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지 오엘이 말한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는 하도 여러 책에서 자주 접하다보니 이제 저절로 암기가 되고 말았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유시민은 정치적 목적을 가장 중요시한다. 정치적 목적이란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를 뜻한다. 정치적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작가는 조지 오웰일 것이다.  조지 오웰은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

 

내 작업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됐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유시민 역시 글쓰기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장 중요시 한다. 나는 주로 순전한 이기심으로 글을 쓰곤 하지만, 점점 더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글을 쓰고 싶긴 하다. 그러기 위해선 더 배워야 하겠지.

 

유시민은 이런 질문을 자주 접한다고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왜 만날 싸우나요?” 정말 멍청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남자든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강간범에게 강간당할 위기라면 강간범이랑 안 싸우겠는가


 "저기.....외람된 말씀이오나 제 여자 친구인데. .....강간은 쫌..."하면서 예의를 갖춰야 할까?  국회에서 정부여당은 재벌과 기득권을 위해 99%의 수 천만 명의 국민들을 강간하려는 정책들을 입안하려고 한다. 그럼 오늘날의 야당처럼 먼 산 쳐다보듯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인가

 

유시민의 말처럼 여당과 야당이 안 싸우면 이상한 거다. 흔한 말로 야합이라 한다. 제발 둘 다 싸우니까 똑같은 놈이라고 하지 말자. 절대로 똑같은 게 아니다. 강간범이랑 강간을 막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똑같은 범죄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독자가 감정 이입을 하기 좋게 글을 쓰는 유시민 만의 노하우

 

1.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뜻을 알 수 있도록 쓴다.

2. 텍스트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데 필요한 콘텍스트를 텍스트 안에 심어둔다.

 

유시민은 안도현 시를 예로 든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유시민에 따르면 위 시는 의사소통의 도구로는 폭망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써야 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더러워진 골목길 네가 치울 거냐

 

, 논리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글을 쓸 때에는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할 수 있게 써야 한다고.

 

 


전두환은 멋져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정신나간 정훈이를 제 정신으로 돌려놓은 책은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다. 이 책을 계기로 정훈이는 현대사를 공부했고, ‘김대중은 빨갱이라고 믿었던 경상도 청년의 왜곡된 상식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숱한 국민들을 고문하고 살인하고 강간한 독재자를 멋지다고 외치는 정신 나간 것들이 있다. 누군가 저런 것들을 붙잡아다 책을 읽히면 어떨까


우매함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p48.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에서 두 가지 도덕법을 밝혔는데, 다들 아시는 정언명령 1번과 2번입니다. 정언명령 1번은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고 2번은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8-0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정치인들의 행보, 특히 여당에 불만이 많지만, 여당 정치인을 강간범으로 비유한 문장은 과도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간은 폭행으로 상대방을 위협하고 억압하는 행위입니다. 옛날 남산 안기부 시절이라면 국가의 폭력을 강간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각자 자신들의 밥그릇이 걸린 정책 문제 앞에서는 욕설과 주먹을 주고받으면서 싸웁니다. 소속 정당이 다를 뿐 개인의 이익을 사수하려는 정치인들은 도긴개긴입니다.

시이소오 2016-08-05 12:23   좋아요 2 | URL
기득권들은 국민드이 도긴개긴이라고 생각하길 바라죠.

국가보안법 통과시키려는 당과 몸싸움으로 막으려는 당이 어째서 똑같나요? 절대로 똑같지 않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 다고 차선이 아니라 최악을 선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리고 꼭 육체적인 폭력만을 강간이라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들 멋대로 사드 배치 결정하는건 폭력이 아닌가요?

강간은 한 사람의 피해겠지만 잘못된 정치는 수천명을 지옥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기도 하구요.

루쉰P 2016-08-0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의 표현의 기술은 너무나 좋죠 ㅋㅋ

시이소오 2016-08-05 13:22   좋아요 0 | URL
저는 표현의 기술이 없죠 ㅋㅋ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작가수업 1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정말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만 읽어야 할 것 같다. 대개 미쳐야 미친다(다다른다)’라고 말한다. 저자인 김형수에 따르면 문학은 미쳐도 안 된다.  가정을 버려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된단다. 그래도 하겠는가? 어휴, 어디 겁나서 하겠는가? 사실 어느 분야든 기저율을 고려해 봐야한다. 문학에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1000명 중에 한 명? 혹은 만 명중에 한 명? 등단했다고 해서 전업 작가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그런 작가는 고작 몇 백명 정도가 아닐까?

