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관점이 본래부터 분별 가능한 만주족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족에 동화되거나 소멸된 것으로 보았다면, 신청사 담론은 왕조가 흘러가면서 만주족이 실질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았다. 건륭제를 비롯한황제들의 노력들은 소멸 위기에 처한 그 민족의 문화를 방어했다기보다는 기원 신화, 민족의 언어와 문학, 일련의 뚜렷한 문화적 특색을규정하여 만주족의 문화를 창조하는 데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그들은이러한 계획을 통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가정에 따르면역설적이게도 1644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만주족이 1911년에는 분명히 존재하게 되는 셈이었다. - P34

중국은 오랫동안 본질적으로 어쩌면 생물학적으로 다른민족들과 다르다는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청의정복은 그런 내부적인 인종 차별적 사고가 표면화된 계기였다. - P44

계속 확대되던 천자의 제국이 이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당·송과 명말청초에 제국의 생산성을 크게 확대시켰던 두 가지 경제적 개혁 덕분이었다. 이를 통해서 청 제국은 백성들을 궁핍하게 하지 않고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청 중기에 기하급수로 증가한 인구가이 전략을 더 이상 실현할 수 없게 만들었을 때까지 이러한 상승세는지속되었다. 성장하는 경제적 생산성과 더불어 조직적 병참도 성공을거두어, 청 제국의 예산은 사회 전체의 경제 생산에서 낮은 비율을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잘 작동했을 때 청의 행정은 저비용으로 유지되었다. - P66

중국사에서 제국의 규모와 범위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주장이 서로 엇갈린다. 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두 가지 관점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즉 명과 청이 완전한 ‘동양적 전제 국가‘였다는 관점과,
그들의 신민들을 전적으로 자활하도록 내버려두고 ‘세금 징수, 치안유지를 맡는 대리인‘이라는 최소한의 역할만을 맡았다는 관점이다.
이 두가지 관점은 모두 어느 정도 오류가 있다. 명과 청은 백성들을 전제적으로 위압하여 통제했지만, 반면에 일상생활에서는 국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기능들을 사적 영역의 개인 및 집단들에게 남겨두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한 실질적인 중간 영역, 즉 청이 왕조 - P100

의 존속과 백성의 복지에 관심을 두어 매우 활동적인 역할을 수행했던특정 정책 분야가 있었다. 이 분야들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식량공급, 통화의 규제, 민사소송의 확대와 관리였다. - P101

청의 관료집단은 종족 조직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갖고 있었다. 종족은 제국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유교적 정통론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종족에게 갈채를 보내야 했다. 실질적으로 지방의 관료들은 관할 구역 주민들의 복지와 생계를 위해 종종 종족의 자선 활동과 심지어 상업적 활동들에 의지했다. 옹정기와 건륭제 초기동안에 일어난 몇몇 경우에서 성급 관료들은 과도한 소송 절차로 인한지현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으로 심지어 사법 권한까지 종족 수장에게 위임했다. 그러나 종족의 힘은 국가에 득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있었다. - P210

중국 인구 중에서 농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항상 압도적으로 높았고, 서양에서는 중국을 오랫동안 전형적인 농업 사회라고 생각했지만, 중기의 청은 세계에서 가장 상업화된 나라였다. ‘경작과 독서‘라는 이상적인 신사-농부의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했던 중국의 엘리트 가문은 상업을 통해 돈을 벌었다. 19세기에 중국에 들어와 중국인들에게 교역의 미덕을 전파했다고 자부한 서양의 자칭 ‘상업 개척자들‘의 생각은 단지 착각에 불과했다. 물론 청 제국의 총무역량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외국 무역의 증가와 아편 전쟁 이후 중국 본토로 침투한 서양 상인들로 인해 조금 더 상승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업은 청제국의 광대하고 번창했던 국내 무역의 규모에는 전혀 근접할 수 없었다. - P219

