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길, 시장을 걸어내려 오다가 샘들이랑 나눠먹을 흑미식빵을 하나 샀다. 사직동에서 카풀 샘 차에 올라 만덕터널 입구 즈음에 들어서니 월요일도 아닌데 꽉 막힌 차들이 굉장하다. 터널 안에 트럭 한 대가 멈춰섰단다. 덕분에 간만에 산길로! 태풍 '산산'이 올라오는 중이라 날씨도 흐리고 비도 온다는데 세상은 어제 내린 비로 또렷하다. 광안리, 해운대 앞 바다까지 보이고 모퉁이를 돌아 북구로 접어드니 낙동강 너머 김해의 야트막한 산과 누렇게 넘실거리는 나락들까지.. 신선한 아침이다.

교무실. 가방을 내리자 마자 '오늘은 부장샘을 대신해 원두커피도 뽑아놓고 사온 식빵도 구워두어야지' 생각하며 우물가에 서서 물을 받고 있었다. 내 자리 근처에서 두리번거리는 저 예쁜이는 누군고? 수정이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 제빵학원에 열심히 다니는 수정이. 대학 다니는 언니 밑으로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한동안 못다니던 학원을 다시 다닐 수 있게 되었다며 미안한 얼굴로 야자를 빼달라고 한 것이 9월 초였다. 보충수업을 빼준 것도 아니고 야자만 빼주었는데 무슨 큰 배려라도 받은 양 고마워하며 "샘, 빵 구우면 갖다드릴게요~" 고 예쁜 눈에 웃음 가득 담고, 고 예쁜 말을 수줍어하며 뱉아냈었다. "선생님 이거~" 우물가에 있는 내게 직접 구웠을 빵을 봉지 가득 보여준다. 그렇잖아도 요즘 불타오르는 식욕을 가누지 못하는 내가 환성을 지른 건 당연~ "우와 니가 만든 거가?" 우물가에서 탄성+고함. 살며시 놓고 나가는 녀석에게 "고마워~ 잘 먹을게"를 연발하며 자리로 가보니 수정이 만큼이나 예쁘고 수줍은 팥빵 5개가 비닐 봉지에 예쁘게 들어앉았다. 어라, 그리고 이건? 옆에 살짝 놓여진 우유. 빵도 나를 기쁘게 했지만 우유, 우유를 보는 순간 온 마음이 화사해졌다. '어리버리 즈 담임, 허겁지겁 빵 먹다가 목 메일까봐 우유까지 챙겼구나. 이건 따로 샀거나 지 몫일텐데...'  하던 일을 멈추고 앞자리 샘께 자랑을 거창하게 늘어놓은 후 하나를 건네고 나머지 네 개를 반쪽씩 잘라서 주위 샘들 자리에 놓아두었다. 나중에 오면 또 자랑해야지. "나, 오늘 존경 받았잖아~"라며 ㅋㅋ

그렇게 즐거워하다 오늘은 조금 늦게 교실로 올라가니 예상대로 아수라장. 칠판 앞에서 혜명이와 혜영이가 서서 떠들고 있다. "어, 떠든 두 사람 복도로 나와!" 와와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앉히고 혜영이를 얼핏 보니 교복치마를 들추고 안에 따로 입은 치마를 매만지고 있다. 사복? 지난 번 일본어 시간에 이나와 은주가 사복 꺼내서 장난 치다가 한 3일 정도 빼앗긴 적이 있다. 형평을 고려해 압수해줘야한다. "뭐야~ 이거. 사복이잖아. 벗어라. 압수다!!"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혜영이 "이거 혜명이가 만들어서 저 선물 준 건데요~" "엉??? 혜명이가 만들어? 벌써 혜명이가 옷을 직접 만든단 말이가???? @@ 우와 진짜 잘 만들었다. 근데 왜 니만 선물주노?" "접때 천 떼러 갈 때 따라가줬거든요 ^^" "글쿠나~ 와~ 진짜 잘 만들었다. (튀어나온 실밥을 가리키며) 근데 이건 뭐꼬? ㅋㅋ" 혜명이 "^^;;" 감탄만 하다가 같이 들어왔다. 

오늘 아침 아이들이 더 떠든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제 민주가 경남정보대학 제과/제빵대회에 나가느라 학교에 못 왔는데 세상에나~ 자격증을 따고 처음 본 시험에 은상을 탔단다. 부상으로 MP3까지!! 우와우와~ 학생부에 등재하기 위해 상장을 챙기며 맘껏 이뻐해줬다. (수정이에게도 살짝 샘들에게 자랑한 이야기와 고맙운 마음 전하고..)