 

그래도 난 하고 말겠어라고 한다고 해서 또 이게 그리 간단치가 않다. 김형수에 따르면, 문학은 평생을 공부해도 알까 말까할 정도로 공부할 게 많다. 문학론, 시론, 소설론, 운율론, 문체론 등, 비평도 공부해야 한다. 게다가 세계관의 한계, 창작방법의 한계, 창작조건의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작가들 중에는 공부만 하다 글은 못 쓰는 사례도 빈번했다고. 박영희 시인이 그랬다지.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김형수가 제시하는 대안은 이렇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죽은 고래는 아무리 커도 물살이 흐르는 대로 따라 흐르지만 살아있는 송사리는 아무리 작아도 물살을 거슬러서 오를 줄 안다입니다.......모두 이론의 대가가 되고 문학사의 대가가 되고 비평의 대가가 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세계관의 한계 창작조건의 한계 창작방법의 한계를 끝없이 극복해 가는 것, 한 마디로 말해서 문학을 배우는 게 아니라 문학을 사는 것, 이것이 문학수업의 왕도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일단은 글을 쓰면서 공부를 병행하라는 것이다. 두 가지를 병행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고독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적한 시골길에 혼자 켜 있는 고독한 가로등처럼 존재하는 것, 이렇게 존재하는 자가 어법이 서툴거나 표현이 약하거나 인기가 없다고 해서 이 자의 입을 통해 명명되는 어둠 속의 것들의 가치가 작아질까요? 사실은 이것들이 인간의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이것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문학입니다. 이렇게 혼자 제자리에서 빛날 줄 알면 이제 그 사람의 생을 통해서 문학이 흘러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43)

 

고독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불충분하다.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한다. 영적 배움에도 도반이 있듯 문반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창작적 에너지가 증폭되는 관계망을 형성해야 한다.

 

그 외 인식의 도구들, 장르의 구분, 문예사조 등은 부수적인 가르침이다. 하루살이에 관한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하루살이는 태양이 사라지면 몸이 기울어져서 균형을 잡을 수 없답니다. 그래서 작은 빛이라도 발견되면 정신을 잃고 다가가요. 가까이 가면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빛에 접근하는데 끝내 균형을 얻지 못하고 타죽고 마는 것입니다. 멈출 수 없어요. 왜냐하면 존재가 기울어졌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끌려가는 셈인 거죠.


상상을 하면 왜 이리 웃긴지. 하루살이는 이미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작은 빛에도 속절없이 끌려가 죽음에 이른다니! 웃다가 섬찟해진다. 혹시 나도 하루살이는 아닐까?

 

태양이 없을지라도

균형을 잡아야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6-08-0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은가 봐요. 많이 읽던데...
근데 제목이 처음엔 좋은 것 같았는데 다시 보면 좀 으시시해요.
한적한 시골길에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 보면 얼마나 무서운데요.
거기서 살인의 추억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 가로등은 뭔 죕니까?ㅋㅋ3=33=3

시이소오 2016-08-03 13:32   좋아요 0 | URL
ㅋ 듣고보니 그러네요 ㅎㅎ

2016-08-03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4 0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뭇잎처럼 2016-09-06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고민하던 걸 한방에 시원하게 날려주는 글이네요. 글 잘 쓰고 싶을 때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거야,라고 자책했던 마음도 홀가분해지는 기분^^

시이소오 2016-09-06 21:37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그 자체로 빛나시길. 나뭇잎처럼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유시민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따라서 그가 글을 잘 쓰는지 못 쓰는지 알지 못한다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가 글을 잘 쓴다는 걸 알게 됐다특히나 공산당 선언의 번역문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공산당 선언>의 강유원 번역은 이렇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즉 교황과 차르메테르니히와 기조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관은 이 유령에 대항하는 신성한 몰이사냥을 위해 동맹하였다.

 

유시민의 번역은 이렇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낡은 유럽의 모든 권력이교황과 차르메테르니히와 기조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비밀경찰이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한 신성동명을 체결했다.

 

유시민은 이오덕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글 역시 말하듯 써야한다고 주장한다나는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았다이러니 글이 제대로 써질 리가 없다유시민은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 중 세 권의 책을 먼저 소개한다두 세 번이 아니라 열 번을 읽어도 좋다고세 권의 책은 <토지>, <자유론>, <코스모스>이런다 안 읽어본 책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유시민에 따르면 훌륭한 글을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못난 글을 쓰지 않으면 된다.

 

글을 잘 쓰려면 무엇보다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바르고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어야 제 나름의 멋진 스타일을 입힐 수 있다아무리 기교를 부려도 음을 정확하게 듣지 못하면 바이올린을 제대로 연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이 없으면 훌륭한 문장을 쓰지 못한다.

 

유시민에 따르면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쉽고 간단한 방법은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내 경험으론 어떤 책들은 마치 톱밥을 삼키는 것처럼 꺼끌꺼끌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그런 책은 분명히 어딘가 잘못된 글이다이 책은 작년에 읽었던 고종석의 <문장>과 비슷한 글쓰기 가르침을 전한다중국말 남용일본식 조사의 남용( ‘에로의’ ‘의로부터의’) 서양말의 오남용(완료시제와 피동형 문장)만 경계해도 못난 글을 쓰지 않을 수 있다고또한 복문보다 단문 쓸 것을 권유한다.


 

롤랑 바르트의 <롤랑 바르트마지막 강의>를 읽다가 그처럼 사토리(순간적인 깨달음)를 일으키는 문장을 만났다.

 

"즉 어떤 관점에서 삶 프로그램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다시 말해 글쓰기의 쾌락글쓰기의 행복을 경험한 사람에게는(거의 첫 번째 쾌락처럼새로운 글쓰기의 발견 말고는 다른 새로운 삶이 없을 것입니다. "

 

나는 글쓰기의 쾌락을 이미 맛본 사람이다죽을 만큼 괴로울 때면 글 쓰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없다어쩌면 죽지 않기 위해살아남기 위해 글을 썼던 걸까그런 경험은 완성의 순간을 꿈꾸게 한다.

