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네 과목 시험 설렁설렁 보고나면 모레 할랑할랑 수업 3시간쯤 남는다. 거야 뭐 수업이라고 할 수도 없을테니깐 사실상 내일로 1정교사로 나아가는 힘든 연수가 끝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보다 너무 안 힘들다. 연수비까지 받아 백제의 고도 공주까지 와서 공식적으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보고, 잘 듣고 그리고 돌아가는 것 같다. 역시 난 머리가 좋다. 부산에서 연수 받았으면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을까?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일들로 노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것도 아닌 그런 맹숭맹숭한 연수를, 방학을 보냈을 것이다.
만난 사람들도 좋았다. 우선 내 방순이 언니, 향ㅇ샘. 성격이 너무 좋아서 이래 저래 신세진 것도 많다. 가루비누도 두 번 빌려썼고 거울은 매일 아침 빌려준다. 샘 안 신는 새(!) 슬리퍼도 내게 주고 무엇보다 간식을 참 많이 얻어 먹었다. 빵이랑 과일... 뭐 가끔 내가 쏘기도 했지만 워낙 군것질을 안 하는 체질이라. (밥에만 목숨 건다.)
또... 거의 십여 년만에 만나 동기 은ㅈ. 그동안 임용 공부한다고 무지 힘들었을 거다. (임용 오래 준비한 사람은 얼굴에 표가 난다.) 솔직히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천성이 착하고 성실한 친구. 도움도 많이 받았다. 받아놓고 안 본게 미안한 자료들... 시험에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자료들... (근데 복사해준 그 논문들... 버려야할까? 아깝다. 종이)
연수 후반부부터는 늘 같이 밥을 먹었던 임ㅁㅎ샘. 샘의 인생역정은 정말 한 편의 드라마다. 고등학교, 공무원 근무, 늦깎이 대학 생활에, 교원대에서 석사학위, 요즘은 박사논문 쓰고 계시고 부산대 강사로 활약하면서 중학교 3학년 담임에 남편에 아버지. 우와~ 우와~ 참... 수업도 일주일에 23시간이나 한다고 하셨지. 놀라운건 늘 공부하는 선생님의 자세!! 지금 이 시간에도 두 사람은 도서관에 있다.
후배들도 만났다. 혼자 노느라 바빠 별로 챙겨주지 못한 게 미안하지만.. 뭐 그들도 어른이니까. 그리고 미처 알기도 전에 헤어질 여러 샘들. 이제 겨우 얼굴 익숙해지려하는데.. 맘 딱 맞는 다른 지방 친구 한 명쯤 사귀고 싶었는데... 특히 이곳 공주에 계신 샘이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쉽지만.... 욕심이겠지?
교수님들도 좋았다. 특히 따뜻한 카리스마 넘치시는 권정안샘. 샘의 글에 넘쳐나는 '정의감' 덕분에 기운이 펄펄 났다. 다른 건 몰라도 샘 과목은 정말 점수 잘 받고 싶은데. '人不知而不慍'이라야 '君子'라고 했는데 나는 그리 되긴 글렀다.
며칠 전부터 전망 좋을 더 높은 층들에 탐내긴 하지만 11층도 좋았다. 학교 앞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금강이며 연미산. 특히 10층 독서실에서는 계룡산까지 보인다. 오늘 아침만 해도 6시에 내려가 앉았더니 구름 사이로 이러저러한 산봉우리들이 아련하게 보였다 숨었다 한다. 저 곳에 내가 올라갔단 말이지.
나 자신과 대화도 많이 나눈 즐거운 한 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