오른줄 창가자리에서 왼쪽 자리로 굳이 옮겼다. 그리고 ㅇ주에게 전화했더니 안 받는다. 차에 오르고 있다 불러서 옆 자리에 앉히고. 성격 좋은 반장이 인원점검 끝내고 출발~

어라, 공주대 앞에서 우회전을 하는 게 아니라 좌회전! 따가운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답사여행의 길잡이]를 찾아봤더니 논산은 공주 아래쪽에 있다. 에구.. 지도 확인하고 자리 옮길걸... 이런 식이라면 오늘 하루 종일 햇볕 들어올테니 커튼 쳐야 할 것이고 창밖을 볼 수 없다. 경미한 폐쇄공포증에 창밖경치 밝힘증까지 있는 나로서는.... 괴로운 하루의 예감.

윤증고택은 '미닫이 여닫이 문'과 '내외문'의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책에서 읽었다. 동학혁명 때 공주로 진군하던 농민군이 불을 지르려고해 그을린 자국이 남았다는 서까래는 글쎄... 어느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계속 집을 수리보수하고 있을테니 '미닫이 여닫이 문'처럼 다른 목재로 대체되어 이미 버려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직접보니 신기했다. 이 지역에서 떵떵거리던 지주, 향촌 토호였을텐데도 가족 수에 비해 그리 넓지 않다. 평수에 목숨 거는 현대인들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바람이 잘 통해서 시원했다. 창문이 많은데다 前低後高의 건물구조로 통풍을 고려한 과학적 설계라 하였다. 이런 고가에 오면 제일 마음이 가는 건 건물 곳곳에 사용된 나무들이다. 300년 전의 이 나무들은 세상의 변화를 품고 있을 듯 해서 자꾸 쓰다듬어 보게 된다. 아무튼 이런 옛집에 오면 자꾸 욕심이 생긴다. 이 정도 호사는 아니더라도 소박한 전통가옥 하나 가졌으면... ㅁ자 모양의 마당도 있고 대청마루에 앉아 바람쐬며 꼬박꼬박 졸 수도 있는... 무슨 한가한 잠꼬대인지..

돈암서원은 김장생, 송시열 또 다른 두 사람(기억안난다--;)을 모신다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원!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논어의 한 구절인 '博文約禮'와 '地負海涵' 두 문구가 생각난다. 하나가 더 있는데 역시 까먹었다. (두 구절씩이나 기억하는 게 대견타) 그리고 무지 더웠다.

대둔산 수락공원 곰팡내 나는 식당에서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변변히 없이 땀 삐질삐질 흘리며 오리탕으로 점심을 먹고 여러가지 군것질 거리를 가지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어라~ 저 녀석들은 고딩이 아닌가.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물장난을 치며 하나 둘 물속에 빠뜨리고 있었다. 근처에는 아이들이 먹어치운 것으로 보이는 삼겹살과 수박두덩이와 군것질 거리들....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아이고 저 놈들이 즈들끼리 이런데 와서 놀 줄도 아네. 저렇게 즐겁게. 정이 절로 생기겠네. 자세히 보니 의상이 통일되어 있다. 한 무리는 분홍색 티셔츠에 남색 바지. 디자인이 똑같다. 다른 한 무리는 NO Aamne~(실제로 보면 진짜 웃긴 디자인이다. 겨드랑이에서 암내가 솔솔 나는 사람 그림에 /표가 그어져 있는!)라고 쓰여진 빨간색 티셔츠. 아마도 반티인가 보다. 암튼 녀석들 너무 신나게 놀아서 내가 다 즐겁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 반 녀석들도 화명동 애기소로 물놀이 간다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다녀왔을까?(문자 넣어보니 그동안의 비땜에 보충 끝나는 다음 날인 이번주 토요일 간단다. ㅋ) 부산 있었어도 같이 가진 않았을 거다. 저렇게 물에 온통 젖는 것, 무섭다. ==; 연수 끝나고 개학하기 전에 번개나 함 때려야지.