 

한 인간의 삶에서 –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삶에서 – 모든 것이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책이 쓰이고우주가 조용해지고존재들이 휴식을 취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남은 일이라고는 그 순간을 알리는 일뿐이다.”

 

모리스 블랑쇼.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유시민의 추천 책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문예출판사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김영사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리처드 파인만 강의폴 데이비스 서문,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승산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다락원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우물이있는집

스티븐 핑커 외 지음존 브록만 엮음, <마음의 과학와이즈베리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바오

신영복, <강의돌베개

아널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동서문화사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한국경제신문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르답다>, 문예출판사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홍신문화사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재레드 다이아몬드, <,,>, 문학사상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어크로스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갈라파고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책세상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홍신문화사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책세상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 이후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서해문집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은행나무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6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7-06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책의 목록을 보니 유시민님 글쓰기 수업은 스타일 만들기에 그치지는 않겠네요.

시이소오 2016-07-06 20:2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올바른 사유로 이끌어주는 책들이 많네용 ^^

희망찬샘 2016-07-06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제게 도서관에서 토지를 빌리게 만든 분이 바로 이 분이셨군요! 실패하긴 했지만... 언젠가 다시 도전! ^^

시이소오 2016-07-06 20:48   좋아요 0 | URL
저도 토지를 읽겠다고 마음 먹은지가 꽤 됐네요. 책이 너무 많아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시가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시란 일종의 진부한 표현을 거부하는 장르이지 않습니까.
시의 장점 중 하나는 표현의 다양성이 아닐까 싶습니디ㅏ.

시이소오 2016-07-06 21:27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많은 소설가들이 작품을 쓰기전에 하루 일과를 시 읽기로 시작한다는군요. 저도 따라해보다 게을러 요즘은 안 하는데 곰발님이 자극을 주시네요.
다시한번 시를 읽어야겠어요^^

samadhi(眞我) 2016-07-06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지가 그렇게 재미없더라구요. 무슨 오기가 생겼는지 꾹 참고 끝까지 읽긴 했는데, 오직 ˝재미˝를 찾는 성미여서
지루하기 짝이 없던 토지 속에서 정작 글에는 집중하지 못 했어요. 빨리 읽어치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다시 읽지는 못 할 듯합니다. 조정래 역사 3부작은 다시 읽을 수 있지만요.

시이소오 2016-07-06 22:56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재밌는 줄
로만 알았는데요. 재미도 없는데 그걸 다 읽으시다니, 대단하세요 ^^

samadhi(眞我) 2016-07-06 22:58   좋아요 0 | URL
토지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서 제가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ㅋㅋ
근데 21권이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무료했답니다.

시이소오 2016-07-06 22:59   좋아요 0 | URL
ㅋ 지나님 핑계로 토지 건너뛸까봐요 ㅎ ㅎ

samadhi(眞我) 2016-07-06 23:02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님에겐 맞을지도 몰라요. 저는 차라리 전형적이고 신파(?) 가득한(?) 김약국의 딸들은 좋았어요. 그때만 해도 박경리 소설이 재밌다고 생각했지요. 김약국... 이 극적이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지만요.

시이소오 2016-07-06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김약국의 딸들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 박경리 선생님 소설은 대체로 재밌지 않나요?
^^

samadhi(眞我) 2016-07-06 23:09   좋아요 0 | URL
토지는 죽기 전에 읽어야 하는 소설인 줄 알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재미있어질 거라고 조금 더 읽어보면 재밌겠지 하다가 나중엔 모든 헛된 마음을 버리고 그저 마지막 장만을 향해 글을 흘려 읽었어요. 제가 쾌락주의라 그런 걸 테고 토지를 좋아하는 분들 많을 거예요. 제게는 밋밋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박경리가 20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 해 쓴 글이라 저도 참고 읽었어요.

시이소오 2016-07-06 23:19   좋아요 0 | URL
일단 1권을 읽어보고 결정해야 겠습니다 ^^

samadhi(眞我) 2016-07-06 23:25   좋아요 0 | URL
그러셔야지요. 시이소님은 워낙 무섭게(?) 읽으시는 분이니 후딱 해치우실(?) 수 있을 겁니다. 안 그래도 몇 권 보시라고 말씀드리려 했어요.

시이소오 2016-07-06 23:35   좋아요 0 | URL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아 행복한 고민이네요^^

2016-07-0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잘쓰셔요. 그누가 만권을 읽어가며 쓰는 사람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답니까? 매일 써주세요. 잘쓰려면 읽어야 한다며 거의 외서를 권하는 게 뭔가 핀트가 두 개로 갈라진 듯한 느낌이라 쫌 그렇습니다마는 저자의 갖춘 덕이야 충분히 미더우니 그렇구나 하고마는 저에게는 시이소오님께서 읽으시고난 이야기 계속 이렇게 써주시는 그게 바로 최고의 글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만 납니다. 흐~ ^^

시이소오 2016-07-07 00:40   좋아요 0 | URL
아, 힌님 격려의 말씀, 감사드려요 ^^ 매일 쓸께요 ^^

2016-07-0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나 복문이죠? 사람의 일상적인 말이 진정 단문인가 하는 의심을 하는 중이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복문은 진정 일상에는 없는 말인가 자꾸 해본다니까요 헤헤

