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창밖을 힐끔, 비가 찌질지찔 온다. 알람소리... 근데 6시다. 맞다. 그제 6시에 맞춰놓고 안 고쳤다. 암튼 오늘 요가도 땡땡이다. 무슨 일 있는 줄 아시겠네들.. =..= 20분까지 최대한 개기다가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며 씻고 준비하고...
20분쯤 버스를 탔다. 오늘따라 자리도 없네. 터널 입구에서 최ㅇ일샘을 만나 어제 태풍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앞 과일 가게를 지나며 잠깐 고민하다가 샘을 먼저 가시라고 하고는 과일 가게안으로 들어갔다. '뭐가 좋을까?' 1학기 때는 토마토, 자두.. 이런 걸 이용했고 아예 겨울이면 귤이 있는데 지금은 좀 애매한 계절이다. 과일 값이 턱없이 비싸면 감당해내기 힘들다. 둘러보니 내 주먹만한 작고 귀여운 사과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한 상자에 2만7천원! 몇 개쯤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이게 좋겠다. 120개만 들어있어도 한 반에 10개씩.. 당근으로 충분한 숫자다. 돈은 내일 드릴게요~ 하고 배달을 부탁했다.
이렇게 먹을 것을 '당근'으로 준비할 때면 주위 샘들께 왜 이리 미안한지... 그렇지만 하나 둘 인심 내기 시작하면 결국 모자란다. 이번엔 철저하게 수업에 활용하고 남는 것들로 대접해야지. 꾹 마음 먹고 아직 한 개도 안 권했다. ㅋㅋ
1교시 7반 수업. "이번 시간에는 퀴즈~ 앞에 나와서 발표하는 녀석들에게는 당근, 상품있다." 부시럭부시럭.. 쨘 사과!! "자, 문제는 쉽거덩.. 생각만 좀 해보면 된다. 한 번 발표한 사람은 다시 발표 안 하기. 대신 친구들 도와줄 수는 있다. 사과, 모두들 한 번씩 맛보자~ 사실 이거 알고 모르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느그... 언제 친구들 앞에서 발표 함 해보겠노. 괜찮다. 한 줌 만큼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용기가 없으면 있는 척만 하라는 말도 있잖아... 자, 아무나 나온나. 어~ 아무도 안 나오면 샘은 이거 안 가르쳐 줄끄다. 느그가 알아서 해라. 난 모른디~ 자 누가 나올래? 사실 느그 이거 다 알잖아. 무진장 쉬운 거다. 그래그래. 바로 그거야. ^^;" 이렇게 꼬시고 협박하고 차력(아이들 앞에서 사과를 맨손으로 쩍쩍 뽀갠다. 어라~ -,,-쌍코피..)까지 보여주며 겨우 사과 5개를 써먹었다.
자, 이젠 6반 수업 갈 차례다. 녀석들은 정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데... 으쌰으쌰 용기를 내고!
...
고민하다가 사과 상자를 캐비넷에 넣고 (요즘 나에게 분실 사고가 잦다) 썼다. 이렇게!
"해콩의 한문 수업 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