'황산벌'이라는 영화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대사는 계백의 부인(김선아)이 아이들과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남편을 향해 매섭게 대꾸하는 모습이었다. 이 한 장면 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계백의 평가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고 하면 지나친가?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명예롭게 죽어야제. 그거 마시고 먼저 가소"

"뭣이라고라? 아 시방 이녁이 그라고 말할 자격 있당가요? 아 글면 우들이 아이고 서방님, 아이고 아버지, 이 약사발 쳐묵고 우리 다 뒤져불라요 아 이랄 줄 아셨소? 에끼 이 인간아"

"길게 끌면 추해지요 깨끗하게 갑시다."

"워매 긍께 시방 생떼 같은 내 새끼들한테 자진해서 다 뒤져부리라고라이? 씨만 뿌려놓고 밤낮 칼쌈하러 싸돌아 댕긴 인간이 말이여 인자 와갖고 뭣이 어쩌고 어쩌?"

"그거 마시고 죽을껴? 내 칼에 죽을껴?"

"나가 시집와갖고 이날 평생 악밖에 안 남은 년이여. 염병하고. 그라고 인간아 니가 뭣을 해준게 있냐? 뭣을? 전쟁을 하등가 말등가 나라가 쳐 망해불등가 말등가 그것이 뭣인데 니가 내 새끼들을 죽여뿐다 살려뿐다 그려야.  느그 애미애비가 살았어도 느그 애미애비도 이라고 죽여불라냐?"

"호랭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혔다. 제발 깨끗하게 가랑께"

" 뭣이 어쩌고 어쪄? 아가리는 삐뚤어 졌어도 말은 똑바로 씨불여야제. 호랭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뒤지는 거여 이 인간아." 

계백 묘 앞에는 그의 충성심과 용맹을 찬양하는 한 수의 현대시가 적혀있었다. 아니 그 전에 역사시간이나 한문시간에 우리는 이런 그의 행동을 긍정고무하는 많은 말들을 들어온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계백의 장렬한 최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과연 그가 한 짓은 무엇인가? 나라가 망할 것을 예감하고 가족을 제 손으로 죽이는 남편, 아버지를 그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영화의 내용이 훨씬 진실에 접근하지 않을까? 사실 나라나 민족이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에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들이 오랜 세월 알게 모르게 교육받아온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민족적 일체감 등등은 한갓 국가 이데올로기, 그것 뿐이지 않을까?

돌아와서 냉면을 저녁으로 먹고 2차 노래방 가자는데 그냥 빠져나왔다. 부산 다녀온 뒤 과식,폭식으로 탈이난 속이 좀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냥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말없이 온 게 맘에 걸린다. 당당하게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라고 한 마디라도 하고 올걸... 교수님들은 노래방이 정말 즐거우신걸까?

ㅇ주랑 돌아오는 길에 지난 금요일 내 뒤에 앉았던 선생님들 두 분께 내 답지를 보여드렸노라고 가볍게 말했다. ㅇ주는 바로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가?"했다. 아~ 나는 갑자기 난처해졌다. 그래서 "ㅇ주야, 니 교감 교장 될거가?"라는 쌩뚱맞은 질문을 해버렸다. 사실 이건 ㅇ주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고 승진에 맘을 두고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내 마음을 드러낸 거라고도 할 수 있는 위험한 질문이었다. 그저 가볍게 '나이 드신 분들이 너무 힘들어보여서'라고 이야기할걸... 당연히 착실한 ㅇ주는 "나는 '그냥' 열심히 하는 거다. 그리고 시험은 공정하게 봐야지"라고 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이런 류의 시험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등의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시험 점수는 교장교감 될 사람 아니면 사실 별 의미도 없으니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 어르신들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살짝 보여드렸고, 내 답에도 오답이 많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맺었다. 내가 전교조인걸 아는데... 나땜에 전교조도 점점 받아들이기 힘들어할까봐 걱정이 된다.

대한민국 교육 착실히 받아 그저 착하고 성실한 ㅇ주에게 나는 점점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ㅇ주에 비해 나는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한 사람 아닐까? 목적이 없어도 그저 열심히 하는 성실착실한 사람과, 목적은 물론 그 과정 자체마저 부정하면서 시니컬하게 행동하는 사람. 누가 사회에 더 도움이 될까? 사실 나는 이 국가사회에 별 도움이 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가치롭게 생각하는 일들 조금씩 하면서 나의 아이들이 나와 더불어 조금이나마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나는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에게 비교육적인 교사로 보이고 이상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져서야....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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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8-02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장면을 [황산벌]의 명장면으로 꼽는 분 여기 또 계시는군요!