요즘 우리반 녀석들 이렇게 예쁘다. 아침 자습 감독 들어가서 "조용히 해라~  자습 시간에는 집중해서 공부하자~ 떠들면 복도로 쫓아낸다"라고 공갈협박하면 별 대꾸 반항 없이 조용히 하는 척 할 줄도 안다. 또 '성적 내려가면 야자시킨다~'고 했던 내 엄포가 신경쓰여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가 없다고 상담하러온 수진이, 아파서 조퇴한 후 의사소견서 스스로 챙겨올 줄 아는 수다쟁이 은주, 낡은 지갑 하나 선물로 주었다고 밤이 늦도록 기억했다가 감사 문자 날리는 수지... 이렇게 헤벌쭉 좋아하면서 미처 못 챙기고 있는 아이는 없을까?

 

그리고... 수업 시간엔 엄청 떠들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왠지 정이 가는, 개구진 4반 녀석들. 요즘 내 자리에 책 빌리러 자주 온다. 진우 [십시일반], 휘빈이 [바보 1,2], 바위 [대한민국사 2] . 오늘은 태우까지 내려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다 봤다며 돌려주러 왔다. (사실 지난 주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며 태우 생각을 했었다. 문학, 국어만 편식하는 태우. 정말 글을 잘 쓰는 아이다. 그렇지만 수학도 이렇게 문학적으로 접근하면 뭔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샘이 왜 이 책 니한테 빌려준 줄 알겠나? ^^; " "수학공부도 열심히 하라고요~ 그렇지만 그런 박사는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꾸며낸 거잖아요." "아니다. 있다. 그 소설만큼 아름다운 학자들도 있는데~. 음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 함 봐봐. 아마 도서실에 있을 거다" 태우가 내게 빌려준 소설책 이름은 잊어버렸다. [엄마와 나] 다 읽고 나면 바로 읽어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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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9-16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마음에 아이들 이름이 다 실명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추억... 잊고 싶지 않아서. ^^ 내친 김에 하루에 한 명씩 찍어서 '칭찬하는 날'을 실천해야겠다. 한 명씩 불러내서 내 낡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일단 예린이, 이나가 같이 같기로 했고...

한 번도 같이 놀러간 적 없는 녀석들을 데려가고 싶어 몇몇 옆구리를 쿡쿡 건드려 봤는데 녀석들이 영~ 동하질 않는다. 돈 때문일까? 그냥 솔직히 연극은 샘이, 차비는 너희가!! 이렇게 꼬실걸..

연극 내용, 아이들이랑 같이 보기 어떨지 모르겠다.



여기 저기 아는 얼굴, 혹 모르더라도 비슷할 거라고 여겨지는 샘들을 보면, 그런 샘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편안하다. 편견일 수도 있는데. '우리'로 묶인 주체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또한 얼마나 다양한 스팩트럼 속에 있는데. 공간을 아담했다. 시작 시간이 넘도록  관객들이 계속 들어오더니 좌석 사이 계단까지 가득 메웠다. 태풍 '산산'의 영향으로 비까지 쏫아지는 이런 날씨에. 주위를 둘러보니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소박한 옷차림의 어른들로 그득하다.

40분쯤 극이 시작되었다. 몸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작업은 언제봐도 경이롭다. 부럽기도 하고. 무대위에 서는 용기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심호흡을 필요로할까?

"또 정색한다."

"샘.. 오늘만 보내주면 다음부터는 진짜 열심히 할낀데요, 보내주지요~"

"야자 감독을 우찌 하겠는데 이것 땜에 애들과 실갱이 하는 것은 정말 힘이 들어요. 어디 용역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라니깐요"

ㅋㅋ

아이들도 나도 같이 웃으며 살짝 살짝 공감의 눈짓도 보내며 1시간을 놀았다. 우리 학년, 우리 반이야 뭐 굳이 잡아놓지는 않기 때문에 극의 내용처럼 강압적이지는 않다. 오늘 우리 반엔 한 열 댓명 남아있으려나?  정독실도 전교 등수를 뽑아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자를 받아서 한다. 교실에 남아 있는 아이들 수가 아주~ 적기 때문에 굳이 정독실에 가려는 아이들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재작년 담임할 때만 해도 정말 맘 고생 심했다. 보충, 야자.. 등이야 뭐 혼자 견디면 되는 문제였지만 사설모의고사 문제 때문에. 극 속 유선생의 암담함이 충분 이해 되었다.

