燕尾山, '물찬 제비'처럼 제비모양의 산이 아래쪽으로 금강을 살짝 차고 오르는 모양을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금강이 부여쪽으로 살짝 꺾여돌아가는 바로 그 모퉁이에 이 산이 있다. 이곳에서 오늘, 2006 금강 자연미술비엔날레가 개막되었다는 소식을 알아냈다. (도서실에 떨어진 팜플렛을 주웠다ㅋㅋ). 어제부터 은ㅈ와 임명ㅎ샘을 꼬셨는데 반응이 신통찮다. 두 사람에게 진 빚이 많아서 비엔날레도 같이 보고 저녁도 대접하고 싶었는데 별로 마음이 없어 보인다. 나야 뭐 혼자 노는 것도 좋고!

지나가는 말로 정ㅁ샘에게 같이 가겠냐고 했더니 좋단다. 선ㅎ샘과 희ㅈ샘도 같이 가겠단다. 저녁을 먹은 후, 6시 반에 모여 택시를 탔다. 시간이 딱 좋다. 한 시간 뒤에는 해가 질텐데 택시기사 아저씨 말씀으로는 그곳에선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단다. 팜플렛에 나와있는 공주 시가지가 쫙 내려다 보이는 광경은 또한 얼마나 멋지던가.

희ㅈ샘에게 '산에 간다'는 말을 미처하지 못했는데 그야말로 '산'이었다. 완만한 산이 아니라 경사가 심한. 걷기 편한 산이 아니라 이제 막 길을 내고 닦기 시작해서 돌도 많고 길이 험해 샌달 신고 미니스커트 입은 샘에게 미안했다. 산 하나를 이런 저런 전시물-설치미술들로 꾸몄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산이 상태가 그럴지는 몰/랐/다. 게다가 오늘은 개막식이니 뭐, 폭죽도 쏘고 작가들 구경도 할 수 있고 사람들도 뽁딱거리고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썰렁했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게 구경하기는 더 좋은 법!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숲속에 숨은 듯이 하나 둘 나타나는 작품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비전하우스 식당에서 함께 밥 먹던 그 분들! 우리가 연수 받는 동안, 그 악천후 속에서, 맨 산에  이런 작품을 탄생시켰단다. 무엇보다 '자연' 친화적인 주제와 작품 설명들이 좋았다.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편안했고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거리낌이 없었다. 너무 거리낌이 없어 자꾸 만지게 됐다. 영구적으로 보존한다는데... 그럼 안될텐데 말이다.

꼭대기 전망대. 안타깝게도 사라지는 태양을 볼 수는 없었다. 나무에 가려져서 내 짧은 키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가... --; 그러나 시원한 바람 맞으며 팜플렛 사진에서 보다 훨씬 더 멋진 전망을 만끽했다. 공주시내가 다~ 보였다. 옆의 무덤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귀신이 나와도 왠지 백제시대 귀신일 것 같아서.. ^^; 달이 뜨는 걸 보고 싶었지만 너무 어둡다.

내려왔더니 희ㅈ샘은 가고 없다. 전망대에서 우리 셋이 너무 오래 눙쳤다 보다. 미안해라... 택시아저씨 댁이 그쪽이라 거기서 작업하는 외국인들을 줄곧 볼 수 있었단다. 7월 중순,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도, 살갗을 태울 듯한 뜨거운 8월의 태양 아래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작업을 했단다. (거의 벗고.. 사실 그게 더 볼만했겠다. 불순한 의도 전혀 없이. 원초적 모습으로 애쓰는 인간! 얼마나 멋졌을까?)

참, 그리고 결정적으로 4천원이라는 관람료를 안 냈다. 받는 사람이 없었다. ㅎㅎ 갈때 택시비 3,600원 올 때 3,800원. 맘만 먹으면 공주는 너무 놀기 좋다.

