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의 앵무새 열린책들 세계문학 56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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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당신과 전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이 당신의 일부를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당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다. 당신이 무모하게 책 한 권을 쓰게 되면, 그 일로 인하여 당신의 예금 계좌, 건강 진단서, 결혼 생활 모습 등 당신의 일부는 돌이킬 수 없이 대중의 몫이 된다.
 -'플로베르의 앵무새' p.106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혹은 ‘네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이 과연 정말 ‘진실’일까 ‘진실’ 혹은 ‘진짜’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이런 질문을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우리에게 남긴다.



제목만 보고 혹은 간단한 서평만 보고 이 책을 ‘플로베르’에 관한 전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플로베르 전기라?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떤 한 인물에 대한 ‘전기’와는 전혀 다르다. ‘전기’지만 ‘전기’라고 할 수 없는… 사실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플로베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스의 작품을 읽기 위해 [마담 보바리]도 읽고 ‘플로베르’에 관해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런 식으로 ‘플로베르’에 대해 알게(?) 된 것, 그리고 반스의 이 작품을 읽은 것 등등 모든 것이 즐거웠다.

이 작품은 ‘플로베르’에 미친 한 의사가(이제는 늙어서 은퇴한) ‘플로베르’의 진짜 앵무새(플로베르가 글을 쓸 때 옆에 두고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박제된 앵무새)를 찾아 ‘플로베르’의 고향 루앙을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곳에는 서로가 진짜임을 주장하는 박제된 앵무새 두 마리가 있다. 어느 것이 진짜일까? 의사는 그것을 밝히기 위해 ‘플로베르’의 삶을 추적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속속들이 밝혀지는 ‘플로베르’의 삶과 사랑, 그리고 작품들… 그러나 이 책 속에 드러나는 ‘플로베르’의 삶과 ‘플로베르’라는 인물에 대한 갖가지 정보들을 보다 보면 과연 ‘플로베르’라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 진짜 ‘그’의 모습일까 갈수록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2장 ‘연보’ 부분을 보면 플로베르의 ‘연보’가 3가지 버전으로 소개된다. 하나는 일반적인 버전의 연보(그의 성공과 사회적 명성 그래서 행복한 부분들이 기술된 연보), 또 다른 하나는 첫 번째 버전의 연보와는 다른 성공의 이면에 감춰진 슬픔과 불행 등이 기록된 연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플로베르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기록들로 이뤄진 연보(이 연보를 보면 ‘플로베르’라는 사람이 무척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두 번째 장이 이 책의 주제를 잘 집약한 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 일반적으로 플로베르의 삶을 설명한 첫 번째 ‘연보’(즉 객관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기초하여)와 같은 방식에서 입수한 정보로 ‘그’ 또는 ‘그녀’를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실인가? ‘그’ 또는 ‘그녀’의 삶에는 플로베르의 첫 번째 연보와는 다른 두 번째, 세 번째 연보가 존재하듯이 ‘그들’만의 또 다른 연보가 존재할 것인데,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내가 아는 ‘그’ 혹은 ‘그녀’가 ‘진짜’ 그 사람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이 작품은 우리에게 던진다. ‘정말 당신이 그 사람 혹은 그 사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진짜요?’ 하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를 앵무새의 존재 역시 이러한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줄리언 반스 특유의 비꼬는 듯한 문장과 영어와 불어 사이의 언어 유희, 신화과 고전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맛보며 예술과 삶, 비평가와 작가, 작가와 작품 사이의 거리 등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무척 좋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플로베르’라는 한 작가의 면면을 살펴보는 즐거움이 대단했다. 물론 이 책에 그려진 ‘플로베르’가 온전히 ‘그’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에 인용된 플로베르의 ‘말’ ‘말’ ‘말’들만 봐도 플로베르가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내 마음은 언제나 눈물 속을 헤엄치고 있다.’라니!!! 




행복은 천연두와 같다. 너무 빨리 걸리면 그것은 너의 몸을 망쳐 놓는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고귀함의 방을 하나씩 갖고 있다. 나는 그곳에 담을 쌓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했다.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내 마음은 언제나 눈물 속을 헤엄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썩어 가기 시작한다.