괴로워하는 극 중 유선생을 보며 불편했다. 어떤 샘들은 지금도 저런 끔찍한 상황 속에 '학교 가고 싶지 않다'고 되뇌고 있을텐데 요즘 너무나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찔린다. 다른 학교로 옮기면 또 다시 저 괴로움이 내 것이 될 지도 모르는데. 지하철 태워 아이들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상념들.... 결국은 "에잇, 뭐 그런 건 그때 가서 괴로워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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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9-15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목 보고 무슨 일인가 했네요.
참, 오늘 보충수업시간 15분을 빼서 1달도 더 남은 가을소풍에 대해 얘기했는데, 결론은 학교 운동장에서 텐트치고 1박2일 같이 지내자!로 났습니다. 운동장 구석에서 도서관과 기숙사 신축공사 중이라 아마 1박2일은 힘들 거 같지만, 같이 바베큐 해먹고 체육대회하면 재밌을 거 같아요. 작년의 실패를 떠올려 놀이공원은 절대 안된다고 했고, 또 말만 하고 흐지부지되면 소풍 안할거라고 했는데, 어찌될지요??

해콩 2006-09-15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머엄머.. 운동장에서 1박2일.. 정말 잼나겠어용~ ^ㅇ^ 나도 그렇게 함 꼬셔볼까요? 고기 구워먹기 ㅋㅋ 결과 알려주셔야해요~

2006-09-16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병ㅎ샘 말이 옳다.

월요일 직원회의 시간.

1. 정보부장샘 "아이들 생리 공결을 결석 하루, 조퇴(지각/결과포함) 하루만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했다. '응~ 그렇구나. 악용하는 애들이 많아서 그런가 보지? 우리 반엔 조퇴 하루 이상 쓴 녀석 없으니 별 변동도 없겠네.' 생각하며 옆 자리 샘과 "12반 애들만 타격이 좀 크겠네 ㅋㅋ"라며 농담했다.

2. 학생부장샘 " 오늘은 폭력 추방의 날입니다. 하여 2학년들은 5교시에 경찰서에서 나와 관련 지도를 하겠다고 합니다. 담임샘들 전달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못 들었다. 옆의 샘이랑 다른 이야기하는 사이에 발표하셨는데 정말 나는 전혀 못들었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전달도 못했고 5교시 전에 알았지만 아이들 수업결손에 대한 문제의식은 전혀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수업 빠지는 거야 아이들도 좋아하고 교과 담임들도 좋아하니까.

좀전에 학년실에 올라갔다가 혼자 계신 최병ㅎ샘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샘은 학교 오기도 싫고 회의도 들어오기 싫으시단다. 샘이 생각하기에는 생리공결 날짜를 부장회의에서 결정해서 일방적으로 줄인다고 통보하는 것이나 아이들 수업 결손을 당일날 전달하는 것이 모두 문제인데 샘들이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않아 답답하시단다. 혼자서 계속 이야기를 하다보니 미운털은 벌써 박혀있고 말빨도 안 먹힌단다.

정말 정신없이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쩌지? 생리조퇴날짜를 줄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 번 해보나 어쩌나.. 샘께서 교육청 게시판에 질의는 해두셨다는데... "죄송해요, 샘~ 너무 생각 없이 살아서... " 부끄럽다.

12년 동안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살아온 나는 사태를 파악하는 눈이 날카롭지 못하다. 아니 보수적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변화를 싫어하고 누구못지 않게 '문제제기' 후 누군가에게 되돌아오는 날카로운 시선을 견뎌내는 것이 부담스럽다. 겉으로는 아닌 척 행동하고 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그러하다. 날을 벼리지 않으면 일상에 정말 쉽게 안주해버리는 스타일이 '나'이다. 사실 요즘 너무 편안하다. 조합원샘들도 많고 또 활동가샘들도 다수라 믿고 빈둥거린다. 집회니 관련 강연에 다가본 지도 아득하다. 아무튼... 조금 예민해져야겠다.

