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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라디오




- 전명숙



   이 머리통 또 여기 들어가 있군 잠시만 한눈을 팔면 어느새 전자레인지에
들앉아 있는, 반죽기계 속 빵처럼 부풀었군 마그마처럼 지글지글 끓고 있군.
이건 장말 제가 터져 버리길 기다리는 걸까 이걸 그냥 버려야 되나 어쩌나.
저 혼자 빙글빙글 돌아가는, 타기 직전 집어내어 찬물에 담그면 금방 쭈그러
들어 의기소침해지는, 치켜세웠던 머리카락 안테나들 찌릿찌릿 감전되는,
하는 수 없어 목에 얹고 다니는, 정말 저기 들어가기 싫어!  한 마디 뱉고 행
복한 방송을 찾아 채널을 돌리는. 지지지직 잡음을 통과하고 쿨쩍거리는 울

음소리 뚝!  이제 좀 얌전히 굴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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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거짓말이

- 김상용(1561-1637)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뵌단 말이 긔 더욱 거짓말이

날 같이 잠이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보이리


-------

유행가 가사 같은 제목. 제목만 보면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어느 청춘남녀의 일기장 한 귀퉁이 글귀 같기도 하다. 우연히 만난 이 시는 감각적인 언어의 리듬과 솔직한 감정의 대담한 표현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한자로 씌었겠지만 번역의 힘이 대단하다. 마치 한 연의 미끈한 현대시조를 낭송하는 느낌이다. 애절한 연애시 한 편으로..

쓰인 연도와 번역자는 알지 못하겠다.

 

시만 보면 어느 여린 규수가 읊조렸거나 한 많은 기생이 휘갈긴 붓끝에서 나왔을 것 같지만 작자를 보고 다시 놀랐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김상용도 아니고 그는
조선 중기 문신이며 서인의 우두머리로 병자호란 때 순국한 충신이다.

호는 선원(仙源). <선원유고>와 <독례수초> 등의 저서가 전한다.

김상용은 김상헌의 형으로 1636년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세자비와 봉림대군을 모시고 다른 신하들, 귀족들과 함께 강화도로 피신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 갇혀있었고, 김상용은 강화도는 안전할 거라 믿었다. 끝내 인조가 치욕의 항복을 하고, 강화도가 청군에 함락될 때 달아나려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폭약을 던져 다른 신하들과 함께 순국했다. 의도적 폭파가 아니라 실수였다는 말이 있었지만 후에 그 뜻을 기려 공을 높이고 강화도에 순절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지금 강화도에는 순절비가 모셔져 있다.

아무리 임금에 대한 절절한 충절이 보이는 시로 해석해도 조금도 덜 낭만적이지 않다. 잠못 이루는 밤, 먼 곳, 물 건너 성 안에서 또한 잠못 이루고 있을 님 생각에, 신하의 마음이 다 졸아든다, 간당거린다, 바람 앞의 촛불이다. 

날 사랑한다는 말 거짓말이지요

님이 날 사랑한단말 거짓말이지요

꿈에 와서 날 만난다는 말은

더더욱 거짓말이어요

당신도 나처럼 잠 못 이루니

어느 꿈에 보일 수나 있겠는지요

      

(이건 제가 풀어 써 본 싯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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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30 00: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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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30 0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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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8-30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김상용이 동생 상헌에게 편지를 보내 강화도로 들어감을 알리지요. 이런 시를 남길만한 인물이라 여겨지네요.^*^

프레이야 2007-08-30 08: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남한산성을 읽을 때 설핏 흘렸는데 그러게요^^
저 시가 강화도에서 쓴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옮겨놓고 보니
어느 애절한 연애시 못지 않은 느낌이에요. 전 임금을 향한 사랑으로
해석했지만 그게 살짝 허를 찌르는 것일 수도 있단 생각이 문득 들어요.
(엉뚱^^) 순오기님, 오늘도 바람이 선선합니다.^^

2007-08-30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08-3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냥 애절한 연애시로 읽을래요. 그게 더 맘에 드니까... ㅎㅎ