삶은 왜 이렇게 끔찍하단 말인가? 삶이란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수프와 같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 수프를 마셔야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이다.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에 언급된 ‘플로베르’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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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 - 산문의 향기 005
나쓰메 소세키 지음, 미요시 유키오 엮음, 이종수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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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서간집이다. 그가 부인은 물론 어린 자식들, 장인 등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친구 및 문하생들에게 보낸 편지, 애독자들에게 보낸 답장, 일과 관련한 공적인 편지 등 140통 조금 넘게 실려 있다. 소세키는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지인에게 보낸 약 2천여 통의 편지 중 추린 것이라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2천여 통의 편지를 한 번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은 소세키가 그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다. 소세키는 런던 유학 당시 부인에게 편지를 종종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몇 주에 한 통씩 보낸 듯한데 부인은 생활하느라 바빴는지 이에 답장을 바로바로 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나쓰메 소세키는 답장 없는 부인에게 버럭 성질을 내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답장을 바로 하지 않는다고 짜증은 냈지만 소세키는 딱히 아내를 크게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쓰메 소세키 작품에서 정이 깊은 부부가 있었던가? 별로 그렇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그의 사생활의 반영일까?


그간 읽었던 작품을 통해 나쓰메 소세키 성격을 유추해 보자면, 아내를 사랑한다 해도 다정다감하거나 깨알 같은 애정 표현 등 닭살 돋는 편지를 보낼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멀리 떨어져서 지내는데 편지는 정말 무덤덤하다. 애정 표현보다는 잔소리가 많다. 어쩐지 아내가 좀 더 예뻤으면 하는 생각도 늘 하고 살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내에게 계속 틀니를 하라고 요구하고 머리 모양은 어떻게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게다가 늦게 일어난다고 그 먼 영국에서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잔소리를 한다. 이 사람, 참 ㅋㅋㅋㅋ 인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같이 살기 쉽지 않은 남자였겠다 싶다.



틀니는 하는 게 옳을 것 같소. 머리는 둥글게 묶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소. 자주 감으시오. (85쪽,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출산 후 경과가 좋아 건강해지면 틀니를 하시구려. 돈이 없으면 장인께 빌려서라도 하시오. 돌아가서 갚아 드리겠소. 머리는 묶지 않는 편이 머리카락을 위해서도 뇌를 위해서도 좋소. 오드키닌이라는 물이 있소. 비듬이 생기지 않는 약이오. 써 보시구려. 탈모가 멈출지 모르오. (95쪽,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무엇보다 무정하기 그지없는 내가 아내에게만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편지를 보내니 기특하지 않나. 그런 다각형 얼굴이라도 돌아가면 좀 잘해 줄 생각일세. (96쪽,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편지의 분위기를 보아 밤에는 12시를 넘기고 아침에는 9시, 10시경까지 자는 듯하구려. 밤은 그렇다 치고 아침엔 좀 일찍 일어나도록 하시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병이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니 그건 잘 알고 있을 것이오. 9시나 10시까지 자는 여자는 첩이나 창부, 하급 사회의 여자들뿐이라 생각하오. 적어도 좋은 집안에 태어나 상응하는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그렇게 단정치 못한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소. 야라이초 3번지를 한번 살펴보오. 당신을 제외하고 그런 부인들은 하나도 없소. 이건 유학 전에도 항상 하던 말 같은데 당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구려. 나쓰메의 부인은 아침 9시, 10시까지 잔다고 수군거리면 좀 창피하지 않겠소. 당신은 어찌 생각하오. 당연히 신병은 특별한 일이지만 요전의 편지에 의하면 아주 건강해졌다고 하니, 몸에 이상 없는 한 일찍 일어나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오. 게다가 아이들 교육상 좋지 않을 것 같소. 후데가 성인이 되어 시집을 가서 당신처럼 9시나 10시까지 잔다면 나는 미래의 사위에게 아주 미안한 마음일 게요. 당신 부모님들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나는 다르오. 노력해서 자신의 결점을 없애는 것이 인간 제일의 의무일 게요. (124쪽,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이밖에도 아내에게 보낸 편지로 나쓰메 소세키가 치질을 앓고 있었다는 점! 복장에도 꽤 신경 썼다는 점(어쩐지 그럴 거 같았다), 키가 작은 자신에 약간의 열등감이 있었다는 점(특히 영국 유학 당시) 등을 알게 되었다. 친구나 문하생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는 가르치는 일을 무척이나 괴로워했다는 점(특히 대학에서 교수직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몹시 싫어함), 박사병에 걸린 인간들을 혐오했으며, 때문에 박사를 수여하겠다는 것을 여러 차례 까칠하게 거절하는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기 보다는 친구들이나 문하생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풍류를 논하며 놀고 싶어했다는 점에서는 격하게 공감하며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물론 나쓰메 소세키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는 한가로이 방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삶을 가장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피부가 노랗다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스스로 내 피부가 노랗다는 것에 정나미가 떨어지오. 게다가 나보다 키가 큰 사람 앞에서는 아주 어깨가 움쓰러드오. 건너편에서 이상한 놈이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큰 거울에 비춰진 내 그림자였던 일이 몇 번인지 모르오. 얼굴이야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해도 키는 커지고 싶구려. 아이들에게는 되도록 의자에 앉을 때 등받이에 기대지 않게 하는 게 좋겠소. 하긴 이곳에 있는 사람은 대개 키가 작다고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지만, 키는 마음먹는다고 클 수 있는 게 아니니 어쩌겠소. 그래도 아가나 나보다 키가 작은 서양인을 만날 때는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소. 하지만 대개는 여자들도 나보다 크오. 무서울 따름이오. (94쪽, ‘런던의 생활’ –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매월 오륙십의 수입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도쿄로 돌아가 멋대로 풍류를 즐길 각오지만 놀고 있으면 돈이 주머니 속으로 그냥 들어오는 것도 아니기에 먹고 입는 것을 조금 줄이더라도 뭔가 일거리를 찾아(다만 교사를 제외하고), 여가를 이용해 자유로이 읽고 자유로이 말하고 자유로이 쓰기를 희망하네. (72쪽, ‘교사를 그만두고 싶어’)