광동무역 체제는 옹정제의 계승자인 건륭제가 시행한 세 차례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산물이었다. 1757년에 청 조정은 이후로 서양이 청제국과 무역할 수 있는 항구는 오로지 광주뿐이라고 공표했다. 두 번째로 조정은 1745년경에 광주의 지방관료들이 발의하여 시행하고 있던 담보제도를 승인했다. 담보 제도를 통해 입항하는 모든 서양 선박들은 중국상행으로부터 보증과 감독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1760년에청조정은 1년 중 외국 ‘오랑캐들‘이 중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기간, 거주장소, 그리고 무역할 수 있는 대상들을 정한 일련의 상세한 규정들을발표했다. 외국 상인은 아내와 가족들을 동반해 중국에 들어올 수 없었으며, 상인들의 사적 이동은 극도로 제한되었다. - P251

청은 세수의 감소와 무역 수지의 불균형으로 해마다 토지세 수입의25퍼센트에 상응하는 은이 유출되면서 고통을 겪었다. 사회 기반 시설은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방치되기에 이르렀고,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공동체를 위한 구제의 노력도 뜸해졌다. 실질적인 소득과관료들의 사기는 모든 면에서 떨어졌고, 부패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방위 예산이 증발해버리면서 새롭게 나타나는 국내외적 위협에 대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순간에 군사력이 취약해졌다. 이러한 불황은 태•평천국 운동이 터지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국내외적으로 경제적 불황은 매우 폭넓게 감지되었고, 1840년대 즈음에는 경기 침체가청을 붕괴 직전의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 P280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태평천국에 관한 역사서술은 냉전으로 알려진 팽팽한 이념분쟁의 선두에 있었다. 태평천국 반란군이 중국공산당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그것은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개별 학자들의 태도를 가름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입장에서 이 반란은 거대한 역사 서술의 초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태평천국의 ‘혁명적인 운동‘이 청에 대한 한족의 해방전쟁일 뿐만 아니라, 더 본질적으로는 지주 계층과 그들이 지지한 봉건적 정권에 대항한 ‘농민 기의 의병을 일으킴)‘의 원형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태평천국이 토지의 집단화 정책을 공포했다는 사실은중국의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태평천국운동 특유의 기독교적 믿음을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의 탁월한 혁명 이론에 앞서 모든 운동들의 운명을 결정지은 ‘미신‘이었다고설명했다. 냉전 시기에 태평천국을 연구한 서양과 중국 민족주의 진영의 학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전유물이 된 태평천국운동을 철저하게 비판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집단화 계획을 위선적인 것으로 일축했으며, 심지어 태평천국의 환상은 전체주의적인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태평천국운동은 진정한혁명이 아니라 그저 거의 성공할 뻔했던 반왕조적 반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 P326

협조 정책은 두 사건, 즉 1870년에 있었던 영국의 올콕 조약 AlcockConvetion 조인 거부와 천진에서 일어난 대학살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공식적인 정책에 의한 결과라기보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억눌려 있었던 불만과 백성의 고통에 따른 산물로 볼수 있을 것이다. 사실 청과 여러 서구 열강은 1860년의 북경 조약에 뒤이은 협정들을 지속적으로 맺어나가는 데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그들의 태도는 많은 지지자들의 요구에 미치지 못했다. - P385

통상적으로 19세기 말의 조선에서 청의 외교는 ‘근대화한 일본의팽창주의적 위협과는 대조적으로 구시대적인 ‘중국적 세계 질서 속에서 불안정한 속국에 대해 자신들의 종주권을 유지하려는 지연 작전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조선 사대부 계층 내의 청 지지 세력을유가 보수주의자로, 이에 대항한 친일세력을 진보주의자로 묘사하는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상당 정도 사실의 묘사라기보다일본팽창주의자들의 선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어떤 이는 청이 조선에서 완전히 근대화된 서구식 제국주의를 실현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청이 한 행동들은 오랜 한중관 - P398

계의 역사 속에서도 선례가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동아시아 지역에서 팽창주의적 서구 열강들이 행했던 수법과 더욱 공통점이 많았다.
또한 이는 청 제국 중흥의 일부로서 1880년대에 시작한 신강, 대만, 만주에서의 변방 지방화정책과 유사했다. - P399

