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8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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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시리즈가 7권을 이어오면서 누적 판매부수가 100만권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동안의 시리즈를 모두 읽은 건 아니고 몇 권은 뛰어넘었는데 이번에 제8권은 우연히 좋은 곳에서 제공 받아 읽게 되었다. 고마운 기회다. <지식채널 e>는 'e'를 키워드로 자연, 인간, 사회, 과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간결하고 강렬한 메시지와 영상으로 전한다. 영상 시대이니 각처에서 필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을 묶은 책 <지식e>로 보는 건 영상이 아니라 사진과 활자인데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영상은 순간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사진과 활자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덟번째 책으로 나온 <지식 e>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다. 링컨의 연설에 나온 문구로 유명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를 걸고 세 장으로 나누었다. 각 장이 굳이 다른 맥락은 아니다. 링컨은 국민을 지칭한 것이지만 이 책에선 국민 혹은 사람들로 변형하여 가져온 듯하다. 당시에는 온갖 어려움과 비난과 박해를 겪었더라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각 편마다 소개된다. 간략한 메시지와 사진 다음으로 이어진 상세한 내용과 역사적 사실, 확장한 생각거리들, 우리나라의 경우에 적용된 여러가지 사안들을 읽을 수 있다. 더 읽으면 좋은 도서도 두 권씩 권장해 두어 지식과 생각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눈길 끄는 곳에서 먼저 펼쳐 읽어도 좋다. 우리가 결국 말할 수 있는 건 '사람'에 대해서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사람'에 대한 이 책을 보며 똑바로 알지 못했거나 전혀 몰랐던 사실들이 꽤 흥미로웠다. 역시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한다. 배움이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그치는 일이 아니란 건 잘 안다. 문제는 늘 실천과 행동에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프랑스의 전 교육부 장관 레옹 베라르가 한 말은 신선하다. 교육과 배움의 목적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원하게 되고 또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아는 데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민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원하게끔 하는 데 있다. (121P)

 

이 책이 독자에게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처음 알게 된 사람도 있고 제대로 몰랐던 사람도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뿌리깊은 나무> 발행인 한창기(1936-1997).

학생 시절에 이 잡지를 서점에서 본 기억이 나고 사진 않았지만 들춰보았던 적이 있는데 그동안 이런 파란을 겪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통념에 빠지지 않고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자신의 뜻을 관철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가슴 한켠에

퍼른 서슬을 서게 한다.

 

"외래어와 한자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품격 있는 잡지를 독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

"후미진 촌구석의 민중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90p)

 

 

그 다음으로는,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 건축철학자 정기용.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건축가의 역할은 "원래 거기 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해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정기용이 가장 염두에 둔 것은 '공공성'이었다. 2007년 9월 유력 일간지들이

'아방궁'이라는 수식어를 단 전 노무현 대통령의 봉화마을 사저를 설계한 건축가는 정기용이다. 지금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사저도 곧 개방할 것이라고 하니 꼭 가서 정기용 건축가의 설계를 눈으로 보고 싶다.

 

 

외국사람 중 인상 깊었던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독해한 템플 그랜딘.

그녀는 1947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세살 때 자폐아 진단을 받았다. 언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동물처럼 시각적으로 세상을 이해했다. 동물의 관점을 장착한 그랜딘은 목장과 도축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풀어냈다. 30여 년간 육류산업에 종사하면서 동물에게 고통을 덜 주도록 고안한 '중앙궤도형 도축장치'는 오늘날 미국 도축장 절반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소떼들이 제 몸을 압박하는 보정 틀에 들어가서는 매우 차분해지는 것을 목격한 그녀는 자신에게 맞는 보정 틀을 만들어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마다 사용해 효과를 보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허그 머신'은 자폐인용 압박치료기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랜딘을 소개하면서 이 책은 니체의 관점주의와 영화 '라쇼몽', 왜상(anamorphosis), 바니타스(vanitas)로 이어지고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를 권한다. 이런 게 이 책의 미덕이다.

 

 

그 다음으로는 파브르. 파브르의 곤충기는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곤충의 관찰기록과 본인의 사생활을 엮어낸 '곤충기'의 원제가 '곤충학적 회고록'이라는 건 몰랐다. 1911년 시인 프레데리크 미스트랄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파브르를 추대하는 운동을 벌였다고 하니 그의 곤충기는 읽기에도 멋진 문장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 앙리 파브르를 이 책은 '험난한 길을 걸어간 고요한 산책자'로 명명한다. 파브르를 말하며 법곤충학도 소개하는데 꽤 흥미롭다. 권장하고 있는 '파브르 평전'도 담아둔다. 당시 진화론에 반대한 자연주의적 관점을 고수한 그는 더욱 고독한 말년을 보냈다. 가난에 처한 파브르는 이렇게 항변했다.

 

 

 "당신들은 동물을 해체하지만 나는 산 채로 연구한다. 당신들은 동물을 공포와 연민의 대상으로 바꾸지만 나는 사랑받는

대상으로 만든다. (...) 당신들은 화학실험을 통해 세포의 원형질을 연구하지만 나는 가장 고귀한 존재의 본능을 연구한다"

                                                                                                                                                   (242p)

 

 

이 책을 읽으며 몇 해전 지식채널e 에서 소개되었던 영화감독으로서의 심형래가 생각났다. 요즘 그의 소식을 떠올리니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났다. 너무 쉽게 한 사람을 부풀린, 대중의 욕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의 일은 더 두고 봐야 알 일이고 속단해서도 안 될 일 같다. 물론 어떤 면에서만 보자면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으로 격상될 일이라 더욱 그러하다. 다각도로 차분히 생각하는 힘이 이 책을 보면서도 필요할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사람들, 그와 연관된 세상 후미진 곳의 사람들과 확장해볼 생각거리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작은 힘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지식이 지식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원하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면 좋겠다.

 

아홉번째 <지식 e> 를 기대하며 덧붙인다. 2013년 4월 30일, 1000회 방영을 맞은 '지식채널e'는 6월 말까지 UCC공모전을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이라는 주제로 시청자들의 공모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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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6-0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바꾼다는 것. 작은 힘들이 모아져서 가능한거지요.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생각해보는 동기가 되네요.