최병ㅎ샘의 문제제기 하나 더] 1학년 문/이과 선택과정에 문과반 여학생들의 숫자가 너무 많단다. 47명. 그것도 담임샘들이 이과로 많이 유도한 결과란다. 올해 이과를 선택한 아이들이 적성에 맞지 않아 문과로 많이들 옮겼다. 아이는 괜한 미안함을 느껴야하고 담임도 괜히 부담스러워진다. 지금 이대로라면 지금 1학년이 2학년으로 진급하는 내년에는 더 많은 아이들과 샘들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교무부에서는 교육과정을 개편해야한고 교사수급에 문제가 있다고 그냥 덮을 모양이다. 거기엔 교장샘의 의지도 한 몫하는 것 같고. 최샘의 시선은 늘 아이들의 권리에 가 닿아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손해보는 건 누군데? 아이들이잖아!!" 한 마디가 오늘 아침 내 심장 위에 쿵하고 떨어져서 윙윙~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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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4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6-09-1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수요자 중심 교육입네 뭐네 이야기하면서 그건 보충수업이나 EBS감독비 등 학부모로부터 돈 걷을 일 있을 때만 꺼내드는 카드인지... 은밀하게 숨겨진 강요와 억압이 어찌나 많은지..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대 시스템' 자체의 문제일까요?
 

=333 2교시 내내 한 시간동안 쓴 아까운 걸 또 다 날렸다. 이번엔 로그인 시간이 오바되는 바람에. 흠... 오늘은... 일진이 영~ 조신하게 지내야겠다.

수요일 1교시. 2학년 1반이다. 8시 40분까지 자습감독하고 학년회의 마치고 서둘러 조례하고 허둥지둥 1교시 수업 들어가면 아이들은 아직도 담임샘께 조례 중 훈시를 듣거나 벌을 서거나 야단을 맞고 있다. 학년 초, 첫 단추부터 삐걱거리더니 (한 아이를 심하게 놀리길래 두어 번 야단을 쳤었다. 것두 심하게.) 한 학기 내내 아이들과 마음 맞추기가 힘들었다.

2학기 땐 잘 지내봐야지 하고 맘을 단단히 먹었지만 겨우 두어 시간 수업했을 뿐인데 1학기 때보다 더 힘이 든다. 대부분이 멍~한 채로 앉아있고 끊임없이 떠들거나 졸거나 자거나 아예 대놓고 장난치는 아이들. 무엇보다 힘이 드는 건 일 반 아이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을 하며 나의 실패담을 들려주어도 조금 반응을 보이다가는 이내 무심해져 버리거나 냉소적인 눈빛을 보낼 뿐.

오늘은 '人一能之 己百之' 구절을 풀이하며 자기애와 자기신뢰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했지만 나와 아이들 사이의 거리를 재삼 확인했을 뿐이다. 다른 반 수업할 때와는 달리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주고 가급적 '화'나 '짜증'을 자제하고 친절한 표정으로 수업하려고 꾹꾹 맘 다져 먹다가도 불쑥불쑥 무언가 치민다. 무심함을 넘어서는 싸한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어찌해야할지... 이렇게 다시 한 학기를 살아야할까? 아이들이나 나나 할 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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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9-13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힘드시겠어요..아이들의 무심한 눈빛...님 그래도 힘내셔요..언젠가 그 아이들이 알아줄날이 있을꺼에요..

해콩 2006-09-13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마음이 닿지 않는 것... 제 탓이죠. 가끔 안스럽고 안타까워요.
그렇다고 녀석들이 스스로를 줄창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겠지요? 공부보다 아이들이 자신감을 잃고 학교생활이 점점 재미없어질까봐 걱정이죠. 1반 녀석들, 다른 샘들께도 늘 꾸지람 듣는다고 들었거든요. 어찌해야할지....
 

6교시! 우리 반 수업이다. 자다가 일어나 주섬주섬 필기를 하던 녀석들이 즈들끼리 오늘 급식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판서를 하고 있는 나까지 불러댄다.

"샘 오늘 급식 반찬 진짜~ 웃겼는데요. 묵 세개 하구요.. *(*)(**&^%$.."

"그래? 식당에 얘기할게"

급식 이야기에 탄력 받은 녀석들, 이쯤에서 멈출 리 없다.

"어제는요, 애벌레도 나오구요... 머리카락도..."

"그러게 샘처럼 도시락 싸다니라고 했잖아. 샘 아침에 요가 하는 거 알제? 또 차도 없이 걸어다니잖아. 가방도 늘 느들보다 무거울걸~ 그래도 매일 도시락 싸다니잖아."

"엄마들이 싫어하는데요오~"

"에휴~ 급식 문제는 느들이 도시락 싸다니는 거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다고 그랬잖아.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말을 해볼테니 식단표에 맘에 안드는 메뉴 동그라미 해서 샘한테 줘봐봐. 그리고 뭔가 문제 제기를 하려면 이렇게 중구난방 식으로 해서는 설득력이 없다. 애벌레가 나왔으면 사진이라도 찍고 몇월 며칠 어땠다.. 뭐 이런 기록이 있어야지."