청 제국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적어도 두 가지의 다른 의미에서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 일본, 서양을 통틀어서 정치적좌익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 용어를 레닌이 정의한 ‘자본주의의 가장높은 단계‘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본질적으로 경제적 개념인자본주의 시대에 발전했던 생산, 개발, 잉여 축적의 가장 효율적인 방식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가장 발전했던 영국과 같은 대도시국가들에게서 중대한 문제로 나타났다. 즉 대도시 국가들은 그들의잉여 자본을 투자하기 위한 출구를 찾고 있었으며, 국내 경제의 침체와 붕괴에 직면해 있었다. 중국 같은 나라들은 잉여자본 투자의 대상이 되었고, 여기에서 산출된 이익들은 대도시 경제로 다시 보내졌다.
이로 인해 투자 대상이 된 국가들의 자본이 유출되었고, 격차 해소를위한 산업화에 자금을 공급할 수 없게 되었다. 1920~1930년대의 국 - P407

민당과 공산당의 혁명에서 제국주의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되었고,
중국 내에서 실현되었던 제국주의의 정도는 굉장한 논란의 대상이자혁명 전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레닌주의적 시각에 입각한 제국주의는 또한 매우 광범위한 시간적 틀을 가지고 있었다. 즉 이 시각의 제국주의는 서양 자본주의와 접촉한 직후의 중국 역사에 대한 분석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몇몇 학자들은 이를 현재까지도 적용하고 있다."
반면 비마르크스주의적 역사가들은 ‘제국주의를 이와 완전히 다르게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는 경제적 개념이기보다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서구 열강(최종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 확장을위한 세계적인 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개념을 사용하는 학자들은 강대국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세력 균형을 모색하는 가운데 인식된 외교적 의사소통의 체제를 제국주의로 간주하고 있다. - P408

대청 제국이 종말을 맞았다고 해서 대부분의 보통 중국인의 삶이 단기간에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산동성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혁명을 경험했던 어느 여성은 훗날 자신에게 실제로 변화된 것은 단지화폐 단위뿐이었다고 회고했다. 혁명 이후 청의 동전보다 은화가 통용되었지만, 그 여성의 임금 가치는 영향을 받지 않고 유지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특히 엘리트 남성들에게 혁명은 강력하고 충격적인 의미를 지닌 문화적 사건이었다. 몇몇 학자들은 멸망한 왕조에 대한충절을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행위로서 자살을 감행했고, 1920년대까지도 새로운 중국의 일부 남성들은 변발을 자르고 근대적 머리 모양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이러한 행동은 청에 대한 복종과 자랑스럽게 변발을 유지했던 선조들에 대한 효심이 결부되어 나타난 것이 - P503

었다. 더욱 광범위하게 청의 멸망은 여성의 전족과 같은 세속적이면서 성적으로 뒤틀려 있는, 이제는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낡은 관습의자취에 대한 독특한 향수를 가진 남성성의 위기를 초래했다. - P504

19세기후반에 새로운 종류의 사회 진화론적 민족주의가 등장하여 민족국가의 올바른 기초는 종족적 또는 민족적 조국이라고 주장하면서, 새로탄생한 중화민국은 한족만이 독점하는 영역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청의 신민으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다양한 비한족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즉각적으로 일부 몽골족들은 자신들이 중화민국의 일부가 아니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1913년에는 동북 지역에 위치한 ‘만주족‘들의 고향에 주권 국가를 설립하려는 노력이 일어났고, 1932년에 일본에 의한 대리국으로서 중국의 ‘마지막 황 - P504

제‘인 아이신기오로 부의를 수반으로 하여 설립된 거대한 괴뢰국을포함하는 다양한 ‘만주국들‘이 간헐적으로 선포되었다." 21세기 초반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여전히 직면하고 있는 티베트, 이슬람교도및 다른 분리주의 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은 청의 멸망 이후 20세기 내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청 역사의 유산이다. -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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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편

1. 행복한 왕자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희생을 감행한 왕자. 친구들을 따라가지 않고 왕자를 돕고 그 곁에 있다 함께 떠난 둘.
아름다움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쓸모 있음이란 가치가 얼마나 작위적인 기준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돈과 자본이란 가치에 휘둘리기 쉽기 때문이다.