프레이야 2013-06-08 10:19   좋아요 0 | URL
나부터 바뀌어야 될 것 같아요. 그게 쉽지 않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책으로 여러가지가 확장되는 경험이 따르면 좋을 것 같아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제게 여기 소개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감동적이었어요.
세실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013-06-07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8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13-06-0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짧은 시간이라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함께 흐르는 음악이 좋아서 홈페이지를 들락거린 기억이 있어요.
책으로 만난 것도 있는데, 프레이야 님의 글처럼 '무엇을 원하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2013-06-08 10:18   좋아요 0 | URL
세상을 참 의미있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뭉클하지요.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다시 한번 드는 생각이, 매사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한 것 같아요.
자목련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바람돌이 2013-06-07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권째인데 100만권이라고요. 저는 더 많이 팔렸을줄 알았어요. 다 산건 아니지만 저도 4권인가 샀고, 주변에 읽는 사람들이 진짜 많아서요. ^^
요즘은 역사e도 나왔어요. 역사e는 영상은 아직 지식e만큼이 못되는 것 같은데 책의 내용은 좋더라구요. ^^

프레이야 2013-06-08 10:20   좋아요 0 | URL
역사e도 나왔어요?!!! 책을 검색해 봐야겠어요.
바람돌이님이 돌아오니 참 좋으네요^^

Mephistopheles 2013-06-07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는 영화로 나왔습니다. 영화 제목이 사람이름과 똑같습니다.
자페아 생각을 하니 오늘 본 유튜브 영상이 생각났습니다.

전 이 영상 하나가 선진국의 기준이 무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http://youtu.be/SNGv2z1BacI

프레이야 2013-06-08 10:47   좋아요 0 | URL
네, 템플 그랜딘, 제목만 들었고 보진 않았어요.
찾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알려주신 영상은 검색해서 볼게요^^ 고맙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정책과 처우, 인식이 선진국의 기준이 된다는 말은 유효한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3-06-0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프레이야 님, 새 글을 올리셨네요. 반갑네요.

심형래 영화감독에 대해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안타까워요. 언젠가는 재기하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는 걸로 화제가 되고 있는 백 모 가수처럼 말이죠.
실패가 그냥 실패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출발이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요...

이 책 시리즈, 표지는 많이 봤는데 책을 읽진 못했어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


프레이야 2013-06-08 21:41   좋아요 0 | URL
네, 페크님 동감이에요. 실패를 기회로 딛고 일어나는 사람들, 위대하지요.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도사린 위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어찌 생각하면
무난하게 이어가는 삶도 나쁘지 않구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마녀고양이 2013-06-0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한다....

언니, 요즘 저는 제 가치가 뭘까 생각해보는 중이예요.
가치를 생각하면 이제까지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치를 설정하느라
진정한 제 가치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싶어요.

아마, 지혜가 아닐까 싶어요, 지혜를 찾아서 계속 노력하기... 이게 제 가치인거 같아요. 페이퍼에 다시 써야징~
쪼옥, 보고 싶어요.

프레이야 2013-06-08 21:5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로 돌아온 거에요?!!! ^^ 달여우도 귀여웠는데 역시 마고님이 더 좋은가? ㅎㅎ
다 좋아요^^ 어쨌든 다르지 않으니까.
사회적 틀에서 설정해 주는 '가치'. 이 책 보며 그런 것에 대한 생각도 들더군요.
예를 들어 이 책에 FC바르셀로나가 구현하려는 가치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같은 사람은 스포츠를 혐오했다지요. 경쟁심을 부추긴다구요.
누구에게도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조장해 주는 가치있는 스포츠가 누구에게는 그렇게도 생각될 수 있는 것.
생각과 관점의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점에서 마고님이 말씀하신 '지혜'. 지혜 찾기. 좋아요좋아^^ 사랑스러운 마고님.

수퍼남매맘 2013-06-09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이 자주 눈에 보이네요.
저도 가끔 지식 e에서 만든 동영상을 보여주곤 하는데 책으로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프랑스 교육부 장관의 말은 더 곱씹어 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13-06-09 16:23   좋아요 0 | URL
수퍼남매맘님, 동영상은 일선에서 자료로도 이용하기 좋을 것 같아요. ^^
조금 다르게 혹은 확장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면 더 좋은 거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휴일 편히 쉬고 계신거죠?^^

2013-06-09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0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3-06-17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권까지 사고 8권은 아직 구입전이네요.
역사e도 같이 구입해야 될 목록에 넣어요.

2013-06-18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8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3-06-24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뿌리깊은나무, 1987년 판인가 기념으로 두어 권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책장 어딘가에 찾으면 있을 것 같아요.
그때 마광수 교수가 시간 강사 때 기고한 글이 있었는데 제목이 아마 '대학 교수 한 번 되어 보기'였던가 그랬던 것 같아요.
대학 보따리 장수의 비애에 대해 현실감 있게 써내려 갔던 것 같은데, 세월이, 세월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흘렀네요ㅠ

순오기 2013-06-25 03:56   좋아요 0 | URL
1980년 2.3.4월 뿌리깊은 나무 갖고 있어요.^^
그 다음에 나온 81년 9월 '마당' 창간호부터 10, 11, 12월꺼지 4권 갖고 있는데
마당엔 박경리 선생님 '토지' 4부가 연재되었지요.^^

프레이야 2013-06-25 10:49   좋아요 0 | URL
우와, 오기 언니 대단하네요.
다음에 작은도서관 가게되면 꼭 한 번 보고 싶어요.
'마당'까지요!!!

프레이야 2013-06-25 10:52   좋아요 0 | URL
팜므언니, 댓글에 덧글은 아래에 따로 있으니 놓치지 마시어요^^

프레이야 2013-06-24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님, 뿌리깊은나무를 갖고 계시군요. 87년이면 전 세상물정 모르던 사학년이었네요. 지금 느끼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ᆢ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교수는 평가절하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위선과 권위가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죠. 그래도 양식은 구비해야 할 듯. 그의 소위, 야한 소설을 녹음한 적이 있는데 솔직한 내면의 소리가 나쁘지 않게 읽혔어요. 그분들이 이런 연애소설 듣기를 좋아하신대요. 사람은 다 비슷한가봐요.^^
전 지금 집 와서 낮에 남겨두고간 고르곤졸라 피자랑 와인 한잔 해요. 이거 한 판을 제가 다 먹네요. ㅋ 언니랑 함께하면 더 좋겠네요.^^