시이소오 2016-07-07 00:59   좋아요 0 | URL
사실 복문은 쓰기가 굉장히 어렵죠.
사유가 깊어야만 가능하다고 봐요. ^^

qualia 2016-07-07 0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건 몰라도 윗글에서 《일본식 조사의 남용(‘에로의’ ‘의로부터의’)》이라는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혹시 “의로부터의”는 “으로부터의”를 잘못 적은 것은 아닌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로의”, “~으로부터의” 따위는 일본식 조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저것들이 일본식 조사라는 주장은 이오덕 선생님이나 이수열 선생님한테서 처음 나왔을 겁니다. 그 뒤로 많은 글쓰기 책 저자들이 두 분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일종의 정설 아닌 정설로 굳어졌고, 이제는 글쓰기 책 저자들의 ‘습관적인’ 주장/레퍼토리가 돼버린 듯합니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 옳은 주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걸 논증하려면 아주 긴 글을 써야 하는데 사정상 여기선 생략하고, 간략히 두어 가지만 적겠습니다. “~에로의”, “~으로부터의” 따위가 일본식 조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말의 교착어적 특징을 망각했거나 인식하지 못한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말은 언어 유형학적으로 교착어에 해당하는데요. 이 교착어는 실질 형태소인 어근에 형식 형태소인 접사/조사를 붙여서 ⑴ 파생어를 만들거나 ⑵ 문장 성분 간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중심적 특징입니다.

예컨대 “그의 완벽한 성공에로의 집념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와 같은 예에서 “성공에로의”는 [성공+에+로+의]나 [성공+에로+의]로 분석할 수 있는데요. 이것은 [명사 어간+조사+(보)조사+관형격 조사]나 [명사 어간+복합조사+관형격 조사]와 같은 형태소 결합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식의 형태소 결합은 교착어로 분류되는 우리말의 중심적/근본적 특징입니다. “암흑으로부터의 탈출”과 같은 사례도 똑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암흑+으로+부터+의]는 [명사 어간+조사+(보)조사+관형격 조사]와 같은 형태소 결합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말은 아주 대표적인 교착어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교착어적 특성이 아주 잘 드러나는 “~에로의”, “~으로부터의”와 같은 2중/3중의 복합조사를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말 말법/문법에 비춰볼 때 아무런 잘못이 없는 표현이고 용법이라는 것이죠. 도대체 뭣 때문에 쓸 수 없다는/쓰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사실이 이러한데 저런 용례들을 모두 일본식 조사로 규정하고 일본어 번역투로 폄하하는 것은 억견이자 오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에로의”, “~으로부터의”와 같은 유형의 2중/3중 복합조사는 축약 표현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우리말글을 풍부하게 하고 우리말 문법의 새로운 (혹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영역을 열어줍니다. 이런 기능적 장점과 풍부함, 가능성이 깃들어 있는데 저런 유형의 알짜 성분들을 일본식 말글로 잘못 규정하고 퇴출시킨다면 그것처럼 어리석고 애석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무엇무엇의 무엇무엇의 무엇무엇”과 같이 관형격 조사 “~의”가 두 번, 세 번, 심지어 네 번까지 반복되는 구절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봅니다. “~의”라는 조사는 현대 우리말글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성분/요소가 되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젠 완전한 우리말 조사입니다. “무엇무엇의 무엇무엇의 무엇무엇”과 같은 표현 유형이 문맥에 비춰볼 때 의미 전달에 방해가 되지 않고, 문법상 오류가 없고, 좀 더 축약적인 표현을 가능케 한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얘깁니다. 구체적 분석과 논증 없이 습관적으로 습관적인 주장을 하는 글쓰기 책들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댓글을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시이소오 2016-07-07 04:27   좋아요 0 | URL
허걱, 퀼리아님 대단하시네요.

저는 아직 문법에 문외한이라서요.

그렇군요. 모르던 걸 또 배우네요. 감사합니다.^^

qualia 2016-07-07 11:39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 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주장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비판적으로 읽어주세요.

그런데 제 댓글 중 밑에서 둘째 단락 둘째 문장 뒤에 덧붙일 문장이 하나 더 있어요. 해서 여기에 적어둡니다.

“섬세하고도 미묘한 의미 분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시이소오 2016-07-07 12:55   좋아요 0 | URL
뭘 알아야 비판적으로읽을텐데요.
맞춤법 공부할 때 염두해
두겠습니다 ^^

이야기꾼 2016-07-0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최근에 유시민님의 책을 한권 읽고 맘에 들었기에 그 다음책을 물색 중이었는데 이렇게 추천이~~ ㅎㅎ 급 땡기네요;^^

시이소오 2016-07-08 16:1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이야기꾼님,
실망하지 않으실 책이죠ㅎ^^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 편애하는 마음과 인문학적 시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야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야구를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치다 타츠루와 이시카와 야스히로는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에서 마르크스의 자로 모르는 젊은이들이 마르크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하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마르크스를 쉽게 설명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어려운 걸 어렵게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하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하는 사람을 신뢰한다.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라는 제목을 보고 , 우치다 타츠루가 하루키를 신나게 까겠구나. 재밌겠는걸하고 잔뜩 기대했었으나, 완전 속았다. 이 책은 평론가가 아니라 하루키의 팬의 입장에서 쓴 하루키론이다. 임경선의 <지극히 개인적인>의 일본판이라고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세계적인 대중성을 얻었는가?’