2. 어부와 그의 영혼
어부는 인어를 만났고 사랑을 얻기 위해 마녀를 찾아가 자신의 영혼을 분리시켜 떼어낸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면 그것이 온전한 나이지는 않을 것 같다. 분리된 영혼이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상상은 좀 소름이었다.


전체적으로 실린 단편들이 계급을 풍자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삶 때문인지 naive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그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란다. 비참함만큼 큰 신비는 없거든.

사람들이 그림자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몸의 그림자가 아니라 영혼의 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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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陳嬰의 어머니는 陳嬰의 가문이 대대로 빈천하였으니 갑자기 부귀해지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陳嬰을 만류해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고, 王陵의 어머니는 나라가 반드시 천하를 얻을 것을 알고 칼에 엎드려 죽어 王陵을 굳게 권면하였으니, 필부의 밝음으로도 오히려 事理의 이치를 추측하고 禍福의 기미를 살펴서 宗祀를 무궁한 후세에 보전하고 策書를 春秋에 전했는데, 하물며 大丈夫의 일이겠는가. 이 때문에 곤궁하고 영달함은 天命이 있고, 길하고 흉함은 사람에게 말미암는 것이다. 陳嬰의 어머니는<陳嬰이 王이 되면 > 망할 줄을 알았고 王陵의 어머니는 漢나라가 흥할 줄을 알았으니, 이 두 가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帝王의 구분이 결정될 것이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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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제도 - P88

의 일부인 대물림은 가족 제도와 마찬가지로 위계적이다. 대물림은 모부와 자식 간의 유사성뿐 아니라 두 가지 차이점도 만들어낸다. 바로 모부와 자식 간의 차이 그리고 자식들 간의 차이다. 사회적인 관성, 더 정확히는 고전적인 의미의 ‘위치의 대물림‘과는 거리가 먼 요소로서 대물림은 ‘비-대물림‘ 혹은 이동의 요인이기도 하다. 대물림으로 인해서 어떤 자식은 아버지의 위치를 획득하게 되고 다른 자식은 그로부터 배제된다. 그리고 전자의 결과는 후자의 대가가 있어야만 얻어진다. 대물림은 같은 계급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다른 계급과 하위 계급에 배분한다.
그러나 대물림의 행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비계승자(계승자 집단을 만들기 - P89

위한 필수 조건)를 집단적으로 생산한다.
뒤를 이어 공시적인 가족 제도가 이 비계승자의 일부를 ‘아내‘로 전환시키며, 각각의계급 내에 ‘비소지자‘ 범주(‘성별 범주)를만든다. - P90

우리는 결혼의 경제적인 측면으로 논의를 한정하고, 이해한 바를 요약하기 위해 작업의 출발 가설이 되는 이론을간추리고, 뒤이어 이론에 담긴 주요 가설을드러낼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결혼은 인구 집단 중 하나인 여성-배우자, 즉 아내의 - P101

무상 노동을 갈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노동은 무료이며, 그 이유는 임금 대신 부양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판매 (임금)와 상품의 판매로 정의되는 이 사회에서, 아내라는 특정한 생산 관계는 제공하는 노동의 속성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이 관계는 가사노동의 생산이나 아동 양육에 한정되지 않고, 여성과 아동도 포함한다)이 가정 내에서 이행하는 모든 생산을 포괄한다. - P102

모중심성은 부중심적구조에 반대하고, 대응하고, 균형을 맞추기는커녕 그 한 축을 이루는 통합된 부분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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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실들의 본질을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완벽하게 통제하는 상황 하에서 그 사실들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식을 사실들로 이루어진 도구화된 자연으로 제한하고, 원인들에 대한 해석을 제쳐놓는다는 전제하에서 우리의 약점은 힘이 된다. 이제 다시 보일은 약점-우리는 실험실에서 창조되고 단지 지엽적인 가치만을 지니는 사실들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결정적인 힘 - 이론, 형이상학, 종교, 정치, 혹은 논리에 있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러한 사실들은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으로 바꿔놓는다. - P62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하는 물체들이고, 의지나 편견을 가질 능력은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증인들 앞에서, 보여주고 신호를 보내고기록하고 실험실의 기구들 위에 낙서를 할 수 있다. 영혼은없지만 의미를 부여받은 이들 비인간은 보통의 인간들보다훨씬 더 믿을 만한데, 인간에게는 의지는 있으나 현상을 믿을만한 방식으로 알려줄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근대성의 헌법에 따르면 의심스러운 경우에 인간은 바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이 낫다. 새로운 기호적 능력을 부여받은바인간은 새로운 형태의 텍스트에 기여하는데, 이는 실험과 - P74