순오기 2013-06-25 03:57   좋아요 0 | URL
난 엊저녁 친구가 밥사주고 술사줘서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고 돌아와 잠들었다가 깨었어요.ㅋㅋ
뿌리깊은 나무는 위 댓글 참조~^^
새글도 6월이 가기 전에 올려주세요~~~~~~~~~~~~~~~~

프레이야 2013-06-25 11:10   좋아요 0 | URL
언니, 6.25, 제 달력에 언니 생일이라고 크게 써놓고는 어젯밤 불어수업 갔다와서 너무 피곤해
누워 뻗어서는 그만 깜박 ㅎㅎㅎ 요즘 제 체력이 이상할 정도로 메롱이에요. 맥을 못 추겠어요.
오늘은 큰딸이랑 세븐스프링스 가서 데이트 하려구요^^

순오기 2013-06-26 01:41   좋아요 0 | URL
체력이 딸릴 때는 역시 잘 먹어주고 휴식을 취하는 게 최고여요.
요즘 무리한 일은 없는지 점검도 하시고...^^

2013-06-26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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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내내 이명에 시달렸다. 혀가 마르고 까끌하여 모든 음식이 쓰게 느껴졌다. 일어서면 아뜩 어지럽고 전반적으로 기운이 없어 이것저것 검색하다 음허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선무당이긴 해도 내가 나를 아는 측면도 있으니. 보신도 좀 해야겠지만 일단 감정의 평온을 찾는 일이 우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은 지 좀 되었지만 다시 이 책을 펼쳤다. 나로선 해보지 못한 자연과 어울려사는 삶을 간접적으로 느껴보며 들어보지 못한 개똥지빠귀의 노래소리와 비버의 개구쟁이 몸짓 같은 걸 상상해보았다. 소박하고 정결한 메리 올리버의 문장을 따라가며 잔잔한 호수가에 앉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 앞에서 5년 전에 읽었던 김연수의 소설집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떠올린다. "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the world offers itself to your imagination" 이미 유명한 인용으로 알려진 그녀의 시 '기러기Wild Geese'를 김연수는 서문에서 표제시로 인용하여 독자를 위로하고 있었다. 5년 전 그 소설을 끝까지 읽진 못했다. 내 안에서 끓던 모종의 감정이 그 당시로는 끝까지 흡입력을 방해했으나, 서문의 인용시만은 무한한 위로와 함께 가슴에 자리했고 눈물을 글썽이며 지인에게 메일로 소개한 적도 있다.  나만큼의 감흥이 없었던지 반응은 얻지 못했지만 나로선 상당히 호감가는 시였기에, 메리 올리버라는 시인의 이름은 몰랐어도 그렇게 인연이 닿아있었던 것 같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일상 속에서 여전히 시를 쓰고 있는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을 만난 건 행운이다. 그녀의 차분하고 정제된 글과 마주하며 내가 마치 고요한 우주 속에 조용한 사물로 자리하고 있는 듯한, 조용하면서도 격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에머슨의 정신과 호손, 워즈워드에 헌사한 듯한 에세이로는 메리 올리버의 정신적 본류와 문학관을 볼 수 있고, M과의 동반자적 생활에서 건져올린 소소한 일상의 느낌이나 자연과 동물에 대한 거리낌 없는 시선을 드러낸 글에서는 순수하고도 강인한 일면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선 여러 편의 시를 함께 실어 우리에겐 덜 소개되었던 그녀의 시를 맛볼 수 있다. 자연시인, 생태시인으로 불리는 메리 올리버의 시에서는 거미 한 마리의 몸짓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시선을 통해 시인의 우주관이 담겨있다.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메리 올리버는 이 아름다운 우주에, 세상에 내가 무엇을 선물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내가 받을 것이 아니라 줄 것을 생각한다. 그녀는 아침산책을 하며 '감사'의 말들, 키스의 말들을 떠올리고 떡갈나무처럼 단순하고 헌신적이고 싶어 한다. 생쥐 귀 뒤의 털을 만지며 너무도 부드러워서 손가락이 황홀해지는 사람도 그녀다. '소중히 여기고, 걱정하고, 동정하고, 위안을 얻을 지각력 있는 생물체'가 하나씩 자신을 떠나가며 느끼는 상실감 앞에서는 조만간 구름으로 혹은 먼지로 무심하고 평온하게 흘러갈 그 생물체들을 상상하며 전능한 신의 창조성을 실감한다. "전능의 신들은 떠도는 먼지로 얼마나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을 창조했는가!(124p)"

 

 

글쓰기에 대한 신념을 담은 좋은 글귀들이 눈에 띈 '가자미' 연작시 외에도 표제산문 '완벽한 날들'에서는 우리에게 완벽한 날은 어떻게 창조될 수 있는가, 어떻게 표현되고 상상되며 이야기될 수 있는가를 들려준다. 그것은 글쓰기에서의 완벽한 날들과 다르지 않다. 가장 마음에 닿았던 부분이다.

 

 

호손의 '일곱 박공의 집'에 대한 에세이에서 메리는 "결국 세상엔 몇 가지 이야기들밖에 없다. 사악함에 대한 이야기, 선에 대한 이야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시간에 대한 이야기. 마법은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다.(101p)" 고 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끈기와 예리함을 지닌 독자들을 위해 아주 느린 템포의 공감 속에서 글을 읽게 한 호손의 이야기 방식, 산문성을 호평했다.

 

 

지금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 나의 날씨는 어떤가?

바람이 부는가? 어떤 바람이 찾아오는가? 어디로 부터 어떻게 불어오는가?

 

 

최소량의 날씨를 선호한 메리 올리버는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61p)" 라고 하면서도, 자신은 그런 장엄하거나 거대한 날씨에서 나온 이야기보다 호수의 표면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평온함을 느낀 어느 여름 아침의 발작적인 행복감에 대해 들려준다. 특별한 것 없는 아주 평범한 순간, 폭풍우나 악천후 속에서 가능한 정신과 우주의 교감과는 차원이 다른 축복에 대해 나직히 들려준다. 