ㅎㅎ, 제 교직 시험 답안은 아마 채점한 조교가 기막혀서 동그라미 갯수 세어보지 않았을까 합니다. 세기도 아주 쉬었을걸요? 전 의무적으로 가야하는 연수, 아주 싫어하는지라^^ 게다가, 글쎄, 청소년 인권 어쩌고 하는 과목의 문제에서 유엔국제인권협약이 몇년도에 나왔냐하는 문제가 다 나왔지 뭡니까. 역사선생이지만, 연도 묻는 문제도 싫어하거든요.
지금도 내일까지 내야하는 과제 이제야 펴보다가 노트북 컴퓨터가 버벅거려 인터넷연결된 데스크탑 컴 켰다가 이러고 있지요~

해콩 2006-08-0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보다 간 크신 훌륭하신 분, 여기 또 계시는군요! ^^ㅎㅎ
BRINY님 같으신 분, 우리 반에 한 명만 있어도 혼자 놀러다니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흠흠.. 아직 못 찾은 걸까요? 근데 사실 이젠 혼자 노는 게 편해요.
 

늘 그렇듯이 날씨가 너무 좋은 게 사단이다. 살랑살랑 적당히 부는 바람, 계속 내린 빗물에 완전 쾌청한 대기. 저 멀리까지 너무나 선명하게 잘 보인다. 5시 반! 좋아하는 수업 '한어문자학/훈고학/음운학' 수업을 마치고 임ㅁㅎ샘이랑 밍숭밍숭 뻘쭘한 저녁 먹고 샘은 썬크림 사러 간다고 나가시고 나는? 그래! 아직 못 가본 동학사를 오늘 떼는 거야!! 바로 택시 잡아타고 공주대교 건너 버스정류소로 갔다.

6시 20분쯤 도착했는데... 갑사 가는 2번, 마곡사 가는 7번, 신원사 가는 10번 차례대로 다 지나가고 21번은 10대 가량 지나가도 동학사 가는 버스는 오질 않았다. 역시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는다. 옆 자리 갑사에 기도하러 가신다는 아주머니, 안 오는 버스를 연신 원망하며 함께 기다렸다. 그 옆자리 "신원사 가는 버스 여기 서나요? 언제쯤 오나요?" 묻던 총각 둘, 7시 20분쯤 차를 타고 떠났다. --;; 동학사 가는 버스 21번, 접때 신원사 갈때 분명 여기서 봤는데 안/온/다. 에라 없나보다. 그냥 갑사나 한 번 더 가자. 그 좋던 저녁해도 어느덧 사라지고 7시 40분. 겨우 차를 탔다. 갑사에서 나오는 버스 시간은 8시 9시 10시란다.

도착한 시간이 8시 5분. 어쩌지? 이 차 바로 잡아타고 나가기에는 버스 기다린 시간이 아깝다. 기도하러 가시는 아주머니 옆에 붙었다. '절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 자주 오는데 오늘은 정말 버스가 너무 안 와서 막차 타고 나가야겠다... 갑사 앞의 숲길은 정말 좋다. 템플 스테이 참 좋다더라. 개그 콘서트 나오는 황마담은 마곡사에서 템플 스테이 했는데 울면서 들어가서 웃으며 나오게 된다는 주지 스님 말씀이 딱 맞다고 그러더라. ... 그냥 나랑 같이 기도하고 10시 막차 타자... '  이런 저런 이야기를 처음 보는 내게 술술 하신다. 반달에 약간 못 미치는 초생달 떴다.

사천왕 앞에서 아주머니 따라 절을 했다. 캄캄한 길, 혼자 걸어나오려니 왠지 약간 겁이 나서 기도를 하게 된다. 나무 의자에 앉아 조금 쉬다가 아주머니와 작별하고 혼자 대웅전 들어가서 절을 했다. 절만 했다. 기도는 여전히 잘 안 된다. 기도를 해야하는데... 돌아나오는 길엔 그나마 얇팍하게 남았던 빛도 사라지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가로등 불에 의지해서 혼자 걸어나왔다. 약간, 아주 약간만 무서웠다. 부처님께 절하고 나오면서 또 사천왕상에 절했다. 무서우니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된다.