프레이야 2007-08-30 11:1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굿모닝! 개학한거지요?
저도 그게, 연애시로 읽는 게 더 맘에 들어요^^
일본여행기 넘 잘 보고 있어요.
따끈따끈한 정보와 사진까지.. 제가 부러운 건 님의 넘치는 에너지와 체력이에요. 걸어다니 것 하나는 자신있다고 하신 말도요^^ 저 데리고 다니려면 좀 힘들거에요. 마음 같지 않게 몸이 게을러서요 ㅋㅋ
그래도 같이 가고 싶어라~~


비로그인 2007-08-3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도 나처럼 잠 못 이루니

어느 꿈에 보일 수나 있겠는지요

님이 풀어놓은 이 글귀가 마음에 콕 와닿네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날 시 한구절이 맘설레이게 만듭니다

프레이야 2007-08-30 17:41   좋아요 0 | URL
시로 느끼는 연애감정 같은 것이요? 나쁘지 않아요.^^

바람결 2007-08-3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거짓말 사랑을 그동안 저는 했나봅니다. '애정'을 놓아두고 돌아온 날,

바람결이,
,
,
시리네요. 가까스로 김광석의 '내가 필요한거야'란 노래를 찾아 듣고 있어요.
울음이, 환해지네요. 하염없이...

프레이야 2007-08-31 01:04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아무래도 오늘 극도의 멜랑콜리 나잇을 보내실 것 같아요.
그래도 울음이 환해지셨다니 마음이 좀 놓이긴 하지만요.^^
마음속에 평안을..

가시장미 2007-08-3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구를 풀어써주시니, 이해가 쏙쏙 되네요.
잠 못 이루는건..
사랑해서일까요? 사랑을 믿을 수 없어서일까요? 사랑하지 않아서 일까요?
내가 사랑해서일까요? 상대가 사랑해서일까요? 내사랑을 믿을 수 없는 걸까요? 상대의 사랑을 믿을 수 없는걸까요? 내가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상대가 사랑하지 않는걸까요?

헉헉

아무 것도 모르겠습니다. ㅠ_ㅠ

프레이야 2007-08-31 13:15   좋아요 0 | URL
가시장미님, 그렇게 어려운 걸 저한테 물으심 저는, 저는,
사랑이,거짓말이,사랑이,거짓말이,라고밖에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헉헉... 저는 아무 것도 몰라요^^
 

 

안개 -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 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들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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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2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형도님의 시네요. 정말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이 너무나도 적확한듯 싶습니다. 혜경님, 안개 속을 미친듯이 흘러다니는 인생이, 숙명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다시 멜랑콜리한 밤입니다...

프레이야 2007-08-27 22:56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마음결에 따라 시를 받아들이는 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전,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에서 가난한자들을 매몰하는
안개와 우리는 누구나 모종의 공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더이상 낭만적이지 않은, 그야말로 님의 표현대로'그로테스크'한..
아, 님의 바람결이 느껴져서 마냥 좋습니다.

비로그인 2007-08-2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형도가 당선이 되던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어요.
고등학생이 아니라 대학생이었대도, 아님 그 이후였대도 저는 이런 시를 쓸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을 아침,아니 점심...점심 드셨어요?(시가 좋아졌어요..라고 하려다가)

프레이야 2007-08-28 14:12   좋아요 0 | URL
민서님은 그때 고등학생이요? 전 대학생이었죠? ^^
저도 어찌 저런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저 위의 크리에이터님이 알게 해준
선물인데 읽어보니 '안개의 성역'이란 게 당시의 사회상을 한마디로 부르는
듯, 섬뜩한 느낌이었어요.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리는 것도..
전, 아점 먹었는데 님은요??
오늘 바람이 제법 시원해요^^

푸하 2007-08-2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개의 주식을 어떻게 활용할지 걱정이에요.