 

 

그런 교감은 푸른 하늘의 축복 아래 햇살 가득한 세상이 평온을 구가하고 바람의 신이 잠들었을 때, 그 조용한 순간에 몰입하는 사람에게 일어나기 쉽지 않을까 한다. 그런 때 우리는 모든 겉모습과 부분성의 베일을 들추고 그 속에 숨겨진 걸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태양의 장미꽃잎들 속에 서서 바람이 벌의 날개 아래서 졸면서 내는 소리보다 크지 않게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가장 강력한 가정에(심지어 확실성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평온한 날씨도 엄연히 날씨이며 보도할 가치가 있다. (63p)

 

 

 

 

또 한 가지 마음에 와닿은 건 습관에 대한 글인데, 메리 올리버는 숲속의 동식물이 생명유지를 위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습관처럼 하는 삶의 양식을 찬양한다. 좋거나 나쁘거나 습관이 되어버린 것들을 답답한 것으로 치부하곤 했던 생각을 깬다.  균형 잡힌 삶을 사는 데는 습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우리 삶의 양식은 우리를 보여준다. 우리의 습관은 우리를 평가한다. 우리가 습관과 벌이는 싸움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꿈들을 말해준다(29p)"고 쓴다. 예리하다. 헌신과 유머, 둘 다에 진지한 여우가 되고 싶다는 메리 올리버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 시인인지.

 

 

화려할 수도, 소박할 수도 있지만 정확하고 엄격하고 친숙한 의례가, 습관이 없다면

신앙의 실재에(하다못해 도덕적인 삶에라도) 어떻게 도달할 수 있겠는가(애매하게 말고)?   - 29p

 

 

 

* 생각과 감정의 균형이 좋은 메리 올리버의 산문을 읽고, '습관'에서 문득 생각나는, 영화 '철의 여인'에서 정계에서 은퇴한 노년의 마거릿이 의사에게 한 말.  "사람들은 생각을 묻기보다 기분을 묻지. 왜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봐달라구. 나? 나는 생각을 조심하지.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격이 되고, 성격은 운명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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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4-15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감탄이 절로 나오는 군요 ^^
너무 멋있어요 ~ 글귀도 , 책도 무척 아름다울 것 같구요..
저도 기분을 묻기 보다는 생각을 궁금해 하고 싶어요
그 사람의 생각이 말이 되고 행동이 되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운명이 되기까지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메리올리버는 정말 멋진 사람이군요 ^^
더불어 프레이야님도 ~ ^^
내면에서 잔잔하게 파문이 이는 듯 .. 하옵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

프레이야 2013-04-17 09:24   좋아요 0 | URL
네, 드림님, 이 책이 그랬어요. 내면에서 잔잔하게 이는 파문^^
기분에 좌우되는 일이 많은데, 기분도 생각도 경계해야겠다는 느낌도 드네요.
여긴 오늘 잔뜩 흐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크아이즈 2013-04-1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님, 몸도 안 좋으면서 그단새 이리 좋은 리뷰를 올릴 생각을 했을까요?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우리의 알라디너 프레님^^*

좋은 산문 한 권은 좋은 소설 백 권보다 더 깊은 공감을 유도한다는 걸 새삼 느끼는 나날이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날들도 꼭 읽어 볼게요.
<습관이 우리를 평가한다> 이 잠언 한 마디로 메리 올리버 승이네요.

프레이야 2013-04-17 09:28   좋아요 0 | URL
팜므님, 과찬이어요^^ 저 힘 내라고 그러시는 거죠^^ 으샤으샤!!
시인들은 산문도 참 잘 쓰는 것 같아요. 글쓰기란 게 경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는데... 좀 생뚱맞은 생각도 들었답니다.^^

페크pek0501 2013-04-15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직막 문단에 쓰신, 대처의 명언을 신문에서 보고 노트에 적어 두었답니다.
제가 느낀 적이 있는 경험을 글로 잘 표현한 것 같아 감탄했지요.
대처가 아버지로부터 들은 말이라고 합니다.

나의 날씨는 어떤가... 생각과 감정의 균형... 세상에 내가 무엇을 선물할 것인가...
이런 소중한 물음들을 님 덕분에 안고 갑니다. ^^

프레이야 2013-04-17 09:27   좋아요 0 | URL
대처의 명언, 페크님은 노트에 적어두시기까지 했군요.^^
영화에서도 그래요,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다고..
오늘 이곳의 날씨는 잔뜩 흐리고 좀 쌀쌀한데
우리 마음의 날씨는 맑으면 좋겠어요. 마음이란 게 떠다니는 구름 같은 것이긴 하겠지만요.

잘잘라 2013-04-1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장바구니에 담을 수 밖에 없는 이런 리뷰.. 완전 좋아요^^ 「프님께서 이명에 시달리신 덕분에?? 읽게 된 책」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같아서 민망하면서도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3-04-17 09:30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이명은 좀 잠잠해졌는데, 이놈이 언제 또 불쑥 나타날지.. 고요한 호수이어야하는데^^
이 책 참 좋아요. 천천히 곱씹어 읽어보면 문장 하나 버릴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의 산문이라 더 그럴까요?^^

2013-04-17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8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3-04-18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콕 찍힙니다~ 요즘의 내게 딱 맞는 말이네요.

경주와 포항의 풍경화 세실님 서재에서 보면서 부러웠어요.
그날 경주나 갈 것을... 요즘 인간관계로 내 발등을 찍고 있거든요.ㅜ

프레이야 2013-04-18 19:19   좋아요 0 | URL
오기 언니, 왜 그래요? 그날 좀 힘든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두루 많은 일을 하다보니 일 자체보다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도 받게 되실 수 있을 거에요.
그치만 언니는 그런 것들도 잘 해결하고 나아가실 거라고 믿어요. 에너지 팍팍~~~

후애(厚愛) 2013-04-2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는 날씨가 엉망이에요.ㅠㅠ
부산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늘 건강하시고 감기조심하세요.^^
주말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3-04-30 08:36   좋아요 0 | URL
이곳도 오락가락하는 날씨에요.
어젠 봄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개이네요.
서서히 몸도 회복 기운으로 가고 있어요.^^
늘 좋은날 되시기 바래요.

2013-05-02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3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4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5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4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5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3-05-0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우주에, 세상에 무엇을 선물할까라니 참으로 멋진 사람이네요^^
이 글을 스마트폰으로 읽고는 댓글 다는걸 잊었어요.
이제 이명은 괜찮아지신거죠?