8시 45분. 빨리 걸었나보다. 커피 한 잔 빼어들고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지상의 불빛이 잦아드니 하늘의 무늬가 선명해졌다. 손톱달 사이로 별들의 무늬 빼곡하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어내 달과 별과 산과 들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고 문득 귀에 바람 많이 쇠면 입이 돌아갈 수도 있다는 의사샘 말이 생각나서 얼른 손바닥으로 귀를 덮었다. 거름냄새 뭍어나는 바람도 좋고 아주머니 승객과 버스기사 아저씨가 두런두런 주고 받는 이야기도 좋다.

9시 20분. 겨우 20분 걸려 공주대교 앞에 도착! 걸었다.  달을 등지고. 금강 주위엔 오늘도 많은 공주 民들이 걸어다닌다. 많이 줄어든 금강 물소리 콸콸, 가을벌레 소리 찌르륵. 공산성 위에 손톱달 작지만 환하다. 비전하우스 돌아온 시간 9시 45분. 이렇게 걸으니 허리도 덜 아프다. 잘 먹고 잘 잔다.

사실 내일은 공식적으로 '나들이' 가는 날이다. 연수받는 샘들과 교수님들과 윤증고택이랑 대둔산 계곡으로 놀이 간다. ㅎㅎㅎ 과제가 서넛 있고 시험도 있지만 그나마 시간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놀아야지. 그런데 오늘, ㅇ주가 아파서 걱정이다. 에어컨 때문에 감기 기운이 있는데다가 엊저녁 먹은 것이 안 좋다고 하더니 병원에서 영양제 맞고 있다고, 교양강의 대출 좀 해달라고 부탁문자를 넣었다. 왠만해서는 수업을 빠질 아이가 아닌데 정말 많이 아픈가보다. 그 몸으로 또 그 빡씬 오후 수업은 다 들었으니. 그러도 자료 찾는다고 또 도서관 갔다. 흠... --; 내일도 갈 거라는데... 걱정이다. 오늘 종일 굶고 약 먹고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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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0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사 가는 첫 버스는 6시 반! 공주대교 앞 버스 정류소이고
동학사 가는 같은 장소에서 하루에 세 번 있단다. 알아보는 전화번호는 041-854-3163
 

지난 금요일, 그럭저럭 시험을 보고 (정답이나 점수를 알기 전까지는 늘 '그럭저럭 잘' 본 것 같은 느낌. 왠지 내가 찍은 건 다 맞았을 것 같고. 뭐 틀려도 몰라서 틀린 걸테니 그것까지 아쉬워할 이유 없다. 다만 내 답지에 조금 의지하신 뒷자리 선생님들께 조금 미안했다. 정답만 의지하셔야할텐데... ) 남은 수업도 끝나기 전에 살짝 빠져나왔다. (전날 교수님께 양해를 구해두었다.) 5시 3분, 대전 동부시외버스터미널행! 딱 한 시간이 걸린다. 5시 47분차를 탔다면 부산가는 7시 차를 타기에는 빠듯했겠다. 느긋하게 콩나물 국밥 먹고 만두 1인분을 사서 차에 올랐다. 가끔 소나기가 쏟아지고 방송에선 연신  지난 며칠간의 집중호우로 둑이 터진 이야기와 사람이 떠내려간 이야기 등등이 들려왔다. 이전 장마, 징하다.

11시쯤 집에 도착! 마곡사 앞에서 산, 손으로 직접 깎았다는 빗을 꺼내 엄마한테 자랑 후 넘겨주고... 참았던 버릇이 도졌는지 몇 달 굶은 하이에나처럼 이리저리 헤매다녔다. 냉장고에 먹을 만한 것이 별로 없는 게 다행. 대충 씻고 푹 잤다.