한가로이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며 도처의 산수를 방랑하면 인생이 가장 즐겁지 않겠나.
나는 학교에 교육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월급을 받으러 가네. 다른 모든 선생들도 틀림없이 그럴 걸세. 이상. (150쪽,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대학의 교사니 강사니 하며 평가를 해주지만 조금도 고맙지 않네. 내 이상을 말하자면 학교에는 나가지 않고 매주 한 번 평소에 출입하는 학생 제군을 집에 불러 식사를 하면서 농담을 하고 노는 것일세. 나카가와 군 등이 와서 나보고 곧 박사가 될 거라는 말을 하는데, 지겹고 불쾌하네. 나는 일전에 박사는 되지 않겠다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미리 나카가와군에게 거절해 두었네. 그렇지 않나, 박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153쪽,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나는 그간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통해 그가 인간을 혐오했고 삐딱한 염세주의자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이 서간집을 통해 어느 정도는 그런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끼는 문하생들 및 절친한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 자신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보낸 답장 등을 보면 역시 이 사람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구나 싶어진다. 때로는 다정다감하기도 하고 농담도 할 줄 알고 진심으로 타인을 걱정도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마음>이라는 소설 속에 있는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벌써 돌아가셨어요. 이름은 있지만 알아봐야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 그런 것도 다 읽는군요. 그건 아이들이 읽어 봐야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니 그만 읽으세요. 내 주소를 어디에서 알았죠? (318쪽, 독자에게 보낸 편지 중)

무엇보다도 나는 나쓰메 소세키가 모리타 소헤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특히 아끼던 문하생들에게 글쓰기를 독려하며 썼던 편지가 인상에 남는다. 그런 편지들은 마치 나에게 보낸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도 나뿐만이 아니라 글을 쓰며 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편지들이 유독 강렬하게, 오래 기억에 남으리라. 인간 나쓰메 소세키를 좀 더 알 수 있으며 이 자체로도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인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는 나쓰메 소세키 작품이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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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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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 : The Ballad of the Sad Cafe>는 130장 남짓의 분량으로 짧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보다 강렬하다. 아프고 슬프면서도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우아하다. 작품 속 사람들은 외롭고 고독하고 그로테스크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그 어떤 삶의 모습보다 가슴 깊이 남는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에서 두 벙어리 싱어와 안토나풀로스를 통해 소외받은 이들, 이른바 비정상인들의 꿈과 사랑과 아픔을 이야기했던 카슨 매컬러스는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도 여전히 조금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미스 어밀리어’ 그녀는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는 건장한 체구에 여성스러운 면보다는 남성적인 면이 훨씬 많다. 게다가 돈 버는 일 말고는 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다. 단 열흘간의 결혼 생활이 끝난 후 그녀는 남자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혼자 살아간다. 그 열흘간의 결혼 생활이 어떠했는지 마을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수수께끼다.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청년인 ‘마빈 메이시’ 그는 무척 잘생겼지만 전형적인 악인이다. 그가 손대는 것마다 악으로 물이 들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미스 어밀리어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녀를 향해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고 밤이나 낮이나 그녀 곁을 맴돌기만 한다. 그녀를 향한 사랑 때문에 악인은 도덕적이고 순한 사람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향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꼽추 ‘라이먼’ 그는 어느 날 어밀리어 앞에 나타난다. 그러고는 어밀리어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는다. 마빈 메이시가 그랬듯이 어밀리어의 삶 전체를 뒤바꾼다. 돈 밖에 모르던 그녀가 라이먼에 대한 사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밀리어, 마빈 메이시, 라이먼. 그들 셋은 모두 결함 많은 존재다. 외모는 물론(마빈 메이시는 예외적으로 잘생기기는 했지만) 성격적으로도 결함투성이다. 매력적이지도 않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구석이 크게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떤 누군가의 마음에 커다란 폭풍을 불러오고, 그 폭풍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변한다. 그 폭풍은 바로 ‘사랑’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진실로 사랑한 마음에 제대로 응답받지 못하고 처절하게 아픔 속에서 끝나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떠나버린 뒤 ‘사랑’하는 상태에서 버림받은 그들의 삶은 황폐함 그 자체다. 사랑이 한 인간의 삶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삶이 파괴되고 고통스럽게 변한다.