프레이야 2013-05-07 11:18   좋아요 0 | URL
세실님, 메리 올리버, 이런 사람의 곁에 있으면 늘 잔잔한 호수 같은 심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명은 지병 같은 건데, 좀 많이 먹고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애쓰면 좀 나아요.
요즘은 괜춘 ㅎㅎ
컨디션 조절 잘 하자구요^^

2013-05-07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7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7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7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의 기쁨 3 - 인정받지 못한 기쁨들의 밤 인간의 기쁨 3
당나귀 아빠 외 지음 / 인간의기쁨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문단의 말석에서 에세이를 쓴 지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주 팜므느와르님과도 얘기한 바 있지만, 처음엔 뭣도 모르고 써댔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말하고 싶었고 털어놓고 싶었다. 이해를 바라는 욕구가 발동했을 것이다. 뭘 알기 시작하고부터는 소재나 내용과 형식을 달리하며 몇 가지 시도도 해보고 문학관 탐방이나 필름미셀러니 등영역을 넓혀보려고 했다. 그런 글에도 자기고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사실 시나 소설도 그런 점에선 다르지 않다. 한계를 느꼈다고나 할까. 어느 즈음인가부터 다른 장르를 꿈꾸며 창작문예수필에서는 손을 놓고 있는데 그런 마음의 기저에는 에세이란 가장 어려운 글이 아닌가, 내가 과연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두사람은 그 부분에서 끄덕였다. 그럴 때 '어렵다'는 말은 에세이가 자기고백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로 한다. 성철스님의 말씀 '불기자심'처럼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을 속이기란 어려운 법,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진정 정직한 것이다. 서양의 에세이 개념이 아니라 미셀러니 개념의 에세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소위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건 사람보다 관계와 화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냥 우리식 수필이라고 부르자. 에세이는 서양식 중수필이 더 빨리 떠오르니)  어릴 때부터도 다소 불행한 관계맺기의 늪에서 허덕이는 나는 내가 그런 쪽에선 늘 약자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일에 요령부득이고 타협할 줄 모르고 구미에 맞게 살랑댈 줄도 모르는 이기적인 성정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들었던 배신감이라든가 혼자 삼킨 아픔, 남몰래 가진 크고 작은 죄의식 같은 것도 내가 그저 감당해야하는 몫이었다. 수필을 쓰면서 그런 관계와 화해를 시도하고 모지라진 나와도 화해하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그렇다고 모두 털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 자기검열이 발동되는 건 당연하고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는 많다. 이제는 삭히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쯤 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자기함몰의 우려가 되는 글보다 바깥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점. 물론 이곳에 글을 쓰면서도 오래도록 행복하다. 글 쓰는 일은 숨을 쉬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나에겐.

 

우리는 늘 어떤 고개를 넘어야한다.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없다. 행복 너머의 불행을 넘겨보아야 한다. 불청객이 아니라 당연한 다음 손님이다. 무시로 회의가 들고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마저도 손님이다. 거대한 의미의 행, 불행만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의 연속선 상에 있는 행, 불행. 입김을 달리하는 바람이 시나브로 불고 계절마다 꽃이 피고 뭉게구름 먹구름 내려앉았다가 해도 뜨고 달도 뜨는 그 고개를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넘을 줄 아는 지혜가 나이 들어가며 터득해야하는 덤인 것 같다. 곧이 곧대로가 능사는 아니다. 맑기만 해서는 깊이가 없다. 그늘이 있어야 명창의 소리가 깊어지듯, 그늘을 잘 다스려야 잘 늙어간다고 말할 수 있듯. '나'를 포함한 대상을 비틀어 유머의 소재로 섬길 수 있는 여유, 그걸 해학이라고 부를까. 그런 마음의 여유와 연륜이 필요하다. 단지 쿨한 척하는 걸 말하진 않는다. 쿨함은 자신의 컴플렉스를 감추려는 자가 흔히 쓰는 방식이다. 나로선 제대로 쿨하지도 못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포함한 내 레이더에 든 대상을 해학적으로 비틀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코 가벼우라는 말이 아니다. 내 문체상 가볍게 쓰지도 못한다. 비장(?)하게 한 번 써보자며 재작년 말부터 문제작가특집 코너에 싣고 싶다는 몇 번의 제의도 굳이 떨치고 있다. 세상의 허명을 좋아하는 성정도 아니고 경쟁이 체질에 맞지도 않고 부끄럽기도 해서다. 이래저래 나는 지금 또 하나의 고개를 넘으려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고개는 살짝만 들고 오금에 힘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하기야 내려갈 때에 다리엔 더 힘이 들어간다. 숨이 좀 가쁠 수도 있지만 상쾌한 콧바람을 내뿜는 시간이 되길.

 

이런 즈음에 뜻밖에 내게 안겨온 <인간의 기쁨 3>은 정말 기쁨이었다.

 

'평범한 진리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의 두근두근 아릿아릿 에세이 무크'를 내세우며 벌써 3집이 나온 <인간의 기쁨>의 이번 부제는 '인정받지 못한 기쁨들의 밤'이다. '기쁨'이라는 낱말만 봐도 기쁜데 인정받지 못한 기쁨이라니 호기심 이는 부제다. 세상에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있었던, 소문 나진 않았지만 쟁쟁한 열서너 명의 글쟁이가 일인 출판사 '인간의기쁨'에서 나온 <인간의 기쁨>에 자리를 바꿔가며 글을 실었다. 3집, 여섯 명의 글 한 편 한 편이 모두 개성있고 생각거리와 재미를 동시에 안겨준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 못지않게 소박한 사진도 보기에 좋다.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과 '생활불량자' 등 우리 주변의 소소하지만 그냥 넘겨선 안 될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에세이가 꼭 문예수필이어야할 필요는 없다는 걸 십년 전에는 몰랐던 아둔함이야 두말 해야 뭣할까.

 

특히 좋았던 글은 정용선 님의 만남, '프리모 레비의 이상한 미덕'이다. 나도 감동적으로 읽었던 책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를 돌아보며 그가 극한의 시공간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성찰과 함께 푼다. 차분하고 진중하게 울림이 있는 글이다. 수필은 자기고백과 더불어 자기성찰이 있어야 울림을 준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쁨>은 여러가지 면에서 신선하다. 수필 계간지가 많이 있지만 이런 상큼한 글들을 실은 에세이 무크는 처음 만났다. '시장논리의 압박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으니' 오히려 서로 말할 권리를 회복할 수 있게 되도록 만드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동의한다. 생각한대로 산다는 것은 '말한 대로 산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점에도.