프레이야 2007-08-28 21:40   좋아요 0 | URL
언제나 쓸쓸한 바람소리 들리는 푸하님, 우리에게 배당된 안개의주식, 님은 참 좋은 쪽으로 쓰시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잖아요.
고민하는 모습에 늘 오히려 입이 다물어집니다.
님, 서재에 갔다 왔어요^^
 

 

 8월 초, 광안리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홀에서 수상자의 아내가 대신 상을 받으러 무대에 올라왔다. 민소매조끼를 걸치고 있는 모습에 입을 삐죽거리는 어르신들이 좀 있었는데(여성분) 나는 시원해 보여 좋기만 했다. 그녀의 남편은 제 11회 한국해양문학상 대상을 받은 시인 이윤길이다.

 그는 19살, 주문진 수산고등학교를 졸업도 못한 채 원양현장 실습이라며 그해 10월 라틴아메리카의 수리남으로 갔다. 그렇게 시작된 원양어선의 승선이 근 30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여자를 만났고 결혼을 했고 딸아이 둘을 낳았고, 실습항해사에서 3등, 2등, 1등 항해사를 거쳐 선장이 되었다. 그의 시집 속 작가의 말을 빌자면 “그동안 난 삼각파도를 뚫는 괭이갈매기처럼 씩씩하게 한 끼의 밥값을 위하여 이 바다 저 바다를 해파리처럼 부유하며 외로움과 고독을 삭혀왔다.”고 했다. “소금물에 절인 마음과 달빛에 부서진 마음, 태양 볕에 달구어진 마음들, 태풍 속에서 오금저린 마음도 있었다. 그런 마음들을 모아 놓은 것이 오늘의 영광이 되었다. 존재는 말 그대로 환상인 것이다.”라고도 했다. 책날개에 있는 그의 사진을 다시 넘겨보았다. 희끗한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풍채 좋은 59년생 남자였다.

 아내 차미선은 지금 러시아 해역 바다 한 가운데에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헌책 냄새를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라고 말하는 두 딸 자랑도 했다. 단칸방 가득 책을 쌓아두고 읽어대고 배움의 갈증을 못 이겨 시인을 찾아가 스승으로 삼고, 수많은 날들을 습작하고, 그런 세월을 오래도록 지켜본 아내는 경남 통영 사람이었다. 그녀는 특유의 억양으로 적어온 걸 읽어갔다. ... 새벽에 만취해 들어오는 남편은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자기존재를 확인하려했다고...

 

 

 난 그 대목에 가슴이 아렸다. 술 취해 객기와 난동을 부리는 남편, 아버지, 시아버지...  이 시인이 스스로를 칭한 말처럼 ‘황금빛 찬란한 유산이 없어 흔들리는’ 우리의 그들을 봐주는 눈이 조금은 유연해지고 있다면 나도 정말 중년의 여인인가. 뱃놈이 무슨 시를 쓰냐고 주위에서 말했다고 겸양을 떨어놓았지만, 화기애애한 시상식장에 앉아 그의 시들을 죽 읽어보니 망망대해의 생명력이 꿈틀대며 달려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대양의 품에조차 안겨보지 못한 나이지만... 

 

 

 바다에 몸을 담고 부딪히며 쓴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시들, 그 중 표제시 하나를 옮겨본다. 다른 시들보다 여성적인 감성이 느껴진다. 떨어져있는 시간이 더 긴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 같다. 우리는 늘 사랑하는 일에 서툴고 어리석게 마련인가. 그래도 실러갠스의 새로운 비늘 하나를 꿈꾸며..