마빈 메이시가 왜 미스 어밀리어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어밀리어는 꼽추 라이먼을 왜 사랑하는지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는 끝끝내 아무런 설명도 나오지 않는다. ‘대체 왜 이런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하는 질문이 종종 들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종종 그런 질문을 한다. 어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면 ‘대체 왜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하고 묻는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으리라. 사랑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사랑하는 순간, 이별하는 순간 등등 모든 과정에서 그 당사자와 상대방 둘만이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52쪽)

때문에 그 어떤 사랑도 당사자들을 제외하고 그 어떤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이렇게 표면에 드러난 사랑 이야기는 서글프고 우스꽝스러울지언정, 진정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사랑하는 사람, 그 당사자의 영혼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신 외에 그 누구도 이 같은 사랑, 아니, 다른 그 어떤 사랑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65쪽)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해본 사람이라면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 그려진 그들의 사랑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사랑을 하는 순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굴해지고 한없이 나약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랑받는다는 그 사실 때문에 오만하고 이기적으로 굴게 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언뜻 이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이기적인 속성을 지닌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아주 선한 사람조차 때로는 악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슬픈 카페의 노래>는 바로 그런 사랑의 속성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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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2-16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나는 진정으로 사랑해 본사람인가봉가 인정하기 싫지만 크하하핳하하하하

잠자냥 2022-02-16 09:00   좋아요 1 | URL
누굴까~ ㅋㅋ

공쟝쟝 2022-02-16 09:11   좋아요 0 | URL
아니야 사랑아니었던더 같아요ㅋㅋㅋㅋ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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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그려진 한 남자의 초상이 보인다. 남자의 얼굴은 평범하다. 길고 가느다란 얼굴. 짧게 깎은 머리, 어딘가 조금은 슬픈 듯한 눈동자. 굳게 다문 입술. 별다른 특징이 없는 얼굴이다. 어디서나 볼 법한, 그래서 뚜렷하게 기억되지 않고, 혹 기억된다 하더라도 쉽사리 잊힐 만한 그런 얼굴이다. 그 얼굴 아래 '스토너 STONER'라 적혀 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다 읽은 뒤 책 표지에 그려진 얼굴을 보노라면, 이 얼굴이 바로 주인공 '스토너'의 얼굴이며, 그의 얼굴은 이렇듯 평범하기 그지 없기 때문에 평범한 모든 이들의 얼굴을 대신한다고 느껴진다. 그러니까 바로 '스토너'의 얼굴은 우리의 얼굴이며, 스토너는 우리 자신이다.


책을 덮은 뒤에는 삶의 허무함이랄까, 인생의 덧없음이 한없이 밀려와 조금은 허탈하고 우울했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이런 것일까 싶어서. '왜 사는가' 이런 질문에 그저 무거운 마음만 들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그럼에도 스토너 그의 삶의 그리 못나고 허무한 것으로만 여겨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를 잘 짓는 법을 배우고자 대학에 진학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대학에서 문학에 매혹당한다. 그러고는 농사를 잘 짓는 법 대신 영문학도의 길에 들어선다. 그렇다고 그가 학문에 특출나게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용하고 내성적인 그는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공부만을 할 뿐이고 어느덧 교수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가 뜻해서 이룬 것은 오로지 '영문학' 그 하나뿐이었다. 처음 열정을 느낀 상대, 사랑을 느낀 여자와 보기 좋게 결혼에 성공하지만 그 결혼은 끔찍한 실패작이었고, 그로 인해 하나뿐인 딸과의 관계 또한 스토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소원해진다. 가정적으로 그는 절대 행복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는 또 어땠는가. 늘 순조롭지는 않았다. 부당한 일에 휘말려 마땅치 못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뒤늦게 찾아온 진정 사랑한 여인과도 자기 의지와는 달리 헤어지고 만다. 그러니까 가정이나 사랑, 혹은 그밖의 인간관계에서 그는 이렇다 할 행복을 찾지 못했다. 외롭고 고독한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그저 홀로 서재나 연구실에 틀어박혀 문학과 씨름하다 죽어간다.