 

오늘 수업은... 아침엔 '哲學史演習' 듣고 이어지는 교양시간엔 유명하신 강사분이 목청 높이는 짬짬이 [중국견문록] 아껴둔 몇 장 다 읽어버렸다. 오후엔 여러 선생님들 한문-한자 계발활동/방과후활동 발표 들었다. 흠...요즘 내모습 반성했다. 현실을 탓하기 보다 노력하는 모습, 되찾아야지. 무엇이든 시도해서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한문이든 뭐 또 다른 교과든 아이들 자체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솔직히 '한문'교과가 없어진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 한문이라는 학문에 대한 내 애착이나 그것의 현실적 필요성-사회생활이나, 언어생활, 아니 인간됨을 가꾸어주는 공부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이 아이들 삶을 더 척박하게 만든다면 포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에 했고 그건 깊은 고민의 결과였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소위 중요과목이라는 국영수든 도구과목 혹 주변과목이라고 하는 다른 과목이든 사실 '아이들'보다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곰곰 생각하면 아이들 감성을 키워주는  예체능 과목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교과목의 중요도와 비중요도는 현실 대한민국의 상황하에서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이냐말이다.)

이렇게 내 과목, 내 학문에 대한 애착이 '교과 이기주의'로 흐르기 쉬운 것을 염려하는 맘과는 별개로 주어진 상황,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분발해야겠다. '한문' 내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유익한 여러 가지 거리들 쉽고 편하게 알려주려 노력해야 겠다. 그러나 늘 기억해야지. '내용'의 선정과 그 분량이 내 욕심은 아닌지...  아이들 입장에서 이해하려하기보다  '전달' 자제에 안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go할 때와 stop할 때를 잘 알아서 조절하는 것, 판단력과 성실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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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름대로 시원한 여름을 나고 있었나보다. 지난 금요일 공주 한낮의 최고 기온이 36도까지 올라갔다고 뉴스에서 본 그날도 동학사 앞 민박집에서 시원하게 잠들었고 토요일은 또 에어컨 있는 모텔에서 잤기 때문에 그리 더운 줄 몰랐는데 어젯밤에 정말 더웠다. 비전하우스 내 방은 해질녁 빛을 받는다. 밤엔... 덥다. 피곤했는지 11시쯤에 잠이 들었는데.. 여느 때 같으면 7시까지는 문제 없이 잠들 수 있는데 세상에 5시 반에 눈이 떠졌다. 그리곤.. 잠이 안 온다. 일어나 씻었다. 시원한 도서실로 피서라도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늘은 수업도 10시 50분에 시작이니!

온통 안개 자욱하다. 금강 때문인지 공주엔 의외로 안개 짙은 아침이 잦다. 비전하우스 뒷길, 작은 산책로를 따라 중앙도서실 6층에 도착! 그/러/나 피서를 즐길 수는 없었다. 에어컨 고장. 그냥 묵묵히 앉아 책을 봤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험도 시작될 것이고 과제도 몇몇 나왔는데 도통 교재는 손에 잡히지 않고 한비야씨의 [중국견문록]에만 맘이 간다. 3/4를 읽고. 흠... 교재도 한 번 봐줘야겠지. 이리 저리 책장만 설렁설렁 넘겼다. 아니나 다를까 잠이 온다.

오늘 수업은 김진두샘의 '한문소설-萬福寺樗蒲記'이다. 남원에 양생이라는 서생이 살았는데.... 어쩌구 저쩌구.. 점심 먹고 오후 백원철샘 시간엔 탁본을 했다. 8명 한 조로 나누어 박물관에서 빌려온 백제벽돌 모조품으로. 순서는 대략 이렇다.

1. 닦나무로 만든 화선지를 매끈한 쪽을 위로해서 벽돌 위에 깔고 테이프로 잘 고정시킨 후 분무기로 골고루 흠뻑 물을 뿌린다.

2. 적당히 젖은 수건으로, 처음엔 + 방향으로, 다음엔 *방향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마른 수건으로 한 번 더 꼼꼼 닦는다.

3. 엠보씽 없는 화장지를 젖은 화선지 위에 깔고 그 위에 마른 화선지를 깐 다음 옷 솔, 구두솔 같은 물건으로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부드럽지만 강하게 두드린다. 이때 솔과 화선지는 직각을 유지해야 종이가 찢어지지 않는다. 간간히 확인하여 탁본할 종이가 전체적으로 골고루 말라 흰색이 돌면 화선지와 휴지를 걷어낸다.

4. 먹봉은 두 개가 필요하다. 큰 먹봉에 먹물을 흠뻑 묻힌 후 오른 손에 든 작은 먹봉으로 큰 먹봉의 먹물을 찍는다. 작은 먹봉으로 탁본을 해야하지만 작품에 먹봉을 두드리기 전에 연습용 화선지에 몇차례 두드려 농담을 조절해야한다. 처음부터 너무 진하게 두르리는 것은 좋지않다. 차라리 연하게 처리하면 몇 번 더 두드려 짙게 할 수 있으므로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가운데에서 가생이로 톡톡톡 골고루 정성스럽게 처리한다.

