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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얼굴 그리기 ㅣ 장수하늘소가 꿈꾸는 교실 1
길도형 지음, 강화경 그림 / 장수하늘소 / 2011년 9월
평점 :
책을 읽으면서 든 마음이다.
예쁜 선생님은 정말이지 왜 그랬을까? 그러면서도 나 또한 그런 실수들 때문에 아이들에게 용서 받아야 할 일들이 있었던 초년 교사 시절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은 무척 잘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졌으며 그렇게 된 것은 부족한 나를 가르쳤던 아이들이 곧 나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한다.
아빠가 나만 했을 때, 시골에 살았을 때... 그 때 힘들게 살았던 우리 반 친구의 이야기.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준비물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었던 아빠의 짝꿍 한광수의 이야기!
친구들의 놀림에도 대꾸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던 마음은 착하지만, 공부는 잘 못한, 그래서 "그리 공부할 거면 뭐 하러 학교 오니?"라는 선생님의 꾸중을 듣던 아이, 미술 시간이면 준비물이 없어서 항상 교실 밖에서 벌을 서던 아이, "한광수, 너 또 준비물을 안 가져 왔구나? 수업할 태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밖에 나가서 손들고 서 있어."하던 선생님의 냉정하고 싸늘한 얼굴을 마주하며 가슴이 싸하다.
"자리에 앉아. 다음에는 꼭 준비물을 챙겨 오너라. 준비를 안 해 오면 벌 서는 것은 당연한 거야. 알았어? 두호야, 네 스케치북에서 도화지 한 장만 듣어 광수에게 주렴. 크레파스도 같이 쓰고." 그렇게 해서 광수가 그 날 선생님이 그리라고 하셨던 부모님 얼굴을 그렸는데, 생각보다 매끄러운 솜씨에 난 시샘도 났지만, 눈을 감은 아버지와 입을 꾸욱 다문 어머니의 모습은 섬뜩하게 느껴진다. 날은 더워지고 있었고, 광수는 여전히 미술 준비물을 챙겨 오지 못했고, 늘 그랬던 것처럼 벌을 서다가 짝인 내가 찢어준 도화지에 그림을 멋지게 그렸다. 벌을 설 때면 광수는 몽당연필로 허공에다 그림을 그렸고 나는 그 모습에 눈을 빼앗겨 버렸다.
여름방학이 가까워 오던 무렵,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2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라고 하시면서 바쁜 학년말 업무를 처리하셨고 그 날도 도화지를 준비하지 못한 광수는 선생님이 내 보내지 않았는데도 하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러 교실 밖 느타나무 아래로 자진해서 나가 버렸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우직한 아이 광수가 없어진 것도 모르는 선생님은 중간에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광수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광수가 없어진 것을 눈치채신다. "두호야, 광수 어디 갔니? 언제부터 안 보인 거야?" "과 광수가 조금 전까지 바, 밖에서 벌 서고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당황하신 선생님이 밖으로 나가자 광수는 땀으로 흠뻑 젖고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쓰러져 있었다. 늘 말이 없던 광수가 벌떡 일어나서 선생님 죄송하다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말하며 교문 밖을 달려 나간다. 광수가 쓰러졌던 자리에는 흙이 묻은 몽당 연필 한 자루와 찌푸린 얼굴, 화나서 야단치는 얼굴, 짜증난 얼굴, 무뚝뚝한 얼굴... 선생님의 표정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 조만치 멀리에 곱고 환하게 웃는 선생님의 얼굴이 정성껏 그려져 있었고, 그림 속 선생님 머리에는 들꽃을 꺾어 엮은 예쁜 화관까지 씌여져 있었다.
아이들은 다시는 광수를 볼 수 없었지만, 대신 1학기와는 달라진 늘 밝고 상냥하게 우리를 대하시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광수가 없어진 교실에는 광수가 운동장에 남겼던 선생님 얼굴을 그렸던 그림만이 광수를 대신하였고, 선생님은 그 그림 아래에 "광수야, 미안해!" 라고 적어 두셨지만, 그 사과를 받아야 할 광수는 오지 않았다. 그 기다림은 모두에게 아련한 아픔만을 남긴 채 그렇게 묻어갔다.
앞 못 보시는 아버지의 사연을 말 못하시는 어머니께 그림으로 전해야 했던 광수의 그 아픔은 지금도 아빠의 가슴에 남아 미안함으로 가슴을 아프게 한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질까 모르겠다. 어쩌면 이 그림책은 아이들의 마음이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을 빼앗아 버릴 책일지도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어쩌면 광수의 선생님 보다도 더 고약한 선생 노릇을 한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광수의 선생님이 몰라서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몰라서 그랬는데... 이제는 조금 알게 되어서, 그런 미안한 마음들이 내 마음을 콕콕 찌를 때면 좀 더 나은 교사가 되어가기 위한 단련으로 여기며 많은 생각을 한다.
선생님이 그런 것처럼, 나도 다른 사연으로 나의 광수들에게 미안하다.
슬퍼서 아름답게 느껴진 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