학 논문으로서, 성서 주석학의 오랜 양식 - 예전에는 성서와-
고전 텍스트에만 적용되었던 과 새로운 문구를 기입하는 최신 도구의 하이브리드다. 이로부터 증인들은 밀봉된 공간 안에 있는 공기 펌프에 대한 토의를, 바인간들의 의미 있는 행위에 대한 토의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 P75

홉스는 리바이어던, 즉 지상의 신이자 인공의 피조물을설립하는 벌거벗은 계산적 시민을 정의한다. 리바이어던은무엇에 근거하는가? 원자적 인간의 계산에 근거하는데 이 계산은 만인의 힘의 비가역적인 결합을 단 한 사람의 손에 넘주도록 결정하는 계약으로 이어진다. 이 힘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모든 벌거벗은 시민들에 의해, 그들의 이름으로 말할 단 한 사람에게 위임되는 권위 속에 존재한다. 그 한 사람이 행동할 때 누가 행동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확실히 그에게 우리의 권력을 위임한 바로 우리다. - P84

보일은 한층 더 낯선 인공물에 대해 정의한다. 그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기계가 아무런 근거가 없는 현상을그 내부에서 창조해내는 실험실을 발명했다. 그 기계들은 비록 인공의 것이며 많은 비용이 들고 복제하기도 어렵지만, 그리고 훈련된 믿을만한 증인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이사실들은 실제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상한다. 사실들은 실험실 안에서, 그리고 과학 논문들에서 제조되고 표상된다. 따라서 사실들은 증인들의 신생 공동체의 의해 인정받고 사실이라는 보증을 받는다. 과학자들은 사실들의 신중한 대변자인것이다. 사실들이 말할 때 누가 말하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 P85

사실들 자신이지만 또한 그들의 권위를 위임받은 대변인이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누가 말하는 것인가? 자연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이것이 바로 또 다른 불가해한 문제로서 과학철학은 그 이후 3세기가 넘도록 이 문제와 씨름하게 된다. 그 자체로 사실들은 침묵하고 자연의 힘은 감정이없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들이 스스로 말한다고 선언한다. - P86

근대성의 헌법의핵심은 그것이 하이브리드들을 결합하는 매개 작용을 수행하는데, 하이브리드들은 비가시적이고 사유할 수 없고 표상도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표상의 결여가 어쨌든 매개 작용을제한하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근대 세계는 즉각적으로 기능하기를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집합체와 마찬가지로 근대 세계는 그러한 혼합작용에 의지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와는 반대로 (그리고 여기에서 근대성의 메커니즘의 묘미가 드러나는데) 근대적 헌법은 스스로 그존재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하이브리드들의 확장된 증식을 허용한다. 초월성과 내재성 사이에서의 연속적이고 동일한 세번의 왕복을 통해 근대인들은 자연이 우리를 벗어나며 사회가우리 자신의 작품이고 신은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고 확신에 차서 주장하면서도 자연을 동원하고 사회적인 것을 객관화하며 신의 영적 현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 P99

연결망으로서 볼 때에 근대 세계는 혁명처럼 실천들의 작은 오 - P130

장, 지식의 순환에 있어서의 약간의 가속, 사회들의 조그만확장, 행위자들의 수의 미미한 증가, 과거의 믿음에 대한 약간의 변경 이상의 어떤 것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가그것들을 연결망으로 간주할 때 서구의 혁신은 여전히 인지가능하고 중요한 것으로 남지만 대신에 더 이상 영웅담의 소재로 충분치 않다. 그 영웅담은 급진적인 단절과 돌이킬 수없는 운명, 비가역적으로 운이 좋거나 나쁜 거대한 어떤 것이다. - P131