학교에 가져올 것들이 좀 있어서 2시쯤 학교로 갔다. 오늘은 고3들도 없다. 혼자 덜렁 조용한 학교. 하늘은 파랗고 운동장엔 아이들 소리. 녀서들, 축구라도 하나보다. '노는 아이들 소리' 참 평화롭다. 간만에 내 컴을 켜고 그동안 못 살핀 것들을 손봤다. 27일 성과급을 어떻게 할건지 의견을 묻는 교감샘의 메세지가 뜬다. 우짤라나? 암튼 나는 반납이다. 과제로 던져진 클럽활동 계획서도 하나 만들고, 우편물도 챙기고, 이러구 저러구 있다보니 6시다. 에구.. 경비아저씨 또 나 때문에 번거로우시겠다. 냉장고에 짠박아둔 아이스크림 하나 드리고 가야지 했는데 없다. --+ 그새 누가? 이잉~ 

아저씨게 인사하고 운동장을 쳐다보며 학교 쪽문을 빠져 나왔다... 녀석들 내가 수업들어가는 2학년 머슴애들이다. 이렇게 더운데 저렇게 뛰어다니니... 보기 참~ 좋다. 굴다리 지나고.. ㄷㅊ중학교 지날 때문 퍼뜩, 2학년 아이들 사진명렬 안 가지고 온 게 생각났다. 잘됐다. 가는 김에 아이들이랑 경비아저씨 하아드라도 사드려야지. 되돌아가는데 어라, 내 앞으로 날아오는 축구공! 4반의 '공'이 '감사합니다'  짬을 내서 인사를 한다. 예쁜 것! ^^ 상대는 성도고 아이들이란다. 현관 앞에 ㅈㅊ이가 있기래 물어봤더니 8월 8일 축구경기가 있는데 그거 대비해서 연습하는 거란다. "느그 너무 멋지다 야~~"를 연발하며 하아드 30개를 사주고 경비아저씨 꼭 두 개 갖다 드리라 부탁하고 나도 하나 물고, 기분좋게 돌아왔다. 오는 길에 마른 하늘에 천둥 번개 때리더니 이윽고 장대같은 소낙비!! 장난 아니다. 걷어올린 바지에 웃옷까지 다 젖었다. 아이들, 수중건 재미있겠다. 구경하고 올껄... 거실에 들어서는데 조카녀석 둘이 들러 붙어 홈빡 젖은 내 다리를 닦아주었다. 이쁜 녀석들.

저녁 먹고 언니네 가족들이랑 '할매분식' 들러 우동에 라면 먹고, 김밥마저 간식으로 사가지고 그 집가서 잤다. 최선을 다해 먹은 보람으로 아침에 눈 떴을 때 얼굴이 띵띵 부어 눈도 잘 떠지질 않았다. 나처럼 얼굴 탱탱 부은, 그래도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운 조카 둘이랑 수다떨면서 걸어걸어 집으로 왔다. 온 집안을 청소하고 나도 간만에 온 몸의 묶은 때를 박박 밀었다. 점심으로 국수 먹고 뒹굴뒹굴 하다가 일어났더니 4시다. 올케랑 언니랑 도와가며 두 달박이 조카 목욕시키고 저녁 준비하고 또 만땅 먹고. 택배 꾸릴 상자 하나 구해서 낑낑  짐쌌다. 가기싫다. 공부하기 싫다. 집에서 딩굴면 좋겠다. 내가 이걸 왜 신청해가지고.... --;;

7월의 마지막 날! 교육위원 선거있는 날. 투표장소는 구포전화국! 6시 반에 집에서 나와 투표부터 하고 구포역에서 7시 42분 무궁화를 타고 대전으로 향! 요즘은 자리 운이 별로다. 창가 자리이긴 한데 기둥 옆이라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고 또 햇빛 때문에 커튼을 칠 수밖에 없다. 과감히 식당칸으로 갔다. 커피 한 잔 홀짝 홀짝 마시며 쾌청한 창 밖 풍경 보다가 책 보다가... 그렇게 3시간을 그곳에서 개겼다. 대전역에 도착해서 택시로 서부터미널로 옮겨 버스 타고 공주로 돌아왔다. 버스비는 5200원 공주 오는 차비는 3100원.

어제 그제 군것질을 너무 많이 해서 배탈이 났지만 그래도 점심 챙겨먹고 방에 들러 교재 들고 강의실로 올라갔다. 좋아하는 문자학 수업이다.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가 잘 안 들리길래 앞자리로 옮겼다. 한어문자학 수업은 정말 재미있다. 2시부터 5시 반까지 수업. 몇 가지 질문하고!