진화하지 못한 물고기 한 마리

-이윤길




눈 뜰 때 포프라기 되어 매달리는
세월 갑옷을 걸친 마흔 여자의
스물아홉 의식으로 사랑은
심연에서 화석이 되었고
백만 년 동안이나 변화하지 않고
화석으로 살아있는 물고기 한 마리
비늘에다 그리움을 빗금으로 남기다
뻐끔하고 세상 밖에 숨 뱉어놓은 날
기포에 쌓여진 지난, 사랑 하나가
수묵처럼 번지는 파문 만든다
계절이 바뀌면 꽃들도 달라지는데
바닷물에 절여진 마음이라
백만 년 전의 사랑이나
현재의 사랑이나 변하지 못한다
말들의 통로를 따라 연비 되어진
아줌마가 간직한 눈물에 슬픔들이
아저씨 가슴에 비 되어 흐른다
진화하지 못한 지느러미로
앞 보며 앞으로만 뒷걸음 걸었는데
어찌하여, 여인 만나게 된 걸까
창 너머 바다에 달빛이 부서진다
실러갠스* 새로운 비늘이 생긴다.

* 실러갠스 : 화석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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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8-2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문진 수산고등학교...저희 동네에 있던 학교인데...
뱃내음, 바다내음이 비릿한 그의 시가 어떨런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프레이야 2007-08-20 12:54   좋아요 0 | URL
어머, 잉크님 주문진이 고향이세요?
전 주문진까진 못가봤지만 그 부근 속초까지 가봤지요.
왠지 오늘은 잉크냄새 대신 바다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

twinpix 2007-08-2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닷물에 절여진 마음이라, ^^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07-08-20 23:21   좋아요 0 | URL
트윈픽스님, 네^^ 화석이 되어버린 변하지 않는 마음,
부패되지 않는 마음이요..^^ '진화하지 못한 지느러미로 앞보며 앞으로만
뒷걸음 걸었는데' 이 구절도 좋지요.^^
 
당신이 외우는 시 한 편

요사이 어떻게 지내시나요 近來安否問如何


사창에 달빛이 비치니 첩의 한은 깊습니다. 月到紗窓妾恨多

 
몽혼에게 흔적을 남기게 한다면 若使夢魂行有跡


당신 앞 돌길 반은 모래가 되었을 것을. 門前石路半成沙

 

                                              - 이옥봉 '몽혼'

 

묻노니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달이 사창에 이를 때면 저의 한은 깊어지곤 한답니다.
만약 꿈길의 걸음에 자취가 생긴다면
문 앞의 돌길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겁니다


(검색을 해보니 이렇게 번역한 시도 있네요. 전 위의 것이 더 마음에 듭니다)

--------------

 

어느 날, 남편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옥봉의 몽혼이란 신데 들어봐."  그러곤 위의 시를 들려주었습니다.  

"여보, 난 이 시가 요즘 참 좋아."

이옥봉은 조선시대 여류시인인데 연도가 불확실하지만 선조때 양반 '봉'의 서녀로 태어나 임진왜란 때 생을 마감한 조한의 소실이기도 했습니다. 32편의 시를 담은 <옥봉집>이 후손에 의해 전합니다. 평생 멀리 떠나있는 남편을 그리워 했다고도 합니다. 읊을수록 입에 착착 감기는 운율에 애잔한 정서가 첩으로서의 스산한 그리움을 잔뜩 배어 나오게 하는 싯구. 그믐달의 맵시마냥 처연합니다.

옆지기는 홈페이지에 한옥의 나무문을 찍어두고 이 싯구를 실어놓았더군요. 사십 고개를 고되게 넘어가는 남자. 일에 지치고 가족의 무게에 버거워하면서도 거뜬히 이고지는 어깨가 때때로 쓸쓸해 보입니다. 그리움은 욕망으로 생겨나는 거라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그걸 어쩌지 못해 가눌 길 없이 그리워하고, 잡을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며 삽니다. 저는 이제 그리움을 버리기로 합니다. 사실 허울좋은 감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일까요.

대신 첩의 마음으로 살기로 합니다. 본처의 오만함과 무감각함과 텃새기질보다는 부족함에 안달하고 조바심 내면서도, 가끔은 환청에 시달릴 정도로 귀 밝히며 내게 다가오는 것들에 예민한 촉수를 세워보렵니다. 물수제비 번져가는 공명과 반향의 무늬처럼, 신경줄 같은 현의 감각처럼, 때로는 손톱 밑의 작은 떨림으로도 온몸의 감각이 작동하는 첩으로 살까합니다. 숨죽여서 낮게, 욕심없이.. 작은가슴, 새가슴으로.. 하지만 그런 까탈스러운 성정이 거추장스러울 때면 혹여, 곰처럼 아무것도 모른 척 겨울잠도 잘 겁니다.