스토너라 불리는 한 남자의 인생, 큰 사건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 이 작품은 그렇게 펼쳐진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은 그의 삶 안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 혹은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사는 게 참 별거 아니구나 싶은.........

하지만 묘하게도 책을 덮고 이 남자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울림, 묵직한 감동이 마음을 흔든다. 스토너의 삶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들의 삶보다는 조금 의미 있었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발견했으며, 그 일을 평생토록 아끼며 소중하게 지켜나갔기 때문이다. 바로 '문학'이 그 길이었다. 비록 '사람'에게서 행복을 얻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고 실패로 규정지을 관계도 많았으나 '문학'은 끝까지 그를 놓지 않았고 그의 삶을 구원했으며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스토너의 삶은 헛되지 않았으리라.

인간이 태어나 살아가면서 어떤 관계 속에서 행복을 얻는 일도 분명 크다. 가족이라든지, 친구, 연인, 배우자 등등 그러나 사람 사이 관계는 늘 가변적이고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관계에서 얻는 행복도 가변적이고 한정적이다. 하지만 문학이라든지 영화, 음악, 그림 같은 것들.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진리나 학문처럼 변함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과 탐구는 사람을 '늘' 깨어있고 행복하게 만든다. 스토너처럼 어떤 한 가지에 자신의 삶을 던질 수 있고 꾸준히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의 삶은 허무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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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E. M. 포스터 전집 5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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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은 이야기의 흥미로움 정도로만 치자면 포스터의 작품 가운데 어쩌면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다.

200페이지 정도의 가벼운 분량이기도 했지만, 다음 장이 궁금해서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포스터가 막장 드라마를 쓴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20세기 초반 영국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막장 드라마’라는 표현을 쓰자니 이 작품이 막장인가(?)하고 오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은 포스터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아름답고,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면서 따뜻하다.  그런데 왜 ‘막장 드라마’냐고? 욕을 하면서도 볼 수밖에 없는 막장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물론 포스터의 작품을 읽을 때 욕은 나오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빠른 전개와 인물 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관계와 영향 등등.

이 작품은 정말 스포일러를 조심해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뒤표지를 봤더니 줄거리가 줄줄 적혀있던데, 절대로 읽으면 안 된다! 재미가 완전 반감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도 언젠가 이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스포일러 등 소설 내용을 최대한 언급하지 않고 리뷰를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그러다 보니 ‘재미있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구나;).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포스터 작품 중엔 <인도로 가는 길>과 단편 모음집인 <콜로노스의 숲>을 제외하고 다 읽게 되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재미로만 따지자면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이 단연 최고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작품은 재미에서는 최고지만 포스터의 초기작이니 만큼 후기작에 비해 깊이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은 있다. 그러나 그 반면 포스터 작품의 주요한 특징(계급간의 문제, 인습과 전통에 얽힌 삶과 자유로운 삶의 대비 등등)이 이미 이 작품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재미도 재미지만 유머러스함도 빛난다. 여러 구절에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고 어떤 부분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구절- ‘그는 큰 키에 여윈 체격의 젊은이로, 옷 어깨에 패드를 넣는 사려 깊은 방법으로 안쓰러운 상태를 피해야 했다.(80쪽)’

포스터 작품을 거의 다 읽어가는 이즈음…. 좋아하는 작품 순으로 마음속에 새겨보았다. <인도로 가는 길>과 <콜로노스의 숲>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언젠가 읽게 되겠지만…. 왠지 나에게 이 두 작품이 포스터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아직까지 안 읽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음;). 내가 포스터 작품 가운데 좋아하는 순서는.... <모리스>,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기나긴 여행> 순이다. <인도로 가는 길>과 <콜로노스의 숲>까지 다 읽으면 또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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