ㅇ주랑 임ㅁㅎ샘께서 복사물을 찾아야한다고 하셨다. 수업하는 '한시' 풀이와 '교육사상'에 대한 논문이 세 권! 주어진 과제물 준비를 하시는 게다. 흠... 내 것까지 챙겨놓으셨다. 나는 마 대충 '작문'하거나 '소설' 쓸라꼬 했는데... 고맙게도(ㅠㅠ) 자료를 안겨 주신다. 저녁 먹고 '아이스크림을 사드릴게요'했다. 마침 학교 후문에 봐둔 가게가 있다. 셋이서 먹고 (아니 ㅇㅈ만 다 먹고 ㅁㅎ샘이랑 나는 남겼다. 나는 배탈, 아저씨는 배가 불러서) 김정ㅁ샘께 전화를 했서 [괴물]을 같이 보기로 했다.

극장 안에서 같이 수업 듣는 같은 과 샘들을 많이 만났다. 영화는... 아~ 참 좋았다.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그리고 그 꼬맹이 두 녀석과 반짝반짝 빛나는 조연들. 괴물도 진짜 괴물 같았지만, 괴물을 낳고 방치한 권력 시스템은 더 '괴물' 같았다. 극한 상황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무관심, 이기심... 이딴 것들은 '본능'일까? 가진 것 없는 자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도록 한 시나리오는...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일까? 사실 그러한 걸까? 그것보다 나는 가끔 보이는 내 맘 속의 '괴물'은 받아들여야하나. 내 쫓아야하나. 어떻게 다스려야하나.

어젯밤 1시까지 '행복' 어쩌구 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은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다르단다. 아무리 나쁜 환경이라도 좋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려는 '능력'이 있단다. 끔찍하고 슬픈,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행복감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반응하는 뇌의 상태가 다르단다. 밝은 내용의 만화영화를 본 꼬마들과 우울하고 슬픈 영화르 본 꼬마들은 이후 주어진 활동에서의 성과가 달랐다. 밝은 기분으로 적극적으로 임하니 결과가 좋게 나올 수 밖에 없단다.

행복감을 전적으로 개인의 성향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그러나 낙천적이고 긍정적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적어도 내겐. 판단하지 말고, 평가하지 말고 받아들일 것! 사실 요즘의 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섣불리 판단하며 평가하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그리곤 투덜투덜투덜.... 연수를 받으면서 그런 내마음을 자주 읽는다. 긍정적으로. 그러나 중심은 잡고 있어야지. 모르겠다. --;;

 아! 교육위원 선거에 패했단다. 미안한 마음이 확 밀려온다. 사실 연수 핑계대고 선거운동 하나도 안했다. 4년 전엔 운영위원이 아니었는데도 학부모 위원들께 일일이 전화해서 부탁했었는데... 이젠 어쩌지? 강용ㄱ샘 말로는 '이것이 현실'이란다. 그동안 열심히 애쓰신 분들과 그 분 본인께 무지 죄송한 맘이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지난 4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한 분을...  그 분의 '전교조' 활동 이력이 최소한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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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7-3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본 프로그램.. 의미있는 내용 한 가지 더! 초등학교의 아이큐, 성적, 교사들의 평어와 현재의 직업, 수입, 행복감 사이의 상관 관계를 알아봤더니? 어렸을 때 형성된 '정서적인 안정', '자아존중감' 등의 영향이 젤루 컸다.

2006-08-01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딱 11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왔다. 엉덩이 아파 죽것다.

내일 2시에 시험이다. 영양가 없는 교육학 시험 다 치고 나면 좀 가벼워지겠지. 몸도 마음도 무지 무겁다.