 

우치다 타츠루에 따르면, 일본에서 위와 같은 물음을 던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타츠루는 하루키 문학의 위대함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근거를 제시한다.

 

아주 평범한 주인공의 일상에 불현 듯 사악한 것이 잠입해 들어와 사랑하는 것을 훼손합니다. 그러면 힘없고 왜소한 존재인 주인공이 온힘을 다해 그 침입을 저지하고 사악한 것을 억눌러 세계의 일시적인 균형을 회복한다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우치다 타츠루에 의하면, <양을 쫓는 모험>부터 하루키는 세계문학의 정통 계열을 발견한다. 타츠루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하루키 소설을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플롯 군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키는 대학 시절 소설보다는 시나리오를 썼다. 따라서 캠벨보다는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서사 구조가 더 적합할 듯싶다. (‘영웅의 여정의 틀로 분석한다면, 하루키의 소설과 하야오의 애니매이션은 동일한 서사 구조다. )

 

평범한 세계 모험의 소명 소명의 거절 스승(조력자)와의 만남 관문의 통과 시험, 동맹, 적군 동굴로 접근- 고난 보상 귀환 부활

 

하루키의 소설이 조셉 캠벨보단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이론에 더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아버지때문이다. 우츠다 타츠루는 하루키 소설에 아버지의 부재를 지적한다. ( 유일한 예외는 <1Q84>. 캠벨에게는 시험이후 아버지의 화해의 단계가 있지만 보글러는 동굴로의 접근으로 대체했다.) 라깡 식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자리

 

캠벨의 이론을 가장 충실히 반영한 영화는 알려진대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다스 베이더의 내가, 니 애비다의 충격적인 대사를 환기해보라.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아버지란 생물학적 부모가 아니라 분석적 의미의 아버지, 세계의 질서를 담보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라고 불러도 좋고 역사를 꿰뚫는 철의 법칙성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아버지는 고대에는 이였고, 헤겔에게는 절대정신이었고, 르네상스에서는 이성이었고, 낭만주의에서는 인간이었다..... 현대에는 시스템일 수도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 ‘세계의 질서를 담보하는 자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절대적인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니체는 아버지의 자리위버멘쉬, 초인을 놓았다. 하루키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는 사람과 사람의 대립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거기에는 확실히 무언가가 심하게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기묘하게 들리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그 결락을 처음부터 스스로 획득한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결락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 그러한 결락일까?

내게는 그가 너무나 민감하기 때문에 일본 사회로부터 순화시킨 형태로 받아들인, 일본 사회에 내재한 결락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P. 138.

 

우치다 타츠루는 가토 노리히로의 하루키에 대한 위와 같은 비평에 대해, 가장 통찰력 있는 비평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무릎을 쳤다

 

"진실로 예민한 작가는 그의 시대에 과잉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쓰지 않습니다.

.....실로 뛰어난 작가는 그 시대가 심하게 결여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 그것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사실로 인해 그 시대의 성격이 규정되는 것에 대해, 글을 씁니다. 예컨대 그 사회의 그림자에 대해." 

 

이 대목이 우치다 타츠루의 혜안이 빛나는 부분이고, 하루키를 평가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본다. 타츠루는 하루키가 세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본질적인 이유로, 하루키가 결여한 것을 세계 전체가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감한다. 공감하는데, 나는 여기서 하루키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키는 아버지의 자리에 아무것도 놓지 않는다. 하루키의 등장인물들은 우치다 타츠루가 지적한대로 절대적인 가치가 결여되어있다. 시크함,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냉담함’, 혹은 무심함을 특징으로 한다.

 

부조리한 세계에 내던져져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면 좋은지 알지 못합니다.

 

우치다 타츠루는 존재의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본질적인 물음에 하루키의 대안이 문화적인 눈 치우기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가 나서서 묵묵히 하는 것. ‘공정함’, ‘예의를 지키기.등등 

 

감동적인 분석 아닌가. 그러나, ‘아버지의 부재의 현실이 하루키 소설에선 너무나 매력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이 문제다.  재즈음악, 언더락 위스키, 맥주. 섹스. ‘아버지따위 없어도 현실은 잘 만들어진 디저트와 같은 섹스로 충분하다.    아니, 그냥 이대로가 행복하다. 사회의 불평등이나 부조리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오로지 나와 내 여자, 내 친구만이 중요하다.

 

, 하루키 소설은 자본주의를 즐기며 사회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일종의 마취제로 작용한다. 하루키를 읽는 우리는 무심함에 취하고 정신은 마비된다. 이것이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는 나라마다 하루키가 팔리는 이유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가 떠오르지 않는가. 

 

하루키의 문장은 더더군다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몸으로부터 나온다. 하루키에게 소설을 쓰는 행위는 밥을 짓는 행위나 일종의 달리기다. 머리로부터 나온 문장은 거부할 수 있을지언정 몸으로부터 나오는 문장은 쉽사리 거부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하루키는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그 속에 내던져진형태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쓸 만한 것은 주어진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손에 쥐어진 자원을 활용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놓는 것, 그것뿐입니다. ”

 

 

하루키 소설 중 <1Q84>를 가장 좋아한다. <1Q84> 만이 아버지가 나오기 때문은 아닐까.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암울한 시대다. 하루키 문학에 잠시 취해도 좋으리라. 그러나, 그곳에 줄곧 취해 있다 보면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을 것이다.