사실 근대의 헌법은 반증과 예외 덕에 번성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예외적 경우들이 증식할 때, 즉 만물의제3신분과 제3세계가 연합하여 ‘대규모로 헌법 상의 공식적주체들의 회의체들로 침략할 때 헌법은 그에 대해 무력하다.
야생의 사고와 다를 바 없는 이와 같은 예외들을 인정하기위해서는 (아래 그림 참조) 근대적 헌법의 공간이 아닌 새로운 공간의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 공간은 헌법 상에는비어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중간지대를 차지하게 될 것이기때문이다. 정화작용(수평축)에 대하여 매개작용(수직축)을 추가해야 한다. - P139

준대상은 훨씬 더사회적이고 훨씬 더 조작된 산물이며 자연의 ‘견고한 요소들보다도 더 집합적인 성질을 띠지만 반면 결코 완성체로서의사회에 대한 자의적인 수용체는 아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볼 때, 준대상은 사회가(아직 명확하지 않은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투사할 필요가 있는 무형의 스크린보다는 훨씬 실재적이고 비인간적이며 객관적이다. - P149

근대적 모순이란 이중적 모순, 즉 한편으로는자연과 사회라는 헌법의 두 보장간의 모순이자 다른 한편으로 정화와매개의 작용간의 모순이다. - P163

시간들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분류에 의해서이지시간이 분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주의-반근대적이거나 탈근대적인 결과물들처럼 는 만인의 이름으로 소수의 대리자들에 의해 결정된 선택의 잠정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우리 시간에 속하는 요소들을 스스로 분류할 수 있는 능력을많은 사람들이 획득하게 된다면 우리는 비로소 근대주의가 우리로부터 앗아간 이동의 자유 - 실제로 우리가 결코 한번도 상실한 적이 없었던 자유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연들과 문화들이 마침내 명쾌하게 분리될 수 있는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서 양자를 혼동했던 어두운 과거로부터현재에 대한 지속적인 혁명을 통해 전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미래로부터, 혹은 시간의 깊이로부터 도착하는 동질적이고 전지구적인 흐름 속으로 뛰어든 적이 없었다.
근대화는 일어난 적이 없다. - P197

존재자들의 집합 전체를 자연으로부터 사회로 이어지는 단선위에서 분류한다는 것은 지도를 위도만으로 그리겠다는 것으로, 하나의 선으로 축소시키는 것과 같다! 존재자들에게 위도값을 갖게 하고 내가 말한 것처럼 근대적 헌법 자체와 그작용을 기입할 수 있는 지도를 전개하려면 또 다른 차원이필요하다. 남북 축에 해당하는 이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나의 은유들을 조합해 볼 때 사건으로부터 본질에 이르는존재자들의 안정도의 기울기라고 정의해야 한다고 본다. - P218

사실 첫 번째 대분할은 두번째 대분할을 외부로 수출한 것이다. 우리 서양인들은 또한 자연을 동원하기 때문에 다른 문화들 중에 하나일 수는 없다. 우리는 자연의 이미지나 상징적 표상이 아닌 자연 그 자체, 혹은 최소한 제 과학- 언제나 배경이 되고 연구되지 않았으며, 연 - P247

구될 수도 없지만, 기적적으로 자연 그 자체와 융합된을 통해이해된 자연을 동원한다. 따라서 상대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의 중심에는 과학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만일 서양인들이 무역과 정복, 약탈, 그리고 지배에만 만족했다면 자신들을다른 무역상들이나 정복자와 이 정도로 근본적으로 구분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구분은 가능한데, 서양인은과학을 발명했고, 그것은 정복이나 무역, 정치나 윤리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활동이다. - P248