 

<인간의 기쁨>은 오스트리아 화가이자 건축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의 판화 연작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여섯 가지는 '꿈꿀 권리', '창조할 권리', '두 번째 피부', '창문을 가질 권리', '자연과의 평화협정', '인류애'라고 한다. 믿음이 가고 행보가 기대 되는 에세이 무크다. 한 가지 바람이라면, '영처 클래식' 코너에서 우리나라 수필가의 작품도 다루면 어떨까 한다. 이번 호에 실린 애드가 앨런 포우의 '가구의 철학 The Philosophy of Furniture'은 처음 읽었다. 미국식 천민물질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포우의 에세이가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나로서도 좋은 발견이다.

 

 

서문에서 김현 님이 인용한 다음 글은 게으른 몽상가의 별에서 떠나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뼈가 되는 말이다.

그러나 백 퍼센트 인정하고 싶지 않기도 하니, 각자가 사는 별의 토양은 어쩌지 못하나 보다. ^^

 

현재는 약속도 대기실도 아니며 서문도 큰 희망의 발판도 아니다.

이른바 훈련기간은 돌이킬 수 없는 실제의 삶이다. 서문은 본문, 희망은 환상이다.

임의적인 것, 잠정적인 것, 덧없는 것, 변덕스러운 것이 삶의 참 내용이다.

지금껏 성취되지 않은 것은 영원히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이 사실과 화해해야 한다.

조용히, 두려워하지 말고, 또한 가능하다면 절망하지 말고.

                                                                            - 스타니스와프 렘, <우주비행사 피륵스>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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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2-25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및 덧글을 달지 않을 수 없는 글입니다. 일찍이 프레이야님 글 내공이 상당한 줄 알았지만 이런 격조 있는 글은 함부로 공개하면 안 되는데. 너무 아까워서요.^^*
여독으로 힘들고 피곤했을 텐데 언제 이런 글 갈무리하셨을까요?
누가 에세이류가 쓰기 쉽다고 헛소리 한다면 마구마구 눈을 흘겨주고 싶습니다. 자신에 대해 '까질대로 까져야' 쓸 수 있는 고백적 성찰적 글을 어떻게 함부로 쓸 수 있을까요. 에세이 한 편 쓰고 나면 온몸에 진이 빠지는 느낌 프레님은 잘 아실거예요. 합법적(!) 구라 치는 소설보다, 비틀기나 낯설기 기법이 통하는 시보다 자기 내면에 정직해야 하는 에세이는 언제나 문학의 정수처럼 제게 다가옵니다.^^* 곱씹으면서 읽게 되는 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2-26 15:17   좋아요 0 | URL
주말에 읽고 그냥 술술 쓴 거에요^^ (과찬이에요, 팜므님^^)
수필 장르에 애정을 갖고 한 길을 걷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에 비하면 고민만 하는 부류지요.
김광균이 그랬던가요. 수필을 써보지 않고는 글을 썼다고 하지 말라던가요.
그래서 그런가봐요.

2013-02-25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2-26 15:20   좋아요 0 | URL
일년에 3번 간행되는 무크인데 저도 처음 봤어요.
상투적이지 않고 신선했어요.
늘 좋은 말씀, 행복을 주시는 말씀 고맙습니다.
님도 좋은하루 내내 이어가세요^^

순오기 2013-02-26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주에서도 말했듯이 에세이의 어려움...제대로 한 편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무게는 안다고 말했던 게 부끄럽군요.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어 알라딘서재와 소중한 내 이웃들을 사랑합니다!^^

프레이야 2013-02-26 15:21   좋아요 0 | URL
오기 언니는 충분히 자격이 되지요.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시는 분인데요.
그냥 술술 적어보시기 바래요^^

드림모노로그 2013-02-26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대한 의미의 행, 불행만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의 연속선 상에 있는 행, 불행. 입김을 달리하는 바람이 시나브로 불고 계절마다 꽃이 피고 뭉게구름 먹구름 내려앉았다가 해도 뜨고 달도 뜨는 그 고개를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넘을 줄 아는 지혜가 나이 들어가며 터득해야하는 덤인 것 같다.

프레이야님 글에서 빛이 나요 ^^ 가슴으로 쓰는 글이 무엇인지 깊은 울림을 전해주시네요
멋진 글 입니다 ^^

프레이야 2013-02-26 15:22   좋아요 0 | URL
드림님, 이곳은 오늘 잔뜩 흐려요.
나갈 일이 있었는데 그냥 주저앉았어요. 조용히 읽던 책을 더 읽어야겠어요.
매화 분재에 물을 줘야하는데 그걸 깜박 잊었네요. 돌볼 줄 모르는 저는 이래요 ㅎㅎ
오후 시간 즐거이 보내시길요^^

수양 2013-02-26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저도 정말 공감해요. 가장 어렵지만 또 가장 깊은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이 수필인 거 같아요. 결국 인간은 최종적으로 수필을, 혹은 수필적인 것을 써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늘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말, 가슴에 새기고 갑니다.

프레이야 2013-02-27 09:38   좋아요 0 | URL
수양님의 '생명연습'이요. 전 그 글이 너무 좋더라구요.
수필적인 글, 수필적인 삶을 생각해보게 되어요.
그늘을 잘 다스려야한다는 말은 이정록시인의 어머니 말씀을 빌어쓴 시에 자주 나와요.
나의 그늘도 잘 돌보고 다스려야 하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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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수많은 독서에세이가 주는 기쁨은 조금, 자괴감(까지는 아니어도 아무튼)은 더 많이,일 때가 있다보니 언젠가부터는 독서에세이에 손이 가지 않았다. 저자가 읽었다는 도서를 나도 읽었을 땐 남다른 느낌이나 동감이나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생소한 도서일 경우엔 낯선 나라의 이국어로 들릴 확률이 높다. 안 읽은 책들 중 끌리는 책을 체크해 뒀다가 다음에 읽을 거리들로 곳간에 쌓아두는 것도 어느 정도다. 밀리기만 하고 대체 사놓고 재여놓은 것들은 언제 다 읽을 거냐구, 이렇게 머리를 쥐어 박는 거다.