 

요사이는 당신 어찌 지내시온지요?

달빛 살빛 비치는 창 두드릴 때면 새가슴에도 그리움 사무쳐와요

몽혼의 걸음으로도 발자욱 남길 수 있다면

돌같은 당신 마음 문전의 반은 모래가루 되었을 겝니다.

 

 (이건 제가 무례하게 재해석한 몽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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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 길(夢魂)
    from 한사의 서재 (휴식 중입니다) 2007-08-16 21:10 
                             동짓달 긴 밤 - 김원숙 作 1992 Oil on Linen 122x56cm          
 
 
조선인 2007-08-1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제가 30대에 외우게 된 시가 있다면 이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07-08-16 18:57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저 3번 참여했어요. 호호~
1번은 음냐음냐.. 어려워요..
꾸벅^^

글샘 2007-08-1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가 한시로 고등학교 한문 교과서에 있었거든요.
좋지 않냐고? 애들에게 한참 설명을 했더니...
시험에 나올 것만 새카맣게 적고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남학생 반만 수업해서 그런 거였나 모르지만...
그 중에 이 시를 정말 좋다고 생각한 녀석들이 있었을는지도...^^

프레이야 2007-08-16 18:5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런 시를 좋아하는 옆지기는 저보다 더 감성적인 건가요?
한시로도 읊어주더군요. 이옥봉의 다른 시들도 참 맑고 고아하더이다.
그나저나 시커먼 남학생들이 과연?? ^^
걔들이 이런 맘을 알까요? ㅎㅎ

마노아 2007-08-1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시도, 재해석도, 아... 너무너무 좋아요(>_<)

프레이야 2007-08-16 18:26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좋게 봐 주셔서 넘 고마워요~~~ ^^

비자림 2007-08-16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재해석이 더 좋군요. 잘 읽고 가옵니다.

프레이야 2007-08-16 18:27   좋아요 0 | URL
아니, 시인 비자림님 와락~
재해석시를 더 좋다고 봐주시니 기분 좋아요.
전 님의 재해석시가 더 멋지게 나올 거라 믿는데요. 님의 시를 읽고파요..
넘 오래 되었다구요..ㅎㅎ

향기로운 2007-08-1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외우고싶네요^^ 조선인님덕분에 좋은 시 알게되어 기뻐요^^ 혜경님의 재해석 시도 좋아요~

프레이야 2007-08-16 18:28   좋아요 0 | URL
향기로운님, 전 시 잘 못 외우는데 이건 짧으니까 ^^
조선인님 덕분에 저도 한 번 적어보고 좋았네요. 헤헤..

비로그인 2007-08-16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치는 마음을 일으켜주는 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8-16 18:29   좋아요 0 | URL
민서님, 덥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지치는 요즘이죠.
조금 일으켜 세워드렸다니 기쁘지요^^

비로그인 2007-08-16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께서도 이 시를 암송하시는군요..
제가 읽었던 몽혼(=꿈길)을 소개합니다.


프레이야 2007-08-16 21:29   좋아요 0 | URL
한사님, 아직 휴식중이신거에요?
너무 반갑습니다. 가서 보고 추천 누르고 왔어요.
김원숙의 그림이 서늘합니다.
저를 위한 특별한 그림과 시, 감사합니다.^^

Jade 2007-08-1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봤을때는, "돌이 모래가 된다는"표현이 참 유치하게 느껴졌었어요... 좋은 경험(!)을 한 지금은, 제 마음을 투영해서 읽게 되네요 ㅎㅎ

프레이야 2007-08-17 12:06   좋아요 0 | URL
어머, 제이드님 고등학교때 배우셨군요.^^
그 좋은 경험이 뭔지 대략 알 것 같아요. 덥지만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