주변부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전체주의적인 중심의 존재 - P306

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중심과 그 총체성이 허구라면 주변부를 찬양하는 것도 조금 우스운 일이 되고 만다. 고통받는 신체와 인간적 온정의 존재를 냉정한 과학 법칙의 보편성으로부터 변호하는 일 자체에는 아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만일 이 보편성이 생명을 가진 인간들이 거의 모든 곳에서 고통 받는 일련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변호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지 않을까? 인간을 기계와기술관료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그 기계란 것이 그 기계에서 구원을 발견하는 인간들로 가득찬 존재라면, 보호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닌가(Ellul, 1967)? 영혼의힘이 기계적 법칙을 능가함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도 만일 물질이 전혀 물질적이지않거나 기계가 전혀 기계적이지 않다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신을 복원하기 위해 간절히 노력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특히 기술적 닦달Ge-Stello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 같은 오늘날,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의 힘도 함께 존재한다‘고 했기에이러한 노력은 더 돋보인다. 하지만 아직 시작되지 않은 위기로부터 뻔뻔스럽게 이익을 챙기려는 시도는 정말로 이해할수 없는 행위다! - P307

우리가 근대 세계를 포기한다고 해서 다른 누군가 혹은 다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어떤본질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의 과정, 하나의 운동, 하나의 이행, 문자 그대로 공놀이에서 말하듯이누군가에게 패스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속되고 위험한-위험하기 때문에 연속적인 존재로부터 기원하는 것이지 하나의 본질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불변성이 아니라 현존의 상태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매듭vinculum 그 자체, 수많은 통로와 관계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합적인 동시에 실재하고 담론적인 이 관계와 무관한 출발점에서비롯되었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새로운존재나 언어라는 더 최신 개념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의미의세계와 존재의 세계는 동일한 세계로서, 번역의 세계이고 교 - P318

체의 세계이며 이행의 세계이자, 위임의 세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본질의 다른 어떤 정의에도 ‘의미가 부재하다고 말할것이다. 실제로 최소한 그것들 속에는 현존을 위한 수단이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영속성, 견고성, 영구성은 그것의 매개자들에 의해 대가가 지불될 것이다. - P319

어떻게 하이브리드들을 가시화하면서도 규모와 탐구, 증식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내가 찾던 바로 그 아말감이다. 외부세계의 진리와 도덕법칙의 주체의 창조를 통해서, 그러나 과학들과 - P331

사회들의 공동산출co-production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규모의 변화를가능케 하는 하나의 자연과 사회의 산출을 계속하기. 그 아말감은-
근대인들의 정화작용의 최종 결과물 즉 주체들로부터 구분되는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자연을 보존하면서도 하이브리드들을 개념화하는 전근대인들의 범주들의 사용을 허용한다. 나는 불안정한 존재자들로부터 안정화된 본질들로 이끄는그리고 그 역방향에 대해서도 성립하는 경사면을 계속해서 따라가고자 한다. 정화작용을 완료해야 하지만, 매개 작용의 특정한 경우로서 완료해야 한다. 근대인의 이원론의 이점들을보존해야 하지만 그 단점들 준대상들의 은폐 - 은 계승하지않아야 한다. 전근대인들의 일원론의 모든 장점들을 유지하면서도 그 한계ㅡ 지식과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혼동을 통한 규모의 제약-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 P332

더 이상 벌거벗은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벌거벗은 시민도 존재하지 않는다. 매개자는 자신을 위해 전체 공간을 갖는다. 계몽은 결국 머무를 수 있는 장소를갖는다. 자연들은 직접 존재하면서도 자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대표자인 과학자들과 공존한다. 사회들도 직접 존재하지만 태고의 시간부터 사회들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 대상들과 공존한다. - P355

우리의선조들이 시민들에게 부여할 권리나 우리 사회들의 짜임새안으로의 노동자들의 통합을 발명했을 때 그들의 과제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철학자이자 시민으로서, 비교인류학의 산재된 주제들을 모아서 축적함으로써 나의 과제를수행해왔다. 다른 사람들은 사물들의 의회를 소집할 수 있게될 것이다.
우리에게 대안이 많은 경우는 드물다. 우리가 공통의 거 - P357

주지를 변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는 다른 문화들을 우리의 거주지 내부로 흡수할수 없을 것이며, 우리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된 환경을이 거주지 안에서 적응시킬 수 있는 능력을 영원히 상실하게된다. 자연도 타자도 근대인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변화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이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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