 

나는 이다혜 기자의 이름도 처음 들었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씨네21을 읽어보는 일은 거의 아주아주도 잘 없다보니. 그런데 이 여자분 대단히 유명한 글쟁이다. 아니,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도 같고. 아무튼 내 기억엔 첫만남이고 첫사랑이 될 듯하다. 젊고 재기발랄하고 독서의 양과 질도 이렇게나 통통 튀다니.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만 해도 동서남북 버라이어티 쇼 이상이다. 만화에서부터 스릴러, 추리소설에서 고전소설, 자기계발서에서부터 인문사회 과학, 우리나라 도서에서 외국 도서까지 두루 손닿지 않은 데가 없어보인다. 다행히, 첫 책은 임범의 '내가 만난 술꾼'이다. 영화 '북촌방향'에서 자주 등장한 술집 '소설' 이야기도 나와 반갑다.

 

눈길을 더 끄는 건, 짧고 경쾌하고 명쾌한 글쓰기 방식인데, 자신만의 톡톡 튀는 독법에서 비롯한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나 엉뚱하고 색다른 소리를 초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의미심장하게 할 수 있다니. 연애의 구질구질함에서부터 에로틱 환상에 너털웃음 웃는 모습까지, 가볍다가도 진중하고 쿨한 척하다가도 마음 약하고 따뜻하다. 게다가 자신의 경험과 체험,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느낌들을 절묘하게 환기해 어느 책에나 끌어붙인다. 스스로 말했듯, '그 책을 읽던 시기의 세상살이에 대한 내 생각이나 추억을 엮어' 썼다.  독서가 생활이고 생활이 독서인 정말 생활형 독서가라 부르고 싶어진다. 유명 작가들의 뒷이야기나 어느 작품의 배경 등 재미있는 정보도 쏠쏠하다.

 

 

 

거짓이 사회의 윤활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좋은 윤활유도 엔진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그 사회의 엔진은 바로 정직과 솔직이다. (p160)

 

 

 

위의 글은 위르겐 슈미더의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를 이야기하며 저자가 인용한 글귀다. 물론 나는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요즘 대세는 재력도 권력도 아니라 바로 '매력'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매력이 없으면 꽝이다. 사람도 책도 매력이 있어야 뭐 그다음 일이 된다. <책 읽기 좋은 날>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렇게 전혀 읽어보지 못한 책에서조차도 흥미로운 눈길이 가게 하는 점이다. 지루하지 않고 호기심 폴폴 이는 눈길로 끌어들이는 문장 덕분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읽고 싶어져서 붙여둔 포스트 잇이 주렁주렁일 가능성이 높다. 가령 이런 책 <작가가 작가에게>...

 

 

제임스 스콧 벨이 쓴 <작가가 작가에게>는 소설을 쓰는 77가지 전략을 소개한다. 과연 이 책이 하는 말이 진짜일까?

도움이 될까?  이 책에는 구체적인 조언들이 가득하고 전략과 전술이 빼곡하다. 한국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에이전트

관련 지시사항도 있지만 소설에 절대 쓰지 말아야 할 것들로 날씨, 꿈, 행복한 사람들을 제시하고, 등장인물을 생각에

잠기게 하지 말라는 조언은 너무 적확해서 소름이 돋는다.   - p 221

 

 

 

 

그나저나 책 읽기 좋은 날은 일년 365일인데 뭐하냐. 책을 읽어 더 잘 산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책이 있어 행복하다.

잊혀도 좋은 이름 없듯이, "잊혀도 좋은 책은 없다. 부디 이 책도 그러하면 좋겠다"고 말한 저자가 솔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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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11-28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고 경쾌하고 명쾌한 글쓰기와 톡톡 튀는 독법이 궁금하네요.
관심도서로 찜 해둬야겠어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12-11-30 10:04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우리들처럼 리뷰 쓰는 일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은 읽어볼 만한 책이에요.
다른 느낌의 리뷰를 맛볼 수 있어요. 정석에서 벗어난 경쾌한 느낌이요.
대단한 독서량과 갈래도 그렇고... 전 몇 권 빼고는 모두 안 읽어본 책이었어요.
체크하다가 나중엔 그냥 포기했지요.ㅎㅎ

다락방 2012-11-28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저도 이 책을 읽었거든요. 저는 프레이야님처럼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건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이 책이 좋았어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면 뭐랄까, 어려운 책 잔뜩에다가 전형적인 서평의 형식대로 써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다혜는 그렇게 쓰질 않고 책과 전혀 관련 없는 얘기를 쏟아내기도 하잖아요. 그런면에서 제게 일종의 자신감(?)같은게 생기더라구요. 저는 음, '리뷰'를 못쓰겠거든요. 그게 제게는 일종의 컴플렉스인데, 이 책을 읽으니 꼭 굳이 '리뷰'를 할 필요가 있진 않겠구나, 싶더라구요. 그냥 지금처럼 책 한 권을 읽고 이리 튀고 저리 튀고 하는 글들을 써도 되겠어,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었어요, 제겐.

프레이야 2012-11-30 10:0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제말이 딱 그거에요.
사실 이 책 읽으며 떠오른 몇 분 중 한 명(제일 먼저) 다락방님이었어요.
비슷했거든요. 자신감(^^) 충분히 가지셔도 되구요. 계속 락방님의 글을 좋아할 거에요. 히히~
전 좀 배워야할, 벤치마킹이라도 해야할 독법과 문법이었구요!!!

야클 2012-11-2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이 서재에 자주 등장하네요. 슬슬 나도 사볼까 하는 생각이....

프레이야 2012-11-30 10:07   좋아요 0 | URL
야클님도 재미있어할 책 같아요.
근데 이미 야클님은 이런 식의 글읽기와 글쓰기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라로 2012-11-2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까지 그러시니 나도 사볼까 하는 생각이....

