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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달팽이 > 갯우렁(엄태원)

갯우렁은 연체동물

백합조개 잡아먹을 때

껍질에 빨판으로 달라붙어 가만히 있다

 

마치 꼭 껴안고 있는 듯 보일 테지만

나중엔 백합조개의 볼록한 이마쯤에

드릴로 뚫어놓은 듯 정확한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 보게 된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몸짓에

집요한 추궁,

뜨거운 궁구가 있었던 것

갯우렁의 먹이사냥에는

가차없는 집중력이 숨어 있다

 

너를 향한 내 이 물컹한 그리움에도

어디엔가 숨겨진 송곳,

숨겨진 드릴이 있을 거다

 

내 속에 너무 깊이 꺼내볼 수 없는 그대여

내 슬픔의 빨판, 어딘가에

이 앙다문 견고함이 숨어 있음을 기억하라.

 

 

몇 년 전이던가

몰운대의 자갈마당에서

구멍뚫린 조개껍데기를 줍고서

한참을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칼로 자른 듯한 정확한 이 구멍은 무엇일까? 하고서..

 

삶의 진정성이 시에 있다면

그는 날카로운,

손을 스치기만 해도 핏방울 떨어지게 날카로운

시의 칼날을 가지고 있다.

혜경님의 덤으로 보내주신 선물에서

나는 새로운 사람 한 명을 만났다.

포장 박스에서 뚜벅 걸어나와

강렬한 인상으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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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1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21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4-2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155555

(숫자좀 보세요!)

달팽이 님이 갯우렁에 관한 시를 올리시다니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려..


2007-04-21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4-2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nci님, 와 이런 숫자를 캡쳐해 주셨네요. 호호 한번도 숫자를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이거 재밌네요. 오오오오오~~~
달팽이님 시 감상이 한 편의 시랍니다.^^
 

성북동 비둘기

                                                   김 광 섭

                

                성북동 산에 번지(番地)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廣場)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祝福)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採石場) 포성(砲聲)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九孔炭)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平和)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글샘님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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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04-1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성북동 하면 법정 스님이랑 길상사가 생각납니다. 간송 미술관 갈 때마다 들렀었는데...지금도 성북동 그 동네는 개발 제한 구역인지 옛(?) 모습 그대로랍니다.

향기로운 2007-04-1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어렸을때 라디오을 통해 들었던 시에요. 성북동 비둘기..하면 저는 지지직거리는 주파수가 잘 맞아지지 않은 라디오가 생각나요.

푸른신기루 2007-04-18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나네요ㅎㅎ 지금 읽어도 좋긴 하지만 그 땐 감수성도 더 풍부했고 현실적 걱정 등에 대한 외적인 압박도 적었고 무엇보다도 더 순수(순진?)했어서 그런지 참 많이 와닿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음.. "아~ 지나간 사춘기 시절이여~"로군요;;

프레이야 2007-04-1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작년 5월 간송미술관에 갔어요. 혜곡 최순우 옛집도 가봤구요.
성북동,하면 느껴지는 그 느낌이 참 좋더군요.

향기로운님/ 주파수 잘 맞지 않는 라디오, 향수를 불러주네요.^^

푸른신기루님/ 그래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순수한 시절의 시들이 오래 기억
되지요. ^^

프레이야 2007-04-1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이곳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모 유명한 공원에 가면 비둘기들이 많아요.
모여있을 그것들을 후~ 날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요샌
어떤지 모르겠어요. 비대해진 도시의 비둘기들이 그나마 설땅을 잃어가니
누구의 땅인지 모르겠지요.

짱꿀라 2007-04-1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땐가 어느 땐가는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성북동 비둘기를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곳 혜경님의 서재에서 오랜만에 시를 읽으니 반가운 마음이 앞서네요. 잘 읽고 갑니다.

푸른신기루 2007-04-1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갈게요~ㅎㅎ 이 페이퍼 담아가려고 카테고리도 새로 만들었어요~ㅋㅋ

프레이야 2007-04-1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옛친구를 만난 느낌 비슷하지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푸른신기루님, 넵, 고맙습니다.^^
 

 

고로쇠나무의 마지막 봄날


 

엄원태

 


 그 골짜기에서, 지난여름 태풍에 목이 부러진 고로쇠

를 보았다. 부러지며 찢겨 둥치에 매달린 채 쓰러진 나무

는, 머리채를 땅바닥에 퍼지른 채 엎어진 덩치 큰 여자

같았다. 안간힘을 다해 모진 비바람을 견뎌냈던 이파리

들은 창졸간에 누렇게 말라들며 제 어미의 몸에서 가녀

린 손목들을 놓아버렸다.


 겨울 가고, 다시 온 봄날은 그러나 그저 어쩔 수 없어

서, 부러진 둥치로도 살아남은 뿌리는 하염없이 수액을

제 슬픔인 양 밀어올리는 것. 수액이 목메도록 차오른 둥

치, 부러진 부위에서 맑은 수액을 게워내어 제 몸통을 적

신다.


 죽어가는 고로쇠나무 둥치가 꺼져가는 마지막 호흡으

로 길어올리는 눈물…… 덧없이 짧은 봄날만 아니라면,

마냥 저리 장엄하지 않으리라.


             

                          -『물방울 무덤』중 / 엄원태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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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4-13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 님이 시를 읽어 주니 좋아요. 시인의 삶과 겹쳐 읽을 수밖에 없어 좀더 애절하게 들려요.

프레이야 2007-04-1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엄시인을 알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년째 이틀에 한 번 혈액투석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감은 어떤 것일지... 감히 저로선 상상하지 못하겠어요.
가슴 절절하다 느끼는 건 우리들이고 정작 시인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몇편씩 아껴가며 읽을거에요^^

비로그인 2007-04-14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갈께요...
 

 

물방울 무덤들

 

엄원태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 별무리처럼 맺혔다

맺혀 반짝이다가

미풍에도 하염없이 글썽인다


누군가 아그배 밑동을 툭, 차면

한꺼번에 쟁강쟁강 소리내며

부스러져내릴 것만 같다


저 글썽거리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 있다

나는 저기서 표면장력처럼 널 만났다


하지만 너는

저 가지 끝끝마다 매달려

하염없이 글썽거리고 있다


언제까지고 글썽일 수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

물방울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저 안에 이미 알알이

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있다

 

                   

                    - 서재지인님이 주신 시집 '물방울 무덤' 중 / 창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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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1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시가 어려운 저예요.
그래서 오늘은 한번 보고 아쉬워 또 보고 갑니다. ^ ^;;;

오우아 2007-04-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詩)여! 오늘 나무가지에 물방울들이....

2007-04-13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7-04-1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너무 아슬아슬합니다.

진달래 2007-04-13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아픔이 너무 아파서 많이 울었어요. 시들 읽다가...

프레이야 2007-04-1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인님, 이 시들을 읽으셨군요. 한꺼번에 읽기엔 가슴이 무거워 전 조금씩
아껴가며 읽을랍니다.
홍수맘님, 저도 어려운걸요^^
오우아님, 오늘 아침 천둥치고 비 내리고 난리였지요.
속삭인 ㅎ님, 작가가 실제로 몸이 많이 아픈 사람입니다.
소나무집님, 우린 아슬아슬한 생명을 달고 사는 것 같아요.
 
 전출처 : 마법천자문 > 소리의 뼈 - 기형도

 

소리의 뼈

- 기형도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 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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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4-08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소나무집 2007-04-08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형도, 이름만 들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