"지난 번에 사진 찍으려고 했는데 아줌마가 얼른 숨기면서 별 거 아니라고 하던데요"

"느그 솔직히 집에서 밥 먹을 때도 머리카락 나오잖아?"

"그건 엄마 꺼잖아요오~"

"--;;"

거시적인 문제로 환언하기 좋아하는 우리 ㄷ원이 왈,

"근데 샘, 우리는 왜 업체 안 바꿔요?"

이 문제가 거론되면 나는 흥분한다. 오늘은 조심해야지...

"그 이야기까지 하자면 ... 복잡하다....  수업하자"

"다른 학교 급식은 우리보다 싸고 더 맛있다던데... 급식비만 올리고...%^*()#$@#"

결국 못 참고 갑자기 확 뒤로 돌아서서 내뱉았다.

"다른 물가가 다 오르니 급식비도 올라가는 거지. 그리고 인건비도 올라야하고. ...  지난 번에 급식업체 바꿀 기회가 있었는데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회의 결과, 기존 업체를 그대로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거든. 학부모 위원들도 많았는데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랬다. 재작년 업체와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다시 업체를 알아봐야했다. 급식 사고도 있었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료교사들의 불만도 많아서 이번에는 꼭 업체를 바꾸자고 같은 교원위원샘 한 분과 다짐을 했다. 그 샘께서 아이들과 다른 학교 급식까지 둘러보는 등 애를쓰셨고 나는 아이들과 교사들의 급식 만족도를 조사하기도 했다. 학운위에서 그 결과를 공개하고 학부모 위원들을 열심히 설득했다. 학부모 위원들 역시 아이들의 급식에 대한 불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표결 결과는? 참담했다. 그 샘과 나, 두 사람만 새로운 업체를 1순위로 적었고 다른 모든 위원들이 현재의 업체를 1순위로... 표결 직전까지 교장샘은 계속 강력하게 현재 업체를 계속하자고 주장했다. 무기명으로 의사 표시를 하는 줄 알았던 학부모위원들은 이름을 써야한다는 주의에 많이들 용지를 바꿔가셨다.

자신 있었다.그래서 자료 준비도 열심히 했었고. '학력'에 관계된 것이라면 몰라도 이건 아이들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니까. 학력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아이들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니까. 결과가 나오고 나서 나는 회의에 대한 회의주의자가 되었다.

"샘이 학년 초에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위원이 아주~ 중요하다는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나? 아이들의 입장과 의견을 대변할 수 부모님이 학부모위원이 되어야하니까 집에 가서 잘 말씀드리라고 했던 거?....  나중에 느그들이 다시 학부모가 되면 지금 느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거, 힘든 거, 잘 기억하고 있다가 꼭 학교 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라. 그래서 학부모위원도 꼭 하고!"

대충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했지만 늘 찜찜한 것이 급식이야기다.

"느들 불만에 대해서는 영양사 언니한테 이야기를 하겠지만..... 급식업체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문제제기를 해도 문제는 늘 남게 마련이고. 그건 생래적으로 그런 거다. 그러니까 도시락을 싸다니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냥 있는 밥에 반찬에... 알겠제?"

별 영양가 없는 급식 이야기는 오늘도 이렇게 끝이 났다. 그나저나 녀석들... 문제제기를 위한 자료는 준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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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9-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일기를 오늘 아침에 씩씩거리며 다시 쓴다. 어제 한 시간에 걸쳐 썼는데 키 하나를 잘 못 두르리는 바람에 다 날렸더랬다.--; 어제 쓴 게 더 좋았는데..

2006-09-13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리포터7 2006-09-13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저도 어제 쓴리뷰를 키하나로 간단히 날렸지요...그래서 맹맹한 기분으로 다시 썼답니다..ㅎㅎㅎ예전처럼 도시락을 싸갖고 다닐수 없는 환경이 가슴아플뿐입니다..저번에 제주도의 학교의 급식이야기가 TV에 나오던데요..그지역의 농산물만 쓴다고요..대부분이 학부모들이고 그들이 자신의 아이가 먹을꺼라고 정성들여 키운걸 학교에 납품한다고 생각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구 하던 분이 생각나요..학교자체에서 직접 식료품을 구입해서 만들면 좋을텐데요..물론 어렵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