프레이야 2012-11-30 10:12   좋아요 0 | URL
야클님 따라쟁이인거에요??응응? ㅎㅎㅎ
나로선 너무 많은 새로운 책을 알게 되는 책이라 좋아요.
예를 들어 석영중 지음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밀란 쿤데라의 '만남', 이외도 많아요.
그리고 난 만화 잘 안 보지만 나비님은 좋아하시는 일본 만화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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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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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삶과 글쓰기는 아주 간단할 때가 있다. 어떤 꿈 하나가 어떤 기억 하나를 되돌리면,

그다음에는 모든 것이 변하고 마는 것이다. (p157)

 

 

개인의 역사는 그가 속한 사회와 국가의 역사와 밀접하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이니 공허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아빠가 삼십 년 전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작은 그러나 작다고도 결코 말할 수도 없는 불이익을 당했다는 걸 얼마전에야 알았다. 아빠는 80년대 초 동네에서 제법 잘나가는 전파사를 하고 있었다. 워낙 성실하셨고 특별한 물건들(오디오, 텔레비전을 비롯해 각종 전자제품)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설치해 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었다. 당시 우리 동네는 전파가 잘 잡히는 곳이 아니었다. 동네를 감싸고 있던 산이 그 장벽이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일본 방송이 전파를 타고 들어오게 해주면 텔레비전이 더더 잘 팔리는 것이었으니 아빠는 전파를 끌어오는 외계인 노릇을 자처했다. 전문기사를 데리고 산을 뒤져 전파를 잡고 안테나와 유선을 설치해 일본방송 전파를 끌어들였다. 장사는 불티나게 되었다. 당시 내 기억으로도 아빠는 밤 2시가 되어야 가게 문을 닫았고 아침 7시면 벌써 가게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하셨다. 나는 물양동이에 물을 받아다 몇 번 날라 드리기도 하고 가게 안 먼지를 털기도 했는데 때로는 귀찮아 짜증이 나기도 했다.

 

5.18 광주혁명이 일어났다. 언론이 통제되었지만 일본전파를 타고 들어오는 외신뉴스가 문제가 되었다. 그러니 국가에서 일본방송을 못 보게 전면조치를 내렸다. (그 이전에는 일본방송으로 프로레슬링 시합도 보고 쇼프로도 보고 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아빠는 일본어를 할 줄 아셨고 당시 연배가 비슷한 어른들은 거의 그랬다.)  그후 아무래도 매출이 줄었던 건 당연지사. 아빠가 당시 그런 금지조치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유선케이블의 원조가 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많은 희생자들에 비하면 아빠의 그것은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지만.

 

위화를 처음 만난 건 10년 전 <살아간다는 것>을 읽고서다. 여기 간단한 리뷰도 올린 적이 있는, 당시 꽤 인상적이었던 소설이었다. 그후 <허삼관 매혈기>로 위화를 두번째 만났는데 그것도 강렬했다. 이번엔 에세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이 책은 '지금까지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휘황찬란해 보이는 오늘의 결과에서 출발하여 어쩌면 오늘의 불안이 되고 있는지도 모를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의 삶을 흔들고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기억은 악몽같이 들러붙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특유의 냉소와 유머를 발견하고 어느 순간 그 두려움의 기억에서 깨어나는 눈은 그래서 더 밝다. 슬픔 가운데서도 웃음이 있고 기쁨 가운데서도 눈물이 있듯 저자가 살아온 유년의 기억과 학창시절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글을 쓰는 직업을 갖는 꿈을 이루기까지 중국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그는 풀뿌리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온 셈이다.

 

인민, 영수, 루쉰, 산채, 홀유를 비롯한 열 개의 단어로 말하는 모국의 정치, 경제, 문화를 비롯한 풀뿌리 사람들의 삶과 욕망과 꿈의 불균형, 국민성에 대해 재미있고 놀라운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다시 문화대혁명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오늘날의 중국을 얘기하면서 자꾸 문화대혁명 시기로 돌아가는 이유는 이 두 시대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형태는 이미 판이하지만 일부 정신적 내용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닮은꼴이다. 예컨대 우리는 全民운동 방식으로 문화대혁명을 진행한 데 이어 똑같이 전민운동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진행해 왔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민간 경제의 빠른 성장이다. 문화대혁명 초기에 한꺼번에 수많은 조반파 사령부가 생겨났던 것처럼 1980년대의 중국 사회에서는 돈을 별려는 광적인 열기가 혁명의 광기를 대신하면서 순식간에 무수한 민영기업이 생겨났다.   - p310

 

 

위화는 "저의 글쓰기는 근원이 매우 멀고 깊어 물길의 흐름도 아주 깁니다"라고 말하며 그 연원을 문화대혁명 시기의 대자보 쓰기에 둔다. 심각한 상황인데도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읽는 입장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는 희한하고도 슬픈 역사의 자락자락이 유머러스하게 서술된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대자보 쓰기와 오늘날 블로그 쓰기가 갖는 한 가지 공통점은 둘 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p115)"  초등학교 시절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 대자보를 쓰는 헤프닝은 코믹하게까지 읽힌다. 무정부주의 정신을 담는 '산채'나 그보다 한 수 위인 '홀유'를 키워드로 한 장도 흥미롭다.

 

글쟁이 위화의 후기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며 삶을 한 번 더 사는'(살게하는) 글쟁이들의 소임이 무엇인지, 새삼 의미있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과거, 오늘, 내일을 알기에도 유효하지만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장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새길 만한 내용으로도 좋다. 아무 장이나 마음에 오는 키워드부터 펼쳐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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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11-28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모옌의 홍등, 원제는 다름요,을 팟캐스트로 들었어요. 슬슬 대륙풍이 부는 건가요? ^^ 이 책이랑 이다혜 작가의 책도, 음, 일단은 다행히 주문에서 한 발 늦었어요. 묵히고 생각해봐야지. ㅎㅎ

댈러웨이 2012-11-28 21:25   좋아요 0 | URL
아, 붉은 수수밭요. 홍등이 아니라. 원제가 무슨 가족인데... --;

라로 2012-11-28 22:07   좋아요 0 | URL
홍꺄오량 가족인가??/특이한 이름이던 기억이,,ㅎㅎㅎ

프레이야 2012-11-30 10:14   좋아요 0 | URL
역시 나비님^^ 홍꺄오량 가족.
붉은 수수밭은 영화로 본 기억만 있어요.
댈님, 팟개스트로 영어로 들으신거죠? 당연히! (아닌가? 중국어?) 암튼 부러워라~~:)

댈러웨이 2012-11-30 10:50   좋아요 0 | URL
바보 프레이야님. --; 한국어로 들었는데요. --; 그런데 그건 영어 리스닝이 나빠서 그런 건 절대절대 아니에요. --; (뭔지 변명같다는...)

프레이야 2012-11-30 10:55   좋아요 0 | URL
아흐흑~ 난 바보야요ㅎㅎ
나도 팟캐스트 들어야지들어봐야지 하면서 미뤘는데
당장 들어봐야겠어요. 어떻게 해요? 그냥 팟캐스트 치면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