5. 먹봉은 예전에는 좁쌀 등을 넣어 만들었지만 허드렛 양말이나 솜, 잔잔한 톱밥 등으로 안을 처리하고 먹을 많이 먹는 먹봉엔 비닐처리를 해주면 적당한 먹의 양을 유지할 수 있단다. 다 쓴 먹봉은 먹이 말라 딱딱해지기 전에 물에 불려낸 후 안에 남은 먹까지 쳐내서 볕에 말리면 반 영구적으로 사용가능하단다.

우리 조는 처음 두 번까지는 너무 진하게 작업해서 실패, 세번 째 작품을 제출했다. 다른 조 샘들이 다들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서 다들 기분 좋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작은 전각 작품도 두 개 해서 책에 끼워두었다. 코팅해서 책갈피로 써야지.

아이들에게 이런 수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먹봉을 직접 만들어야하고, 무엇보다도 탁본할 작품이 없다. 작은 전각작품 같은 것이 열 개 정도는 있어야할 것 같은데... 중국 가면 구할 수 있을텐데... 아쉽다.

저녁 먹고 도서실. 여전히 비야언니 책만 눈에 들어온다. 쉽고 재미나게, 솔직하고 맛깔스럽게 참 잘 쓴 책이다. 요즘 월드비젼 긴급구호활동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들었는데... 빨리 나으시라 기도하는 맘으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를 담번 독서목록에 올렸다.

도서실 6층을 고집하는 이유는 전망이 좋아서다. 다른 층의 책상은 좌우가 막혀있어 창밖의 풍경을 볼 수 없다. 이곳에선 저 멀리 계룡산자락, 금강, 공주 시내가 서로서로 들락날락 눈에 들어온다.

7시15분! 문득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더니 벌건 해가 산 머리에 걸렸다. 얼른 일어나 맞은 편 빈 자리로 옮겨앉았다. 소행성 612호의 어린 왕자는 마음이 외롭고 슬플 때 의자를 옮겨가며 하루에 수십 번 지는 해를 바라봤다고 한다. 마음이 외롭고 슬플 때, 해를 바라보는 건 도움이 된다. 아니, 도움이 안 된다. 더 맘이 짠해지기도 한다. 레바논, 민주노총, 성과급투쟁... 태양은 매일 저렇게 화려하고 이쁘게 져도 되는 걸까? 나는 저 태양을 바라보며 싸구려 감상에 젖어도 되는 걸까? 아니 그런 '큰 일'보다... 이제껏 살아오며 남에게 상처주고 또 그러면서 상처받고... 좁아터진 내 심보가 더 돌아봐진다. 타고난 맘그릇 좁아터졌지만 하루하루 다듬어 조금씩 키울 수 있을까? 그래, 어쩌면 저 태양.. 내일, 내달, 내년엔 못 볼 지도 모르는데.. 유한한 삶과 예정된 죽음을 늘 염두에 둘 일이다. 늘 감사할 일이다.

순식간에 태양 떨어지자, 세상 농담이 벌써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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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0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비야 언니 왈" 세상에 무엇인가를 매일 하는 것처럼 무섭고 힘센 것은 없다" 이 글을 읽는 순간, 그래 수업 열심히 듣자.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그저 현재를 충실히 살자. 그리곤 아이들이 생각나서 문자를 넣었다. 비야언니의 말과 함께 "샘도오늘부턴 열공할테니느들도홧팅" 생각해보니 방학 한 가운데 서있다. 노는 것도 열심, 주어진 시간 안에 공부도 열심. 해야겠다. 이거 내가 버리려 했던 '범생기질로의 복귀' 아닌가?

해콩 2006-08-07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후배 이태ㅎ가 왔다. 동기 배부ㄱ를 위해서겠지만 간만에 만나니 반갑고 좋다. 너무 빨리 일어난 게 맘에 걸리지만 '과' 활동을 대충대충한 나로서는 별로 나눌 이야기도 없고... 암튼 살아 있으니 다 만나네. 주위 사람들을 귀하게 생각할 일이다.
 

금요일 오후, 비전하우스까지 잘 찾아온 대견한 가족들... ^^ 후딱 옷 갈아입고 물건 몇 가지 챙겨서 합류~ 지난 번 신원사 다녀오던 길에 찜해둔 밥집에 가서 거하게 밥을 먹었다. 지난 주에 보고 일주일만에 보는 건데 뭣이 이리 반가운지...