경계를 넘어야 한다.

 

 

하루키를 조심하세요~~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눈 2016-06-2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을 쫓는 모험>을 읽었을 당시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겠어서 하루키 소설 중 가장 재미 없게 읽은 기억만 나는데, 그 책의 발간이 하루키가 세계문학의 계열로 들어선 시점이었군요. 저는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에게서 가족이 배제된 개인주의만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부재`는 미쳐 읽어내지는 못했네요.

시이소오 2016-06-23 14:37   좋아요 0 | URL
저도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선 고민해 본 적이 없네요 ^^;

루쉰P 2016-06-2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에 대한 분석이 재밌네요 ㅋ 우리에게 결여됨 것이 하루키에게도 결여되어 있기에 읽힌다는 ㅎ 하루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신비로운 작가에요 ㅋ 저도 하루키가 왜 인기가 좋을까 항상 궁금했거든요 ㅋ

시이소오 2016-06-23 14:41   좋아요 0 | URL
가토 노리히로의 비평, 대단했어요 ^^

moonnight 2016-06-2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심하기엔 이미 늦었네요. 호호^^; 보관함에 넣습니다. 하루키 팬으로서 쓴 책 기대됩니다^^

시이소오 2016-06-23 14:42   좋아요 0 | URL
하루키 팬이라면 누구나 재밌게 즐길수 있는 책이랍니다^^

양철나무꾼 2016-06-23 1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가져왔는데, 이 책도 끌리는걸요~^^
그러게요, 조심하기엔 이미 넘 늦었네요~--;

시이소오 2016-06-23 14:44   좋아요 0 | URL
비교해 읽음 재밌겠네요.
우치다 타츠루, 돚자리
깔아야할듯 ^^

농담같은오늘 2016-06-2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지요?^^ 후회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시이소오님 리뷰보고 몇권 선택한 책들도 있었는데 다 재미있었어요.ㅎㅎ 감사 한번 드리고 싶었습니다. 전 시이소오님처럼 이렇게 내용 정리가 잘 안돼서 늘 개인적인 감상들만 주절주절하다 끝나네요.ㅋ 오늘도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시이소오 2016-06-24 14:15   좋아요 0 | URL
재밌으셨다니, 기분 좋네욤. 농담같은 오늘님 감사합니다 ^^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 작가 위화가 보고 겪은 격변의 중국
위화 지음, 이욱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책은 실로 짜증스럽다.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거냐? 이걸 어떻게 리뷰로 쓰라고? 책을 샀어야 했다. 모든 페이지에 줄을 긋고 싶은 책은 아직도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 리뷰를 100페이지 넘게 쓸 수 없지 않은가. 위화는 어떻게 A4지 반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의 일기를 써도 촌철살인의 문장 한 두 개를 박아 넣을 수 있는 걸까.

 

중국과 위화

 

오늘 우리의 최고의 현실은 바로 초현실이다.”

 

위화는 옌펑의 말에 동의한다.

 

위화는 왜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 앞에서 늘 창백하고 무력한가. 우리 모든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은 우리 역사와 현실만큼 풍부하지가 않다.”고 말했다. 위화가 겪은 중국 현실의 경험담은 현실이 아니라 초현실처럼 다가온다. 마르케스의 소설 속 한 장면같다. <자무엘 피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의 낚시 이야기는 분명 경험담이겠지. 위화의 유년 시절, 저수지 물이 배수관을 따라 인근 논으로 흘러가, 점점 저수지 바닥의 개펄이 드러나면, 물고기들이 펄떡 거렸다고. 위화는 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주웠단다. 이 주운 물고기들로 위화는 물고기 입을 뚫고 끈을 꿰어 아가미 밖으로 나오게 했다. 위화는 마치 탄띠를 차듯 물고기들을 러닝셔츠에 찼다.

 

<농구장에서 축구를 하다>의 이야기도 재밌다. 위화는 루쉰문학원에서 공부했다. 땅덩어리도 넓은 중국에서 왜 그런지 모르지만 운동장은 농구장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농구장에서 축구팀과 농구팀이 동시에 운동을 했다고. 농구 골대 밑이 바로 축구 골대였다. 골대가 너무 작아 대개 공을 맞아야 했으므로 아무도 골기퍼를 하려 하지 않았는데, <개구리>, <붉은 수수밭>으로 유명한 모옌이 골기퍼를 했다지. 위화가 슛을 때리려는 찰나, 모옌은 다른 학생들처럼 도망치지 않았다. 위화는 슛을 때렸고 모옌은 배로 막았다. 중국 현대 작가의 피할 수 없는 외나무 다리에서의 한 장면. 웬만한 월드컵 축구 경기보다 흥미진진하다.

 

문학과 위화

 

최근에 소설가가 쓴 산문을 많이 접했다.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김영하의 <말하다>, <읽다>, <쓰다>,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등등. 소설가가 자신이 영향 받은 책에 대해 말할 때, 소설 창작의 비기를 털어놓는 책들은 왜 그런지 전혀 질리지가 않는다. 위화의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도 그러하다.