집에 가서 편히 쉬다가 와야겠다. 사실 내려가도 할 일이 많다. 가는 김에 과제도 하나 해버릴 생각이고, 준비해 올 것도 좀 있고. 암튼... 교육학 공부, 이제 안녕~~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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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7-2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참참!!! 오늘 ㅅ지에게 편지 받았다.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너무 기분 좋다. 빨리 답장 써줘야할텐데... 결국 답장은 부산에서 쓰게 되는 꼴? 아! 공주 우체통에 넣으면 되겠구나. ^^

글샘 2006-07-27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주를 더 즐기시지, 지겨운 부산엘 왜 오시게요. 휴가? ㅋㅋ
고생이 많으십니다. 쉬엄쉬엄 열심히 하세요. ^^

BRINY 2006-07-27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공부 하셨네요. 전 월요일에 교직 평가. 오늘부터 전공 들어갔어요. 전공 교수님들, 할 건 많은 데 시간 없어 죽겠다~란 정신으로 똘똘 뭉치셨네요!
시험 잘 보시고, 주말 잘 보내세요~~

해콩 2006-07-3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직 시험 잘 보셨나요, 브리니님?
저야 '공주'를 즐기기 위해 왔으니 그것에 만족(혹은 안타까와)하며 늘 대충대충 쉬엄쉬엄 하고 있지요. 그래도 교재를 한 번쯤은 읽어주고 셤 보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교사들의 고질병인 '범생기질'을 완전히 버리지 못해서인가봐요. 으~~ 뭐든 일단 열심히 해야한다는 강박증을 완전히 떨어버릴 순 없을까요? 뭐 이곳에 나랑 생각이 같은, 같이 놀아줄 사람도 엄꼬. ㅠㅠ '목적'이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들 왜 이리 열심히 하는 거죠?
 

경전교육론 및 사상사 演習/ 중국한시/  경전강독(詩經)/ 한문과 전통학습 방법 각각 두 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경전교육론]은 여러 가지 경전에 나타나는 교육철학, 교육관을 복잡하고 난해하게 정리한 것인데 교수님 말씀이 참으로 빠르고 이리 저리 가지치기가 심해서 정신이 없다. 함축적인 경전의 어구들도 많이 나오는데 순식간에 설명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손 빠른 사람 아니며 필기도 하기 어렵다. 에 몰라~~ 

[중국한시]는 그야말로 역대 중국 한시 중 교수님의 기준으로 가려뽑은 것들을 풀이하는 것이다. 아주 천천히, 교수님의 일상적일 생활을 곁들여 풀이하셨다. 오늘 두 시간 동안 <行行重行行>(:가고 또 가고) 한 수 풀이했다. 졸거나 딴 생각하기에 아주 좋다. 호흡이 가파른 수업만 듣는다면 미쳐버릴 것이다. 나름대로 한 숨 돌리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과목도 필요한 것 같다. 음.. 학교에서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

이 두 과목은 시험이 있단다. 시험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

[한문과 전통학습 방법]은 지금까지는 주로 한문 문헌에 나타나는 전통적인 한문 학습 방법에 대한 글들을 풀이하고 聲讀을 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근처 서원이나 향교에 가서 탁본도 하고, 학교 클럽활동 시간에 여러 선생님들이 하고 있는 활동을 보고하거나 하고 싶은 활동을 계획서로 제출한단다. 교과서의 내용을 직접 聲讀하는 녹음 Tape을 제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거 참 우째하는 건지... 막막하다.  --;

제일 재미있는 수업이 [詩經]을 새로운 관점에서 풀이하는 [경전강독]이다. 유교가, 유학이 정말 고리타분하고 극복해야할 지배이념이라고만 몰아세웠는데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이용되기 전, 周代 이전의 원시 유교는 인간성을 긍정하고 자신의 내외적 수양으로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현대 사회에도 시사점이 많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관점에서의 [詩經] 풀이/해석은 김용옥 교수의 해석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긍정하고 노동을 신성시하는 해석은 감동기까지 하다.

금요일 드디어 교육학 시험을 본다. 불과 지난 주에 배운 내용인데 책을 보니 참~~ 새롭다. 이 역시 하나의 학문인데, 자세히 보면 뭔가 배울 점이 있을텐데 이렇게 지겹기만 하다.

오늘.. 겨우겨우 견딘 하루다.  내일은 1교시가 없으니 좀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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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7-2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교시가 없는 날도 있어요? 저희는 꽉꽉!

해콩 2006-07-2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꽉꽉 채우고 하루라도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는 것이 같이 교육받는 샘들의 바람인걸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