금강을 끼고 내 닫는 '백제큰길'로 한 시간 가량 지는 해를 바라보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풀밭에 꺼벙이들이 어미 까투리를 좇아 달려가는 게 보여 서둘러 적당히 차를 세우고 우루루 떼거지로 내려 쫓아갔지만 녀석들, 벌써 사라지고 없다. 원래 그 놈들이 그렇게 빠르단다. 빠르기도 하거니와 낮은 풀숲 사이에 완벽하게 몸을 숨기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잡을 수 없다는 엄마, 아버지 설명이다. 물가에 오면 물수제비 뜨는 건 거의 본능인가 보다. 오늘 저녁, 금강이 메워지지 않은 게 다행이지.


어디서 묵을까 하다가 내일 들러볼 겸 동학사 앞에서 민박을 하자고 합의. 먼 길 달려서 찾아간 동학사 앞. 우와~ 그렇게 번화(?)할 줄이야. 민박집도 많고 주말이라 그런지 놀러온 사람들이 많다. 갑사나 신원사 앞의 한적함과 정말 대조적이다. 기와 지붕이 맘에 드는 한 곳 민박집을 잡아 들어갔다. but 무늬만 전통가옥이었다. --; 넓은 방에 창이 커서 시원하지만... 화장실과 목욕탕이 불편한데다가 밤 10시가량 되었나.. 바로 옆 민박에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놀러왔는지 게임하고 노래하고 시끌시끌 + 또 다른 민박의 피서객들이 구워대는 고기냄새, 음식냄새... 피곤했는지 가족들은 잘도 잔다. 1시까지 못 보던 TV 실컷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들 일찍 눈이 떠져서 8시반 쯤엔 민박집을 나왔다. 동학사까지 천천히 걸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장난 아니다. 푹푹 삶아댄다. 하긴 어제 공주의 최고 기온이 36도였다고 하니.. 헉헉.. 동학사는 생각보다 작았다. 그리고 이제껏 보아온 절집의 느낌-시대가 느껴지는 건물, 불상, 부도나 탑.. -은 거의 없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 도량이란다. 아뭏든 그 뒤로 펼쳐진 계룡산을 바라보며 기가 팍 죽었다. 이 날씨에 저 곳을 걸어올라가다가는 죽는 거 아닐까? 계룡산은 꼭 올라보리라 맘 먹고 큰소리 땅땅 쳐놨는데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얄궂은 포즈로 가족들이랑 사진찍고 놀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이젠 어디로? 부여로 가자고 한다. 부여... 시티투어 신청해뒀는데...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가지 뭐.


다시 공주로 들어가 점심을 먹고 부여로 향했다. 꼬박꼬박 졸다가 눈을 떠보니 부여! 어디지? 이래 저래 모르는 길을 물어물어 국립부여박물관 도착! 여러가지를 봤지만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금동봉황향로이다. 너무나 섬세한 공예품! 입이 쩍 벌어졌다. 늦게 나온다는 타박을 들으면서도 기념엽서 사고 둘째 조카 성재녀석 기념품 하나 쥐어서 나왔다. 연꽃이 가득 피었다는 궁남지로 향했다. 생각보다 넓다. 분홍색, 흰색 커다란 꽃송이들. 절정은 지났지만 남은 꽃이 그럭저럭 많다. 그나저나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대기에서 품어대는 볕이 장난이 아닌데 오늘 더위 먹는 거 아닌지 몰라. 헉헉~~ 마지막으로 부소산성을 돌며 여러 누각과 고란사 낙화암을 난생 처음으로 봤다. 흠... 가끔은 상상하는 행복을 오래오래 누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낙화암이야 삼천궁녀의 전설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게 사실이라면 더 열받을 나에겐 별 의미가 없기도 하거니와 이미 태종대의 기암절벽을 많이 보아온 내 눈에 흡족하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를 잔뜩했던, 이름도 독특고상한 '고란사'는... --; 공사중이라 더 어수선했다. 한 가지 발견은... 부처님의 얼굴보다 더 부드러운, 대웅전 기와를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계시던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 일하시는 모습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어찔어찔한 이런 뙤약볕에 저런 중노동을 하시며 짜증도 안 나시나? 땀을 줄줄 흘리시면서도 농담도 하고 연신 웃으시는 얼굴... 부처님이 따로 없다. 무슨 일이든 저리 한다면 복 받을거다.