 

무력감이 든다. 읽어도 읽어도 도무지 나의 무지는 몸 구석구석 달라붙어 있는 나잇살마냥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중국문학에 대해 이렇게 무지할 수가. 바진? 70년대 말, 중국에선 서점에서 책 쿠폰을 받아야 책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책 쿠폰으로 두 권밖에 살 수 없었는데, 위화가 산 책이 바진의 <>. 위화가 시대와 작품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첫 작품이라고.

 

모든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에 책임이 있다. 그 사회의 병폐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


- 헨리크 입센

 

소설가이기 전, 치과의사였던 위화는 시대와 사회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위화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작가의 책에 관해 들려준다. 포크너, 하진, 렌츠, 이언 매큐언, 스트린드 베리 기타등등. 이언 매큐언은 <속죄>로 유명하긴 하지만 대표작은 역시나 <첫사랑, 마지막 의식>이 아닐까. 재독해야겠다. 아직까지 하진의 책을 읽지 못했다니, 스트린드베리도. 아으.

 

소설가의 두 가지 유형

 

내 생각에 작가는 서사 차원에서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유형의 작가는 여러 해 동안의 창작을 통해 자신의 성숙한 서사 체계를 세우고, 이후의 창작에서는 그 스타일의 서사를 계속 끌고 가면서 다른 제재라도 그 체계 속에 수용하는 작가다.

 

둘째 유형의 작가는 성숙한 서사 체계를 세우자마자 자기의 가장 자신 있는 서사 방식이 새로운 제재를 처리하는 데 적절치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다. 그렇게되면 그는 새로운 제재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서사 방식을 찾아야 하고, 그러한 작가의 서사 스타일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나는 두 번째 유형의 작가다.

 

지금의 내 창작 원칙은 이렇다. 어떤 제재가 나를 충분히 흥분시키고 오랫동안 창작해나갈 욕망을 불러일으킬 때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제재에 가장 적합한 서사 방식을 찾는 것이고 동시에 스스로 과거의 창작에서 익숙해진 서사 방식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가장 적합한 서사 방식을 찾는 것을 방해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는 제재가 다르면 표현 방식도 달라야 한다고 굳게 믿는 까닭에 내 서사 스타일은 늘 변화할 수밖에 없다.

 

우치다 타츠루의 <하루키를 조심하세요>를 읽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의 하루키 논을 받아들인다면 하루키는 위화와 달리 첫 번째 유형의 소설가다.

 

상상력과 통찰력

 

위화에 따르자면, 상상력만으로 소설이 되지 않는다. 상상력은 통찰력과 결합할 때라야 문학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상상력이 서사의 차이를 만든다. 통찰력은 상상력이 만든 서사의 차이에 활기를 불어 넣는 것이다. 위화는 상상력과 통찰력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예를 든다. 이오의 그리스 신화, 비가 올 때 나타나고 바람이 불 때 사라지는 간보의 <수신기>의 신선 등. 그러나,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유르스나르의 소설을 예로 들 때다.

 

유르스나르는 이 부분에서 감탄이 나오는 묘사를 한다. 링의 머리가 잘리고 나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때의 묘사인데, 그녀는 이렇게 썼다. “그런데 그의 목은 기이한 붉은 스카프를 둘렀다.이는 원래의 링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링 사이에 생긴 차이를 드러낸 것이자, 비례를 드러낸 것이다. 서사를 합리적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훨씬 힘 있게 한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붉은 스카프가 서사에서 대단한 이유는 삶의 죽음의 비례 관계를 드러냈기 때문이고, 이처럼 완벽한 비례의 출현으로 죽은 뒤 다시 살아나는 것이 이처럼 뛰어나게 묘사됐다는 것이다.

 

위화의 말대로 감탄스러운 묘사다. 유르스나르는 링이라는 인물의 죽기 전과 부활 후의 차이를 단 한 문장의 묘사로 압축했다.

 

삶과 죽음 사이

 

위화에 따르면 삶과 죽음 사이에는 비밀 통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혼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비밀 통로가 있는데, 바로 영혼이다. .....사람과 영혼의 관계란 어떤 경우 삶과 죽음의 관계다. 이것은 거의 모든 문학의 공통된 인식이다. 다른 점은 표현이 다를 뿐이다. 더구나 모든 일과 모든 사물에는 다 영혼이 있다. 예술은 더욱 그러하다.

 

전설에 따르면 백조가 죽음을 맞이하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라 한다. 그래서 서구 미학 전통에서는 최후의 작품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절창이라 한다.

 

와이프가 TV를 샀다. 와이프 따라 최근에 SBS <신의 목소리>를 봤다. (한 때 나도 한 노래 했었는데) 참 노래 잘하는 사람들 많구나. 아무리 일반인이 노래를 잘 하더라도 프로 가수의 노래에 비하면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위화의 관점을 따르자면 내가 보기엔 아마추어의 노래에 경우, 대개 영혼이 없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고 고음 처리가 완벽하다 하더라도 한마디로 감동이 없다. ‘절창이 아닌 것이다. 반면 박정현의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는 감동적이다. 박정현의 노래는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 가사의 의미를 청취자에게 돌려준다. 음악에 젖어 있다 보면 저절로 눈물이 찔끔거린다. 박정현의 노래는 절창이다.