부소산성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넘게 걸렸다. 엄마는 어제 '그 큰' 국립박물관 도느라 뻐근한 다리로 늘 제일 앞장서서 걷는다! 암튼 대단하시다. 아버지 따라 차에 남은 큰 조카 녀석이 괜히 얄밉다. 부소산성 아래 관광안내소에 들어 여러 가지 안내물들을 챙겨서 나왔다. 이젠 어디로? 마지막 남은 일요일은 공주근처를 둘러보자 한다. 무령왕릉과 공주박물관, 그리고 갑사.. 나는 벌써 다 둘러본 곳인데... ㅠㅠ 다른 곳 안 될까? 설득작업 실패했다. 다시 공주로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에 공주관광안내서에서 보아둔 '계룡백일주' 공장에 들렀다. 백화점에 납품하는 것 보다 40%정도 싸단다. 문을 여는 순간 향긋했는데... 흠흠... 기대된다.


백제체육관 뒤 쪽 주로 온천 온 관광객들을 위한 모텔에 방을 정했다. 저녁은? 시내쪽에서 공산성 조금 못 가서 공산성 기슭에 있는 작은 밥집이 생각났다. 겉에서 보기에 너무 허름해서 권하기는 좀 거시기했는데 우리 가족들은 오히려 그런 소박한 집을 좋아한다. 비전하우스 18층 스카이라운지에서 돈까스 먹을 기대로 부풀어 있던 두 조카 녀석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으며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실내도 넓고 깔끔하다. 올갱이 된장국인줄 알았는데 우렁된장국이다. 우렁이 먹고 한 번 크게 혼난 적 있는 엄마가 그냥 나오시려고 하니 주인 할머니 "우리집 유명한 집이에요~" 하신다. 믿고 먹어보라는 말에 주문하고. 나온 음식은 우렁된장국에 각종 나물반찬. 그리고 보리 섞은 밥을 대접에 담아주셨다. 우리 가족들이 진짜 좋아하는 나물에 된장 넣고 푹푹 비벼먹는 비빔밥이다. 게다가 삶은 호박잎까지! 공기밥을 두 그릇이나 더 시켜서 그야말고 배꼽이 빠지도록 잘~ 먹었다. 진심으로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고 나오는 기쁨.


비전하우스에 들러 갈아입을 옷과 이참에 부산으로 내려보낼 물건 몇 가지를 챙겨서 나오는데 날씨가 영 심상찮더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며 바람도 씽씽 불더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공주대 뒷문 근처 뚜레쥬르 빵집에서 그렇게 소나기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한 시간 안에 그치기는 힘들 것 같아 비를 맞으며 빵을 사서 조명 찬란한 백제대교를 건더 숙소로 갔다.


다들 너무 지쳐 씻기 바빴다. 비바람에 번개는 여전하고. 대전 무슨 역에서는 낙뢰로 열차가 몇시간이나 지연됐단다. 형부랑 계룡 백일주 살짝 맛보고 맥주 한 캔도 나눠 마시고 '중국견문록' 조금 읽다가 잠들었다. 어느새 비 그치고 반달, 달빛밝다.


10시쯤 무령왕릉을 돌았다. 어제만큼이나 더워서 왕릉은 돌아볼 엄두도 나지 않는지 가족들은 대충 모형만 둘러보고 박물관으로 가자고 했다. 박물관에서도 늘 내가 꼴찌였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부장품들은 정말 대단하다. 진묘수...돼지를 닮은 그 상상의 동물. 무섭기보다는 너무 귀여워서. ^^ 기념픔 코너에 붙어서 있는데 두 조카 녀석이랑 언니는 탁본 실습과 찰흙을 이용한 백제 문양 본뜨기를 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른 가족들은 벌써 차로 가버리고.


어제 저녁을 잘 먹었었던 '토속식당'으로 가서 점심도 먹었다. 똑 같은 메뉴지만 질리지도 않고 참 맛난다. 갑사에는 계곡 물놀이를 하는 피서객들이 진치고 있었다. 동학사 계곡처럼 물이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쉬어가기는 충분한 것 같다. 숲길을 살살 걸어 올가가서 대웅전, 우탑, 당간지주를 다시 둘러보고 내려왔다. 강냉이를 하나씩 물고 논산 개태사로!