문학에 진정으로 어떤 신비한 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시대, 다른 민족, 다른 문화, 다른 환경에 속한 작품에서 우리 자신에게 내재된 감성을 읽도록 하는 것이라고. 문학은 그처럼 미묘하다.

 

음악이든 문학이든 예술이란 결국 내 안에 내재된 감성을 일깨우는 게 아닐까. 이제 예쁜 여인을 꽃이라 부르는 건 영혼이 없는 묘사다. 말라르메는 자신이 사랑하는 귀부인을 끌어들여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꽃은 리지 부인을 꿈꾼다.”

 

문학에서의 언어.

 

여러 작가들이 문학에서의 언어의 아름다움 보다는 서술의 정확성을 중시했다. 그 중에 위화가 예로 든 구름과 달의 비유는 가히 압권이다.

 

문학 작품의 언어는 자신의 존재를 전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술의 힘과 정확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문학의 서사 언어는 눈길이어야 한다. 눈길은 무엇을 보았는지를 위한 것이지, 자신을 전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눈길의 존재 가치는 보았다는 것이다. 서사 언어는 눈길처럼 생활에서 무언가를 찾고, 독서를 이야기 속 인물과 사상, 감정 속으로 인도한다.

 

중국 전통 미학에 구름을 물들여 달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가지고 서사 언어의 역할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달을 그릴 때는 구름만을 채색하고 달은 그리지 않지만, 사람들이 보는 것은 달뿐이고 구름은 없다. 내 생각에 소설의 서사, 특히 장편소설의 서사에서 언어는 공을 세운 뒤 물러나야 한다.

 

스포츠와 위화

 

위화가 이토록 스포츠 광 일 줄은 몰랐다. 남아공에 가서 월드컵을 직접 관람하고, 미국에서는 오로지 NBA 농구를 보기위해 미국의 전 도시를 여행할 정도라니.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대개 농구 여행에 관한 일기에 몰려 있다. 왜 일까. 한 가지 예만 들어볼까.

 

뜨거운 댈러스와 습한 마이애미를 거쳐 상쾌한 시카고에 왔다. 기온과 마음이 서로 딱 맞다. 파이널 결승의 폭발적인 열정을 경험한 뒤 이제 안정을 찾았다. 생의 한 단락이 이제 끝났다. 완전히 다른 단락의 생이 이제 시작될 것이다. 기나긴 인생을 사람들은 왜 짧다고 느끼는 것일까? 아름다운 생은 하나하나 작은 단락일 뿐이기 때문이리라. 처음 마이애미 아메리칸 항공 센터에 들어서던 때가 기억난다. 우리 가운데 누가 말했다. “나는 내가 부러워.”

 

 

문학 천재란 무엇인가? 위화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독자들이 자기 작품을 읽을 때 독특함에서 출발해 보편에 도달하도록 하는 자. 그 예로 이언 매큐언을 들었다. 그러나, 위화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위화의 글은 언어의 온도가 높다. 따라서 독자인 우리도 약간이나마 따듯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위화가 부럽다

 

이 세 부분은 간결한 언어를 쓸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죽은 사람의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절제되고 차가워야 했고, 살아 있는 사람의 생기발랄한 말투를 쓸 수 없었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살아있는 세계의 지난 일을 쓸 때라야 언어의 온도를 조금 높일 수 있었다. 나는 쓰면서 현실 세계의 냉혹함을 느꼈고, 사납게 썼다. 그래서 따뜻한 부분이 필요했고, 지극힌 선한 부분이 필요했으며, 이는 내게 희망을 주고, 독자에게 희망을 주었다. 현실 세계가 사람들을 실망시킨 뒤 나는 아름다운 죽은 자들의 세계를 쓴 것이다. 이 세계는 유토피아도 아니고, 도화원도 아니다. 하지만 무척 아름답다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6-21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1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6-06-22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이 이렇게까지 격찬하시는 모습은 오랜만이네요.
어떤 책인지 엄청 궁금해집니다.

시이소오 2016-06-22 02:16   좋아요 0 | URL
저는 항상 격찬을 하지 않나요? ㅎㅎ

syo 2016-06-22 02:39   좋아요 0 | URL
격하게 까시는 건 왕왕 본 기억이 납니다! ㅎㅎㅎ
제 기억이 너무 임의적인가봐요 ㅠ

시이소오 2016-06-22 04:16   좋아요 0 | URL
ㅋㅋ 다들 그렇게만 기억하시더라구요.


제 별점 통계를 보면 별이 네 개 넘는데요. ㅎㅎ

희망찬샘 2016-06-22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글 읽다보면 덩달아 조금 알게 되어 좋아요. ^^ 도대체 언제 읽고 언제 생각하시고 언제 쓰실까요?! 감탄!

시이소오 2016-06-22 08:23   좋아요 0 | URL
희망찬샘님, 좋으시다니 저도 좋네요 ㅎㅎ

2016-06-22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깊이에의강요 2016-06-22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증날 정도로 좋은 책이라니ㅇㅇ

시이소오 2016-06-22 21:42   좋아요 0 | URL
위화 왕짜증이요
ㅎ ㅎ

2016-06-27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7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6-27 19:22   좋아요 0 | URL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6-06-28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8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