개태사 앞에 가서야 이구동성으로 "와본 곳"이라했다. 재작년 중국어 연수를 받아야했던 나만 빼고 온 가족이 들렀던 곳이란다. 나야 재수지만. "가까우니까 나랑 같이 가자" 착한 큰 조카녀석과 엄청나게 큰 솥과 대웅전의 세 분 부처님, 팔각의 독특한 집에 모셔진 동자부처님을 모두 둘러보고 나왔다.


대전까지 태워주겠단다. 시외버스 타면 되지뭐.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돌아왔다. 계속 졸다보니 비전하우스가 보인다. 숙소로 와서 부랴부랴 샤워하고 세탁기 빨래 돌리고 혼자 저녁 먹으면서 가슴 속이 괜히 아리~ 하다. 타지에서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 익숙해지지 않는 일 가운데 하나다. 하루라도 시간이 있었다면 부산으로 따라가 버렸을거다. 내일부터 다시 강의 들어야하고 과제도 해야하고... 에구... 이젠 슬슬 집 생각이 난다. 국립박물관, 피카소전, 인상파전, 계룡산 등반 등등 맘속으로 계획한 일정 빡빡하지만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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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06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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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로 갈 생각이었다. 내일, 그러니까 토요일 첫차로 서울 가서 가족들이랑 합류, 용산 국립박물관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날짜를 서로 확실히 의논하지 않는 바람에 ㅠㅠ 부모님과 언니네 식구들, 지금 열심히 박물관을 둘러보는 중이란다. 수업 중에 계속 전화를 해대더니 '첫 차로 온다더니 어디냐'라는 황당한 문자를 보냈다. 이런... --; 하는 수 없지. 내 계획을 수정해야지.

오늘 수업 마치면 가족들과 합류, 공주 근처 주로 내가 안 본 곳 - 지난 번 실패한 동학사나 두 번 가봤지만 그래도 좋을 갑사나, 아님 마곡사를 한 번 더 가도 좋고 무령왕릉, 공주박물관을 한 번 더 보는 것도 괜찮지. 예산 수덕사, 논산 관촉사, 개태사 등등은 필수이고- 을 구경시켜주고 오늘 밤엔 가족들이랑 함께 자고 내일 가족들 내려보낸 후 혼자 놀다가 기숙사로 돌아와 자고 일요일엔 부여로 시티투어 갈꺼다.

아~ 슬슬 과제물이 맘에 걸리지만... 몰라 우찌 되겠지뭐. 계룡산도 함 타줘야하는데... 등산화도 가지고 왔으니..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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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안되어 눈을 떴다. 흠... 책을 보려니 조금 어둡다. 어쩌지??? 화장실도 가고 싶은데. 그래, 10층 독서실 가서 화장실도 쓰고 오늘 배울 내용 교재도 좀 보고 그러지뭐. 벌써 한 분이 책을 보고 있다. 일을 보고 자리잡고 앉아 앞을 보니 탁 트인 유리창 저 쪽으로 겹겹이 누운 산자락이 지나간다. 저쯤이면 계룡산 자락인가? 해 뜨는 곳을 약간 비껴 가긴 했지만 아뭏든 동이 틀 때면 저 산맥이 벌겋게 꿈틀꿈틀 살아움직이는 것 같겠다. 그래, 조금 일찍 일어나서 이곳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을 맞이하자. 책도 보고 태양도 보고 산맥도 보고. 지금은 많이 줄어버렸지만 금강도 달막달막 볼 수 있겠다.

방친구 샘이 차로 강의실 앞까지 태워다 주셔서 많이 걷지 않고 도착!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 내려 꽂힌다.

한비야씨의 [중국견문록]을 이제서야 읽다니... 작년쯤에만 읽었어도 좀 더 착실한 연수를 다녀올 수 있었을텐데. 정말 대단한 !! 특히 중국어를 공부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대상을 사랑하며 공부하는 것, 그 과정을 즐기는 것, 어떻게 좀 배울 수 없나? 나는 싫은 건 그저 딱 싫다. 이런 치우친 마음으로.. 사람이건 공부건 책이건 맨날 편식한다. 판단하고 평가하지 말기!! 말이 쉽지 참 어려운 화두다.

내일 아침!! 해뜨는 광경, 볼 수 있을까? 꼭~ 일찍 일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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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03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080

8이 세 개다. 신기하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